"교회 내의 문제, 사법처리로 해결되는 게 안타깝다"
"이렇게 곪기 전에 더 일찍 터졌어야"
천주교 내부에서 일고 있는 자성·자정의 목소리
사회복지시설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57) 신부가 후원금과 기부금, 국고보조금 등 수억원을 가족들에게 불법적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천주교 내부에서도 조심스럽게 자성의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상도동 성당 함세웅 신부는 "자선이라는 명목으로 불의가 은폐돼선 안된다"면서 "이번 일을 기회로 천주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와 사회복지재단 등이 정화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또 "이번 사건은 교회 안에서 자정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를 사법적 처리로 넘긴다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꽃동네의 수혜자가 피해를 봐선 안된다. 하지만 검찰은 철저히 조사해야 하고, 국정감사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주교 마산 교구 백남해 신부는 "현재 천주교 내부에서는 이렇다할 움직임은 없다"며 "천주교의 특성상 우선 사태를 지켜보며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백 신부는 "오웅진 신부 문제는 96년부터 98년까지 천주교 내부에서도 논의가 많이 됐었다"며 "지금처럼 곪기 전에 더 일찍 터졌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백 신부는 또 "이번 문제는 천주교 전체가 나서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면 천주교는 교구의 행정 자치권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 교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다른 교구에서 개입하기 어렵다"면서 "27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상임위가 열릴 예정인데, 이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한 신부도 "꽃동네 사건은 이미 대부분이 잘 알려져 있던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모든 의혹들이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부동산 투기와 횡령 의혹이 사실인 것 같냐'는 질문에 "더 이상 이 문제를 언급하면 교구 내에서 내 위치가 곤란해진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한편 검찰은 2월 초에 오씨와 가족들을 소환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의 한 관계자는 21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부정선거 문제로 오 신부와 꽃동네에 대한 내사를 하다가 단서를 포착했다"며 "조만간 오 신부를 소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음성군 맹동면 등의 토지매입 부분과 관련, 땅을 판 4-5명을 소환조사했고, 현장답사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꽃동네 수사, 검찰 '고민거리' 뭐 있나?
<기자수첩>'한점 의혹없이 진실 규명돼야'
(충주=연합뉴스) "제보에 따라 `꽃동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의 횡령 의혹 등에 대해 내사를 벌인 적은 있지만 길거리에 내몰리게 될 장애인들의 입장과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해 중단한 상태입니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이 `꽃동네' 설립자인 오 신부의 횡령 및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수개월간 내사를 벌이고 계좌추적 등을 통해 일부 혐의를 입증할 만한 정황을 포착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 청주지검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산기슭에 맨손으로 국내 최대의 사회복지 시설을 일궈내고 수 십년간 수 천명의 불우 이웃을 헌신적으로 돌봐온 오 신부에게 `사정의 칼날'을 겨누고 있는 검찰 수뇌부가 겪고 있는 나름대로의 고민(?)을 단적으로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고위 간부의 말은 듣기에 따라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고 불법 행위는 예외 없이 단죄돼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평범한 역사적 진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위험 천만한 것이다.
이는 아울러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숱한 밤을 꼬박 지새며 고생하고 있는 후배 검사들의 의욕을 꺾어 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누차 강조한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 구현', `공정성과 투명성이 살아 있는 사회 구현'에도 크게 벗어난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돈 없고 힘 없는 약자에게 강하고 가진 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스스로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고 설 자리를 잃어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검찰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경찰에게 수사권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이 또 다시 외부 입김에 굴복하거나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해 오 신부에 대한 내사를 중단한다면 검찰은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할 뿐만 아니라 대.내외에서 뼈를 깎는 개혁을 요구받을 게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는 헌신적인 사회 복지 활동을 펼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 막사이사이상 등을 수상한 오 신부나 꽃동네에도 결코 이롭지 않게 작용할 것이다.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은 오 신부에 대한 의혹은 또다른 의혹을 낳을 것이고 수십만명의 후원자가 십시일반으로 낸 성금으로 운영돼온 꽃동네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오 신부에 대해 제기된 각종 의혹을 명쾌하게 밝혀내고 위법 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느냐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느냐는 검찰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 연합-윤우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