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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전국적으로 비가 왔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미 일기예보는 목요일 오전부터 비가 오며
이번 비가 그치면 때이르게 덥던 날씨가 다소간 좀 기온이
내려갈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당일 그러니까 어제 17일 아침 9시에 이곳에서 같이 만나 출발할려고 하니 날씨는 잔뜩흐려있는데 비는 오지 않고 곧 빗방울이 떠러지기 일보 전의 예감이 들었다. 고향 김천 가는 길, 어디로 갈껀가..
경주, 영천,대구,김천으로 가는 경부고속으로 갈까? 마산,현풍,대구,김천으로
가는 구마고속으로 갈까? 하다가 시간이 거의 차이가 없으니
잘 가지지 않는 구마고속으로 가보자. 평일이고 비가 오기 시작하는 이곳을
9시에 출발하여 고속도로에서는 막힘없이 달리기 시작하였고
어느듯 우리들이 탄 차는 마산을 지나 구마고속으로
올라가서 잘 달리고 있었다. 대구 초입의 화원 인터체인지 요금소로 차가 스르르 속도를 줄이며 들어가지 전, 대형 전광판에는 '서대구부근에 차량사고로 정체 중' 이라는 안내문이 나온다. 이미 어쩔 수 없는 길, 차량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정체가 시작되는가 했는데 이럭저럭 차량이 많이는 밀리지 않고 서대구를 지나 금호분기점. 안동으로 빠지는 중앙고속으로 갈꺼냐, 부산으로 갈꺼냐, 김천 서울로 갈꺼냐 고 묻는다. 우리가 온 방향의 뒤로 가면 88고속이요, 우리가 온 구마고속으로 연결시켜주는 영남 최대의 대구를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으로 만드는 갈림길이다. 잘 알다시피 대구는 올 년말이면 포항과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완공 예정이고 내년 말이면 역시 청도, 밀양, 부산으로 연결시켜주는 고속도로가 완공예정이다. 그야말로 8통 16달의 영남의 중심부의 최대 도시다운 면모를 과시할 날도 멀지 않았다. 이곳 대구에 있는 많은 송설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복잡한 금호 분기점을 삥돌아 경부, 김천방향으로 진입을 했다. 야, 이거 어찌된 거냐? 도로가 갑자기 시원하게 뚫려서 촌사람 어느 차선으로 가야할 지 모를 정도다. 만성적체현상으로 우리를 자주 짜증나게 했던 구미- 대구간의 고속도로가 8차선으로 확장되어 있다. 그 시원하게 확장된 도로를 얼마동안
지나자 곧 구미가 나왔다. "희자씨, 고향이 여긴데 혹시 살던
집 안 보이니껴?" 한적하게 잘 포장된 조용한 도로를 따라 아포가는 길로 찾아 들어간다. 해수가, "고아 산골짝에서 아포양반한테
시집 잘 왔지...ㅋ,ㅋ...." 해수 " 어떻게 아포가 골짜긴가?
아포를 지나 한참 골짜기로 들어가야 고아가 나오지..." 아포읍(예전엔 면에서 아마도 농공단지가 생겨서 읍으로 승격이 되었는지 언제부터인지 아포는 면이 아니고 아포읍으로 되었음)지동, 해수 형님집에 도착을 하고 빗줄기는 굵어져서 줄줄 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형제간의 이야기와 용무를
마치고 점심을 어린 열무나물( 크기 3-4센티 쯤 되는 떡잎같은 보드라운
나물)을 대소쿠리에 듬뿍 담아 내와서 된장과 고추장으로
슥슥 비벼 먹었지. 예정대로 다음은 김천시 어모면 옥계리, 장용이 친구 집으로이다. 김천시내를 벗어나 상주길로 접어 들어간다. 시청 앞에는 넓은 도로 옆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 차있고 도로는 한참을 잘 뚫려있고 또 한참을 가니 옛길 왕복 2차선이 나온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 해수가 "아,
저기가 감초, 종길이 집인데.. 없어져 버렸다." 고
꽤나 놀란 듯이 소리쳤다. 지나가고 만 흔적을 목을 뒤로 돌려 보았다. 고등학교 때인가? 읊조리던 시조가 입에서 웅얼거리고 지나간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오니 그리운 고향길을 한 바퀴 돌아보니 경북선 철길과 좋은 사이를 이루며 한참을
가니 우리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자주 들어왔던 '용문산
기도원'이라는 큰 안내판이 나온다. 큰길에서 작은 길로 들어가니 옛기억이 되살아 난다.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추풍령 줄기의 골짜기인지라 아포와 같은 야산과 논밭이 엉키어 있는 곳과는 또 다른 대조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계곡의 물도 좋다. 위에서 어모면 옥계리라고 했는데, 그 옥계리를 한자로 써면 玉溪里, 말그대로 구슬이 흘러가는 듯한 계곡이란 말인가? 그 옥계리에 자리잡아 과수원을 경영하는
장룡이 집에 들어갔다. 차는 경적소리를 내지 않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는데 그 누구도 보이지를
않는다. 죽 둘러 앉았다. 싣고간 캔 맥주를 탁, 탁 땄다. 부라보다. 반가운 친구를 위해서.. 대지를 축복해주는 빗님께 고마움을 보내면서... 두어시간을 앉아 놀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룡이 부인 순임씨가 해수에게 "오빠, 그러지 말고 나물 준비
해놨으니
반찬 없더래도 저녁 잡숫고 가.." 이 또한 이상하고도 정감있는 대화 아닌가?
장룡이 집을 나서서 우리는 왔던 길을
가지 않고 용문산 기도원 쪽, 말하자면 추풍령 골짜기로
들어가서 엄청 고갯길은 아닌, 그 고개를 넘기로 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직지사를 통과하고 '영남제일문'을 통과하여
백옥동 종수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어딘가하고 자동차는
서서히 오른편 3차선을 더듬거리면서 우리는 고개를 내밀고
골목길을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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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을 찍던 위치에서 5미터 정도를 올라가서
찍어 본 사진인데 이곳이 집 정면에 있는 잔디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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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전면에 서서 바라본 멋진 스카이라인.. 좀 전까지
비가오고 날씨가 좀 갬과 동시에 산정상에는 안개가 깔려 있다. 앞에
보이는 잔디는 위의 사진에서 봤던 잔디밭. |
지난번의 글에서 소개했던 우직스럽지만 겨울의 동반자
난로. 중간 사각부분의 문을 통해서 나무가 타는 모습이 보이고 기름이
아닌 나무가 타는 모습은 우리의 정감을 한층 돋구어 줌을 겨울에 느낄
수 있더군. 화합하기 실은 선풍기가 못마땅해하면서 등을 돌리고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
난로와 같이 있는 거실의 내부 중 일부분. 항상 책을
가까이 하는 종수가 벽돌과 나무판으로 만든 서가를 보여 주고 싶어 사진을
찍어 봤어. 그러는 중에 지난번 소개했던 종수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우선 우리집에서 키운 복숭아 맛을 좀 보세요.." 하고 과일을
탁자에 사뿐이 놓는 모습. 그녀는 서가 오른 쪽 위에 보이는 종수아버님과 어머님의 사진이 보이는데 종수아버님은 일찍 타계를 하시고 셋째 며느리로 17년이라는 청춘을 다바쳐 어머님을 모셨으니 그녀를 다시 다시 한 번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쳐다보게 만든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그 은밀한 두사람만의 이야기를
정수, 너는 들은 것처럼 얘기를 하는데 네가 들어봤냐고 묻는 친구가
있으면 나중에 종수부부를 만나거던 한번 확인해 보시길... |
종수부부가 함께 사용하는 책상의 모습. 내가 이집에서
가장 부러운 것 중의 하나인데 설합이 없어 다리와 무릎이 아주 편하게
생긴 것이고, 판이 넓어 책을 읽기도 하고 붓글씨라도 손을 댈 수 있는
날이 있다면 판의
공간이 넓어서 시원하다. |
밤이 깊어가는 중에 거실에서 큰 유리창을 통하여
밖을 내다 보니 캄캄한 가운데 산등성이의 아름다운 굴곡이 보여서 카메라
샤터를 눌러 봤는데 유리창에 후레쉬가 터지면서 반사 되어 엉망으로
된 모양. 운영자님들 이런 건 찍을 때 어떻게 하는 지, 찍으서는 안되는
건지 조언을 바랍니다. |
종수부부와 해수부부가 다정히 앉아 탁자위의 복숭아를
깨물고 있는 모습. 복숭아도 여러 종이 있겠지만, 우리집 옆의 복숭아는
지금 매실 만하게 열려있는데 벌써 복숭아를 맛보일 수 있는 실력은
FTA의 험난한 파고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
접시에 놓여진 복숭아를 가까이서 한 번 찍어본 사진. |
이 사진은 위에서 본 책상의 받침인데 받침과 받침을
연결하는 부분에는 못이 없고 ㄷ자 모양으로 위와 아래가 파여서 연결된
부분. |
우리가 종수집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5시간 좀 지난
시간이라 만나서 얘기를 좀 나누고 나올려고 했는데, 종수도 가뭄 끝에
비가 와서 너무 기쁘고 그기에 친구들이 찾아와줘서 너무나 기쁘다고
하면서 초여름 밤은 깊어가고 또 깊어가는데 우리는 아직도 못다한 얘기를 다음으로 미루고 종수부부의 자고 가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좀 늦더래도 내일을 위해 자리를 일어났어. 시계는 11시 반을 가르키고 있었고, 날씨는 안개와 구름으로인지 칠흑처럼 어두웠다. 외등의 불빛과 친구부부의 따스한 온기를 가지고 집을 나섰고 우리는 밤길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렸다. 내려오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왔는데 곳곳에 확장공사로 노견이 없는 어두운 고속도로는 2차선이, 굽어있는 곳은 일차선의 고속도로처럼 보이기도 하는 한적한 도로를 힘껏 달리는데 운전수 아저씨는 음악을 틀었다. 차 안에서는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 공원' 이 흘러나왔고, 고속도로는 노래와 같이 새벽 안개가 한층 많이 깔려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2시가 넘었고, 헤어지기 전에 해수친구에게 |
첫댓글 부러운 넘들.좋은 나들이였군.옆에도 자리가 비어있는데... 그런데 그 물맑고 공기좋은 곳에 갔는데 해수의 말이 없는것이 이상한데.분명히"이런곳에 빨리 땅을 준비해야 겠는데..."했을법한데
일수야, 비단 해수뿐만이 아니라 누군들 나름대로 느끼고 하고 싶은 말이 없겠는가. 작년 봄으로 기억이 되는데 남식이집 혼사를 직지사에서 치르고 내려오면서도 종수에게 들려서 처음 들러는 곳도 아니지만 그도 너와같이 칸추리 태생을 어찌할 수 없는지 농촌에 대한 향수와 미련은 누구 못지 않은 것을 너도 잘 알고 있
해수가 한바퀴 둘러보고 앞산을 바라보며 나와 담배를 한대씩 피우면서 감회에 찬 조용한 목소리로 "종수같은 모범적인 품성의 농꾼이 3-40년 동안 일구어 놓은 노력과 연구와 노하우를 많은 사람들은 그저 세월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고 하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