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엄 사태로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데모대가 시가지를 점령했다.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수많은 군중의 구호가 전국을 뒤덮고 있고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무엇이 틀린지 무엇이 맞는지 도무지 판단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또한 알 수 있을까?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위로하면서 큰 기침 한 번 해볼 뿐이다.
한통의 낯선 전화로부터 시작된 감동과 감사가 동시에 몰려왔다. 다름 아닌 한국불교신문사 주최 신춘문예에 출품한 작품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편집국장편으로 전해왔기 때문이다.
출가자가 점점 줄어가고 불자가 줄어가는 이때에 절에서 산다는 게 그리 만만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부처님 잘 모시고, 또 신도를 부처님으로 대하면서 지내고 있다. 날이 갈수록 여여해지는 걸 보니 체질인 듯하다.
소승이 시를 쓴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간혹 시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나의 모습이다.
그냥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상을 얼른 메모를 하는 것이 나만의 요령이며 순간 포착이다. 지나가 버리면 다 지워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그렇지만 조용하게 산 속에서 지내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소재가 부처님과 산, 그리고 밤 야경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생활 속에서 찾기 마련이고 생활이 곧 시가 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다른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정중동’(고요 속에 움직임)을 쓰는 그날도 늦은 봄 어느 날 혼자 차 한 잔 하면서 졸린 눈에 잡힌 저 멀리 흰 구름을 보고 시상을 떠올린 후 돌아본 모습을 시로 옮긴 것이다.
소승의 졸작을 당선작(가작)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 이하석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부처님의 정법을 널리 전하며 창작활동에 매진하겠다.
[이력]
- 한국불교태고종 울산교구 종무원장
- 울산불교 문인협회 이사
〈심사위원 : 이하석 시인〉
△ 심사평 : 간결하고 단아한 모습 높이 사
예심을 거쳐 올라온 본심 작품들은 예년과 수준이 비슷했다. 주변의 사물과 풍경묘사를 통한 생의 성찰과, 그 고통의 각인이 예사롭지 않은 질문처럼 느껴졌다. 우리 삶의 소외된 상태를 떠올리면서도 이를 어루만지는 연민의 시선이 가슴을 치기도 했다. 삶과 시간의 인식이 갖는 누추를 광휘의 꿈빛으로 떠올리는 시선도 눈길을 끌었다. 때로는 현실과 꿈의 간격이 커서 비유가 헐거운 경우도 있고, 처음의 촘촘한 언어 밀도가 뒤에 가서 풀어지는 단점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지만 현실 인식과 이를 떠받치는 연민의 기둥이 단단하여 우리 시의 고통스러우면서도 숭엄한 현재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졌다. 신춘문예는 신인 등용문으로서의 위상을 가지는 만큼 이미 문단 활동(공모전 수상, 시집 발간 등)을 하고 있는 이들은 제외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번 수상 대상 시인들이 그 점에서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이 확인됨으로써 수상에서 제외된 것은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수상 대상을 좁히는 과정에서 이 문제가 계속 불거져 부득이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했다.
다만 본심 작품 가운데 스님의 작품 한 편을 가작으로 선정한다. 시 ‘정중동’은 선시 특유의 분위기로 소리와 정적, 움직임과 멈춤, 그리고 시각과 후각의 미묘한 파동이 어우러지는 깔끔한 세계를 드러낸다. 핏기 없는 맑은 세계만을 다소 고답적으로 떠올리는 미흡감을 느끼면서도 지금 우리 시들에서 보기 힘들어진 간결하고 단아한 모습을 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