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났는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은 계속 ‘그런’ 상태다. 언론이 사실상 비노의 수장이라 부르는 김한길 전 대표가 문재인 대표를 또 다시 정면으로 비판하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결기보다는 여전히 두루뭉술하다. ‘결단’을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무슨 결단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퍼뜩 떠올리기 어렵다. 정치권 언저리의 셈법으로 ‘이심전심’ 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돼버린 상황에선 문재인 대표가 알아서 할 수만은 없다.
안철수 의원은 문재인 대표가 야심차게(?) 제안한 혁신위원회의 위원장직을 거부했다. 모처럼 안철수 의원이 전면에 나서 당의 통합과 개혁에 앞장서주길 기대했던 사람들의 입에선 실망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비주류 입장에 강하게 동조하는 이들은 오히려 친노의 ‘들러리’로 전락할 함정에서 안철수 의원이 발을 뺀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런 그림 자체가 이 당의 슬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쪽이 기쁨을 누리면 다른 한 쪽이 반드시 불행해지는 제로섬의 경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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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2014년 국회에서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한 뒤 손흔들며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탁류가 넘치니 시선은 자연스럽게 산과 들로 쏠린다. 전남 강진에 기자들이 찾아가기 시작했다. 종편채널을 포함한 이런 저런 언론이 손학규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땅끝을 찾았다. 하지만 쓸만한 기사거리는 없다. 손석희가 이끌고 있는 JTBC <뉴스룸>은 산중 토담집에 젊은 기자를 파견했다. 기자가 만덕산 산길 수풀을 헤치며 올라가는 모습이 잠시 화면에 잡히고는 “한참을 기다려서야 손 전 대표가 부인과 함께 모습을 드러냅니다”라는 문학적 설명이 흘러나온다. 손학규 전 대표는 읍내에 가서 부인이 쓸 운동화 등의 생필품과 함께 백반을 사왔다고 한다. 기자가 산을 오르다 뱀을 만났다고 하니 그 뱀이 바로 살모사일 것이라는 손학규 전 대표의 설명이 곁들여진다.
기자가 ‘정치 복귀’와 같은 얘기를 꺼내보지만 손학규 전 대표는 말을 이리 저리 돌린다. 기자에게 차를 한 잔 대접하고는 이제 집에 가라는 얘기만 반복한다. 기자가 재차 말을 붙여보려 하니 다시 차를 한 잔 또 준다. 차를 우리는 데에 솜씨가 있어보인다. 그리고는 ‘무념무상’을 논한다. 스스로를 ‘다 떠난 사람’으로 자칭한다. 말만 놓고 보면 화를 피해 입산한 영락없는 청류(淸流)다.
물론 정치권 언저리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말하는 게 믿을 수 없는 말임을 잘 알 것이다. 대중정치인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버림을 받았을 때나, 스스로의 건강이 더 이상 허락치 않을 때가 돼서야 간신히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 고령에 은퇴를 번복하고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예도 있다. 손학규 전 대표가 토담집에 들어갈 때에도 다들 그렇게 얘기했다. “정말 은퇴를 할 생각이면 하필 전남 강진이겠느냐?”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현역 의원시절보다 더 세었어야 할 손학규 전 대표의 머리카락은 젊은이처럼 새카맸다. 이는 정치의 생리를 여전히 의식하고 있다는 소소한 증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손학규 전 대표의 복귀를 많은 사람들이 예감하는 건 이러는 게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에서 패하고 난 이후 제1야당이 된 당시 통합민주당은 2008년 총선에서 80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또다시 대패했다. 당시 손학규 전 대표는 대선 패배 이후 아무도 당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어 떠맡게 된 대표직을 정세균 전 대표에게 넘기고 홀연히 춘천으로 떠났다. ‘정세균계’는 이때 탄생했다.
지금처럼 그 때도 기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손학규 전 대표의 춘천집을 찾았다. 정치 현안에 대해 물으면 소득이 없으니, 기사는 손학규 전 대표가 키우는 닭 이야기나 막국수 등 음식 얘기로 채워졌다. 그러던 손학규 전 대표는 민주당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 나서야 진보의 가치를 국민 생활 속에서 찾겠다며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막바로 이어진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잃어버린 600만표를 되찾아 오겠다”며 중도공략을 선언해 화려하게 대표로 복귀했다. 이 시나리오의 2015년 버전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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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토담집을 찾은 방문객들이 손학규 전 고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일각에서는 당 내 비주류들이 문재인 대표 사퇴 이후의 대안으로 손학규 전 대표를 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이석현 국회 부의장이 박근혜 대통령에 ‘화합형 총리’로 손학규 전 대표를 추천한 것도 그런 구상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계획을 해보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실제로 손학규 전 대표에 대한 정치적 기대의 실질(實質)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런 계획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20일 일간지들은 또다른 대권주자의 이름에 설레어했다. 충청 지역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불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것이 모든 언론을 장식했다. 누구도 풀 수 없는 매듭처럼 꼬여버린 대북관계를 정리하는 계기를 반기문 총장이 만드는데 성공하면 대권으로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언론의 이런 불온한(?) 상상은 북한이 반기문 총장의 방문을 거부하면서 공중으로 흩어졌다.
반기문 총장이 끊임없이 대권주자로 회자되는 것은 높은 자리를 지내보았다는 안정감과 이를 통해 중도를 공략할 수 있다는 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건 2006년 고건 총리가 받았던 기대와 거의 같은 성격의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고건 전 총리가 그랬던 것처럼 반기문 총장도 안갯 속으로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결론도 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손학규 앓이’ 역시 비슷한 측면이 있다. 비록 높은 자리를 지내 본 사람은 아니지만 손학규 전 대표에겐 ‘정치의 고수’를 연상케하는 안정감이 있다. 때만 되면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비난을 받는 문재인 대표나 안철수 의원과 비교하자면 확실한 장점이다. 손학규 전 대표의 반복되는 칩거는 결과적으로 이 ‘고수’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사람들이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고수를 찾는 건 당연한 결론이다.
물론 손학규 대표가 고건 전 총리처럼 정치적으로 망할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고건 전 총리의 실패는 결국 유권자들이 대권주자에게 “그래서 당신이 만들고 싶은 나라는 어떤 것인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 연유했다. 고건 전 총리의 캐릭터로서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게 아주 난감했다. 반기문 총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손학규 전 대표의 경우는 반대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기가 막힌 슬로건까지 있다. 어느 정도 정치권에 익숙한 사람들과 ‘일반’에 속하는 여론층이 모두 손학규 대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손학규 전 대표가 놓여있는 상황은 2010년과는 다르다. 당시 손학규 전 대표는 당대표든 대권주자든 ‘무언가가 되기 위해’ 춘천을 떠났다. 그러나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화를 입는 구조가 고착화돼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관점으로 보면 다시 세상에 나오기 좋은 때가 아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가 되려는 누군가가 아니라 당의 정치와 문화와 목소리를 바꾸려는 모두의 노력이다. ‘무언가가 되는 것’은 단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제 손학규 전 대표도 자리를 털고 토담집에서 나와야 한다. 손학규 전 대표가 갖고 있는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때가 됐다. ‘손학규의 부활’은 이것을 실제로 결단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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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마도, 이번에는 손학규 대표가 갑자기 정치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야권 지지자들이 강진으로 몰려가서 계속 나오라고 하고 기자들도 몰려오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리라 예상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 국민이 간구하는 삶입니다.
손대표님 제스춰가 예수님 꼭 닮았습니다. 후후~~
산에서 나는 약초,나물 많이 드시고 건강 엄청 비축하시기 바랍니다.
꼭대통령이되시여...썩은정치권청소좀해주세요. 구의원.시의원.다없애고.국회의원30%줄여야합니다..보수.권한다줄여야합니다...그돈으로노인복지에쓴다면좋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