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시간대에 여러 경기가 열리면 어쩔 수 없이 기회비용을 따져야 한다. 이거 수능장에서 객관식 선택지 고르는 것에 몇 배로 고민을 거듭해 선택을 내린다. 중계 다시보기가 완벽히 제공되는 게 아니기에 아쉬움 가득 안은 채 눈 딱 감고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처럼 한 경기만 딱 자리 잡고 있으면, 그것도 울산vs서울 K리그 3, 4위 팀이 맞붙는 빅매치라면 더없이 땡큐다.
그런데 일정만 땡큐다. 중계는 화날 정도로 노땡큐다. 흔한 K리그 팬의 축구 중계 보기, 그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K리그 팬이 중계를 보려면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다. 물론 울산vs서울 경기를 보고 리뷰를 다루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으레 K리그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가 중계 일정을 확인한다. 연맹에서 발표한 중계 일정란은 비어있었는데 오전에 중계차가 울산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Daum의 한 카페에 접속했다. 으어 제발 있어라! 실낱 같은 희망이 현실이 되어라! 기적이 일어나라!
출처 - I Love Soccer
없단다. KBS N도, MBC Sports+도, SBS ESPN도, 그리고 우리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SPOTV도. 중계를 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직접 방송국에 전화까지 하신 분도 계신다. K리그 팬은 중계를 보기 위해서라면 마우스 클릭하고 키보드 두드리는 걸로는 모자라 직접 전화까지 걸어야 한다. 그 열정 정말 대단하고 박수받을 일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매번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출처 - 네이버
편성표를 확인해보았다. 오오미, 이거 완전 야구 천국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 아니다. 야구공화국이다. 그런데 오늘 비 와서 모두 취소된다고 들었는데 무슨 야구를 하나 싶었다. 그래서 자세히 봤더니 4년 전, 베이징 얘기다. 며칠 전, 프로야구 얘기다. 박태환이 금메달 땄던 그 베이징 올림픽의 야구가, 경기를 마치면 친히 하이라이트 프로그램까지 해주는 프로야구가 또 나온다. 뭐 방송사 사정을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니 뭐라고 할 수는 없다만 그 아쉬움은 울산 문수 구장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출처 - I Love Soccer
그런데 갑자기 히어로가 나타났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한 팬분께서 부산에서 울산까지 친히 향하셔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을 선사해주시기로 한 것, 어떤 분께서는 그분의 기차 시간표까지 확인해주신다. 이거 완전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팬 자체 중계여 만세'다.
기성용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 얼마 전, 이제 그만할 때도 된 드립이 아니냐고 하셨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이건 희대를 넘나드는, Down Team is Down에 버금가는 명언이다. 부산에서 울산행 열차에 오르신 분의 모습, 훈훈하면서도 뭔가 참. 우리가 처한 상황이 참 비참해 보이지 않는가. 어째 됐든 기쁘다, 구주 오셨다. 만K리그팬 맞아라!
출처 - 아프리카TV
한 줄기 빛에 또 다른 빛줄기가 비치기 시작했다. 그분이 오시기 전까지 다른 분께서 중계를 해주시겠다는 것. 아쉽게도 볼의 위치까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게 어딘가. 높은 곳에서 중계를 하신 덕분에 시야도 그럭저럭 괜찮아 선수들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터진 데얀의 골, 많은 분들이 "진짜 들어갔냐“고 할 정도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나는 보았다. 간절히 원하면 보인다고 했다. 골 장면 보는 것마저도 K리그 팬들엔 행운이다, 허허.
출처 - I Love Soccer
그리고 얼마 후, 울산행 기차를 타신 분의 중계가 떴다. 비록 배터리 용량 관계로 그리 오래 진행하시지는 못했지만 화질은 후덜덜급, 그 사이에 골도 터졌으니 ‘팬 중계 현실화’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98년 월드컵 당시 패색 충만하던 네덜란드전, 혜성같이 등장해 중거리 슛팅으로 희망을 보여준 이동국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동국이 훗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공격수가 된 것처럼 이 중계도 중계 판에서 내로라할 수 있는 레벨로 성장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공개 찬양이라도 하고 싶어 일부러 닉네임을 지우지 않았는데 혹시나 문제 된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사진 하나 올리며 슬슬 글 마칩니다. 언젠가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중계해주신 분들, 그리고 여러모로 수고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K리그 외면하는 방송사, 올림픽 채널-월드컵 채널만 있는 방송사가 후회하고 뉘우칠 때까지 끝까지 노력합시다. 정말 K리그가 더욱더 흥하는 건 다 팬들 덕분 아닐까 싶어요.
첫댓글 눈물나...
기성용 선생 ㅋㅋㅋㅋ 추천이 한 번밖에 안 되네요... 싸모킬러님 덕분에 좋은 경기 볼 수 있었고.. 이렇게 기사도 나니까.. k리그 중계가 조금이나마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눈물나는 현실 ㅠㅠㅠㅠㅠ
눈물이 앞을 가리네 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