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간 수면 부족을 겪으며 '나의 아저씨'를 완주했습니다. 정말 만족스럽고, 스트레스에 준하는 감정의 파도를 겪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드라마라 여기에도 워낙 많은 소감과 후기가 있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제겐, 주어진 시간도 별로 없어서... 한 가지만 말해보고 싶네요.
이 드라마에서 '도청'의 중요성이요. 드라마의 '드라마'적인 요소로써 이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될, 감히 추측컨대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할 때 '처음부터 전제로 깔고 시작한' 장치가 아닐까 싶어요.
또 다른 전제로, 이 드라마를 다른 '멜로물'과 구분 짓는 것은, 바로 지안이와 아저씨의 관계 설정입니다. 보통의 연인들이 보여주는 스킨십을 제거하고, 두 사람의 마음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네요. 두 사람 다 힘들었을 거 같아요. 멜로적인 부분, 그리고 감정을 대사와 표정만으로 소화해내야 했으니까요.
'도청'은 지안이의 변화와 감정, 두 사람의 마음의 교류를 겉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코드입니다. 초반에는 지안이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수단이죠. 지안이의 험한 과거를 보여주기도 하고, 현재의 거친 삶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게 아저씨를 알아가는 과정, 다시 말하면 지안이가 변해가는 과정에 필요한 필수적인 수단이 되는거죠. 배려심이 강하면서도 절제할 줄 아는 아저씨의 내면을, 도청을 통해 알아갑니다. '도청'이라는 삭막하고 비열한 염탐용 '무기'가, 두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촉매로 쓰였어요.
현실에서 20대 초반의 어둡고 거친 여자애와, 가족에게 배반당하고 회사에서 구석으로 밀려나 상실감에 빠진 직장남을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습니다. 직장에서 부장남과 비정규직 여자애가 저렇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내면을 알아가는 현실은, 미투 이슈나 쾌락적 요소로 빠지게 되는 게 일반적인 요즈음의 '현실'이니까요.
그러니까, 도청은 이 드라마에서는 회사 내 권력 투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지안이와 아저씨의 삭막한 관계를 플라토닉하게, 보는 사람들을 두 사람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로맨틱한 부분이 됩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자극받은 부분들이나 대사는, 바로 도청을 통해 지안이가 아저씨에게 보여주는 감정이었어요.
각자의 삶을 버거워하는 두 사람...
지안이는, 자신이 그녀에게 도청당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녀를 배려하고, 그녀를 위해 다른 사람과 싸우기도하는, 그런 아저씨때문에 울고,
아저씨는, 부끄러운 자신의 삶을 계속 지켜보았음에도 자기를 응원해주고 지켜주었던 지안에게 위로 받고 고마워하는...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중간중간 계속 떠올려지던 영화가, 이완 맥그리거와 애슐리 쥬드가 열연한 'the Eye of the Beholder'...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이 영화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겠습니다.
짧게 적고 할 일을 해야되는데 벌써 시간이...ㅠㅠ
좋은 밤 되세요, 나중에 여기서 또 이 드라마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네요.
('내멋'팬으로써, 양동근이 얼마 전 신앙 이슈로 실망을 시켜서 우울할 때였는데... 나의 아저씨 덕분에 충전 포화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a-tqIQc8RM&list=RD5a-tqIQc8RM&start_radio=1&pp=ygUU64KY7J2YIOyVhOyggOyUqCBvc3SgBwE%3D
첫댓글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다 드러내기 힘들어했던 동훈의 발가벗겨진 진심이 다 보여진 것도, 살아온 삶이 그러했던 탓에 누구도 믿지 못하던 이지안이 처음으로 속마음의 바닥까지 다 보고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것도 다 도청 덕분(??)이죠ㅋ 묘하게 헤어질 결심이 생각날때가 있는데, 도청이라는 일방적으로 나 혼자만 상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장치를 써야만 상대를 믿을 수 있는 지안과 해준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을때 비로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서래가 좀 겹쳐보이는 면이 있더라고요.
아, 거기서 '헤어질 결심'이 연결되는 건가요...? 저도 한 번 시간을 잡아 다시 봐야겠어요. 그 영화를 너무 건성으로 본 듯해서... ㅎㅎ ^-^
애슐리 쥬드, 진짜 오랜만이네요. ㅎ 영화는 기억에 없는데 찾아서 봐야겠습니다.
나의 아저씨에 대한 언급 중에 웬 도청, 뜬금 없다거나 좀 판타지 아니냐 하는 글은 많이 봤는데
장치로서 이해하는 글을 읽으니 좀 신선하네요. 저는 적어주신 글에 대부분 동감입니다.
아침부터 좋은 글 읽으니 기분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
네, 저는 거의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한 초기 아이디어에 가깝다고 봤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생각을 감추는 동훈 아저씨와 어릴 때부터 상처를 받을만큼 받아 마음에 철벽을 두르고 사는 지안이 연결될 여지가 거의 없거든요. '도청'이라는 수단을 통해 동훈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걸 작가의 의도된 설정으로 보았어요.
특히나 조만간 다시 보겠지만, 제가 마음에 들었던 대사는 15화에서의 대화들인데, 그 감동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한 건 결국 '도청'이었거든요. 범죄의 수단이, 드라마라는 창작 영역에서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줄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는 게... '발상의 전환'이랄까요... 참, 드라마를 드라마답게 하고 가슴을 울리는, 그게 참 좋았습니다...^-^
@씩스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