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강변 들녘 풍경
유월 하순 목요일이다. 지난주 토요일 우리 지역에 올여름 첫 장맛비가 내렸다. 이후 흐린 날만 지속되면서 비는 내리지 않은 선선한 날씨여서 생활에 그다지 불편을 겪지 않는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어제와 같이 아침놀이 붉게 비치다가 연방 사라졌는데 그때가 새벽 다섯 시 정각이었다. 대기 중 습도가 높고 기압이 낮은 아침에 놀이 잠시 서렸다 사라졌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섰다. 이웃한 동 뜰에는 여가를 활용해 꽃을 가꾸는 이가 돌보는 여름꽃이 피어 아름다운을 드러냈다. 한 노인이 정성을 들인 수국꽃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토양 성분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달라진다던데 거기는 붉은색이었다. 꽃대감과 밀양댁이 가꾼 초본에서도 여러 가지 꽃이 피었다.
아파트단지 바깥으로 나간 정류소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소답동에서 내렸다. 창원역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탔는데 다음 정류소 승객은 서서 가야 했다. 용강고개를 넘은 동읍 일대 전경은 옅은 안개가 끼어 신비롭게 느껴졌다. 장마철 아침이면 가끔 나타나는 자연현상이었다. 용잠삼거리에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면서 승객이 몇 더 늘어 주남지를 비켜 갔다.
대산 일반산업단지에 몇 승객이 내리고 가술을 지난 모산에 이르자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는 부녀들이 내렸다. 나는 제1 수산교 다리목을 지난 당리에서 내려 마을회관 앞을 거쳐 강변에 새로 뚫은 60번 지방도 굴다리를 빠져나갔다. 4대강 사업으로 생겨난 자전거 길을 따라 수산 방향으로 걸었다. 강변 여과수를 퍼 올리는 드넓은 둔치 무성한 초목은 열대 우림 정글이 연상되었다.
둔치에는 절로 자라 숲을 이룬 복숭아나무가 봄에 꽃을 피웠을 때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예전 과수원이 묵혀졌는지 씨앗이 퍼졌는지 흐드러졌던 복사꽃은 초여름에 매실과 같은 동글동글한 열매를 맺었다. 그간 여러 해에 걸쳐 돌복숭을 따 과일주를 담그거나 지인에게 보냈는데 올해부터는 그만두었다. 나이 드니 돌복숭을 따기가 힘에 겨웠고 짊어져 나르기도 쉬운 일 아니었다.
아까 차창 밖으로 스친 제1 수산교는 둔치에서 상판이 걸쳐진 교각 사이로 지났다. 한 농부가 싸움소로 키우는 커다란 황소를 한 마리 트럭에 태워 나와 운동을 시키려 준비했다. 일소처럼 목덜미에 멍에를 걸쳐 폐타이어에 돌덩이와 쇠뭉치를 올려 끌게 하면서 힘을 올리는 훈련이었다. 강변 농가에서 키우는 싸움소는 시합이 없을 때 프로스포츠 선수들처럼 육중한 덩치를 단련시켰다.
25호 국도가 낙동강 강심을 가로질러 수산으로 건너는 교량을 스쳐 대산 문화체육공원으로 갔다. 당국에서 꽃밭을 가꾸었는데 형형색색 꽃이 질서 정연하게 심어져 꽃을 피워 화사했다. 꽃단지를 둘러보고 근처 파크골프장까지 가질 않고 발길을 돌려 강둑에서 자동찻길 건너 들판으로 갔다. 그간 간판만 보고 그냥 스쳐 지났던 들녘 요양원과 같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려보고 싶었다.
제1 수산교 다리목에 해방 전 일본인 지주가 살던 저택은 80년대까지 장어구이 식당이었다. 정원수가 잘 다듬어진 적산가옥은 임자가 바뀌어 요양원으로 리모델링하고 한옥이 곁들여져 카페로 운영했다. 시간이 일러 차는 팔지 않아도 수형이 좋은 소나무 아래 쉼터에서 여주인과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16명의 노인을 돌보는 요양원에는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직원이 13명이라 했다.
차는 후일에 다시 들려 들기로 하고 카페를 나와 들길을 걸었다. 풋고추와 토마토를 가꾼 비닐하우스는 열매를 따 선별해 상자에 포장하느라 손길이 분주했다. 현지에서 토마토를 사 볼까 싶었는데 아침에 따 놓은 게 없었다. 벼를 심어둔 들녘에 다른 비닐하우스에선 오이가 한창 자랐다. 작업장에는 부녀들이 갓 따 모은 다다기 오이를 어디론가 보내려고 일손을 바삐 움직였다. 24.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