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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월) 맑음
꼬끼오우~! 꿈결에 들려오는 듯한 수탉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세상 어디를 가든 인가가 있는 곳이면 반드시 새벽 때마다 여지없이 들려오는 정겨운 수탉 우는 소리. 참 영물이다 싶은 생각을 새삼 해 보며 윤팀장이 먼저 일어나 리조트로 간 방안을 정리하고 창밖을 살펴보니 아침 햇살이 아스라히 비치는 오늘도 장엄한 산릉에 흐르는 아름다운 운무가 환상적인 山上天國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 이후로 이 아름다운 세계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란 아쉬운 생각에 한 장면 두 장면 카메라에 담은 후 동영상 촬영도 해 둔다. 이런 장관을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 호연지기, 무위자연, 자연동화, 천지신명.... 베낭을 메고 2층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에게 "나마스떼~!" 합장인사로 안녕을 고하며 열쇠를 돌려주고 밖으로 나가 미니샤 집에 들러 얼굴을 내민 후 리조트로 가는 도중에 셀프촬영도 하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리조트로 향했다. 네팔 도착 후 오늘은 푸른 하늘이 온통 보이는 가장 청명하고 좋은 날씨. 따사로운 아침햇살을 받으며 리조트 마당에서 안개구름 머금은 산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자니 누군가 리조트 전망대의 뷰포인트가 환상적이라는 소식에 급히 언덕 위로 올라가 보니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비밀스런 장소에 몇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제 아침에 보았던 산상 조망보다는 훨씬 못하긴 하나 바로 그 만년설산! 이런 멋진 곳을 왜 나만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원망스런 생각과 함께 딴 곳에 신경 쓴 나를 자책하며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밝은 아침햇살이 온 천지를 비추기 시작하자 청명한 날씨에 아름다운 운무로 장식된 신비한 산하가 온통 드러나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까지 중에 가장 좋은 조망이라며 다들 사진촬영에 열을 올린다. 언뜻 내 시야에 잡히는 민가가 하나 있었다. 멀리 낮으막한 산마루에 자리한 숲에 싸인 아담한 민가. 너무나 부러워 150mm 망원줌을 당겨 그곳을 찍어본다. 절대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는 상대적인 존재인만큼 사람마다 생각과 관점이 다르겠지만, 저곳에 사는 사람은 분명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매달 천변만화하는 설산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님과 함께 토끼같은 자식들과 함께 무위자연하고 산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내 꿈... 아수라를 이루는 치열한 경쟁구도의 세상이 싫어 자연을 닮고자 자연 속에서 살며 그의 이상향이기도 한 도화원기(桃花原記)를 지으며 고달픈 삶과 세상을 달관한 전원시인 도연명을 무척 사모하는 나... 저곳에서 산다면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 그동안 나와 자주 대면했던 젊은 지배인이 나타나자 함께 사진을 찍고 저 설봉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아버님께 물어보고 알려준단다. 매 순간 변하는 자연... 황홀한 파노라마를 이루는 히말라야의 극적인 장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때 내가 처음으로 찍은 사진은 통칭 셀카.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적당한 자세로 사진을 찍은 후 맘에 안드는 사진은 삭제하는 방법. 인물을 근접해서 찍은 것이라 그런대로 아웃포커싱이 잘된 쓸만한 작품도 나왔다. 많은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 흡족해하며 돌아와 아침을 먹는 식당에서 지배인에게 물어 보니 옆에 있던 나이든 어른이 도르체(Dorje 6,979m)라고 일러준다. "도르체라면 14좌 중 하나 아닐까...?" 은근히 그러기를 원하고 자문하는 내 말에 한 교수가 아니라고 일려준다. 나중에 카트만두에서 구입한 지도를 보고 확인한 내용이지만, 만년설봉 도르체는 무데마을에서 북쪽으로 대략 70여 km(도상거리)에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북동쪽 100여 km 지점엔 초오유(Chooyu 8,201m)와 에베레스트(Everest 8,848m)가 인접해 있었다. 내친 김에 에베레스트에 관한 자료를 올려본다. ********************************************************************************* 에베레스트(Everest)는 세계 최고봉답게 그 이름도 5개나 된다. 티베트어로는 초모룽마(Chomolungma 또는 Jomolungma)이며 ‘세계의 여신’ 혹은 ‘지구의 모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네팔어로는 사가르마타(Sagarmatha)라고 부르며 ‘눈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이 산을 추랑랑마(珠穆朗瑪)라고 부른다. 1852년 이 산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의 인도측량국이 네팔의 고산 지대를 포함해 대규모 삼각측량을 할 때 이 산을 처음 발견했다. 그러나 현지명을 알지 못했던 영국인들은 세계 최고봉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측량 활동에 공이 컸던 측지학자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산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칸첸중가가 세계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 이 산의 높이는 8,847.7344m(29,028ft)로 공인되었다. ************************************************************************************ 그러니까 이곳 무데마을은 네팔에 산재한 세계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초오유와 에레베스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인 셈. 지금이야 대부분 항공기를 이용한 쉬운 어프로치법을 쓰고 있지만, 활주로와 차도가 없었던 예전엔 걸어서 혹은 말이나 마차를 이용한 장시간의 고된 산행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이 마을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상전벽해같은 현대사회의 구도하에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봉사 마지막 날인 오늘도 학교에는 많은 환자들이 학생의자에 앉아 길게 줄을 잇고 있다. 오늘은 페인트칠 하는데 좋은 날씨라 시설팀인 나는 박센터장 지휘아래 학교 입구에 이미 건축된 자그만 화장실 벽에 페인트 칠 할 준비를 했다. 한국팀의 자금지원을 받아 이곳 현지인들이 건축한 화장실은 전체적으로 잘 지어졌으나 우리가 오늘 할 일은 도색칠 색깔이 잘못되어 그 위에 제 색으로 덧칠을 하는 것. 도장공사에도 일가견이 있는 나는 이런 일은 난생 처음이라 함부로 나서지 않고 해외봉사 경험이 많은 시설팀장 박씨의 의견에 따라 늦은 오전(11시경)에 작업에 들어갔다. 공항에서의 회의 때 박센터장이 말한, 수성페인트 자체가 원색으로 되어 잇다던 그 칠은 네팔에서 흔히 쓰는 적갈색 수성칠이었고, 기둥에 쓰는 살색 칠은 도장공인 듯한 현지인이 백색을 섞어 만들어 준다. 조국장은 목제부분, 나와 이실장은 벽돌벽, 박팀장은 시멘트 기둥을 맡았다. 벽화를 그려야 한다기에 그 벽면을 먼저 칠하는데, 돈을 아끼려고 해선지 로라가 아닌 묘한 수제 붓으로 이실장은 쓱싹쓱싹 잘도 칠한다. 나는 이실장이 칠하고 남은 벽돌간 맺이 하얀 부분을 세심하게 붓으로 마감하며, "야~ 빠르군요. 이선생은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요?" "아니요, 처음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기회가 언제 있었나요?" "에이~ 귀신은 속여도 제 눈은 못 속입니다. 이실직고 하십시오." "어제 이 아랫마을 초등학교에 갔을 때 처음으로 이렇게 칠한다는 걸 알았지요." "아, 그렇군요. 그 멋진 곳을 못 가 봐서 참으로 아쉽습니다." 어제 실무진만 갔었던 험한 산길의 산 아랫마을(부사베다) 소재 '시리 띱게다다초등학교' 행사 일을 두고 나누는 나와 이실장의 장난스런 대화. 여러명이 달라붙어 칠을 해선지 화장실 도색작업은 의외로 빨리 끝났다. 칠에 대해선 무지한 센터장이 멋대로 손을 댄 목제 문틀은 유성칠을 해야 한다기에 마감이 될 수 없어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 "거사님, 이 칠이 마르려면 몇시간 걸리지요?' "수성이 마르려면 최소한 한나절은 걸립니다. 지금은 햇볕이 없으니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박팀장이 묻는 질문에 대답했다. 현지인이 준비해 준 도구 중에 이상한 물건이 눈에 띠어 줏어들고 살펴보았다. 칼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도끼도 아닌 것이 40cm 길이의 제법 묵직한 네팔인들의 생활도구인 칼. 일명 꾸꾸리. 묵직한 게 나무를 찍는 도끼로도 사용할 수 있겠다. 문득 역사를 다루는 네팔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정확한 내용인지 자신할 수 없으나, 오래 전 인도를 점령한 영국군이 인도북부에 있는 고원국 네팔마저 먹으려 들자 이 도끼같은 단칼을 주무기로 영국군을 물리쳤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떠올라 신기하게 만져보다 휘둘러보니 제법 폼이 나온다. 나는 반대편 학교건물 벽에 써진 알 수 없는 라면같은 네팔글씨를 배경으로 도둑처럼 산적처럼 폼을 잡고 사진을 박았고, 능글스런 조국장은 옆에서 구경하던 여고생들에게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 사이에 아무런 상의도 없이 박팀장이 아직 마르지 않은 칠벽에다 분필로 도안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 해봐야 결국 시간 내에 마르지 않아 칠을 할 수 없으니 그만 두시지요." 내 말에 그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사전에 준비한 듯한 종이도안을 보며 계속 연꽃문양을 그려 나간다. 윤팀장으로부터 그가 전역군인으로만 알고 있는 나는 이 재수없고 답답한 센터장이 어떤 사람이냐고 조국장에게 물으니 그도 잘 몰랐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용어가 있다. 안되도 되게 한다...? 언뜻 매우 긍적적이고 적극적인 말 같으나, 알고보면 참으로 말 같지 않은 무식한 언어도단 아닌가! 세상엔 안되는 일들 무수히 많다. 뜻하는대로 안되는 일이라면 포기하거나 대안을 찾아 모색하는 게 현명한 순리요 상식인데, 완력이나 강제, 혹은 폭력을 동원하여 일이 되게 만든다는 것은 강제, 억지, 역리, 폭력 등 무리가 따르는 게 당연한 것이다. 확대해석하자면, 우리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이런 숱한 역리현상을 전국민적으로 겪어 왔다. 강제를 동원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군사문화로 인하여 우리는 개인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 국사 전반에 걸쳐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당해 왔던가! 전체를 살피지 못하고 아집에 사로잡혀 독단, 고집, 불소통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단장스님이나 박팀장같은 나이많은 고정관념에 집착된 분들도 알고보면 군사문화로 인한 개인적인 정신적 피해자들일 것이다. 이제는 현판을 붙일 차례. 칠이 대충 마른 정면 벽에다 못을 박아 작은 현판을 먼저 붙여놓고 단장스님이 나와 함께 웃으며 붓칠을 하는 흉내를 내는 인증사진을 찍었다. ★ 자비의 해우소 Happy Toilet ★ 물기가 가시지 않은 칠벽에다 박팀장이 어거지로 붓을 찍어가며 살색 연꽃을 그리는동안 또 희한한 해프닝이 발생했다. 단장스님이 벽칠을 한 큰 붓을 들고 연꽃 아래 면에다 싸인을 하려고 꾸물댄 것. "스님, 하지마세요. 그 큰 붓으로 싸인을 했다간 망칩니다, 망쳐요!" 이제는 대놓고 거리낌없이 힐책하는 내 말에 스님도 무안했던지 붓을 놓고 만다. 결과가 어찌되고 이유야 어찌되었든 여러사람의 도움으로 마무리는 겨우 되엇다. 마무리를 못한 목제 문틀도 그렇거니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칠벽에다 어정쩡한 미완성을 해 놓고도 "마무리를 했다"고 하는 박센터장의 묘한 심리를 목격한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저씨,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이 칠이 다 마르면 문틀과 함께 이 라인을 선명하게 마무리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 현판에단 못이 빠지더라도 붙어있게 실리콘을 발라주셔야 합니다." 하며 통역을 통하여 현지 칠담당에게 부탁하는동안 마무리 사진촬영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 왔다. "야, 멋지다. 연꽃이 활짝 피었네. 이거 센터장님 작품이지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팀장과 팀원들의 수고에 찬사를 보낸다. 아무리 이상한 미완성이라도 사람들이 언뜻 보기에는 멋진 완성작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ㅋㅋ 아뭏든 모처럼 단원들 앞에서 한소리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 나는 그동안에 쌓인 모든 감정찌꺼기를 정리하고 환송식을 하고자 줄지어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원불사한국불교개혁源佛寺 http://cafe.daum.net/wonbulsa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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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차라리 허연게 났구마는...
그러게 말입니다.
왜 굳이 험한 꼴을 자청해서 해야 하는 것인지...
현지인들이 성심껏 공사를 해 놓은 것도 현지에 맞는 작품인데 그걸 모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