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리 들녘을 지나
유월 끝자락 금요일 날이 밝아왔다. 어제 그제 새벽은 날이 새면서 정병산 산마루로 아침놀이 살짝 비치다가 금세 사라졌다. “장맛비 그친 틈새 날이 샌 내정병봉 / 촛대봉 능선 따라 실루엣 음영으로 / 아침놀 붉게 물들어 짧은 순간 비쳤다 // 한줄기 소낙비로 더위를 식혀주고 / 선선한 바람 일어 열대야 날려가길 / 동녘에 솟는 해 보고 합장해서 빌었다” ‘내정병봉 아침놀’ 전문.
앞 단락 인용절은 지기들에게 사진과 같이 보낼 시조로 준비했다. 아침 식후 느긋하게 등굣길에 올라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로 나가 꽃을 가꾸는 이를 만났다. 친구 꽃대감은 보이질 않고 모처럼 밀양댁 안 씨 할머니를 뵈어 반가웠는데 올봄 구근으로 심은 백합이 피우는 꽃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여든을 넘긴 고령에도 꽃을 가꾸며 소일해선지 병치레가 없을 듯한 건강한 모습이었다.
할머니에게 몇 해 사이 가꿨던 꽃들 가운데 올해가 가장 풍성하다고 그동안 고생을 위로하고 성원을 보냈다. 할머니는 꽃을 가꾸느라 용돈이 제법 쏠쏠하게 지출될 듯했다. 꽃대감이 씨앗을 뿌려 키워둔 꽃모종이 많음에도 일부러 꽃집을 찾아 모종이나 꽃을 사 날라 심기도 했다. 이렇게 심은 꽃은 가꾼 이의 정성에 부응해 탐스럽게 꽃을 피워 오가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할머니와 안부 인사를 나누는 사이 건너편에서 꽃을 가꾸는 아주머니가 다가와 두 분이 얘기하도록 두고 나대로 일정을 나섰다. 정류소로 나가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니 중천에는 보름달에서 이지러지는 하현이 낮달로 걸려 있었다. 폰을 펼쳐 하늘에 걸린 조각달을 앵글에 담으면서 깻잎처럼 보였다는 생각이 미쳤다. 사진으로 남긴 달은 아침 시조 글감으로 삼을 요량이다.
소답동으로 나가 이번에는 자연학교 등굣길 차편을 마을버스가 아닌 김해 시외버스터미널로 다니는 140번 버스를 이용했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오는 여객 버스에는 도심을 벗어난 근교 회사를 일터로 삼은 몇몇 손님들이 타고 왔다. 이들은 시내에 회사가 많음에도 교외에서 일터를 구한 이들로, 통근 편의를 제공 받지 못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불편을 감수했다.
동읍 덕산을 지나자 창원시 경계를 벗어난 김해시였는데 좌곤리 앞 들판은 잎이 무성한 연이 꽃봉오리를 펼쳤다. 버스가 진영 읍내로 들어 재래시장을 앞둔 정류소에서 내려 아파트단지와 신흥 택지를 거쳐 본산공원에서 봉하로 가는 길목의 공장지대를 지났다. 주천강이 진영으로 흘러와 창원 대산 들녘을 휘감아 유등으로 향했다. 주호교를 건너자 우암리에 딸린 용등마을이 나왔다.
농기계가 다닐 제방 길섶에 부지런한 농부들이 고추나 참깨를 심어 가꾸었는데 한 할머니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당국에서 농로를 보수했던 공사 마무리가 늦어 할머니의 콩을 키울 이랑 정리도 늦어졌다. 올해 나이가 일흔다섯이라는 할머니는 평생 딸기 농사를 지었는데 근년에는 천변 자투리땅에 콩을 심는다고 했다. 씨앗을 묻어 싹이 틀 며칠 사이 비둘기를 쫓음이 일이라고 했다.
주천강 제방을 따라가는 냇바닥에는 노랑어리연이 꽃을 피워 장관이었다. 월림산 모롱이를 돌아간 동곡에서 덕현으로 향했다. 넓은 들녘 외따로 떨어진 월림산에서 동쪽이라고 동곡일 테고, 덕현은 한자어를 ‘덕 덕(德)’에 ‘고개 현(峴)’을 쓴다면 큰 고개로 짐작되었다. ‘덕(德’)은 간혹 지명에서 ‘크다’라는 의미일 때가 있다. 거제 하청과 전북 임실 ‘덕치(德峙)’도 우리말로 ‘큰 고개’다.
덕현을 오르는 길에서 월림마을 골목을 지나자 시골 초등학교가 나왔다. 들녘은 비닐하우스에서 짓던 당근과 수박 농사 뒷그루로 심은 모는 땅내를 맡아 포기를 불려 자랐다. 대산면 소재지 가술에 닿아 마을도서관을 찾지 않고 카페로 들었다. 준비한 술빵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배낭에 넣어간 책을 꺼내 펼쳤다. 내가 카페를 찾지 않았다면 점심나절까지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뻔했다. 2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