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낳는 집, 옆방 시인 김이듬 시인의 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시인의 말
가진 게 없지만
시와 함께라서
제 삶은 충만하고 행복했습니다
어제 시골의 한 회관에서
이십 대 신인의 수상 소감을 들었다
눈물이 났다
나만 이상하게 살아가는 건 아니다
2023년 11월
담양 글을 낳는 집에서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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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장
미국 국적 친구를 기다린다 심야 공항 터미널은 지나치게 환하다
그녀에게 이 도시를 어떻게 소개할까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파무크처럼 고백할 수 있을까
맞은편 의자에 앉아 통화하는 사람은 미소를 띤다 왼쪽 옆으로는 불매운동중인 제과업체의 체인점이 있다 빵공장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플라스틱 빵처럼 내 표정은 굳어 있다
밝은 조명 아래 내 우울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습관처럼 깊이 눈을 감는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습격한다 밀려내려가다 꼼짝없이 매몰되었던 사람들 필시 친구는 알고 있을 텐데 이미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경악했을 텐데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는 그 도시가 더 이상 자동차의 도시가 아니라고 했다 파산 직전의 공장들과 슬럼가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녀에게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설명할까 자동차가 아닌, 사람의 도시라고 최소한 총성이 울려퍼지지는 않는다고 덧붙일까
자질구레한 것들을 치운 내 방에 그녀의 잠자리를 만들었고 베지테리언 식당도 알아봤지만
말할 수 없겠지 내가 사랑하는 도시라고
트렁크 끌고 공항 철도 타고 말해야 할까 화장실에서는 불법 촬영을 조심하라고
알려줄 것들이 조각케이크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기만 하다면 이즈음 나는 어두운 방에 나를 가둔 채 발작하지 않았겠지 신경안정제 부작용인지 부은 얼굴로 너를 마중하러 나오지는 않았겠지
내가 예민한 건 아니야 친구가 와서 나를 안아주면 환영한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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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지인
지인이 사라졌다
그녀의 휴대전화가 꺼져 있다 그런 게 한 달 넘었다
혹시 그 분이 자기 언니처럼 자살한 건 아닐까요? 다른 지인이 내게 말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행방을 모른다 나 또한 그녀의 집주소나 그녀 가족의 연락처를 모른다
우리는 한때 직장 동료였고 이따금 속사정을 털어놓곤 했다 나는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몇 해 전 매주 만났던 이를 모처럼 다시 만났다
우리가 모이던 일요일 저녁마다 그는 누구보다 일찍 와 있었고 특별한 사정 없으면 언제나 나보다 늦게 남아 있었다
오늘 처음 둘이서 함께 걸었다 출렁거리는 월광 아래로
그가 왼쪽 다리를 조금 절룩거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내가 물었다
걸음이 왜 그래요? 최근에 다쳤어요? 여태 모르셨어요? 선천성 소아마비로......
어쩌면 내겐 단 한 명의 지인도 없는 것이다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달의 뒤편처럼 모르는 사람들이 길을 건너 각자의 세계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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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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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시인의 시 두 편
바람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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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95
23.12.13 16:1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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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spc, 스타벅스, 노재팬... 불매할 곳이 너무 많아서 요리조리 피해다니는데
지인들이 막 기프티콘을 쏴주고...
유난 떤다고 모라 하고... 균형을 맞추기가 참 어렵지요.
그냥 하세요
남들이 남의 삶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넌센스죠
@happycountry 오. 시원한 말씀!
@산초 원래 시원하신 분이에요.
현실을 직시한 내용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그냥 제 시선에서 공감이 가는 시 두 편을 옮겨와봤습니다.
소설이나 동화처럼
긴 글을 읽다가
이렇게 시를 읽으면 기분이 묘해요
뭐랄까?
띵한 느낌?
저는 시가 어렵게 느껴져요.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