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걸음마 -다시 일으켜 세우는 하늘의 선물 저자이홍승 출판아르카 | 2021.11.12
책소개 “나를 일으켜 세운 분을 소개합니다!” 급성 폐혈증 이후 사지 절단, 극한의 고난을 겪고도 감사하며 사는 이유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제가 들었던 말입니다. 그리고 저의 ‘두 번째 걸음마’가 시작됐습니다. 팔과 다리가 절단된 건 고난의 시작이었지만, 감사의 고백이 나오는 순간, 희망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가 희망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_고전 10:13
저자 : 이홍승 대한민국 모든 가장이 다 그런 것처럼 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던 30대 후반의 어느 가을날, 불현듯 폐혈증이 찾아왔다. 감염 후 대개 사흘을 넘기기 어렵다는데 생명이 유지되었고, 승압제로 심장과 뇌를 살리는 대신 팔과 다리는 끝에서부터 까맣게 변해갔다. ‘저 세상 꿈’을 꾼 것 같은 3주간의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뒤, 성탄절을 사흘 앞두고 양쪽 다리의 각 절반과 오른쪽 팔과 왼쪽 손가락의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장애인 스포츠 선수 세진이를 세운 것으로 유명한 신촌세브란스재활병원 신지철 교수팀의 재활치료로 불과 반년여 만에 재활에 성공, 복귀를 배려한 회사(닐슨IQ)에 전동 휠체어를 타고서 10년 넘게 출근 중이다. 왼쪽 다리는 허벅지 중간, 오른쪽 다리는 무릎 위쪽이 남겨져 좌우 길이가 다른 의족을 끼고 있다. 오른팔은 팔꿈치 위쪽이 남겨져 의수를 쓸 수 있고, 왼손은 약지가 두 마디나 남아 있어서 제법 빠른 속도로 타이핑이 가능하며 스마트폰 사용에도 문제가 없다.
후천성으로 복수의 신체가 잘린 ‘다발성 절단 장애인’이지만 그의 정신은 온전히 남겨졌고, 얼굴도 상처가 있었으나 감쪽같이 회복되었으며, 말하는 데에도 전혀 지장이 없게 된 ‘지금의 남은 모습’을 오히려 감사히 여긴다. 그동안 ‘고난 그리고 감사’라는 제목으로 분당우리교회와 오륜교회 등에서 간증한 영상을 비롯해, CTS, CGN, C채널 등에서 제작한 간증 프로그램을 본 도합 수십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희망의 메신저가 되어주었다.
1974년 경기도 파주에서 농부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시립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석사과정을 졸업(박사 수료)했다. 일반인에게는 ‘시청률 조사’로 널리 알려진 ‘닐슨IQ’에서 마케팅을 위한 소비자 조사 및 정보 분석 전문가로 일해왔다. 지금은 닐슨IQ 소비자 인사이트 본부(Consumer Insight, NielsenIQ Korea)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창신교회 안수집사이며 아내 장시은 사이에 딸 우림과 아들 요한을 두었다.
※ ‘다발성 절단 장애’란 복수의 지체가 절단된 장애 상태를 정의하는 의학적 용어입니다.
목차 1부 고난의 한계 사람이 감당할 고난이 과연 있을까? 1장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니 알겠더군요 2장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3장 자르지 않고 살릴 방도는 없나요? 4장 감당할 만하니까 당하는 고난이라니
2부 고통의 기억 사라진 팔다리도 고통을 느낄까? 5장 시험을 당할 때 내가 진정 피할 길 6장 인생의 잔치는 다 준비돼 있습니다 7장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8장 사지를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
3부 사랑의 능력 그날의 기도가 나를 살렸네 9장 나의 영혼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10장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11장 당신에게 길들여지고 있답니다 12장 그대의 사랑이 나를 바꾸었습니다
4부 소망과 감사 이제는 옛날처럼 살 수 없어요 13장 내게 역사적인 일이 생겼습니다 14장 어떻게 항상 웃으실 수 있어요? 15장 가정의 제사장으로 다시 섭니다 16장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책 속으로 [서문] 벌써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내가 장애인이 되어 두 번째 걸음마를 뗀 지…. 맨 처음 한기를 느낀 때의 불길한 직감이나 응급실에 실려 갈 때의 막연한 두려움, 약 3주 만에 기도 삽관을 빼면서 몽롱하게 깨어났을 때의 혼미함, 절단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서 본, 권투장갑보다 더 두툼하게 싸여 있던 사지(四肢)의 붕대, 그리고 이어진 끝도 없는 절망감…, 그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너무도 생생하다.
“살아 있으면 됐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같이 살아온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실감 났던 말이다. 그랬다. 살았으면 됐다. 모든 것은 거기에서 다시 시작됐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말이다. 나는 장애인으로서 거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다. 밥 먹는 일부터 대소변 같은 생리적인 일은 말할 것도 없이, 마음과 생각까지 다시 세팅해야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이 시점에서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본다. 나는 힘겹지만, 그저 꾸준히 하루하루를 살았을 뿐이었다. 때론 절망감에 괴로워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웃으며 애교를 떠는 딸 덕분에 ‘세상 다 가진 딸 바보’가 되기도 하고, 큰 아들이 5학년 다 될 때까지도 전동휠체어에 올라타 아빠 무릎에 냉큼 앉는 걸 은근히 즐기며, 그저 일상을 살아왔을 뿐이다. 어릴 적, 파주 시냇가의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넌 것처럼, 세월의 강에 놓인 돌다리에 한발 한발을 내디디며, 지금 이곳에 서 있다.
지나온 시간의 속살에는 슬픔도, 기쁨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절망도, 희망도, 어둠도, 빛도, 모두 한데 어우러져 꽉 차 있다. 이런 게 인생일까? 한 인간의 삶에 몰아닥친 폭풍우 같은 사건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고, 장애라는 생채기를 남겼다. 하지만 계절이 지나 봄이 오면 그루터기에 새 생명의 싹이 자라 푸른 잎이 돋아나듯, 삶은 계속되었다.
이 책을 마무리할 무렵, 코로나 4차 확산으로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코로나 초기에, 코로나에 감염된 환자의 까맣게 변해버린 모습을 외신(外信)에서 보았다. 일상에서 잊고 있었던 10여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라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때 내 모습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같은 기억이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전염병의 공포 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겪은 고통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에서 스티브 도나휴가 얘기한 것처럼, 인생이라는 사막은 애당초 경계가 없어서 절망이다. 단지 머릿속에, 마음속에 두려움과 공포로 허망하게 그어 놓은 관념의 울타리만 있을 뿐이다. 울타리를 허물 희망이 필요하다.
나는 엉덩이 걸음으로 그 높은 화장실 변기에 올랐을 때, 나 자신과 사회적 통념이 그어 놓은 ‘장애라는 관념의 울타리’와의 첫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희망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모든 정보를 가져야 생기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 한발 한발 이 순간을 살아가면서, 관념을 실존으로 바꾸며 얻어내는 것이다.
희망은 먼 미래의 막연한 어떤 꿈 같은 게 아니다. 그런 건 희망 고문이다. 진정한 희망이란 피하고 싶고 보기 싫은 현실을 직시하고, 머릿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두려움과 불안을 용기로 딛고 일어서야만 따낼 수 있는 열매이다. 그제야 비로소 ‘그분’의 일하심과 약속을 볼 수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_히브리서 11:1 감사하다. 지금까지 이어진 삶은 혼자 걷지 않았다. 어렵사리 뗀 두 번째 걸음마에는 함께 한 가족이 있었고,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나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함께하신 ‘내 삶의 설계자’가 계셨다. 이 책은 그분의 살아계심의 증거이다.
소중한 나무를 희생시키며 활자화된 이 책이, 누군가에게 부디 희망과 감사와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해주기를 마음속 깊이 바란다.
*** 요한의 돌잔치가 있던 날, 주인공이 아들이 아니라 아빠로 바뀐 것 같았다. 양가 친척과 창신교회 교우들, 회사 동료와 고향 친구들까지, 연회장에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다들 일어나 환영의 박수를 쳐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대부분은 내가 감염으로 입원해 죽을 뻔했다 살아나 팔과 다리를 절단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나를 다시 본 건 그날이 몇 달만에 처음이었다.
드디어 하객들 앞에서, 아빠로서 한 마디 인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내 성격은 아들 돌잔치라고 해서 굳이 마이크를 잡진 않을 것이다. 그런 내가 감염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손에 끌려 나간 그 자리에서, 오신 분들 앞에서 힘을 내 입을 열었다. 이 말을 하려는 것이었다. “제가 정말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_p 26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통곡보다 깊은 통곡이 터져 나왔다. 신음보다 큰 울음 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채워나갔다. 나는 정말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살고 싶어서 살려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이 나를 통해 하실 일이 있으면, 내가 세상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주님이 나를 통해 사시라고,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기 위해 내가 살고 싶었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토악질하듯 기도했다. “주님! 제발 저를 좀 살려주세요!”
그 순간, 꽉 막힌 가래를 뱉어내듯, 오래 목이 잠겨 말하지 못하던 음성이 풀려 노래까지 시원스레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답답한 느낌은 사라지고 청량한 공기가 목구멍을 타고 쑤욱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목을 짓누르고 조르고 있던 끈이 풀린 것 같기도 하고, 내 목에 들어와 있던 호스 같은 것이 빠져나가는 시원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 느낌은 사실이었다. 내가 의식이 돌아오고 스스로 호흡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한 의사가 내 목에 넣은 삽관을 빼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3주 만에 깨어나는 상황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았다._p 43-44
없어진 발바닥이 가려웠다. 사라진 손등이 간지러웠다. 그러나, 아니 그러니 긁을 수도 없었다. 없어졌는데 여전히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다. 그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극한의 공포, 그 자체였다. 때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실체 같고, 없는 것이 더 실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더니, 그게 이런 것이었다.
실제로 아프고 가려운 건 잘린 부위였을 것이다. 무통제(無痛) 주사제가 수액을 통해 쉬지 않고 들어가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고통은 심했지만 죽은 건 아니었다. 그러니 어쩌면 그 고통은 시험이었다. 다만 풀기 어려운 문제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다. 나는 이 시험을 견딜 수 있을까? 감당할 힘이나 남아 있을까?
왼팔은 엄지와 약지를 빼고 한 마디씩만 남았고,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부터 잘렸으며, 다리는 왼쪽은 허벅지 아래, 오른쪽은 무릎 아래로 다 잘렸다. 그런데, 어떻게 무얼 감당하라는 거지? 시험이라면 답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시험이 주어졌다면,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하필 왜 나인가? _p 57
“시험을 당할 즈음에.” 사람이 시험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시험을 당할 수 있다. 시험을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시는데, 나의 경우 그 피할 길은 하나님이셨다.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셨다. 정말 그때, 나는 예수님의 품 말고 피할 곳이 없었고, 기대고 붙들 사람은 전혀 없었다. 내 마음을 기댈 피난처는 예수님뿐이셨던 것이다.
내가 병상에서 과거에 저지른 불순종의 죄들을 다시 생각하며 괴로워할 때도,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품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내가 당한 그 고난의 상황이 시험을 당한 것이라면, 내가 피할 길도 하나님이 일찌감치 내주신 십자가의 길을 가신 분, 예수님 바로 그분이셨다. 피할 길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_p 78
나는 그때, 연세의료원 신문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보다 절박한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조금 더 노력하면 저와 같은 환자분들이 힘을 얻고 회복을 빨리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3개월간의 재활치료 결과, 나는 혼자서 의지를 착용하고 보행보조기를 이용해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처음 평행봉을 잡고 일어섰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이 기적이라고 기뻐하며 큰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혼자 몇 발자국을 걸어 앞에 서 있던 아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내는 이제 내 손이 된 의수를 잡아주며 눈물을 흘렸다. 그건 마치, 처음 걸음마를 걷는 아기 손을 잡아주는 것과 같았다. 아기가 걸음마를 걷기 시작하면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가 기뻐하는 것처럼, 재활병원의 의사와 직원들도 그렇게 기뻐해준 것이다. 내가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 같았다. 나로선 두 번째의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었다. _p 98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하루는 깨어 있을 때 앞으로의 내 인생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내 눈에 두 갈래의 갈림길이 보였다. 한쪽 길은 누가 생각하더라도 뻔하게 좌절하는 인생이다. 원망하고 괴로워하며 고통만 곱씹다 가는 길이다. 다른 길은 비록 힘은 들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며 사는 길이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길에 대해, 뜻밖에 회사의 한 여성 임원께서 병문안하러 오셔서 말씀해주셨다. 사고를 당한 자신의 남편 이야기였다. 나는 그 임원의 남편에 대해 그때 처음 들었다. “홍승,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내 남편이 외국에 사업차 출장 갔다가 사고가 나서..
출판사서평 분당우리교회와 오륜교회에서의 간증, CTS, CGN TV, C채널 등의 프로그램으로 수십만 시청자에게 감동을 전한 ‘다발성 절단 장애인’ 이홍승(창신교회 안수집사)의 간증서이다.
일반인에겐 텔레비전 시청률 조사 기관으로 널리 알려진 국제적 회사 ‘닐슨’에서 소비자 마케팅 조사 전문가로 일해온 저자는 회사의 팀장으로 일하던 10여 년 전 어느 날, 처음엔 독감으로 오해한 ‘급성 폐혈증’에 걸려 순식간에 혼수상태에 빠졌다. 무려 3주간 의식을 잃었고, 뇌와 심장을 살리는 대신 팔과 다리는 끝에서부터 새까맣게 변해갔다. 이 병에 걸리면 보통 2,3일을 넘기기 어렵다는데, 그는 깨어났다! 그러나 까맣게 변한 오른팔과 양쪽 다리, 그리고 왼쪽 손가락은 두 개만 남기고 대부분을 잘라내야 했다. 스스로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그의 신체는 어쩌면 갓 태어난 아기보다 못해 보였다.
‘다발성 절단’이란 복수의 지체를 사고나 병 때문에 동시에 자르는 것을 말하는데, 사지 대부분이 사라진 그에게 상상하지 못했던 고난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회사(구 명칭 닐슨컴퍼니코리아, 현재 명칭 닐슨IQ)의 경영진은 장애인이 된 그가 재활에 전념하도록 격려했고, 놀랍게도 회사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었다. 교회 교인들과 회사 직원들의 온갖 도움이 이어졌고, 청년 시절에 술친구들이던 고향 지인들은 회식을 멈추는 대신 모은 회비를 의수를 사는 비용에 보태주었다.
그는 ‘로봇다리 세진이’를 세운 것으로 유명한 신촌세브란스재활병원 신지철 교수팀의 치료로, 반년이 채 안 되어 스스로 휠체어에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재활에 성공했다. 그건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장애를 입은 고난의 기간에 다시 만난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고백한다. 무엇보다,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시험(고난)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그에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과 삶의 용기를 주신 덕분이었다. 그에게 ‘두 번째 걸음마’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화장실에 가는 일부터, 장애인이라서 불가능하다는 편견의 벽을 모두 깨고 하나둘씩 재활에 성공해나갔다. 그리고 전동휠체어를 타고서 다니던 회사에 지금도 계속 출근하고 있다. 이제는 삶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어떤 일에도 감사하면서, 그를 살린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온몸으로 증거하는 ‘희망의 메신저’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코로나로 삶의 고통을 겪는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위로와 긍정의 용기를 북돋아줄 것이다.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ㆍ 사는 것이 힘들어 위로와 힘이 필요한 분 ㆍ 질병과 사고로 육체의 고통을 겪는 분께 ㆍ 전도 대상자에게 선물할 전도용 도서를 찾는 분 ㆍ 30-40대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남성(남편, 가장)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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