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기록 문화 유산인 조선왕조실록 4대 사고본 첫 한자리… 선을 보이는 문화융합을 부산의 시간으로 세계와 나누다
우리나라에 솥바위의 지명을 가진 곳이 둘이다
‘가마솥 부(釜)’를 쓴 ‘釜山’
‘솥 정(鼎)’을 쓴 의령의 鼎巖
‘가마솥 부(釜)’를 쓴‘釜山’은 가마솥 모양을 한 부산
‘가마솥’(釜) 발이 없는 둥근 가마솥 으로 온세상을 품는다
펄펄 끓는 열기의 가마솥은 많은 재료를 끓여 내고 섞듯이
부산이 대한민국 최고의 융복합도시로서 많은 문화접변을 이루어내고 다이내믹한
‘섞임’의 허브가 된다는 뜻이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기념 조선왕조실록 4대 사고본 첫 한자리…
문화와 전통을 가진 한국문화의 융합과 통합으로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된다
정암(鼎巖) 솥바위는 세 개의 발 같은 기둥이 있다.
정암 나루로 간다. 남강 나루터인 정암 나루는 의령의 관문으로 역사적인 숨결이 있다.
곡식 재물을 뜻하는 정암(솥 바위 鼎巖)은 세 개의 발 같은 기둥이 있다.
정(鼎)은 세 발 달린 솥을 뜻하는데, 정암도 물속에 세 개의 기둥이 있다고 한다
솥 정(鼎)은 目(눈 목)에 𤕰(넷째 지지 묘)로 이루어진 한자이다.
目(눈 목)은 사람의 눈 모양을 본뜬 글자로 처음에는 가로로 섰으나
나중에는 세로로 고쳐 썼다.
귀 이(耳)의 변형으로 솥 그릇 속에 음식물(열매)이 들어있는 모양이고,
목격(目擊: 직접 자기의 눈으로 봄), 목례(目禮: 눈으로 인사함)가 좋은 용례이다.
𤕰(넷째 지지 묘)는 조각널 장(爿), 조각 편(片)으로 솥의 발을 의미한다.
솥 정(鼎)을 종합적으로 풀어 보면 나무의 가지(爿, 片)
사이로 열매(目)가 매달린 모양으로서 완전한 식물(그릇)을 갖추었음을 뜻하며,
여기에서 뜻이 전용되어 솥을 의미하게 되었다.
‘가마솥’(釜) 발이 없는 둥근 가마솥 으로
세계 최고의 문화융복합도시로서 많은 문화접변으로 온세상을 품는다
영도다리는 지금도 들린다.
국제시장 길목에는 여전히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산복도로의 오래되고 낡은 집들은 비탈진 언덕에 기대어 서 있다.
아미동과 우암동 좁은 골목에는 전쟁과 피란의 상흔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미처 생각지 못하지만,
이 장소들은 모두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장 힘든 시간을 견뎌낸 기억의 현장이다.
도시의 기억은 건물에만 남지 않는다.
사람의 삶 속에 남는다.
시장의 체취 속에 남고, 골목의 풍경 속에 남으며,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 남는다.
부산항과 제1 부두, 원도심과 산복도로, 피란 주거지와 시장이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전쟁과 피란,
생존과 회복의 시간을 품고 있는 부산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제 부산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인류가 함께 기억하고 공유해야 할 가치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달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단순히 유산의 등재 여부만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전쟁과 재난, 갈등의 시대에 인류가 어떤 기억과 가치를
미래 세대에 전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다.
국제회의 하나가 열리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걸어온 지난 시간을 세계와 나누는 본격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혼란스러운 도시였다.
전쟁을 피해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으로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살 집도 부족했다.
그러나 부산은 피란민을 외면하지 않았다.
넉넉한 도시여서 그들을 받아낸 것이 아니었다.
부족했지만, 함께 살아내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산복도로 피란 주거지가 만들어졌고, 국제시장과 부평깡통시장도 성장했다.
부산항으로 들어온 구호와 원조 물자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지탱했다.
오늘날 부산 곳곳에 남은 공간들은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다.
국가와 시민이 함께 위기를 견뎌낸 시간이 켜켜이 쌓인 부산 역사의 현장이다.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피란민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다.
정부와 국회, 대법원이 이전해 국가 기능을 유지했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집중됐다. 이렇게 국가의 존속과 시민의 생존, 국제사회의 연대가
하나의 도시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진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피란수도 부산의 특별함은 국가를 지켜낸 데에만 있지 않다.
부산은 단순히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도시가 아니다. 전쟁의 희생을 품어낸 도시였다.
유엔기념공원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참전용사가 잠들어 있고,
부산에는 적군묘지까지 조성돼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또한, 부산은 국군 전사자 유해를 수습하고 안치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수많은 부상자와 피란민을 치료하고 돌보는 전쟁기 의료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전쟁은 사람을 적과 아군으로 갈라놓았지만,
부산은 유엔묘지와 적군묘지, 국군 전사자의 유해를 함께 품으며
인간의 존엄이 이념보다 앞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부산은 이러한 경험을 인류 공동의 기억으로 확장하기 위해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오래된 건물 몇 채를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어려운 시기에 부산이 보여준 포용과 연대,
회복의 경험을 오늘의 세계가 공유해야 할 가치로 확장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부산을 항만도시와 산업도시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피란수도의 기억은 부산이 사람을 품어낸 도시였음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세계는 지금도 전쟁과 난민, 기후 위기와 사회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피란수도 부산의 이야기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를 갖는 인류 보편의 메시지이며,
부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은 미래와도 연결된다. 세계유산은 개발의 반대말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미래 성장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부산항 원도심 산복도로 유엔기념공원은 흩어진 장소가 아니라
전쟁과 피란, 국제연대와 회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하나의 도시 서사다.
이러한 기억을 연결할 때 부산은 세계가 찾는 글로벌 문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세계유산은 과거를 보존하는 사업이 아니라
도시 품격을 높이고 문화와 경제를 함께 성장시키는 미래 투자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고,
우리가 어떤 도시를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를 함께 묻는 자리다.
부산의 미래는 개발사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도시가 품어온 기억과 가치가 시민의 삶 속에서 이어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미래가 가능하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이 세계를 만나는 자리가 아니다.
세계가 부산의 시간을 만나고, 그 속에 담긴 인류의 가치를 함께 기억하는 자리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사람을 품고 공동체를 지켜낸
부산의 시간은 오늘의 세계에도 여전히 유효한 희망의 언어로 남아 있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기념 조선왕조실록 4대 사고본 첫 한자리…부산
조선왕조실록 4대 사고본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조선 왕실의 기록문화와 세계기록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계기로 부산에서 열린다.
국가유산청 국립고궁박물관은 부산박물관과 함께
부산박물관에서 특별전 '조선의 기록과 문화, 만세(萬世)에 전하노니'를 개최한다.
부산에서 개막하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맞아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조선의 기록문화와 세계기록유산의 가치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에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의궤'를 비롯해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조선통신사 기록물' 등 조선 왕실의 기록문화와 관련한
대표 유산이 공개된다.
종묘의 건물을 수리하고 보수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임진왜란 이후 정족산·오대산·적상산·태백산 사고에
분산 보관됐던 조선왕조실록 4대 사고본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의궤 속 기록을 바탕으로 재현한 병풍과 각종 기물, 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어보와 어책,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전란을 피해 부산으로 옮겨져 보관됐던
영조 어진과 철종 어진이 다시 부산을 찾는다.
철종 임금 초상
전시장에는 영친왕비의 붉은 원삼과 화유옹주 묘 출토 유물,
국보 '동궐도', 국보 '청화백자산수화조문대호' 등
왕실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유물도 함께 전시된다.
부산과 조선통신사의 역사도 조명한다.
조선시대 동래부의 모습을 담은 '초량왜관도'와 세계기록유산 '조선통신사 행렬도',
통신사 수행화원 이의양의 산수화 등을 통해 당시
부산의 풍경과 한일 교류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영조가 정조에게 내리는 은인
전시 기간에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화협옹주묘 출토 유물을 바탕으로 복원한 화장품을 체험하는
'열아홉 화협옹주의 꽃단장'이 열친다,
부산의 모든 길은 바다로 향한다.
금정산과 백양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온천천과 동천을 지나 바다를 만난다.
낙동강은 삼각주를 이루며 남해로 스며들고,
산비탈을 따라 난 골목길은 어느새 항구와 시장으로 이어진다.
도시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바다 앞에 닿는다.
그러나 바다는 길의 끝이 아니다.
부산항을 떠난 배는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향하고,
남중국해를 지나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으로 이어진다.
조선통신사는 그 길을 오갔다.
개항 이후에는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그 항로를 따라 들어왔다.
한국전쟁 때는 수많은 피란민이 이 항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오늘도 컨테이너선은 세계의 항만과 부산을 잇는다.
부산의 길은 육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다가 되고, 그 바다는 다시 세계로 이어진다.
부산의 거리를 걸으면 도시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광안리와 해운대만이 아니다.
초량의 골목과 영도의 흰여울, 기장의 해안 길, 가덕도의 작은 포구까지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해 질 무렵 가덕도에서 거가대교와 부산 앞바다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본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항로가 되었다.
노을이 천천히 수평선 위로 번질 무렵 대만의 양밍해운 선박이 지나고,
프랑스 CMA CGM의 컨테이너선이 뒤를 이었다. 일본 ONE의 자주색 선박과
스위스 MSC의 초대형 선박도 같은 시간 같은 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국적도, 선사도 달랐지만 모두 부산 앞바다에서 만났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부산의 미래는 이미 바다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 풍경을 석양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는 세계 물류가 교차하는 항로로 읽을 것이다.
하나의 공간에서 관광과 산업, 풍경과 경제, 시민의 일상과 세계의 흐름이
동시에 만나는 장면이었다.
좋은 건축은 풍경을 오래 머물게 한다.
자연과 사람이, 그리고 도시와 바다가 서로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일이다
부산은 다시 바다를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
새롭게 출범한 시정은 해양 관련 산업과 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북항 재개발과 해양관광을 중심으로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
해양수도는 해양산업의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세계의 사람들이 찾아와 머무는 공간, 시민이 일상 속에서 바다를 누리는 수변,
오래된 항만의 기억과 새로운 도시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해양도시는 바다를 가진 도시가 아니라, 바다를 삶 속으로 끌어안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바다를 통해 세계를 만났다. 그 바다는 오늘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