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월 62타사 브라질에서 우승한 산토스는 63 코파리베르타도레스 참가 티켓을 얻어냅니다. 산토스는 준결승전에서 가린샤, 니우통 산투스 등 브라질 국대 멤버들로 구성된 보타포구와 만났습니다.
이 시기 펠레의 산토스와 가린샤의 보타포구는 거의 오늘날 메호대전과 비슷했습니다. 보타포구 원정경기에서 펠레는 골키퍼를 넘기는 골로 산토스가 1-0으로 앞서갑니다.
그리고 쿠티뉴의 크로스를 받은 펠레의 헤딩골
펠레 본인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합해 펠레의 해트트릭. 펠레는 가린샤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했고 산토스는 결승에 진출합니다.
결승 상대는 아르헨티나 리그 챔피언 보카주니어스. 산토스 홈에서 열린 1차전은 산토스가 3-2로 이겼는데 펠레가 산토스의 3번째 골인 리마의 골을 어시스트 합니다.
그리고 원정에서 열린 2차전. 펠레가 쿠티뉴의 골을 어시스트하고
본인이 결승골을 넣어 산토스가 2-1로 이겼습니다. 산토스가 남미 챔스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산토스는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잔니 리베라의 밀란과 붙습니다.
1963년 타사 브라질 준결승전. 산토스는 그레미우와 대결했습니다. 1차전 원정에서 1-0으로 뒤쳐진 가운데 펠레의 어시스트를 받은 쿠티뉴가 동점골을 넣었고
펠레 본인이 역전골에 성공. 이후 쿠티뉴의 골로 3-1로 승리합니다.
2차전 홈에서 산토스는 (저거 말고 골 영상이 없네요) 펠레의 페널티킥 포함 4-3으로 승리합니다. 이 경기에서 펠레가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 경기 도중 지우마르 골키퍼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선수교체가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대신해서 골키퍼를 뛰어야 했는데 펠레가 골키퍼를 하게 됩니다.
다행히 남은 시간 동안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내는데 성공한 산토스는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해트트릭에 골키퍼까지 한 경기에 다 하는 선수도 얼마 없을 겁니다.
산토스는 결승에서 바이아와 붙었는데 1차전은 6-0 승리, 2차전은 2-0으로 승리합니다. 펠레는 2경기에서 4골을 넣었습니다. 산토스가 이렇게 3년 연속 브라질 챔피언이 됩니다.
1963년 10월. 1차전은 산시로에서 열렸습니다. 밀란엔 파울로 말디니의 아버지인 체사레 말디니가 주장이었고, 잔니 리베라, 그리고 2002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감독인 트라파토니가 뛰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펠레의 월드컵 우승 동료인 알타피니와 아마리우두도 뛰고 있었습니다.
밀란에게 전반전 2-0으로 끌려가던 산토스는 펠레의 만회골로 2-1로 따라잡습니다. 그러나 아마리우두와 모라의 골로 다시 밀란이 4-1로 앞서갑니다.
후반 39분. 펠레가 페널티킥으로 만회골을 넣었습니다. 1차전은 4-2 산토스의 패배. 그런 가운데 산토스는 8월에 개막한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를 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1월 2일 쥬벤투스와의 경기에서 펠레가 부상당했습니다. 펠레는 이듬 해인 1964년 1월에서야 복귀합니다.
산토스는 펠레 없이 2차전을 맞이했는데 홈팀 버프로 4-2로 승리, 이후 재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합니다. 인터컨티넨탈컵도 산토스가 2연패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힘을 다 뺐는지 파울리스타 남은 리그 8경기에서 2승 2무 4패로 결국 파우메이라스에게 우승을 내주었습니다.
이 시즌이 참 아쉬운게 파울리스타에서 우승했다면 산토스가 2년 연속으로 트레블을 달성하는 팀이 될 뻔했습니다.
펠레가 11월 초 부상만 안당했다면 아마 파울리스타까지 우승해서 세계 축구 역사에 유일무이한 2년 연속 트레블팀이 될 뻔 했습니다. 다만 펠레 본인은 파울리스타 득점왕에 오르며 7년 연속 득점왕에 등극해 유종의 미를 거둡니다.
첫댓글 진짜....축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