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는 곳》 허 수 경
진주라는 곳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과 고등학교를 다니고
그리고 대학을 다니고,
아버지를 여윈 곳.
진주라는 곳
거리에 여자아이들이 몰려다니며 깔깔거리는 곳
거리에 사내아이들이 몰려다니며 딱지를 놓던 곳
갈증을 풀 길 없는 청년들은 작은 술집에 앉아
먼 세계의 빛을 이야기 하던 곳
작은 강이 흐르고
강 옆에는 대숲이 있고
늙어가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대숲 아래에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곳
뒤돌아보면 긴 긴 장강같은 지나간 시간이 있고
다시 뒤돌아보면 장강을 이루던 시간이
신화 자체가 되는 곳
눈물 많은 시인이 있던 곳
빛 많은 사람이 있는 곳
그 안에 작은 서점 하나 사람을 모으는 집을 짓는 곳
대륙 두 개를 넘어 독일에서 나는 그곳을 생각한다.
어스름한 빛 하나 작은 집을 내 마음에 짓는다.
오! 진주라는 곳 …
♣ 시인 허수경(許秀卿 : 1964~2018)은 진주에서 태어나서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진주에서 다녔다. 허수경 시인은 훌륭한 문학인을 많이 배출
한 진주여고(晉州女高)를 다녔고, 진주(晉州)에 있는 경상국립대학교(慶尙
國立大學校) 국어국문학과(國語國文學科)를 졸업(卒業)했다. 대학 졸업 후
잠깐 교직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와 방송작가 생활을 하였다. 1992년 독일
로 건너 가서 헤센주(Land Hessen)의 마르부르크 필립스 대학교 (Philipps-
Universität Marburg)에서 선사고고학(先史考古學; Prehistoric Altertumskunde)
을 공부하고, 독일 북서부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Land Nordrhein-
Westfalen ; NRW)에 있는 뮌스터 대학(Universität Mụ̈nster)에서 고대동방
문헌학(古代東方文獻學) 박사과정을 밟았다. 위암으로 인하여 2018년 54세
의 한창 나이에 타계하였다. 1987년《실천문학》에 〈땡볕〉외 4편의 시(詩)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21세기전망' 동인이다. 2001년 제14회 〈동서문학상〉
을 수상했다. 〈진주라는 곳〉은 독일 유학생활을 하면서 고향 진주를 생각하
면서 암 투병 중 쓴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