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5절에서처럼 여기서도 기도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내용이 좀 더 구체적입니다. 주의 말씀이 데살로니가에서 그러하였던 것 같이,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활발하게 퍼져 나가고, 악한 무리에게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를 요청합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에 복음을 전파하면 어떤 사람은 거부하고 바울과 일행들을 박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2). 그리고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은 미쁘셔셔(신실함) 데살로니가 교회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들에게서 건지실 것임을 확신합니다(3). 이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자신이 명한 것을 그대로 행할 것을 확신합니다(4). 여기서 ‘명하다’는 말은 군사적인 상명하복적 뉘앙스를 가지는데, 주님의 말씀은 온 세상에 퍼져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장은 밖으로는 복음 전파를 통해서, 안으로는 복음을 행함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지도하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를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참으신 것과 그것을 본받아 서로에서 참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데, 이것은 주님에게서 나온 권위로 명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명령은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과 사도로부터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자들로부터 멀리하는 것입니다(6). 그리고 바울과 동역자들이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도 바울과 사역자들을 본받아 게으르지 않고 무질서하게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7). 바울과 일행은 손수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으로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어린 교회가 실족하지 않고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세심한 배려를 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물질적인 후원을 요청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8-9).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는 규모 없는 자들, 곧 게으른 자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종말론에 의해 일을 하지 않고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놀자’처럼 행동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이런 자들에게 권면을 했지만 듣기 않아 다시 한 번 더 강한 어조로 권면합니다 (10-12). 바울은 규모 없는 자들과 반대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러나 너희들은’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기를 권면합니다. 또 바울이 이 편지에서 권면하는 것과 같이 행하지 않는 자들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부끄럽게 만들라고 합니다. 이것은 왕따를 시키라는 말이 아니라 공적으로 어떤 잘못 한 것을 지적하고 교제를 하지 않는 권징을 의미합니다. 범죄에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과 잠시 거리를 둠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한 것임을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원수로 여기는 아니라 형제로서 권면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13-15).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에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기 원하며 자신의 친필로 편지를 씀으로 이 편지가 진짜 바울 자신이 쓴 것임을 증명하고 끝인사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기원하며 편지를 마칩니다(16-18).
교회는 복음의 전파와 복음을 살아냄으로 성장합니다. 오늘도 사도들을 통해서 전해준 주의 말씀을 읽고, 전파하고, 그 말씀을 부단히 살아내며 서로 사랑으로 권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