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솔바람길
유월을 가는 끝자락 토요일이다. 일 주 전 시작된 올해 장마가 비를 한 차례 뿌리고는 소강 국면이었다. 제주도 바깥으로 밀려났던 장마 전선이 이번 주말에 중부권까지 점프해 바람과 함께 많은 강수가 예보되었다. 태풍 진로에서도 그렇듯이 장맛비에 대한 기상 예보도 사전에 대비를 철저히 하라는 의미를 담아 가변적 수치에서 최대치를 예상해 선제적이고 다소 과장되기도 했다.
전날부터 기상청 홈페이지에 띄워둔 구름 움직임은 우리 지역을 포함해 경북 청도 일대 날씨를 주시했다. 주말 이틀 가운데 하루는 운문사 숲길을 걸어 볼까 싶어서다. 지난 주말 다녀오려다가 비가 와 미뤄둔 일정이다. 일요일은 종일 비가 올 듯하고 토요일은 오후부터 강수가 예상되어, 잠을 깬 새벽에 베란다 바깥 창을 자주 내다보다가 아침 식후 다소 먼 동선으로 길을 나섰다.
퇴촌삼거리로 나가 창원대학 앞에서 도청 뒤를 거쳐 창원중앙역으로 올라섰다. 정병산 능선과 날개봉에는 강수대 전조로 짙은 구름이 몰려와 장마 전선이 움직임이고 있음을 실감했다. 1시간 전 진주역을 출발해 동대구로 향하는 무궁화호에서 청도역까지 표를 구해 정한 시각 도착한 열차를 탔다. 비음산을 터널로 빠져나간 열차는 진영과 한림을 지나 강심을 가로지른 철교를 건넜다.
터널 구간을 지나 밀양에서 강변을 따라 청도역에 내려 운문사로 가는 버스 시각을 확인해 두고 정류소에서 기다렸다. 노변 햄버거 가게 처마 밑에는 제비 두 쌍이 각각 나란히 집을 지어 새끼를 까 먹이를 물어와 길렀다. 주인은 창문에다 메모지 화살표를 그려 ‘제비가 둥지를 지었어요!’, ‘새끼를 깠어요!’로 실시간 알려줬다. 비가림막으로 덧댄 천막 아래 튼 둥지에 새끼가 보였다.
정한 시각에 출발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금천에서 동곡을 거쳐 운문호를 둘러 1시간 남짓 걸려 운문사 산문 앞에 닿았다. 주말에 비가 예보되어 관광객이나 불자들이 많지 않아 사하촌은 한산했다. 올봄부터 사찰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지 않아 승용차 주차비와 무관한 입장객은 자유로웠다. 산문부터 곧장 시작된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을 걸으니 초여름 산사의 운치가 느껴졌다.
길섶에 조경으로 자란 원추리와 비비추는 제철을 맞아 꽃을 피웠다. 벌개미취는 수분이 부족해서인지 잎줄기가 야위어 꽃봉오리 세력이 약해 보였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누구에게나 눈길을 끄는 처진소나무 앞에서 발길이 멈추어졌다. 멀리 감치 바라보인 북대암까지 구도에 넣어 사진을 한 장 남겼다. 경내 전각 탐방은 줄이고 칠성각에서 손을 모은 비구니 뒷모습만 보고 나왔다.
사리암으로 가는 숲길을 따라 걸었다. 포장된 길로는 차량이 다녔으나 숲길 탐방의 진정한 의미는 두 발로 걷기였다. 문수선원에 이르러 거기는 수행처라 수월교를 건너지 못했다. 사리암을 앞둔 주차장에는 불자와 탐방객이 몰아온 차량이 빼곡했다. 사리암까지 올랐다가 내려오기는 되돌아갈 열차 시각을 맞출 수 없어 주차장 데크 쉼터에서 간식으로 술빵 부스러기와 커피를 마셨다.
운문사 숲길은 사리암 주차장부터 가지산으로 가는 학심이계곡이나 얼음골로 넘는 아랫재로는 탐방로가 폐쇄되어 아쉽다. 운문산은 국립이 아닌 군립공원임에도 그곳은 안식년을 30년째 계속 연장 시행 오랜 세월 닫힌 상태다. 생태 환경 보전지구로 지정해 학술 조사 연구자 외 일반인은 드나들 수 없다. 그 덕으로 첩첩산중 계곡물이 흘러드는 운문댐 수질은 1급수를 유지하고 있다.
아랫재를 넘는 운문산 숲길 탐방은 마음속으로만 그려보고 사리암 주차장에서 발길을 돌렸다.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활엽수가 섞여 자란 숲길을 되짚어 산문 밖으로 나왔다. 노점에는 조생종 복숭아와 옥수수를 쪄 팔았다. 사하촌 식당에 드니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선 행락객이 더러 보였다. 산채로 비빔밥을 먹으려다 더 간편한 국수를 시켜 먹고 읍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4.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