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귀 기울이다.
겨울이 오면 내 기억 속에서
살아나는 시 몇 편이 있는데 그 중 한편이 황동규 시인의 <기도祈禱>라는 시입니다.
바람도 없이 내리는 눈, 그 눈 속에 잃어버린 젊은 날의 아우성처럼 떠오르는 그 구절구절이 어쩌면 그렇게 내 텅빈 가슴을 후비고 지나갔던지,
“내 잠시 생각하는 동안에 눈이 내려 생각이 끝났을 땐 눈보라 무겁게 치는 밤이었다. 인적이 드문, 모든 것이 서로 소리치는 거리를 지나며 나는 단념한 여인처럼 눈보라처럼 웃고 있었다.
내 당신은 미워한다 하여도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 주며는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내 꿈결처럼 사랑하던 꽃나무들이 얼어 쓰러졌을 때 나에게 왔던 그 막막함 그 해방감을 나의 것으로 받으소서.
나에게는 지금 엎어진 컵 빈 물주전자 이런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는 닫혀 진 창 며칠 내 끊임없이 흐린 날씨 이런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곤 세 명의 친구가 있어 하나는 엎어진 컵을 들고 하나는 빈 주전자를 들고
또 하나는 흐린 창 밖에 서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소서.
이들에게서 잠간 잠간의 내 이야기를 들으소서.
이들에게서 막막함이 무엇인가는 묻지 마소서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 맡기소서.
한 기억 안의 방황
그 사방 막힌 죽음
눈에 남는 소금기
어젯밤에는 꿈 많은 잠이 왔었다
내 결코 숨기지 않으리라, 더 울울히 못 산 죄 있음을
깃대에 달린 깃발의 소멸을
그 우울한 바라봄, 한 짧고 어두운 청춘을
언제나 거두소서.
당신의 울울한 적막 속에.“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았던 나날, 내일이 있으리라는 것조차 믿지 못하던 나날이 그렇게 꿈결처럼 지나간 뒤에 다시 읽어도 내 가슴을 뛰어놀게 하는 한 편의 시,
내 마음속에 그치지 않고 내리는 눈, 그 눈이 그칠 날은 언제쯤일까요?
2022년 12월 3일
출처: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