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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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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서의 일상은 매일 똑같았다.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리면 어김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식사를 했다.
아침뉴스를 보며 청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다 시계가 9시를 가리키면 방에서 나와 가게 문을 열었다.
인서가 일하는 곳은 애견샵이다.
관련물품은 물론, 미용도 하고 잠시 맡아주는 호텔영업도 했다.
그는 이 가게에 딸린 방에서 살고 있다.
작게나마 주방과 화장실이 있어 좀 비좁은 걸 빼면 혼자 살기 충분했다.
게다가 방문 하나만 열면 바로 가게라 출퇴근 시간도 따로 필요치 않았다.
인서가 가게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강아지들이 일제히 짖으며 반긴다.
먹이를 줄 사람인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가게토박이가 된 두 마리 고양이도 슬그머니 다가와 인서의 다리 사이를 말없이 부비며 애교를 부린다.
인서는 미소를 지으며 웅크리고 앉아 고양이들의 목을 만져주었다.
가르릉대는 두 녀석을 남겨두고 재빨리 오픈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강아지들 케이지에 있던 지저분해진 패드를 버리고 새 걸로 깔아주었다.
빈 그릇에 먹이와 물을 채워주자 신이 나서 얼굴을 묻은 채 먹기 시작한다.
따로 새끼 강아지를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가게에 있는 녀석들은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우는 사이 맡긴 아이들이었다.
그 중엔 며칠만 부탁한다고 하고 간 후 나타나지 않는 주인 때문에 할 수 없이 맡아 기르게 된 녀석도 있었다.
‘캔디’란 깜찍한 이름의 녀석으로 나이가 많고 거동이 불편한 퍼그였다.
인서는 밥그릇 싸움에서 밀리는 ‘캔디’를 안아 분리된 공간에서 따로 밥을 챙겨 주었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나이 들어 젊은 강아지들에게 밀리는 이 녀석을 보면 괜히 안쓰러운 마음에 간식 하나라도 더 챙겨주게 된다.
강아지들이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케이지로 돌아가자 인서는 바닥과 선반을 닦은 후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앞도 말끔히 치우고 환기시킨 뒤 탈취제까지 뿌리고 나면 말 그대로 오픈준비 끝이다.
그렇게 오전 10시에 영업을 시작하는 애견샵 [멍군 냥군]은 밤 10까지 운영되었다.
형편없는 네임센스는 이 가게의 실질적인 주인인 매형의 결정이었다.
인서와 그의 누나가 별로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한번 결정한 매형은 끝까지 밀고나가 결국 발음도 어려운 [멍군 냥군]으로 간판을 달고 말았다.
지금도 인서는 가게로 전화가 오면 ‘감사합니다, 멍군 냥군입니다’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그래도 가게 이름과는 무관하게 [멍군 냥군]은 좋은 제품과 친절한 서비스로 순항 중이었다.
인서가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이었다.
그 전에는 누나부부 둘이 운영해 왔었다.
그러다 다른 지역에 2호점을 내게 되었고 매형이 그쪽 가게를 맡으면서 인서가 대신 지금의 1호점을 돕게 된 것이다.
인서는 가족이기 이전에 누나와 매형이 자신에게 일할 곳을 주고 또 살 곳 까지 마련해 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누나는 마치 엄마처럼 인서를 걱정해주고 챙겨주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여태껏 누나에게 폐만 끼쳤지 아무것도 도움을 준 것이 없어 늘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서는 누나 가게를 돕게 된 다음부터 한번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 왔다.
지금은 주말마다 애견미용 학원에 다니며 새로 기술도 배우는 중이다. 그래야 누나의 일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서가 누나에게 이토록 고마워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인서는 극심한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누나가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성실했던 인서는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까지 받으며 대학에 들어갔다.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 일류까지는 아니더라도 건실한 기업에 취업도 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착실한 모습에 누구에게든 친절하고 욕심이 없어 직장 동료들도 그를 신뢰했다.
그 무렵 인서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오랜 친구였던 이권영은 취업이 되지 않아 벌써 몇 년째 방황하던 중이었다.
그는 직장에 잘 적응해 일하는 인서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만날 때 마다 “난 백수니까 니가 사”라는 말을 하며 밥이며 술, 심지어 본인이 필요한 물건들까지 사달라고 조르고는 했다.
그래도 인서는 얼굴한번 찌푸리지 않고 그의 억지를 받아주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사주었고.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늦은 밤이라도 반드시 사서 갖다 주었다.
누가 봐도 뻔뻔하고 염치없게 구는 권영이었지만 인서는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워낙 어릴 때부터 붙어 다닌 친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욱 비밀스런 이유가 있었다.
인서는 오랫동안 그를 남몰래 사랑해왔었다.
같은 동성에 친구이기에 결코 입 밖에 낼 순 없었지만 남들이 권영을 싫어하고 뭐라 해도 인서는 끝까지 그를 감싸고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권영이 그런 인서의 마음을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마지막 중3 겨울방학 때, 권영은 거의 인서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인서가 해 주는 밥을 배 불리 먹고 그의 컴퓨터로 실컷 게임을 하다 침대에 누워 낮잠에 빠져 있을 때 였다.
얼핏 잠이 깨려는 데 인서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권영은 그대로 자는 척을 했고 그러자 살며시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지더니 얼핏 입술에 뭔가가 닿았다.
그때 권영은 인서의 마음을 눈치 챘다.
하지만 받아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기에 시치미 떼고 모른 척 했다.
무슨 짓이냐며 화를 내고 절교를 할 수도 있지만 권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서는 헌신적이라고 할 만큼 자신에게 잘 했기 때문이었다.
결코 고백할 용기가 없는 상대가 곁에서 보살펴 준다는 건 정말 편리한 일이었다.
인서가 성실한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때 몇 년째 백수로 전전긍긍하던 권영은 어느 날 결국 취업포기 선언을 했다.
그리고는 인서에게 같이 창업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아무리 노력해도 회사에 들어가기 힘드니 차라리 장사를 해보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취업해 직장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는 인서에겐 조금도 득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인서는 권영에게 좀 더 취업에 도전해 보자고 설득했지만 이미 면접 준비도, 탈락의 고배도 지긋지긋해진 권영은 좀처럼 창업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자금. 권영은 무일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인서를 끌어들여 그의 명의로 대출을 받으려 했다.
물론 처음엔 말려도 보고 설득도 해 보려 애썼다.
하지만 다 소용없었다.
“너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내가 장사 좀 시작해 보겠다는데 그것도 못 도와주냐?”
권영은 인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까지 이용하려 들었다.
“뭘 원해? 내 몸? 까짓 좋아. 한번 안게 해 줄게. 아님 네가 안기고 싶은 거야? 뭐 내키지는 않지만 한번이라면 생각해 볼 수도 있어”
인서는 권영의 말에 크게 상처 입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사랑은 그런 저속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굳어버린 권영에 대한 오랜 짝사랑은 인서의 판단을 흐려놓았다.
대출을 받아주지 않으면 절교 하겠다는 유치한 선언에도 가슴이 철렁했고, 한번만 도와주면 평생 널 은인으로 생각할게. 어쩌면 널 사랑하게 될 지도 몰라. 진심이야.... 라는 애원에 마음이 흔들렸다.
어리석었다고 밖엔 표현할 길이 없다.
결국 인서는 권영의 억지에 끌려가고 말았다.
직장이 든든한 자신의 명의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혼자 살고 있던 원룸 보증금에 3년째 넣고 있던 적금까지 해약해 모조리 권영이 하고 싶다던 사업에 쏟아 넣었다.
권영은 그 돈으로 번화가에 작은 실내 포장마차를 차렸다.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보증금을 뺐으니 갈 곳이 없어진 인서는 권영과 함께 살게 되었다.
권영은 마음을 여는 듯 한 침대를 쓰고, 어린애 같은 키스를 나누는 데 까지 허락했다.
인서는 퇴근하면 권영의 가게로 가서 주방을 도왔다.
가게 문을 닫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너무나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길지 않았다.
불행은 교통사고 같아서 생각지도 못한 때 급작스럽게 닥쳐온다.
다가오는 낌새도 못 느끼고 피할 방법도 없었다.
가게를 오픈하고 6개월도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이기에 무시했는데 그때부터 문자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카톡 메시지도 무자비하게 날아들었다.
모두 인서가 본 적도 없는 대부업체에서 온 이자를 독촉하는 글들이었다.
너무 이상해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황당해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한두 군데가 아닌 대부업체에서는 인서의 명의로 몇 십 만원에서 몇 백 만원까지 대출되어 있었다.
게다가 은행에서도 연락이 이어졌다.
그동안 대출 이자는 권영이 가게에서 번 돈으로 꼬박꼬박 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당황한 인서는 즉시 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휴대폰도 가게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가게로 갔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둘이 함께 살던 집에 가 보았지만 자신의 물건만 남고 권영의 짐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권영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여자애와 눈이 맞아 함께 떠난 거였다.
인서의 명의로 각종 대부업체에서 돈을 끌어 모으고 건물 주인에게 미리 가게를 뺀다고 얘기한 후 보증금과 권리금까지 받아 챙겨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인서는 여기저기 자신의 명의로 쌓인 빚과 신용불량자라는 낙인만 두 손에 쥐게 되었다.
기거하던 곳도 이미 기한만료라 마땅히 잘 곳도 없었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말았다.
직장까지 밀어닥친 빚쟁이와 끊이지 않는 독촉전화로 더는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돈도, 우정도, 사랑도 아무것도 남겨진 게 없었다.
그때의 좌절감이란 단순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배신도 모자라 여자랑 사라지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직장도 잃고 살 집도 없는 그가 의지할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 남은 가족. 누나 뿐이었다.
신용불량에 개인파산까지 해 버린 인서는 제대로 이력서 한 장 낼 수 없는 신세였다.
누나는 그런 인서를 받아주었다.
가게 한 쪽에 있던 작은 방을 내어주고 일도 맡겨주었다.
성실하고 착한 동생에서 순식간에 민폐덩어리로 전락한 인서를 누나도 매형도 외면하지 않았다.
인서가 깊은 절망 가운데서 다시 일어날 힘을 낸 건 온전히 두 사람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인서는 지금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굿모닝, 간밤에 별 일 없었지?”
10시 5분쯤 활기찬 목소리로 들어선 사람은 바로 이 샵의 주인이며 인서의 누나인 희주였다.
“응. 다들 얌전히 있었어.”
희주는 겉옷을 벗고 앞치마를 했다.
오늘 데리러 오겠다고 한 주인들이 있어 그 아이들 먼저 목욕과 미용을 해야 했다.
희주가 일할 준비를 하고 나서자 인서도 서둘러 강아지들 목욕시킬 준비를 했다.
목욕은 인서가, 미용은 희주가 했다.
가게에서 동물들을 상대로 일하면서 상처받았던 인서의 마음도 서서히 아물어갔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던 아픈 기억이 사람이 아닌 동물로 치유되는 게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따뜻한 체온의 동물들을 가슴에 끌어안으면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를 마주보면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었다.
이따금 지난 일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있으면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온 고양이들이 까끌까끌한 혀로 손등을 핥아준다.
어떨 땐 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가게를 뛰어다니며 잔뜩 물건들을 흐트러트려 정신없게 만들기도 했다.
청소하고, 물건 정리하고, 수시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다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금방 져버리고는 했다.
잡생각 없이 바삐 몸을 움직이는 게 지금의 인서에게는 그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었다.
목욕과 미용만으로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두 사람은 교대로 인서가 지내는 방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2시 무렵, 잠시 한가로운 시간대는 대형견들의 산책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샵에 맡기러 오는 강아지들은 페키니즈나 시츄, 치와와 등의 소형견이었지만 이따금 골든 리트리버나 샤페이, 시베리안 허스키, 사모에드 같은 대형견들도 있었다.
오늘은 이틀 전에 맡겨진 허스키와 리트리버 두 마리만 산책시키면 된다.
인서는 가게를 잠시 희주에게 맡기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배변봉투와 목줄을 준비했다.
상점가에서 조금 벗어나면 강변을 따라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동물을 산책시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겨울이 종반으로 접어드는 2월.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오후의 햇살은 밝고 따뜻했다.
제 계절을 만난 허스키는 벌써부터 신이 나 가게를 나서자마자 내달리고 싶어 안달이다.
겨울용 옷을 입힌 리트리버는 워낙 의젓한 녀석이라 옆의 허스키가 날뛰든 말든 상관없이 인서와 보조를 맞춰 느긋하게 걸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녀석을 데리고 산책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처음 애견샵에서 일하며 동물산책을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거의 베테랑에 가까워 졌다.
그땐 커다란 동물이 날뛰면 질질 끌려가며 어찌할 바를 몰라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동안 여러 강좌도 다니고 책, 인터넷을 보며 공부한 결과 지금은 제법 그럴싸한 핸들러처럼 강아지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주인과 정기적으로 산책하지 않는 강아지들은 대충 지금의 허스키같은 반응을 보인다.
밖이라면 무조건 좋아 날뛰고 사방으로 튀어 나가려 한다.
마음대로 놔뒀다간 사람이며 차에 상관없이 달려들 테니 적당한 제재가 필요했다.
인서는 잔뜩 흥분한 허스키의 목줄을 조금 팽팽하게 당겨 ‘안 돼’의 신호를 보냈다.
그에 비해 리트리버는 주인이 잘 길들인 덕분에 산책하기 아주 수월했다.
두 마리를 데리고 공원에 도착한 인서는 차갑지만 상쾌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마구 질주하고 싶은 본능을 겨우 억누른 허스키는 밖이라는 사실이 마냥 신나는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기 바쁘다.
얌전한 척 걷지만 언제 질주본능이 튀어나와 버릴지 몰라 목줄은 단단히 잡고 있어야 했다.
이 산책로는 인서도 좋아하는 길이었다.
벤치에 앉아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 쓸데없는 상념들도 같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꽤 오랜 시간 앉아 강을 바라보기도 했다.
화창한 하늘에서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강 표면에 닿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강을 바라보며 두 마리의 커다란 개들과 느긋한 산책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일어나!”
저 앞 쪽에서 한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일어나지 못해, 이 못된 녀석!”
바짝 약이 오른 목소리로 보아 남자는 꽤 열 받은 상태였다.
인서는 남자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다.
소리치는 남자 앞에는 긴 목줄에 연결된 웬 털뭉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자 그 털뭉치는 고양이였다.
“어서 일어나 걸어! 그런다고 내가 널 안아줄 줄 알아?! 늙고 게으르고 못생긴 고양이 주제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장신의 남자는 열이 받아 쿵쿵 발까지 구르며 고양이를 위협했다.
하지만 바닥과 밀착된 고양이는 콧수염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사실 고양이는 산책동물이 아니다.
특히나 유별나게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에게 이 계절에 목줄까지 해서 끌고 나왔으니 걷기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여기까진 어떻게든 왔지만 기어이 바닥으로 퍼져 꼼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좀 더 다가가 살피자 우아한 긴 털로 유명한 귀족묘 페르시안이었다.
그 중에서도 익스트림이라 불리는 페르시안고양이의 일종으로 꾹 눌린 들창코가 다소 못생겼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 녀석이었지만 그게 또 큰 매력이기도 했다.
“어서 일어나! 어서!”
목줄을 잡아당기고 아무리 위협해도 한번 길 위에서 퍼져버린 고양이는 질질 끌려가는 한이 있어도 꼼짝하지 않는다.
그 앞의 사람만 어쩔 줄 몰라 할 뿐 고양이는 접착제라도 붙여 놓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고양이 치고 덩치가 좀 커 보이긴 하지만 페르시안의 특성 상 풍성한 털 때문이지 그리 무겁진 않다.
그러니 그냥 안아서 데려가면 될 텐데 저 남자도 고양이 못지않게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제기랄! 못된 똥고양이 같으니!!”
유치한 욕까지 섞어가며 아무리 다그쳐도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인서는 뭔가 도움을 줄까 잠시 고민하다 동물을 대하는 남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저런 사람은 완고한 고양이에게 한번 된통 당해봐야 한다.
다행히도 발을 구르며 위협만 할 뿐 동물에게 폭력은 휘두르지 않으니 저대로 둬도 괜찮을 것 같았다.
화내다 지치면 스스로 고양이를 안고 돌아가겠지.
두 마리의 개를 앞세워 그 옆을 지나치려는 순간,
“이봐, 애견샵 직원”
남자가 다소 거만한 말투로 인서를 불러 세웠다.
그는 아마 인서가 입고 있는 앞치마에 새겨진 가게로고를 보고 말을 건 듯 했다.
인서가 멈춰서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 개들 산책시키는 길이면 이 자식도 같이 해줘. 돈은 충분히 지불하지.”
그는 긴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갑을 꺼냈다.
“1시간 뒤에 그 가게로 찾으러 가지. 이 정도면 되나?”
남자는 10만 원 권 수표를 꺼내 검지와 중지로 들어 보인다.
유난히 희고 긴 손가락으로 수표를 까딱거리며 인서의 대답을 기다리는 남자.
“죄송하지만 종이 다른 두 동물을 한꺼번에 산책시킬 순 없습니다. 그리고...”
무례하기까지 한 남자의 말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려다 인서는 그에게 매어 있는 고양이가 불쌍해 한마디 하기로 했다.
“고양이는 산책시키는 동물이 아닙니다. 처음 보는 외부 환경에 노출되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저대로는 꼼짝하지 않을 테니 안고 집으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뭐?! 안으라고? 저 지저분한 털뭉치를?! 하! 당치도 않은 소리!”
남자가 콧방귀를 끼며 짜증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저딴 걸 안을 순 없어. 내 손이 얼마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보급 손가락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보여주듯 열 손가락을 펼쳐 보이는 남자를 인서는 어이없단 듯 바라보았다.
남보다 유별나게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국보가 어쩌고 할 만큼 엄청나 보이지도 않았다.
머리가 약간 이상한 사람이구나 싶어 인서는 슬금슬금 개들을 데리고 뒷걸음질 쳤다.
“이봐! 어딜 가는 거야! 이 녀석 좀 어떻게 해 보라고!!”
인서는 남자의 애원을 못 들은 척 돌아섰다.
그때였다.
잠깐 방심한 사이 느슨하게 잡고 있던 목줄을 눈치 챈 허스키가 잽싸게 튀어나가고 말았다.
“앗!”
순식간에 줄을 놓친 인서. 황급히 다시 잡으려 했지만 허스키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안 돼!”
허스키는 겅중겅중 뛰어오르며 자유를 만끽하다 저쪽에 떨어져 있는 털뭉치를 발견하고 눈빛을 반짝이며 튀어나갔다.
캬하악!
그 순간, 반갑다며 미친듯 뛰어오는 개를 발견한 고양이가 털을 곤두세우며 펄쩍 뛰어올랐다.
“으아아악!!”
그리고는 그대로 앞에 있던 남자의 다리를 타고 올라 눈 깜짝 할 사이 어깨위로 올라갔다.
“으악! 안 돼! 싫어! 떨어져!!”
어깨에 단단히 손톱을 박고 매달린 고양이를 어떻게든 떼어내려 남자는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꽉 매달리는 고양이.
어느새 남자의 다리엔 허스키까지 매달려 고양이를 잡으려고 헐떡이는 상황이었다.
“안 돼, 이 녀석!”
다급히 달려온 인서가 놓쳤던 허스키의 목줄을 잡았다.
간신히 남자에게서 떼어냈지만 어깨 위의 고양이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남자는 인서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얼른 이 털뭉치를 내게서 떼어놔! 라는 무시무시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인서는 개들의 목줄을 근처 가로수에 고정시킨 후 남자의 어깨에 매달린 고양이를 안아 내렸다.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인서의 목을 끌어안고 가슴에 폭 안겼다.
“으악! 손등에! 손등에 상처가!!”
아마 고양이가 몸을 타고 오를 때 손등이 발톱에 살짝 긁힌 모양이었다.
붉은 색 줄이 하얀 손등에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피도 안 나고 잘 보이지도 않는 그런 상처 때문에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유별나게 구는 남자가 인서는 어처구니없었다.
“감히 내 손등에 상처를 내다니! 이 손이 얼마나 소중한...”
“저기요..”
또 다시 어이없는 말들을 늘어놓을까봐 인서는 그의 말을 도중에 잘라버렸다.
“이 동네 사세요?”
“뭐?...”
“저희 가게 위치 아세요?”
“대충은...”
“그럼 1시간 뒤에 고양이 데리러 오세요. 이 아이 보니까 목욕한지도 너무 오래됐고 털도 엄청 엉켜 있어요. 얘도 많이 놀란 것 같으니 안정도 시키고 단장도 해 놓을 테니 그때 데리러 오세요.”
“아... 그렇게 하지. 비용은 미리 지불하는 걸로...”
“됐습니다. 저희 개 때문에 놀랬을 테니 그냥 해드릴게요. 대신 버리고 갈 생각은 하지 마세요. 꼭 찾으러 오셔야 해요.”
“맘대로 버릴 순 없어. 내께 아니거든. 난 그런 요상하게 생긴 생물체 따위 키우지 않아”
“...아무튼 꼭 오세요.”
인서는 고양이를 안은 채 개 두 마리를 데리고 공원을 나와 가게로 향했다.
“웬 고양이야? 설마 유기묘??”
가게로 들어서자 희주가 놀란 얼굴로 다가와 고양이를 받아든다.
“아니야. 잠깐 맡은 거야. 1시간 뒤에 찾으러 올 거야.”
“아아, 다행이다. 그런데.. 훗.. 너 엄청 귀엽게 생겼구나.”
유난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희주는 얼굴이 납작쿵인 이 녀석이 마냥 귀여운 모양이었다.
“털 관리가 완전 꽝이네. 네 주인은 꽤 게으른 사람인가 보다.”
“뭐.. 엄청 괴팍하고 이상한 사람인 거 같긴 했어. 다행히 주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고양이를 목욕시킬 준비를 하며 인서는 조금 전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겉모습만큼은 여느 패션모델처럼 근사했다.
하얀 셔츠와 검은색 코트의 강한 대비 만큼이나 흰 피부에 검은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이었다.
“어쩌다 그런 몰상식한 사람에게 맡겨졌니?”
따뜻한 물에 고양이를 씻기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고양이의 목에는 주인이 있음을 알리는 팬던트가 걸려 있었다.
고양이의 이름은 ‘지나’였다.
참... 외모와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었다.
목욕이 끝난 후 털을 잘 빗겨주고 발톱손질까지 해 주었다.
부드럽고 풍성한 털로 돌아온 ‘지나’는 좀 전에 길바닥에 퍼져있던 그 고양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귀족다운 고고한 모습이었다.
혹시나 그 남자가 안 오면 어쩌나 잠시 걱정했지만 정확히 1시간 후 남자는 애견샵에 나타났다.
다행히 손에 이동장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아까 살짝 긁혔다던 손등에 하얀 붕대를 감고 나타난 것이다.
늘 고양이와 강아지에 둘러싸여 손에 상처 나는 게 일인 인서로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런 상처로 야단법석을 떠는 이 남자가 정말 이상할 뿐이다.
“흥. 그래봤자 못생긴 건 똑같군.”
남자는 한껏 치장한 지나를 보고도 밉살맞은 소리를 했다.
“집에서 관리하기 어려우시면 가끔 여기 맡겨주세요. 페르시안종은 무엇보다 털 관리가 중요해요. 방치하면 엉키고 빠져서 고양이는 물론 사람에게도 안 좋아요.”
“알게 뭐야. 주인이 돌아오면 당장 줘버릴 텐데.”
“주인분은 여행이라도 가셨나요?”
“그래. 이런 지저분한 털뭉치를 내게 맡기고 해외로 날라버렸지. 정말 어이없는 여자야. 돌아오기만 해봐. 당장 헤어져 버릴 테니.”
그의 말투로 보아 고양이의 주인은 여자이고, 그의 애인인 듯 했다.
잠시라지만 이런 남자에게 맡겨진 지나가 불쌍해졌다.
이런 사람의 집에서 방치되어 있느니 차라리 여기 가게에 맡기는 게 고양이에게 훨씬 좋을 것이다.
“저희 애견호텔도 운영해요. 돌보기 힘들면 저에게 맡기는 게 어떠세요? 주인분이 돌아올 때 까지 잘 데리고 있겠습니다.”
“됐어. 내 집에 맡긴 걸 다른 데 둘 순 없지.”
차갑고 제멋대로인 남자여도 묘하게 책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긴.. 마냥 방치해뒀다면 기꺼이 고양이를 데리고 산책까지 나오진 않았겠지.
무정하긴 해도 나름 신경은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지나’는 이동장에 넣어 드릴게요.”
“지나?”
“...고양이.. 이름이잖아요.”
“아아...”
떨떠름한 그 표정으로 보아 여태껏 팬던트에 적힌 이름조차 몰랐던 게 분명하다.
좀 전에 그래도 신경은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나 보다.
지나가 들어간 이동장을 건네며 인서는 남자에게 애견샵 명함을 주었다.
“미용이나 목욕서비스는 출장으로도 해요. 혹시 필요하시면 전화 주세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단 심드렁한 표정으로 명함을 받아든 남자가 이동장을 들고 가게를 나갔다.
“와아.. 엄청 멋진 남자잖아.”
희주가 다가와 감탄하며 말했다.
“생긴 것만 보고 판단하지 마. 얘기하는 거 봤잖아. 동물에 대한 애정이 눈곱만큼도 없어. 게다가 예의도 없고.”
“음~ 그래도 생긴 것만큼은 완전 내 스타일. 근사해!”
“아아.. 여자들이란.”
연예인을 만난 소녀처럼 들떠 보이는 누나를 보며 인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강아지들도 고양이들도 깊이 잠든 한밤중.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고요하던 가게 안을 뒤흔든 건 새벽 2시가 지날 무렵이었다.
한참 잠에 빠져있던 인서는 가게에서 들려오는 전화벨에 뒤섞여 시끄럽게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에 눈을 떴다.
때 아닌 전화벨에 무슨 일인가 싶어 급히 가게로 나온 인서는 불을 켜고 일단 강아지들을 진정시킨 뒤 끈질기게 울려대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
요..를 다 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으려나 봐!!]
“네? 여보세요?”
[고..고..고양이가!! 고양이가 죽는다고!!]
“누구...!!”
순간 수화기 속 목소리가 묘하게 낯익게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낮에 만났던 남자가 떠올랐다.
“무슨 일인지 침착하게 말씀해 보세요!”
[나도 몰라! 갑자기 숨을 못 쉬고 컥컥대고 있어! 그러다 이상한 걸 마구 쏟아 내고 있다고!! 죽을 거야!]
“토한다고요?”
[얼른 와 줘! 얼른!!]
“네??”
[빨리!! 저러다 죽겠어!!]
“집이 어딘데요?”
낮에 보았던 ‘지나’가 죽는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해진 인서는 다급히 주소를 물었다.
당장 데리고 병원에 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낮에 고양이를 대하던 태도로 보아 남자는 지금 고양이에겐 손도 못 대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게 뻔했다.
자신이 직접 달려가 병원으로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메모지에 급히 주소를 받아 적은 인서는 겉옷을 입고 밖으로 달려 나왔다.
다행히 그의 집은 가게에서 멀지 않은 주택가였다.
고급스런 단독주택이 늘어선 길에서 번지수를 확인하며 불러준 주소의 집을 찾았다.
벨을 누르자 대문이 열렸다.
긴 정원을 달려 현관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고 파자마 차림의 남자가 뛰어 나왔다.
“이미 죽은 거 같아!!”
“비켜 봐요!”
얼굴이 파래져서 두 손을 벌벌 떠는 남자를 밀치고 집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현관을 지나 긴 복도를 거치자 마치 홀처럼 넓은 거실이 갑자기 펼쳐져 인서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좋은 집들이 몰려있는 동네란 건 알고 있었지만 집안까지 들어와 본 경험이 없어 내부가 이렇게 넓고 호화롭게 되어 있는 줄 몰랐다.
그 넓은 거실 한 복판에 뭔지 모를 정체불명의 토사물이 몇 군데 흩어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지나를 찾았다.
소파 옆 잠자리로 마련된 보드라운 담요 위에서 축 늘어진 고양이가 보인다.
인서는 즉시 지나에게 다가갔다.
엎드려 여기저기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낮지만 편안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잠든 모습이었다.
손으로 안아들고 다시 천천히 몸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는 자는데 귀찮게 구는 게 싫은 지 도로 내려놓으라는 듯 야옹거린다.
“어? 아직 죽진 않았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자는 고양이를 흘끔거리며 얼빠진 말을 했다.
일단 지나가 무사한 걸 확인한 인서는 고양이를 다시 담요에 내려놓은 뒤 흩어져있는 토사물을 살폈다.
혹시나... 라고 생각했던 일이 역시나...로 드러났다.
토사물은 채 소화가 덜 된 사료덩어리와, 잔뜩 뭉쳐진 털들이었다.
고양이과 동물들은 자신의 혀로 털을 핥아 단장하는 습성이 있다.
그때 빠진 털을 먹게 되는데 뱃속에서 이 털들이 동그랗게 뭉쳐있는 걸 헤어볼이라고 한다.
이 헤어볼을 동물들은 어느 정도 크기가 되면 토하는 형태로 몸 밖으로 배출한다.
이런 습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갑자기 고양이가 토하는 걸 보고 놀라기도 한다.
이 남자도 아마 털을 토해내려 심하게 컥컥대는 고양이를 보고 어디가 아프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멀쩡히 자고 있는 고양이를 죽었다고 난리를 치다니.... 정말 어이없고 귀찮은 남자였다.
“아... 그럼 죽는 건 아니지?”
“네. 아까 설명했듯이 그냥 헤어볼을 토해낸 것뿐이에요. 요즘엔 뱃속 헤어볼을 제거하는 영양제도 있으니까 필요하면 나중에 가게로 오세요.”
“하지만 먹은 것도 다 토했단 말야! 저걸 봐!”
“고양이들은 음식을 씹지 않고 그냥 대충 부숴서 삼켜요. 그러다 보니 고양이 성격에 따라 거친 사료를 급히 삼키다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고스란히 토할 때가 있어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혹시 너무 자주 토한다면 병원에 데려가 보는 게 좋아요.”
“....일단 토하는 걸 본 건 오늘이 처음이야.”
“그럼 당분간 지켜보죠. 지금은 잘 자고 있는 걸로 보아 딱히 아픈 거 같진 않아요.”
“하아.. 미치겠군. 자다가 사람 식겁하게 만들어 놓고 지는 지금 편하게 자고 있다고?! 고양이 시체까지 치워야 하나 완전 돌아버리는 줄 알았잖아!”
진짜 자다 깼는지 아까 단정했던 그의 머리카락이 지금은 잔뜩 까치집을 짓고 있었다.
피곤한 듯 한껏 찌푸린 얼굴로 뻗친 머리를 벅벅 긁는다.
“제기랄. 고양이란 것들은 다 저 모양이야? 도대체 저런 걸 왜 기르는지 모르겠군!”
“저...그런데....”
“뭐?”
“그런데.. 왜 반말이세요?”
“엥?”
“아까 처음 볼 때부터 계속... 아무리 봐도 저보다 연상으로는 안 보이는데요? 설사 그렇다 해도 초면에 그렇게 함부로 말을 하면...”
“난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한국말이 서툴러. 존댓말은 너무 어려워서 말야.”
그렇게 핑계를 대는 남자의 한국어 실력은 전혀 서툴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누가 들어도 제멋대로인 변명일 뿐이었다.
이 남자는 그냥 예의가 없는 것이다.
“뭐.. 오늘은 이래저래 신세를 졌군. 출장비용은 지불하지.”
지갑을 가지러 가는 남자의 등에 대고 인서가 말했다.
“됐어요.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출장비까지 받긴 좀 그러네요.”
“한 일은 없지만 할 일은 있지”
“네?”
“저거. 치워줘. 더러워서 못 보겠어.”
남자는 고양이가 토해놓은 것을 가리키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청소비까지 더해 넉넉하게 지불할게.”
하아... 인서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세요.”
그리고는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마쯤이면 돼?”
당연히 돈을 말하는 줄 알고 남자가 물었다.
“명함.”
“뭐?”
“아까 낮에 내가 줬던 명함 돌려달라고요. 그거 보고 전화한 거죠?”
“응”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맡겨진 고양이가 불쌍하네요.”
인서는 어이없단 듯 혀를 찬 후 돌아섰다.
“이봐! 어디 가!”
등 뒤로 당황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인서는 무시하고 그대로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서른이 될 때 까지 나름 직장생활도 해 왔고 대학땐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많은 사회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런데 저 남자처럼 제멋대로인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남에게 부탁하는 태도는 무례하기 짝이 없고 완고할 만큼 상대를 내려다보며 명령하기 일수다.
지금까지는 고양이를 생각해 이것저것 해 주었지만 앞으론 절대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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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몇 달 만에 다시 인사드리게 됐어요.
좀 평범한 얘기라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확.. 용기내어 올려봅니다.
편안하게 읽어주세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3.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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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애완동물을 맡겨도 뭘좀 아는 사람들한테 맞겼으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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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2화 보러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