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소설 탐구
유월 마지막 날은 일요일이다. 제주도 바깥으로 일시 밀려났던 장마 전선이 되살아나 강수가 예상되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우리 지역은 비가 내려 간밤에서 새벽까지 이어졌다. 낮에도 비는 계속 내릴 듯해 자연학교로 나가는 야외 현장 학습 대신 실내 수업으로 전환해 시간을 보낼 요량이다. 아침 식후 원이대로로 나가 북면 감계로 가는 17번 버스를 타고 최윤덕 도서관을 찾았다.
지난주 주말은 이른 아침 북면 조롱산 산행 후 그곳 도서관에서 종일 지냈다. 작년 가을에 읽었던 한 작가의 데뷔작에서 감명받아 다시 읽었다. 경제학을 공부해 유수의 기업에서 최고 경영자를 지냈던 이가 은퇴 후 남긴 역사소설이었다. 작가는 마산 출신으로 그 지역 초중고를 나와 서울에서 대학을 마쳐 직장 생활을 보낸 하기주로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내보다 스무 살 연상이었다.
이번에는 그 소설집을 세 번째 펼쳐 몇 가지 영역에서 주요 내용을 메모하면서 읽어나갔다. 조선 왕조가 기울면서 접어든 일제 강점기 양반 가문 강씨 집안에서 대를 이으려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선대가 밀양에 살다 개항지 마산으로 이주한 강운재는 3•1운동으로 희생되고 그의 적자 세준, 우준, 삼준과 서자 성준의 자손들에 의해 증손 ‘주인(洲仁)’이 극적으로 태어난다.
작가가 펴낸 첫 소설이면서도 치밀한 복선 구성이 돋보였다. 과거 회귀로 언급된 신작로 개설로 옮긴 산소가 역장(逆葬)이었다. 장손 ‘장오’가 치른 혼례식에서 주당살과, 칠보 비녀가 칼날처럼 시퍼런 날빛으로 보였다던가, 종부 남지댁이 조부 강운재 첫 제삿날 아헌으로 큰절을 올릴 때 엉덩방아를 찧는 장면에서 독자는 가계를 이어갈 세손은 차자 ‘청수’에게로 넘어감을 예감했다.
나라 밖까지 공간을 넓혀갔지만 마산을 주 무대로 근교 지명들이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강씨 본관은 진양이고 세준의 처는 동래댁으로 불렸다. 둘째 우준은 안성에 소를 키웠고, 셋째 삼준은 내서에 살았다. 종부는 남지에서 시집을 와 남지댁으로 불리었다. 군북이나 의령도 나왔고 조금 멀게는 산청도 언급되었다. 뱃사람 신태산이 나오는 거제도 장승포나 장목은 진해만 건너였다.
나이가 여든을 넘겼을 향토 출신 작가는 우리 지역 사투리를 정감있게 구사했다. 입말을 글말로 표기하기는 쉽지 않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경상 방언 중에서도 특히 경남 마산 해안을 중심으로 나이 지긋한 이들이 쓰는 토박이말을 살갑게 구사했다. 일상 대화에서 자연스러운 입말을 사어가 아닌 문자 표기로 드러내 언어 문화사적 보존 자료로서 가치가 충분했다.
작가는 전통 혼례나 상례나 제례 어휘에도 밝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되살려 썼다. 남성의 한계가 있음에도 박경리 ‘토지’나 최명희 ‘혼불’과도 비교해 뒤지지 않을 양반가나 서민의 내방 모습도 잘 그려냈다. 술집 행림옥에서는 당시 기방 문화 일부도 드러냈다. 소싸움이나 별신제를 비롯한 당시 민속놀이와 나물죽과 송기떡으로 연명했던 궁핍 시대가 사실감 있게 그려졌다.
독자에게 성애 묘사도 놓칠 수 없었다. 동경 유학생 장손 장오가 일시 귀국해 치른 혼례식 첫날밤 화촉 동방만이 합법성을 인정받을 거사였다. 나흘째 표류하던 뱃머리에서 신태산과 비구니 정원이 결합해 딸 자흔을 낳았고, 세준의 둘째 아들 청수는 군수 물자를 실은 기차를 폭파하고 만주로 탈출하기 직전 새벽 대밭에서 그 딸이 자란 자흔과 살을 섞어 뜻밖에 대를 잇게 되었다.
이 밖에도 개항 초기 마산 창신학원을 거쳐 간 김원봉과 주변 인물들의 연해주와 만주까지 넓혀간 독립운동,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과 고문, 멸치잡이 신태산 주변 어촌 사람들, 조선과 일본 청춘남녀가 이루지 못한 사랑, 천민 백정의 신분 해방, 정신대로 끌려다가 탈출한 북면댁의 신산한 삶, 지역 어른으로 존경받는 제생당 박학추 인품 등은 흑백 필름처럼 간직할 장면이다. 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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