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야한 여자’이다.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이 ‘야하다’라는 말인데, 처음에는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게 정말이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야하다’는 말을 ‘최고로 아름답다’라는 뜻으로 쓰기 때문이다.
아직은 ‘야하다’라는 말을 ‘천박하다’, ‘야박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야하다’를 ‘깊은 맛이 없이 천하게 아리땁다’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야하다’의 어원을 나는 ‘野하다’로 보아 ‘본능에 솔직하다’, ‘천진난만하게 아름답다’, ‘동물처럼 순수하다’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대표적 에세이 가운데 “야인정신(野人情神)이란 글이 있는데, 그 글에서 함 선생은 야인(野人)을 문명인(文明人)과 대비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문명인이 이기적 명예욕과 윤리적 허위의식으로 가득차서 윤리적 명분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야인은 스스로 본성에 충실한 자연아(自然兒)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문명인의 대표적 인물로 공자를 들고 야인의 대표적 인물로 장자를 들고 있다.
함선생의 글에는 물론 ‘야한 여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남자건 여자건 야한 정신을 가진 사람을 우선 ‘야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싶다.
그래서 ‘야한 여자’의 첫째 가는 조건은 우선 ‘야한 마음’이다. 흔히들 야한 여자로 ‘화장을 많이 한 여자’, ‘화려하고 선정적인 옷차림을 한 여자’로 보고 있는데, 그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겉으로만 야한 여자’를 가르키고 있기 때문에 불충분한 설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마음이 야하면 겉도 야해진다. 그러나 ‘진짜 야한 여자’가 되려면 겉과 속이 다 야해야될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이 ‘겉만 야한 여자’를 보고 진짜 ‘야한 여자’로 속기 쉽다. 마음이 야하다는 것은 본능에 솔직하다는 뜻이다. 정신주의자가 아니라 육체주의자란 뜻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본능은 동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즉 식욕과 성욕이 우리가 살아가는 원초적 이유이고 우리의 실존 그 자체가 된다. 그 가운데 나는 성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랑에 대한 욕구 없이는 식욕조차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드은 모두 자웅교배의 결과요, 사랑의 부산물이다. 그리고 ‘사랑’은 성적 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야한 마음을 가진 여자는 성적 욕구에 솔직한 여자이고, 성적 욕구에 솔직하다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에도 솔직해진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고, 이성의 눈에 쉽게 띄고 싶고, 이성에게 섹스 어필하고 싶은 욕구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고상한 아름다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섹시하나 그렇지 못하나로 결정될 뿐이다.
그래서 ‘야한 여자’는 섹시한 여자이고 스스로 섹시하게 꾸미는데 당당한 여자다. 남이 뭐라든 화려하게 몸치장을 하고 선정적인 이미지로 자기 자신을 가꿔나가는 여자다. 예컨대 손톱을 길게 기른 여자는 ‘야한 여자’다. 그러나 손톱에는 분홍색 같은 ‘고운’ 빛깔의 매니큐어가 검은색이나 파란색 같은 ‘섬뜩한’ 느낌을 주어 관능적 열정을 유발하는 빛깔의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어야 한다.
송곳같은 뽀족한 구두를 신은 여자는 야한 여자이다.
화장을 그로테스크하ㅔ 한 여자는 야한 여자이다.
그리고 사랑에 용감한 여자 또한 여한 여자이다.
(1989. 1)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마광수. 철학과 현실사. 2007. 77-79페이지 수록-
**마광수에 대한 변명-이동민
나는 마광수론을 쓴 일이 있다. 마광수 문학에 관한 글이 아니고(나는 그런 글을 쓸 잽이가 안 된다.) 내가 임진수 교수에게 공부한 심층심리 이론으로 ‘마광수 론’을 썼다.
이 글을 읽은 마광수가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라는 자필 서명을 한 책을 보내면서, ‘내가 자기를 가장 정확히 보았다고 했다. (위의 사진)
이후에 내가 유명 문인과 인문학 교수님을 모시고 문학 세미나를 하면서 초청한다는 전화를 한 일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가 몸이 불편하여 병원을 여섯 곳이나 다닌다면서 거절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세상을 하직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1980년 대에 현대문학을 통해서 마광수의 글을 처음 만났다. 그때의 수필이 거의가 서정 일변도였는데, 마광수 선생의 수필은 상당히 지적이어서, 그후로 마광수의 글이 보이면 거의 읽었다. 그리고 펜이 되었다.
’즐거운 사라‘를 쓰고 곤욕을 치룬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안다. 그때 대중에게 알려진 마광수는 변태적 성욕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그 자신은 성으로 사회문제를 일으킨 일은 없다.(그에게 흠집을 남긴 것은 제자의 글을 무단 사용하였다 하여 고소 당한 일이다.)
마광수는 말했다. 한국 문학이 너무 엄숙주의, 경건주의로 흘러가는 데 대한 저항이었다는 것이다.(그 말을 우리 수필에 인용하면 경건주의를 넘어서서 도덕 교과서 같은 글만 보인다.) 나는 그 말에 깊이 수긍한다. 그가 재판을 받을 때 연세대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마광수가 옳다‘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발간했다.
위의 사진은 나의 ’마광수 론‘을 읽었다면서 답레로 서명을 하여 보내준 책이다.
’즐거운 사라‘가 100만 부 이상이나 팔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겨우 2000부만 팔렸다고 하니, 세상은 이제 그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만큼 세상이 변하고 바뀌었다. 겨우 10여 년 만에------. 그런데도 우리는 50년 전, 100년 전의 수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왜 100년 전 수필을, 고답적인 수필을 쓰고, 또 쓰고 할까. 내 생각으로는 수필가들이 인문학적 소양이 좁기 때문이 아닐까. 문학 장르 중에 수필이 인문학적 지식을 가장 많이 요구한다고 생각한다(에세이 장르를 포함하면 철학적 수준의 글이다). 그런 만큼, 나는 수필을 쓴다고 말 하려면 인문학 공부를 다른 장르의 문인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문학 세미나도 했고, 수필 집담회도 했고, 지금은 ’문학 사랑방‘이라는 인문학 공부방을 운영한다. 안타깝게도 공부하러 나오는(서로 지식을 나누자는 취지 ) 사람들은 수필인보다는 비수필인이 더 많다.
우리 수필가님도 참여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공부를 원하시면 연락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