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를 다니다 보면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았는데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어찌나 신비롭던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멍한 채 바라보는 곳들이 많이 있다. 낙동강의 큰 흐름과 내성천과 금천이 합쳐지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의성포義城浦가 그러한 곳 중의 한 곳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느닷없이 커브를 돌면서 거의 제자리로 돌아오는 물도리동으로 이름난 곳은 안동의 하회마을과 조선 중기의 정치가인 정여립鄭汝立이 기축옥사로 인해 의문사한 전북 진안의 죽도와 무주의 앞섬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아름다음으로 천하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의 회룡포 물도리동이다. 본래 용궁군 구읍면의 지역으로 조선 시대 유곡 도찰방에 딸린 대은 역이 있었으므로 대은 역, 또는 역촌, 역골이라 부르던 대은리에서 내성천을 건너 장안사에 이른다.
고려 때의 문인인 이규보는 그가 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고율시(古律詩)에 이곳 용궁현에 와서 원님이 베푸는 잔치가 끝난 뒤에 <십구일에 장안사에 묵으면서 짓다>라는 시 한편을 남겼다.
산에 이르니 진금(塵襟)을 씻을 수가 없구나.
하물며 고명한 중 지도림(진 나라 때의 고승으로 자는 도림)을 만났음에랴
긴 칼 차고 멀리 떠도니 외로운 나그네 생각이요
한 잔 술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
맑게 갠 집 북쪽에는 시내에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지는 성 서쪽에는 대나무에 안개가 깊구려
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잠만 즐기며
옛동산의 소나무와 국화를 꿈속에서 찾네
장안사의 뒷길로 300미터쯤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회룡포 물도리동은 자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로운가를 깨닫게 해준다.
의성포는 회룡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내성천이 감돌아 섬처럼 되어서 조선 시대에 귀양지로 되었는데, 고종 때 의성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의성포라고 하였다고도 하고, 1975년 큰 홍수가 났을 때 의성에서 소금을 실은 배가 이곳에 왔으므로 의성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육지 속에 고립된 섬처럼 그렇게 떠 있는 의성포의 물도리동은 정감록의 비결서에 십승지지(十勝之地)로 손꼽혔고 비록 오지이지만 땅이 기름지고 인심이 순후해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신당에서 회룡으로 건너는 시무나드리(나루)에서 의성포를 들어갈라치면 새하얀 모래밭위에 길게 드리운 철판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공사장 철판을 연결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임시 다리이다. 그러나 발 아랫자락을 흐르는 내성천의 소리 죽인 노랫소리를 들으며 낭창 낭창 휘어지는 철판을 걸어가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이 재미가 있는데 걸어가는 것 말고도 이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은 바퀴가 모래밭에 빠지면서도 건널 수 있는 4륜구동 경운기이다. 경운기에 생필품과 농기구 및 비료 등을 운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