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장관은 일본인인가?
-선군정치에 코드맞춤을 목적으로 한 대한민국 수술시키기 프로젝트인 코드명 "칼의 노래"에 대해서-
[사기는 심리극이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알면 게임 끝이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구로동 샤론스톤의 대사-
1. 반공주의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이용가치가 높은 바보가 되지 않는다는 편견을 버려.
최병렬 대표가 작년 10월달에 재신임 술수에 덜컥 물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때 많은 이들은 최병렬대표가 못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가? 오히려,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하고 싶다. 반공주의 지도자들조차도 공산주의자들에 이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확고한 가정은 어렵다는 것이 사실적이란 것이다.
강금실 장관은 일본인인가? 나는 그 혈통을 계보학적으로 따져서,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탄핵 이후에 언론에서 "코드명 칼의 노래"라는 단어가 흘러나왔고, 오늘 지하철 가에서 강금실 장관 소개 이야기로 개혁에 칼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사무라이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보면서 하는 질문이다. 강금실 장관을 둘러싼 언론 이미지 메이킹을 둘러싸고, 그것을 해부하는 역설적인 질문을 던지고 파헤쳐가는 것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 이미지메이킹은 코드명 칼의 노래를 확장 시키려고 폼을 잡는 시초이다. 이것을 볼 때,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좌파들은 정통 공산주의 어법을 쓰면서도, 몇 개의 결정적인 단어를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단어를 쓰는 것으로 자유민주주의자인양 위장했다. 이러한 엉뚱한 단어 해독법은 영화 [황산벌]에서 "거시기"해독법에서 해독관의 방식에서 알 수 있다. 나는 전라도 사투리의 "거시기"의 원초적인 의미를 "pennis"로 단정한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거시기"가 남자의 성기에서 시작해서 갖가지 여러 가지 물건으로 변형되어 쓰였다고 바라본다. 자세하게 말할 수 없으나, 끼리 끼리 말안해도 알 수 있는 그저 그러한 것 수준에서 단어는 상황에 따라서 자유 자재로 교체되어온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거시기"표현법이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의 욕망으로 뒤바뀌는 것은 불가능할 것인가? 아니다. 철저하게 가능하다.
"거시기"가 비 호남 사람들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끼리는, 내가 뭐 그런 소리 했능가 하고 따지는 방패막이가 되면서, 끼리 끼리에서는 온갖 음담패설도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듯이, 공산주의자들의 소통법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거시기"는 롤랑바르트가 말했던 [현대의 신화]에서 나온 코드 분석법으로 해석해야 한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말의 쓰임새 상의 의미변화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면모를 추적해야 한다. 그래서, 그 쓰임새가 차지하는 정확한 맥락을 바탕으로 끼워넣고 하나씩 언어의 심층을 파헤쳐야 한다.
코드명 [칼의 노래]란 것은 김훈의 소설집 [칼의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이 소설집은 동인문학상은 좋아할 수 있어도, 나는 이 소설집을 불만스럽게 본다. 이 소설집은 조선조의 주자학바탕의 역사관에서 이순신에서, 사무라이 무사혼에 가깝게 그려진 이순신으로 바뀌어져 있다. KBS가 김훈의 원작과 김탁환의 원작을 동시에 끼워서 이순신의 일생을 방송할 예정이라 한다. 김탁환의 원작은 읽지 않았으나, 조선조 사료에 충실해 있다면 방송은 결정적인 측면에서 김훈을 따라갈 듯 싶다. 반공주의 지도자들은 이순신 참 맛깔나게 그렸네 하고 반론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반론을 던지고 싶다. 최병렬 전 대표가 작년 10월에 재신임정국을 둘러싼 술수에 덜컥 말려든게, 얼마든지 정치 9단에서도 가능한 패배의 수라고 할 때, 반공주의 지도자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이용가치 높은 바보가 안된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말이다.
(나도 솔직히 말해서, 이용가치가 높은 바보였었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고, 판정되지 않은 영역에서도 더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령 그렇다. 학생운동권들에 상처 입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소중함을 인정하면서, 조선일보에 자주 기고된 김윤식교수가 자주 인용했던 루카치의 저작 번역서를 보고서에 인용하는 것은, 분명히 이용가치가 높은 바보짓이었다. "역자 김태경" 이러한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적었으니까. 나는 알게 된 이후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과거의 어리석음을 넘어서고 싶다.)
2.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비슷한 사유구조에 꼬리와 대가리가 교체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복합 불황이 되건 말건 국가적 자살이 되건 말건, 국민이 제 정신을 차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지도자의 흔들림없는 존재를 종교적으로 떠받치는 어법을, 좌파들에게서 "독재"라고 바라보라고 지겹게 교육받은 나는 좌파들의 최근의 모습에 그들이 과거에 판단한 대로, 있는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그런데, 어쨌거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둘러싼 상황을, 사회주의 경제 비슷하게 국민들 몰래 고치는 어법에서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 어법에서 개혁의 중요성이 자주 사용되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개혁 어법이 그게 절대로 아니었고, 그것은 대한민국을 거의 수술시킨 것이라고 우파들이 설득력있게 홍보한 것 같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적 개혁 어법을 둘러싸고 수술시키는 어법에서 "바보 배역"은 자본가들과 [조선일보]의 무분별한 좌익 사상 홍보에 중심을 잃은 대중들이었다. 이제, 좌파들은 칼의 노래 프로젝트로 우파 반공주의 지도자를 대한민국 수술시키기 프로젝트에 이용가치가 높은 바보로 설정한 것 같다. 우파 반공주의 지도자들이 대중심리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극단적 자기 중심주의를 가져도 원로 세력으로 반론이 사실상 없어온 점에 집착된 다면, 수술계획은 성공적으로 완료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파는 대학가에서 인문학이 퍼지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주의적 휴머니즘은 문약으로 배척되길 바란다. 그러느니, 차라리 좌익 사상이 대학가에 퍼지는 것을 눈감아준다. 기성세대 우파는 박정희 대통령을 둘러싼 면모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막고 긍정적인 평가가 더 퍼지길 바란다. 결과적으로, 젊은 우파 청년우파 라고 서로 서로 높이며, 소수의 30대 40대를 마당쇠로 삼아서, 50대 이상끼리 서로끼리만 통하는 옛날 경험을 아랫세대도 무조건 자연히 알 것으로 생각한다. -디지탈 정치 시대의 정보 폭주 차원에서의 사고방식을 모른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아는 바탕이 보이면, 우파들의 디지털 정치 주장을 믿어줄 텐데,.....- 그렇다면, 반공주의 지도자들은 좌파들에 이용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무리 띄워줘 봤자 스스로가 대중화 어법을 가로 막고, 대중화 방식에 관심도 없으니, 우파들을 일정한 수위로 인정해주면서 그 에너지를 좌파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좌파들의 개혁 타령이 아무리 감성정치에 가벼운 허구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하는 우파들은 진실로 젊은 세대를 가슴으로 느끼며 깊이 존중하는 연구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유교적이며 권위적이지 않다는 아랫세대들의 아부 발언을 사실로 믿으면서, 울트라 캡숑 짱 권위주의 유교적 잣대를 유지하면서 으레 기성세대들의 가치는 사회 전반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파들이 인간을 연구하지 않음을 문약타령을 벗어난 상무정신으로 생각하듯이, 좌파들도 원래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지 않음을 부르주아 타령을 벗어난 혁명 사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반공주의 지도자들이 좌파들에 이용가치 높은 바보로 당첨 되는 게 불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젊은 세대는 자동적으로 예의구조로 따라오길 기대하는 기성세대 우파는 좌파에 대접받고, 좌파가 우파의 무의식의 그것을 끄집어 내줬다고 흐뭇해 하는 동안에, 기성세대 우파는 대중화 바탕을 지속적으로 포기해서 젊은 세대에 꾸준히 고립되고, 좌파들의 북한의 정치식의 바탕에서 살아가게 하는 길들이기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한다. 물론, 이 과정은 "거시기"어법처럼, 반대논거가 있을 때에 "매카시즘" "색깔론" "마녀사냥"등 갖가지 감성적 어법으로 끼리끼리 사이의 비밀이 들통 날 때 끝까지 숨길 수 있다.
기성세대 우파는 지식정보 시대에 대학가에 우파 인문사회학의 씨가 말라서, 모두가 잊어버린 것을 아무런 사다리도 도움도 없이 갑자기 딱 하니 알아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깝게 다가온 것은 우파 정치에서 일본에 영향 받은 부분과, 한반도 최고의 일제 잔재인 북한권력 집단의 공통성 논리를 통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의 심리적 마멸과, 북한에 코드 맞춤 현상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 때에 조선조의 영웅으로 많이 국학 차원에서 연구된 대상이다. 그 연구에서 이순신 장군의 애국주의에서 유교적 명분주의를 지워 버리며, 무사정신을 극대화하게 된다면, 결국 "선군정치"이념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으며 선군정치 논리로 국민을 물들게 하는 어법인 셈이다. 반공주의자들의 기대와 달리 송두율의 저작에서 김일성 어록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조선일보를 가득 메웠던 김윤식교수의 북한 문학연구에서도 김일성 어록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럼으로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목표를 100% 이상 달성해왔다.
3. 대학가에서 헌법에 보장된 기성세대의 과거를 연구하게 하는 권리를 보장하게 하거나, 반공주의지도자가 공산주의자들에 이용당하므로 우파가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거나.
우파는 文을 숨기지를 못한다. 따라서, 다 드러나는 인터넷 공간의 낙서글 수준은 "팬 옵티콘"수준의 원형 감옥일 뿐이다. 이것을 전망이라고 보는 것은 우파정치가 좌파에 이용당해야만 한다는 투철한 신념이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5공과 6공을 단절한다고 하면서, 특정 정치인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사실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단절한다고 하면서 대학가에 매스미디어에 쉽게 세뇌되지 않는 젊은층을 만들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어야 정상이다. 우파 정치가 그러할 수 있을 때, 한반도 내에 남은 최고의 일제 잔재인 북한공산집단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러할 때만이 우리의 현재 경제 상태를 흔들고 있는 주범인 "일본혼"에 빠진 정치인들의 문제를 판단할 수 있다.
친일정신에서 한발 더나가면, 아예 일본사람이 되는 것이다. 칼의 노래 프로젝트에 홍보대사로 나온 강금실 장관에 대해서, 우파는 강금실장관은 일본인인가 하는 문제인식으로 반론을 해야 적절하다.
우파가 "개혁"의 극치로 생각하는 것은 "오다노부나가"이다. 오다노부나가식의 확 쓸어담는 무사혼이다. 도대체, 우파 반공주의 지도자 일부는 상무정신의 바탕으로 오다노부나가식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정치인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진지하게 이러한 사고에서 이탈하며, 칼의 노래 프로젝트라는 이데올로기 전쟁에 맞서야 할 것이다. 우파가 생사여탈권을 쥐는 전제군주적인 무사 오다노부나가를 옹호하는 식의 가치관을 가지면 가질수록, 좌파들의 우파들을 겁주며 하는 독재 정치는 힘을 받을 것이다.
역사가 어떻게 돌고 돌아서 우파에게 아주 강대한 힘이 있을 때가 생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현재와 더불어 상당기간 우파는 힘의 약세를 겪을 것이 선명하지 않은가?
우파는 이데올로기 단절 프로젝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으로 홍보를 강하게 하면서, 새로운 시놉시스에 새로운 영화배우(?)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정말 새로워 졌다고 인정할 것이다.
우파가 우파의 기억을 젊은 세대들에 아주 많은 정보로 연구되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한, 좌파의 칼의 노래 프로젝트는 성공할 것이다.
[대학가에 헌법에 보장된 학문의 자유를 통해서 우파 기성세대 연구를 젊은 세대가 하여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지지하게 하지 않고, 언제까지 우파 기성세대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만족할 것인가. 우파 기성세대 반공주의 지도자들만 좌파들의 술수 정치에 안 당한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우파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은 다 나왔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다 보였다. 그것으로 지식 사기꾼들에겐 "게임 끝"이란 판정이 가능할 것이다.---이 자체에도 근본적 반성은커녕, 상대에 "허위의식"이란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게 될 것인가?]
첫댓글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 돼요.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금실이 ,이름만 들어도 짜증 나요. 빚때문에 이혼 했으면 좀 검소 해야지 지가 무슨 모델 이라고...생긴것 박근혜와 비교 하면 게임도 않되는게.
생긴것 부터 밥맛 떨어져요...금실이..이름도 촌스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