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좀 길긴 하지만,,(^^;;), 그래도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실겁니다..
특히 시리즈 별칭이 멋있데요..^^.. 경부선 시리즈..
우리도 메이저리그처럼 '지하철 시리즈'같은 별칭이 있었다는게 흥미로웠습니다..
박찬호가 시즌 첫승을 기록한 어느 아침에...
전쟁영화 팬이지만 열혈야구팬이기도한 어느 "人" 올림
9시 뉴스의 첫 머리를 항상 '땡' 하고 장식하곤 했던 우리의 통치자께서 워낙에 스포츠 광이셨던 데다... 스포츠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셨던 분이라서... 국민들은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민속씨름 등의 풍성한 볼거리로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국민소득이나 사회적 여건을 고려할 때 다소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프로야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인기가 더욱 급등했습니다..
가장 극적인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의 접전으로 기억되는 18년전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대략 84년의 프로야구에 대한 간단한 사전 브리핑을 먼저 하자면.... 우선 그 때의 야구판도는... 지금과 달리 6개 구단밖에 없었고... 80년대 중반이후 한국야구를 휘저었던 '절대강자' 해태의 신화가 시작되기 이전입니다. 당시의 라이벌 구단을 꼽자면 원년 우승이라는 '황홀한 첫경험'을 놓고 다투어서 앙숙이 된 삼성과 오비를 들 수 있겠네요. 당시 오비는...'불사조' 박철순의 부상과 주력타자들의 노쇠로 인해 '꼴찌후보 0순위' 로 지목 받을 시점이었는데... 원년에 오비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영덕 감독이 라이벌 구단인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후 '도대체 무얼 보고 오비가 꼴찌를 면한단 말이냐? 김성근이 감독시켜서 잘 될 것 같은가?' 라는 말을 한 것이 알려지며 두 팀은 '같은 하늘을 머리에 지고 살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지요.. 또다른 라이벌 구단은... 영호남이라는 지역간의 대결에다 같은 '과자집 라이벌' 이었던 롯데와 해태 정도....
그 때는 지금의 용병선수들 대신 '재일 동포' 선수들이라는 '외부변수'가 있을 때지요.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다가...나이 먹어서 1군에서 뛰기 어렵다 싶으면 '고국의 부름을 받아' 귀국하여 활약하던 그 선수들은 공, 수 양면에서 눈부신 활약을 해주었습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4할 타율이란 불멸의 기록을 원년에 남긴 백인천, 83년 시즌 30승이란 '엽기적인 대기록' 을 달성한 '괴력의 너구리' 장명부 선수, 삼성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황금박쥐' 란 애칭을 얻었던 김일융 선수, 84년 롯데의 공격첨병 홍문종 선수.... 다들 초창기 프로야구를 휘저었던 스타들입니다... 물론 한국야구의 수준이 나날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이러한 재일 동포 선수들은 차츰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시즌 예상은 김영덕이란 명장의 영입, 장효조, 이만수라는 가공할 3, 4 번 라인업과 김시진, 김일융, 이선희, 황규봉, 권영호 의 탄탄한 마운드를 구축한 삼성을 우승 1순위로 꼽았습니다. '롯데의 우승' 은 적어도 시즌 전 전문가들의 '상식적인 예상' 에서는 논의 외로 제쳐졌던 것들이지요. 제가 풀어놓을 이야기는... 각각 전기, 후기리그를 석권하고 '서울, 대구, 부산 찍고..' 하는 경부선 시리즈의 주역이 되었던 두 팀 삼성과 롯데, 그리고 두 팀을 끝까지 위협했던 오비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다가... 그 화려하고 극적인 '경부선 시리즈' 로 이야기를 옮겨가겠습니다.....
드디어 시즌이 시작되고...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든 건 오비 베어스의 분전이었습니다. 허리부상으로 마운드를 떠난 박철순 선수도 없이 오비가 전기리그 선두를 질주한 원동력은 김성근 감독 특유의 카리스마와 투수 조련 덕이었습니다. 약팀을 강팀으로 바꾸어 놓고 무명의 투수를 '물건' 으로 키워놓는 데에 일가견이 있던 김감독은 장호연 선수에게 '지저분한' 구질을 연마시켜 방어율 부문의 타이틀 홀더로, 윤석환 선수를 신인왕으로 키워냅니다. 또한 계형철, 김진욱 선수를 선발 진에 합류시켜 3인 선발에 1인 마무리 체제라는 '그나마 근대적인' 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합니다. 그러나 5월 중순까지 9연승을 구가하는 '기적의 레이스'를 펼쳤던 곰둥이들은... 꾸준히 추격을 펼치던 사자들과의 맞대결(5월 14일 대구 경기)에서 김일융 선수에게 덜미를 잡히며 선두를 내준 후 끝내 전세를 뒤집는데 실패합니다.
당시 삼성 마운드를 주도했던 '양 金씨' , 김시진과 김일융 두 선수의 보이지 않는 라이벌 의식과 경쟁은 팀의 상승무드에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두 에이스는 라이벌 의식을 넘어 시종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는데..... 사연인즉슨... 83년 데뷔 첫 해 17승을 올린 김시진 선수... 일약 팀의 에이스 자리를 굳혔다 싶은데... 일본에서 '굴러먹다 온 박힌 돌'이 하나 짠~~ 하고 날아온 겁니다. 일본 최고 인기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출신인 김일융 선수가 귀하신 몸 대접을 받으며 나타난 거지요.. 게다가 삼미 슈퍼스타즈와의 개막 전에서 구원으로 나온 김일융이 동점을 허용하며, 선발로 나온 김시진의 개막 첫 승을 날려버리고 자신이 승리를 가로채 버립니다. 덕아웃에서 지켜보던 김시진의 입에서 '니기미...' 하는 욕설이 터져나오지요... 얼마후 해태 전에선 반대 상황이 연출됩니다. 선발로 나간 김일융이 질러 놓은 불을 김시진이 끄기는커녕 '다분히 무성의한 투구' 로 일관하다가 역전을 허용합니다. 이 때부터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와 경쟁의식이 시작됩니다. 둘의 경쟁은 85년에 그 절정을 이루어.. 둘 다 나란히 25승! 합작 50승이라는 믿기지 않는 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결국 6월 13일... 삼성은 MBC청룡에게 패했으나 2위 오비도 패배한 탓에 전기리그 우승 확정! 바쁘신 몸으로 친히 인천구장까지 행차하신 이건희 구단주도... 김영덕 감독도... 기쁘기는 한데 다소 떨떠름한 표정입니다. 그 날 완투 2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된 김일융 선수의 표정도 그리 밝지 못하고요... (아마도 김시진 선수가 쌤통이다... 하며 속으로 웃고 있었을지도^^) 어쨌건 삼성 프런트와 선수단은 그 해 가을에 또 한번의 샴페인 파티를 벌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7월 7일 후기리그가 시작됩니다. 프로야구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 첫 득점 등의 '첫경험' 기록의 주인공인 이만수 선수는 타율, 타점, 홈런 3개 부문에서 현격한 차이로 선두 질주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만수 선수가 '트리플 크라운' 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김영덕 감독이 시즌 종료 한 달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출장을 시키지 않습니다. 후기리그는 쉬어 가는 페이지로 생각하고 컨디션 조절에 들어간 삼성... 반면 후기리그의 주인공 롯데는 사자들이 낮잠을자는 사이에 '대약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에이스 최동원과 홍문종 - 김용철 - 김용희 클린업을 핵으로 롯데는 치열한 순위다툼에 뛰어들게 됩니다.
후기리그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5위에 랭크되어 있던 롯데의 초조함은 갈수록 커집니다. 선두와는 다섯 게임 반 차... 결코 쉽게 줄일 수 있는 게임차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부터 후기리그가 종료되는 날까지 최동원은 거의 매일 불펜에서 대기하며 롯데의 승리를 지켜냅니다. 롯데 박종환 전무가 최동원 선수의 부친 최윤식씨를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부탁합니다. '우리도 우승 한번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하고... 그 말인즉슨... 이미 최동원을 무리하게 기용하고 있지만... 후기리그는 가능성이 보이니 좀 더 써먹겠다는 부탁이었지요. 어찌되었든 최동원의 '막투' 는 계속되고.. 롯데의 진군 또한 계속되었습니다.
후기리그가 막판으로 접어들며... 김영덕 감독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어느 팀을 밀어주어서 가을잔치의 파트너로 점지해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그 해 삼성은 팀간 전적에서 오비에 약한 면을 보이고 있던 터여서 오비가 젤 먼저 '간택대상'에서 탈락... 심사숙고 끝에 발탁된 파트너가 '만만한 롯데' 였습니다. 김감독의 구상에 롯데 투수래 봐야 최동원, 임호균 밖에 없는데.. 두 투수가 삼성 타선에는 약한 면모를 보여주었으니.. 아무래도 롯데를 점지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실제로 그토록 빼어난 피칭을 한 최동원 선수도 페넌트레이스에선 삼성을 상대로 1승 3패의 부진한 성적을 보였습니다.)
막바지 순위경쟁은 롯데와 오비의 대결... 근 한 달간을 한 게임차의 승차를 두고 피말리는 순위경쟁을 한 두 팀... 그리고 운명의 9월 22일이 밝았습니다. 한국야구 사상 가장 '추잡한 게임' 이 펼쳐졌던 그 날입니다. 당시 오비와 롯데는 각각 두 게임을 남겨놓았고 게임차는 반 게임차로 롯데가 리드상황. 오비는 해태와 두 게임... 롯데는 삼성과 두 게임을 남겨놓은 상황입니다. 김영덕 감독의 머리가 더욱 복잡해집니다. 기록관리를 위해 출장을 정지한 이만수의 타율 3할 4푼에 1리차로 추격해온 홍문종, 이만수의 홈런 기록 23개에 2개 차로 접근해 온 김용철의 추격을 뿌리치며 두 게임을 확실히 다 져주기!! 그런데 막상 시합이 시작되고.. 부담 없이 '무심 타법' 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삼성타자들의 방망이엔 불이 붙고 잔뜩 긴장하고 힘이 들어간 롯데 타자들의 방망이는 연신 허공을 가릅니다. 김영덕, 강병철 두 감독의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 들어갑니다. 결국 삼성은 주루 플레이 실수(?)를 연발하고 잡을 수 있는 공도 '두 눈 질끈 감고' 놓쳐주며 어렵게 어렵게 롯데에 승리를 안겨줍니다. 7대 0의 리드를 잡던 삼성이 9대 11로 역전패를 자청하는 모습에 팬들의 비난은 홍수처럼 쏟아집니다.
최종전 9월 23일, '열화와 같은 비난'에 김영덕 감독의 마음이 흔들렸을까요? 천만에... 김영덕 감독은 초지일관입니다. 다만 어제 경기 보단 다소 '세련된 연기' 로 8대 15의 스코어로 패배를 연출해 내었습니다. 이만수의 타율에 1리차로 육박한 홍문종 선수는 어찌되었냐고요? 두 경기 내내 방망이만 들고 서 있다가 고의 사구로 출루.. 10연타석 출루기록이라는 나름대로 '불멸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온갖 비난의 화살이 삼성구단과 김영덕 감독에게 쏟아졌지만.. '일등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삼성구단과 '비난은 잠깐이나 기록은 영원하다'는 김영덕 감독은 묵묵히 비난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개인기록 부문을 잠시 정리하자면.. 결국 이만수 선수가 '타율, 타점, 홈런'에서 수위를 차지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최동원 선수도 후반기에서만 무려 18승을 올리는 막투 끝에 27승을 올리며 다승왕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벌어질 두 선수의 '창과 방패' 의 대결에 자연스럽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9월 30일 대구에서 한국시리즈 1차전이 시작됩니다. 롯데는 당근말밥 최동원이 선발, 삼성도 에이스 김시진으로 맞불 을 놓습니다. 2회초 1사 1루, 6번 타자 박용성이 김시진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뿜어냅니다. 가뜩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새가슴 에이스' 김시진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롯데의 2대 0 리드... 이 홈런은 뭔가 모욕당하는 찜찜한 기분으로 후기리그 우승을 헌상받은 롯데 선수들에게 '쓰벌... 조타 한 번 끝까지 땡겨보자.' 하는 의욕을 자극합니다. 4회 롯데는 김용희의 적시 2루타, 삼성 1루수 성학수의 실책으로 2점을 추가 4 대 0의 리드를 잡습니다. 결국 비운의 에이스 김시진은 강판.. 권영호가 마운드를 밟습니다. 결국 최동원이 삼성타선을 7안타 7삼진으로 봉쇄하며 완봉으로 막아내어 한국시리즈 최초의 완봉승 투수가 됩니다. 이 날의 결과는 두 팀에 상반된 분위기를 드리웁니다. 전력상 한 수 아래임을 자인하며 '믿을 건 동원이 밖에 없다' 던 롯데에 강한 의욕을... 반면 만만한 상대 골라잡았다고 탱자탱자하던 삼성에겐 초조함과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경각심을 심어주지요.
다음 날인 10월 1일에 속개된 2차전입니다. 삼성의 선발은? 당연히 김일융입니다. 반면 적지에서 1승을 선취한 롯데는? 2차전은 '브루마불 게임의 무인도' 로 간주하고 쉬어가기로 작정했는지 안창완을 기용하는 '대범함'을 보입니다. 전날 최동원에게 셧 아웃 당했던 삼성 타선이 3회부터 작렬하기 시작! 장효조의 투런 홈런으로 기선제압. 이후 삼성은 5회 이만수의 적시타로 달아나고... 7회에 넉점을 추가, 결국 8 대 2로 압승을 거둡니다. 최동원을 제외한 롯데의 주력투수진 '안창완 - 임호균 - 천창호 - 배경환'을 투입한 롯데지만 '동원이만 빼면 너희쯤이야' 하는 듯한 삼성타선 앞에 맹렬하게 피폭 당하고 말았습니다. 김일융은 5안타 2실점으로 완투하며 시리즈 1승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승부처는 부산으로 옮겨집니다.
하루 쉰 10월 3일, 롯데의 선발은 완투 후 이틀 휴식을 취한 '금테안경의 사나이' 최동원입니다. 반면 1차전에서 최동원과의 맞대결에서 패배하고... 2차전에서 김일융의 완투에 자극 받은 삼성의 에이스 김시진은 강한 의욕을 보이며 김영덕 감독에게 등판을 자청, 권영호의 투입을 고려했던 김 감독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합니다. 최동원의 구위는 여전히 쌩쌩.. 최동원을 잡기 위해 1번 타자로 기용된 장효조를 비롯해 막강 삼성타선을 계속해서 돌려세웁니다. 이 날도 선취점은 롯데의 몫이군요. 2회 삼성 수비진의 실책을 틈타 1점 선취. 재수가 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 밭에 넘어진다고.... 억세게 승운이 따라주던 롯데는 3회에 4구로 진출한 유두열이 투수악송구, 보내기 번트, 내야땅볼로 안타 한 방 없이 2점째를 선취합니다. 새가슴 에이스도 조금 열이 받았는지.... 김시진 선수의 어금니가 앙다물어 집니다. 최동원과 김일융이라는 두 라이벌을 의식한 김 선수의 구속은 더욱 빨라져 갔습니다. 4회 1점을 따라붙은 삼성... 국내 최고 투수들간의 대결답게 팽팽한 투수전은 계속되고... 7회 삼성 공격 2사 2루가 됩니다. 최동원과 장효조의 대결... 구덕야구장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풀 카운트까지 접전이 계속되고.. 결국 최동원의 10구째 공을 받아쳐 적시타를 터뜨리는 장효조.. 게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 합니다. 그러나... 향후 김시진 선수가 은퇴할 때까지 따라다녔던 불행의 서막이 열립니다. 8회말 롯데 공격... 2사까지 잘 잡은 김시진은 홍문종의 총알 같은 강습 타구를 발목에 정통으로 맞고 들것에 실려나갑니다.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올라온 권영호가 9회 결승타를 헌납.. 3 대 2의 스코어로 롯데가 다시 한 발 앞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1차전의 완봉승에 이어 겨우 이틀의 휴식을 취한 최동원은 오늘도 12개의 탈삼진, 그것도 삼성타자 전원에게 삼진을 뺏으며 '회심의 감자주먹'을 먹이며 완투승을 기록합니다. 그 누구도 깨지 못할 '한국시리즈 4승 투수'의 신화가 차츰 그 막을 올리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날 계속된 4차전... 시리즈 동안 계속해서 따라 다니는 실책과 에이스의 부상이라는 불운에 시달리던 삼성... 시작부터 덕아웃엔 긴장감이 감돕니다. 오늘 혹시나 밀리면 시리즈는 물 건너가는 상황.. 에이스 김시진은 전력 이탈.. 결국 김영덕 감독은 김일융만 바라볼 밖에 도리가 없지요. 삼성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롯데의 '제 2 선발' 임호균을 신나게 난타합니다. 최동원 앞에서는 장효조 선수만 빼면 다들 '고개 숙인 남자'가 되곤 했던 삼성 타순이지만 그 외의 투수들한테는 정말 신들린 듯 때려댑니다. 8회까지 4안타 삼진 8개로 롯데 타순을 무기력증에 빠져들게 한 김일융 선수의 호투도 최동원 선수의 그것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결국 삼성은 7대 0으로 롯데를 셧아웃 시킵니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최동원 대 김일융' 의 대결구도로 초점이 맞추어 지고... 결국 누가 먼저 상대방 에이스에게 '감자주먹'을 먹이느냐의 대결로 압축이 되어갔습니다. 우승잔치상의 주인을 가리는 잠실 3연전이 두 팀을 기다리는 가운데.. 휴식일인 10월 5일 두 팀은 나란히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상경합니다.
10월 6일, 강병철 감독은 5차전의 선발투수로 '못 먹어도 Go!'를 외치며 다시 최동원을 올립니다. 삼성은 김시진의 로테이션이지만.... 발목 통증이 아직 생생한 에이스를 대신해 권영호 투수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권영호 투수도 한국 최초의 100세이브 기록 달성자 답게 만만찮은 구위의 소유자.. 경기는 4회까지 팽팽한 투수전으로 전개됩니다.
5회 먼저 2점을 선취한 롯데, 그러나 '쓰바.. 체면이 있지. 오늘도 동원이한테 당할쏘냐' 하고 벼르고 나온 삼성 타자들도 만만찮습니다. 6회 장효조의 적시타로 1점 추격, 연이은 장효조의 도루와 롯데 내야진의 실책, 땅볼로 동점... 이제 경기는 다시 원점입니다.
김영덕 감독은 지체없이 김일융을 올립니다. 결국 정현발이 7회에 최동원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뿜어내며 결승점을 올립니다. 김감독은 홈런 치고 돌아오는 정현발을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습니다. 드디어 삼성이 먼저 최동원에게 감자를 먹이고 다시 앞서 나갑니다. 김일융이 '나 홀로 3승'을 기록하였고.....3승 고지를 밟은 삼성은 우승을 확신합니다.
10월 7일 6차전, 김영덕 감독의 머리가 아픕니다. 아직 통증이 있는 게 분명한 에이스 김시진은 등판을 강력히 자원하고.. 정규리그 10승 투수에다 승률 1위인 황규봉 선수의 기용을 고려하던 김감독은 결국 김시진을 선발로... 강병철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못 미더운 제 2 선발' 임호균을 선발로 올려 보냅니다.
4회초 장효조, 이만수의 연속안타로 1점을 선취하는 삼성... 우승이 눈앞에 온 듯 합니다. 그러나 롯데가 4회말 홍문종, 김용철, 김용희 클린업의 연속안타로 3득점. 역전에 성공합니다. 발목 통증을 숨기고 마운드에 선 김시진의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5회초 삼성공격... 투수가 바뀝니다. 김영덕 감독의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유유히 마운드에 올라오는 투수는 또 최동원!! 1,3 차전 18이닝을 완투하고... 바로 어제 7이닝을 던진 최동원이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습니다. 요즘 야구 같았으면.. 그렇게 선수를 잡아먹을 듯히 혹사시켰으면 아마 감독에게 돌이라도 날아올 테지만.... 아직 팬들도 감독들도 '선수생명 보호' 에 큰 관심이 없던 시절이고.. 게다가 벼랑에 몰려 최종전이 될지도 모르는 한국시리즈 6차전... 마치 청룡기 고교야구 결승리그와 같은 투수운용이었지만 롯데 팬들은 '황금의 팔' 의 재등장에 열렬한 환호를 보냅니다.
의외로 최동원의 볼 끝은 살아있었고 삼성 타자들은 당황합니다. 당시 시리즈때 최동원의 투구 패턴은 투 스트라잌까지 직구 위주에 간혹 커브를 섞어서 투구하고.. 결정구는 주무기 슬라이더로 잡아내곤 했습니다. 그 슬라이더에 삼성 타자들 정말 무지하게 바람을 갈라대었지요. 결국 6 대 1로 롯데가 승리, 승부를 최종 전으로 미룹니다. 최동원도 김일융에 뒤질 새라 '나 홀로 3승'을 기록합니다. 남은 시리즈의 승부는 과연 두 투수중 누가 '기적의 시리즈 4승 투수' 가 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 졌습니다. 반면.... 84, 86, 87 세 시즌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단 1승도 못 올리게 되는 비운의 주인공 김시진 투수는 또 한 번 패전투수가 되는 아픔을 맛봅니다. 최초로 100승 고지를 돌파하였고... 140 킬로 중반의 직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에이스 였지만 큰 경기에 약해 '새가슴' 이란 이미지를 남긴 김시진 선수... 3차전의 발목부상이 김시진 선수 개인에게도, 삼성에게도 너무도 큰 불행으로 다가왔던 것이지요.
하루를 쉰 10월 9일... 한국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가 연출되는 날이 밝았습니다. 결국 선발로 나온 투수들은... 역시 최동원과 김일융이었습니다. 이미 한계이닝을 분명히 넘은 두 투수지만.. 감독들은 두 에이스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7차전에 등판한 최동원의 볼 끝은 밋밋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미 시리즈 동안 30 이닝을 던지며 혹사당한 그의 공이 생생할래야 할 수가 없었지요. 2회 삼성의 공격, 1사 만루.... 배대웅의 내야땅볼, 송일수의 적시타.. 삼성의 3 대 0 리드입니다. 롯데도 3회초 한 점 추격.. 3 대 1의 스코어를 이루며 추격합니다. 그러나 삼성의 6회 공격 오대석이 최동원의 제 4구를 통타, 좌월 솔로 홈런을 뽑아냅니다. 홈런 치고 돌아온 오대석은 역시 김영덕 감독의 '갈비뼈 부술 듯한' 뜨거운 포옹을 받고.... 삼성분위기는 샴페인 병 뚜껑 딸 시간만 기다리는 분위기입니다. 그 시간... 집무실에서 티브이로 경기를 시청하던 이건희 구단주가 잠실야구장으로 출발을 합니다. 84년 동안 본인이 관람한 네 차례의 삼성 경기 모두 패배했다며 집무실을 지키다가 오대석의 홈런 한 방에 안심하고 경기장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경기장에 도착한 이건희 구단주의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은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한계를 느낀 건 최동원만이 아니었습니다. 34살의 노장인 김일융 선수도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롯데 타자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후기리그 우승을 일구어낸 집념과 저력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던 거지요. 7회 2점을 추격, 4 대 3으로 추격을 합니다. 김영덕 감독이 다시 고뇌에 빠집니다. 8회초 롯데의 공격... 마운드로 올라가는 김일융 선수의 표정엔 고통스런 기색이 역력합니다. 불펜에서 몸을 푸는 황규봉 투수.. 그러나 눈 딱 감고 김일융 선수에게 다시 승부를 맡겨 버립니다. 첫 타자 홍문종을 겨우 막아낸 김일융.. 그러나 김용철, 김용희의 연속 안타... 타석에는 6번 타자 유두열... 시리즈 동안 17타수 1 안타의 빈타에 허덕이던 선수... '대타 내보내?' 하며 잠시 고민에 빠지던 강병철 감독은 질끈 눈을 감고 벤치에 앉아버립니다. '규봉이로 바꿔?' 하던 김감독... 역시 벤치에 다시 앉아버립니다. 여기서 유두열 선수의 '18년 프로야구 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이 터져나옵니다. 스코어 6대 4... 그제야 투수를 황규봉 선수로 바꾸는 김영덕 감독... 잠실의 롯데 팬들은 '아 대한민국!'을 합창하며 극적인 홈런에 열광합니다. 이건희 구단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9회말 마지막 삼성의 공격, 2사에서 마지막 타자 장태수를 삼진으로 잡아 '시리즈 4승 투수 '가 된 최동원은 게임 종료후 발표된 개인시상식에서 시즌 엠브이피로 선정됩니다. 전무후무한 트리플 크라운의 기록을 달성한 이만수 선수는 '만들어준 기록' 이란 감표요인 탓에 고배를 마십니다. 시즌 내내 2할을 겨우 넘기는 지극히 평범한 성적을 남겼고 시리즈 동안에도 17타수 1안타의 빈타를 보인 유두열 선수는 그 날의 '한 방' 으로 야구사에 길이 남겨지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후의 야구 인생에서도 교타자의 조건인 3할 타율이나 홈런타자의 상징인 20홈런과 같은 기록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유두열 선수란 점을 감안하면 정말 억센 행운이었습니다. '아무리 공부 열심히 해봐라, 머리 좋은 놈 따라가나. 아무리 머리 좋아봐라, 운 좋은 놈 따라가나' 라는 우스개 소리를 떠올릴 만큼 말입니다....
우승피로연에서 최동원 선수는 쌍코피를 터트립니다... 7차전도 완투승... 도합 37이닝을 던져낸 초인적인 역투... 많은 사람들이 84년의 한국시리즈를 '최동원 시리즈' 로 기억할 만큼 야구사에 남을 눈부신 투구였습니다. 그러나 선수보호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점을 남길만한 투수기용이었습니다. 사실 선동열에 못지 않은 국보급 투수로 남을 수 있었던 최동원 선수의 선수생명이 84년의 '막투'로 인해 크게 단축된 점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강병철 감독이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은 92년. 이 때도 강병철 감독은 포스트시즌 내내 고졸신인 염종석을 혹사시킨 끝에 V2의 위업을 달성합니다. 그러나 그 후 염종석은 다시는 92년 신인 때와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지금도 한계투구수인 80개 이상 던지지 못하는 선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84년 롯데의 우승은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투혼으로 일구어낸 극적인 것이었기에 이후 8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인 프로야구의 중흥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반면.. 삼성구단으로선 너무도 많은 것을 잃은 한해였습니다. 쉬운 상대를 선택하기 위해 일부러 패배까지 하며 파트너로 간택한 롯데에게 덜미를 잡혀 명예에 먹칠을 한 삼성구단은 '사필귀정', '씨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온갖 조롱과 야유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82년 오비와의 시리즈 6차전 연장 14회에 에이스 이선희가 만루홈런으로 통타 당하고... 84년 김일융이 유두열의 '눈감고 휘두른' 한 방에 침몰하면서... 포스트시즌에서의 불운이라는 악몽이 삼성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좌완에이스가 홈런으로 침몰하는 '전통'이 따라다니게 되었지요. 이선희, 김일융 이후에도. 89년 준 플레이오프 1차전, 90년 한국시리즈 1차전, 93년 한국시리즈 5차전, 97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모두 좌완 성준의 피홈런으로 삼성은 번번히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98년 플레이오프에선 이 지긋지긋한 '왼손투수 시리즈 피홈런' 의 악몽을 끊겠다며 서정환 감독이 성준을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습니다만.. 과연 결과는? 징크스는 토종과 용병을 가리지 않는 법인지... 4차전 7회말 좌완 용병 투수 베이커가 엘쥐의 펠릭스에게 120미터 짜리 3점 홈런을 허용하며 무너지고 맙니다.
에이스 김시진을 통해 최동원과 맞대결을 펼치다가 결국 패권을 놓친 김영덕 감독 또한 삼성, 빙그레 등 당대 최강팀을 이끌면서도 번번히 김응룡 감독의 해태에 번번히 덜미를 잡혀 시리즈 우승과는 연을 맺지 못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할 때마다 '해태는 강하다, 선동열은 더욱 강하다' 며 선동열이 등판하는 1차전엔 에이스가 아닌 투수를 내보내며 물러서던 그의 '에이스 공포증'은 84년의 악몽에서 그 시초를 찾아도 무방할 듯 합니다.
정정당당한 승부와 스포츠 맨쉽, 그리고 선수생명 보호 등 많은 생각할 거리도 함께 남긴 84년의 명승부는 지금도 팬들의 뇌리 속에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