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굴 제국 견문록 -中- 황궁편
1885년 3월 5일
8년전 발발된 무굴의 청 침략때 주 청대사였던 나는 무굴의 북경 점령에 따라 무굴대사에 임명되었었다. 하지만 본국(영국)의 무굴 견제에따라 무굴은 영국인을 모두 추방하였기에 나는 지금껏 한가하게 무굴 전역을 여행하고 다녔었다.하지만 얼마전 신시국왕을 접견하던 자리에서 나는 황실의 초청을 받아 부임후 처음으로 황도에 들어갈수 있었다. 황도는 일찍이부터 무굴의 수도였으며 6백만 인구가 살던 곳 이었다. 하지만 강대해지는 무굴은 제1차 조국전쟁이후 황실의 위엄을 위하여 황도영역을 5배로 늘리고 前황도 전체를 황궁으로 선포하였다. 한마디로 황도는 황궁을 둘러싼 엄청난 크기의 초대형 도시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황도는 모든 외국인의 출입을 금 하였는데 이번 초청으로 전례가 깨진 것이었다. 나는 본국의 훈령조차 받지 않고 곧바로 황도로 출발했다. 황도는 높이 40M 두께 20M,대포 4만문,초소 1만개,수비병 30만에 달하는 중세식 성벽이 황도 외곽 5천리를 둘러쌌는데 이는 무굴의 휼륭한 건축기술과 무지막지한 인력동원에 의해 완성되었다. 특히 황도 동쪽의 갠지스강은 무굴인에게 신성한 강임에도 당시 황제는 5백만의 신민들을 동원하여 407개의 엄청난 크기의 댐과 72개의 운하를 건설하는등의 공사를 벌여 황도 성벽 외곽을 너비 300M의 해자로 둘러싸게 하였다.
-중략-
난 곧 황도의 유일한 출입구인 4대문중 남대문에 도착하였다. 난 지금껏 엄청난 너비의 해자를 커다란 배를 타고 건너거나 다리로 넘을줄
알았었다. 하지만 해자의 물줄기는 거세 배는 볼수조차 없었고 (해자는 한마디로 인공 강이다) 다리도 볼수 없었다. 나는 호위병에게 물었다.대체 해자는 어떻게 건너냐고 그 호위병은 웃으면서 기다리라며 손짓했다. 나는 의아해하며 해자를 계속해서 보았다, 별다를게 없이 십여분이 지나갔을때 나는 잠시 꾸벅 거리고 졸고 말았다. 그때 나를 흔들며 호위병은 이제 건너자 하였다. 나는 그 엄청난 해자를 어떻게 건널지 궁금해 하면서 잠이 덜 깬채 고개를 들었다. 물론 독자들이 생각하는데로 하늘을 나는 도구라던가 성문이 내려와 해자를 건너게 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냥 해자가 사라졌다. 그들은 이 엄청난 너비의 해자 때문에 황도안의 엄청난 인구에게 공급될 물품들을 들일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끝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해자를 없애면 되잖아? ' 내가 추측하기에 해자의 물줄기는 다른 운하로 돌려져 남대문 앞의 해자에 물이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곧 해자 아래의 대리석 길을 보이게 되었다.
-중략-
황도는 그야말로 '굉장' 하였다 재작년 본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를 찾을 때 내심 이 굉장한 인류 문명의 절정은 백인만이 이룰수 있다고 생각하며 뿌듯 했었다. 하지만 이 곳 황도에 들어서는 순간 그런 우월감은 사라졌다. 황도의 모든 건물들은 중국풍으로 1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었다, 특히 우와한 기와의 모습과 화려한 문양에 나는 넋을 잃었다. 잠시 정신이 나간 나를 보고 호위병들은 의아해하며 대로를 지나갔다.
-중략-

황도는 모든 지역이 고층빌딩 및 거대 건물로 싸인 대도시였다.. 풍문으로 듣던 황도의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미 황도 전지역은 상하수도가 완벽히 구비되어있으며 총길이 40만리의 복잡한 운하가 물자수송을 원할히 하게 하였다. 황도 곳곳의 시장은 이미 런던에서도 보기힘든 대형 백화점 및 상가로 이뤄졌으며 귀부인들이 수십명들의 하인과 수십대의 마차를 대동하고 쇼핑을 즐기는 곳이었다. 무굴인 수행원이 말하길 황도의 인구는 3천만 정도로써 그중 2천 9백만명이 하인,군인,도시 관리원 같은 귀족들을 위한 사람들이며 나머지는 무굴의 최상류층으로써 황족,왕,제후,총독,무라타시,중앙정부 관리들이며 대장군 같은 지위도 여기선 하찮은 존재라 하였다. 나는 일찍이 펀자브국의 대장군을 접견한적이 있었는데 그는 웨일스만한 영지와 5만명의 군사를 거르렸음에도 나에게 예의를 갖추어서 당황했던 적이 있었는데 황도에 들어와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수 있었다. 또 수행원은 자랑이라도 하듯이 황도 전체에 대형 극장,목욕탕,광장,공원,중앙정부의 기관들이 산재해 있으며 내가 보아왔던 제후 10국의 기관 건물의 10배는 될것이라 하였다.

-중략-
나는 황실전용 특급열차를 타고 황궁을 향해 갔다. 물론 열차 밖에는 눈을 뗄수도 없을 만큼 아름답고 근대적인 황도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지만 나는 지친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수행원 중 한명이 시녀를 불러올까요 하기에 대답없이 침대에 누웠더니 곧 4명의 백인 여자들이 들어왔다.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당황한 목소리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참고로 나는 아직 미혼이다.. 아무튼 오랜시간뒤 일어나자 황궁앞에 도착해 있었다.나는 유리창 너머를 보고는 대도시였던 황도와 다르게 황량한 황궁을 보고는 당황하였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그저 황궁이라는 표시를 해줄 조그마한 장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수행원이 말하길 이제 부터 오직 가마만 타고
본 황궁에 가야 할것이며 여기는 본 황궁 외곽의 정원이라고 하였다..

-중략-

가마로 지겨운 길을 간지 4일째 드디어 본 황궁에 도착한 나는 50M에 달하는 거대한 성문은 보고는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대체 난
황도로 와서 몇번이나 놀라는 것일까.. 곧 황궁의 문이 열리고 나는 수행원만 데리고 들어갔다. 후일담 이지만 호위병들은 내가 황궁에 들어간뒤 참형을 당하였다 한다. 아무래도 황궁으로 가는 길을 비밀로 붙이기 위해 그런 것 인거 같다. 나는 황궁안에서 내관들의 안내로 50여명이 드는 가마에 앉았다. 그 후 몇시간 가마는 계속해서 길을 나갔다.. 2시간뒤 성문 5개를 지나자 내관이 내리라 하여 드디어 본 황궁이다 하였는데 이번에는 수백명이 드는 대형 가마에 들어가라 하였다.. 아예 가마에 큰 방까지 있었다.. 나는 참을성 있게 가마에 들어섰다. 얼마나 지났을까.. 분명 아침에 황궁에 들어섰는데 별이 보이는 저녁까지 죽창 가마에 앉아있었다. 성문 10개를 또 지나자 내관은 도착하였다며 내리라 하였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며 내관에게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는지 불만을 토로하려 하였다. 하지만 곧 나는 그 말을 다하지 못하였다. 바로 내 눈앞에 무라타시가 서 있던 것이었다. 순간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무라타시에게 절을 해버렸다. 그는 천룡도를 가지고 있는 무라타시였다! 무라타시는 당황한듯 일어서라 하였고 곧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섰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의 주위 공간이 일그러져 보였다, 물론 무라타시이니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그 보다 더 놀란 것을 보고 말았다. 고개를 숙인채 그의 손을 보고 말았는데 피부가 하얗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며 얼굴을 보고는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그는 前황제가 근대적 개혁의 일환으로 외국인에게도 무라타시 양병학교에 입학할수 있게 한 조항을 통해 들어온 영국계 백인 이었던 것이다. 물론 알다시피 조항은 이번 청침략 당시 무라타시의 난으로 인해 폐지 되었다. 당시 각국 정부는 많은 목적을 갖고 무라타시 양병학교에 어린 자국민을 보냈는데 청국이 2만명 영국이 5천명 프랑스 2천명 러시아 1천명 조선 500명 일본 400명 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독일 300명 페르시아,동남아시아 연맹6국 100명이 입학하였고 이중 단 8명이 졸업하였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중 영국인이 무라타시중 단 5명이 가질수 있다는 천룡도를 들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감격하여 무라타시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내 울음은 수천명의 영국아이를 죽음에 몰아넣었던 잔혹한 영국정부의 보상은 되지 않았지만 무라타시도 같이 울고 말았다.그는 비록 무굴의 무라타시였지만 영국을 잊지않고 기다려 왔던 것이었다.
-중략-

나는 이곳에 오면서 황실이 나를 초청한 이유를 들었는데 바로 청국 합병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연을 열기위해 각국 대사를 모셔오라는 황제의 명이 있었다 하였다. 나는 제국일보로 통해 청국이 곧 합병될거라 알았기에 별 반응없이 초청에 응했지만 그때 거절했으면 죽어서도 한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배정받은 숙소에서 축하연을 몇일간 기다렸다. 그 몇일간 나는 무굴 전역을 돌며 보았던 제후 10국의 국왕들과 무굴의 자치령인 동남아시아 연맹 6국의 국왕 같은 지위의 사람을 보았고 그 중 신시국왕과는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는 내가 미혼인 것을 알고는 자신의 노예중에 백인 여자를 몇명 선발해 보낼테니 첩으로 취하라 하기에 거절하였지만 왕은 고집을 피우며 보내겠다기에 그러랴며 응하였다. 다음날 나는 축하연에서 6번째 줄에 앉았는데 후에 알고보니 대사는 원래 제일 하단인 20번째 줄에 앉는 것이지만 신시국왕의 도움으로 보기 좋은 상단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

4시간 가까이의 축하연은 생전 처음보는 진기한 것이었지만 몇 몇 외국인을 제외한 무굴인들은 지겨운 듯 잠에 골아빠졌다, 내가 앞에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광대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무굴인들이 단 한번에 일어난 차례가 있었으니 바로 무라타시들의 충성맹약 의식일 때이다.
지금 청국 각지에서 반란을 진압하고 있는 무라타시가 태반이기에 이번에는 천룡도를 가지고 있는 5명이 충성맹약을 하기로 하였는데 그들이 들어오자 마자 시끌시끌 했던 연회장은 곧 숙연해 지고 말았다. 말이야 숙연이지 겨우 5명이 내뿜는 기세에 모두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솔직히 그때 오줌을 조금 지렸다. 천룡도는 무굴에 살고있던 5마리의 천룡을 전설의 제1무라타시가 때려 잡아 그 뿔을 갈아 철에 섞어 만들었다는 검이며 칼등에는 수백개의 금강석들이 박혀있어 왠만한 국가의 2년치 재정에 버금간다고 한다. 천룡도를 가지는 무라타시의 수준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는다는 무라타시중 최강 5명인데 前글에서 말했던 청 침공시 200사단을 이끌고 남하했던 천룡도를 가졌던 한 청국 출신 무라타시는 북경에서 청국백성들의 학살을 보고 격분하여 휘하 외국인 무라타시 10명과 난을 일으켰다.이들은 무굴군 60만명이 투입되어 진압되었으나 투입된 무굴군 대다수가 사망하거나 도주하여 북경을 원세개에게 잠시 빼앗기기도 하였다.
-중략-

황제의 연설이 끝난 직후 수십만명의 군인이 광장을 메우고 황제폐하 만세를 부르는 모습은 무굴인이 아닌 나에게 크나큰 위압을 받게 했다. 어째서 영국은 이 대제국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는가!
오늘 한번 제국의 이름하에 설정편을 써버렸습니다... (팔이 뿌러져도 글을 쓰는 투혼!) 연대기를 쓰려다 이렇게 길게 되어버려서 어쩔수없이 되었고 매우 허접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봐주시길 바랍니다 시험을 앞두고 3시간이나 써버렸거든요 ㅠㅠ 이러다 댓글도 없으면 멍-
첫댓글 무굴 황도의 풍경이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이 글은 거의 소설급이군요 ㅎㄷㄷ;;
멋진 사진 많네요...이런건 어디서 구하시지 ㅠㅠ
음... 하나는 확실히 삼11 종료시 이벤트 스샷이네요 ㅋ
옛날부터 멋진 사진을 여기 저기서 구해서 폴더에 저장해놨지요 ㅎㅎ
음.. 사진중 한장은 마지막 황제 중 한장 이군요.
후덜덜스러운 무굴제국. 칼날에 붙은 금상석으로 탄환을 튕겨내기라도 하는건가...
헐...60만명 투입에 대부분 사망이래
무라타시는 매우 특별한 설정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ㅎㅎ 무굴을 이끌어가는 삼대세력은 황제-제국일보-무라타시 로 정해놨죠
무라타시들은 진정한 굇수들이군요 ㄷㄷㄷ....
오 저 마지막샷은 삼국지 통일때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