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2년 8월 5일에 철밥통을 스스로 차 버렸다. 미국의 연방공무원, 그것도 국토안보부 소속의 세관국경보호국의 감시관이 된지 24년, 미 육군의 복무기간 6년을 합쳐 30년의 연방공무원을 그것도 하루의 차이도 없이 정확히 30년이 되던 날, 만 58세의 나이로 조기명예 퇴직을 했다.
내 직장의 동료는 물론, 직원의 행정지원을 하는 부서의 사람들도 나처럼 그렇게 30년이 되는 바로 그 날에 퇴직하는 사람은 못 보았다고 했다. 물론 30년이라는 그 날을 택한 데는 이유가 분명했다. 규정상 만 30년이 되고 나이가 56세가 되어야 온전한 연금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30년이 되는 그 날짜를 하루도 넘기지 않고 바로 그 날에 퇴직하는 사람은 없다는 그런 얘기다. 조기 은퇴한 바로 그 달인 8월말에 한국으로 왔으니까, 이젠 1년이 훨씬 지났고, 햇수로 따지면 2년이 되었다. 늘 머릿속에 두었던 이 곳 제주에서의 생활도 이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간다. 참 옳은 판단이고, 결정이고, 행동이라고 느낀다. 인생에서 “~~걸”은 별 의미가 없다. 행동에 옮겨지지 않은 생각과 결정은 그저 머릿속에 남는 추억으로 남겨질 뿐이니까.
사실 인간이 만든 모든 조직은 부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조직의 크기에 비례한다. 이 건 내가 인생을 살면서 깊게 깨달은 바고, 그래서 나는 늘 작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은, 적은 수가 모여 처음 시작했을 때엔 모든 것이 “순수“라는 틀 속에 시작된다. 그러나 조직이 비대해 질수록 처음 시작했을 때의 “순수“라는 말은 점차 “어리석음“과 동일한 의미로 변하게 된다. 조직이 커지면 수많은 여러 부서가 생기게 되고, 따라서 단순하고 명료해야 할 구성원 간의 소통은 점점 어려워진다. 적은 수의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순수한 상부상조의 목적으로 모일 때는, 그 순수함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조직이 커지면 그런 순수성은 사라지고 부패되어 가는 수순을 밟게 된다.
2010년에는 직장에서의 장기출장으로 일본에서 6개월을 지내면서, 그렇게 친절하고, 남을 배려하고, 공공질서를 잘 지키는 개인으로서의 일본인과 조직에 속하기만 하면 자기의 모든 합리적인 생각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일본인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일본이 우경화되면 또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을 수 있는 민족이란 것을 새삼 깨달으며 인간이란 동물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것을 다시 반복해서 강조할 필요를 느낀다. 세상의 모든 조직은 무슨 목적으로 처음에 시작했든지 일단 커지면 나쁜 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합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말은 기독교의 신약성경 로마서에 적혀있다. 그만큼 합하여 선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모든 세상의 조직과 단체가 그러하듯이, 일단 커지면 여러 가지 문제가 수반된다. 이 것에 대한 “답은 없다”라는 것이 내 답이다. 왜냐면 어느 한 인간이 자기의 순수한 면을 지키려는 것은 작은 조직에서만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30여년이 지난 아주 오래전에, 독일의 경제학자이며 친환경주의자인 E 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읽고 난 후 지금까지 이러한 생각을 내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크게 굴려야 반사이익도 크다는 “규모의 경제학”논리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아보면 조화로운 삶은 대규모로는 절대 되지 않는다. 친환경적인 삶도 개발의 논리로는 절대 접근할 수 없다. 그런데 물질적인 반사이익은 대규모의 개발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권모술수를 바탕으로 한 힘과 권력의 관심이 여기에 집중하는 이유이다.
이미 얻은 철밥통에 더 강한 합금을 해서 더 단단하게 지키려하는 것이, 집단화된 인간의 욕심에서 오는 결과이고 모든 인간의 집단이기적인 속성이다. 마치 이것은 신앙은 인간의 속성인데, 이 속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 신앙이란 것을 제도화한 종교의 문제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해결책은 조직이 너무 비대화되는 것을 스스로 거부해야 하는데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비대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그 것이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무한대로 확장하고 힘을 키우려하는 조직에 대한 정부와 민간에 의한 강력한 견제와 감독이 필요한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나는 최근에 일어났던 코레일 사태의 진실은 모른다. 모두가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하려 하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거나, 설득을 당할 만큼의 시간을 내가 이 땅에서 살아보지 못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다만, 대규모의 노동조합의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이기적인 행태를 미국에서 40년이란 긴 시간을 살면서 내 눈으로 목격했고, 지금은 그 무소불위의 거대한 노동조합이 많이 약화는 되었지만, 미국은 지금도 많은 곳에서 자기가 속한 집단의 극단적인 이익만 챙기려는 모습은 많이 보게 된다. 이것은 이미 비대해져서 사회의 정상적인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형태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로 인해 받는 피해는 거의 대부분 그날그날 겨우겨우 살아가는 서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최근 “그리스”라는 나라에서 보았듯이 집단이기주의적인 단체행동이 그 나라에게 어떤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남에 대한 배려를 말하지 않고 시민의식을 말할 수 없고, 올바른 시민의식이 없이는 한 나라의 장래는 암담하다.
미 연방공무원은 정년을 법으로 정해놓지 않았다. 정년을 정해놓지 않아도 사람들은 온전한 연금을 수령하는 나이, 보통 60에서 65세가 되면 대부분 일 손을 놓기 때문에 별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정년도 없고 고용도 보장된 직장, 소위 말하는 “철밥통 직장”을 미리 나온다는 것은 나에겐 그저 하나의 결정이었지만, 내 가족, 특히 내 아버지와 주위에서는 조금 충격이어서 나를 말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자영업과는 달리 직장이란 언제가 되면 어차피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며, 내가 정한 시간에 내 의지에 의해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늘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 대한 태도는 이제 뭉뚱그려 말 할 수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명제 아래의 “작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다. 다행히 나는 지금까지 세상과 크게 타협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비대해지려고만 하는 어떤 조직과 단체에게서 정직과 선을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 것과 같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나는 이 달 29일이면 환갑이 된다. 태어난 조국에서 20년, 미국에서 40년을 산 뒤에 조국에서 맞는 60년 생일은 내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58세에 그 좋다는 철밥통을 차 버리고 이 제주로 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소박하게 사시는 모습을 그려보니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은퇴하면 남미쪽으로 가서 살아보려고 하는데 님께서는 반대로 고국으로 오셨네요.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마음에 두신 곳이 있으면 한 번 도전을 권해 드립니다. 사는 것과 방문은 아주 별개의 문제입니다. 작접 얼마간을 살아봐야 감이 옵니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홀로서기 편은 인쇄까지 해서 읽었습니다.
고국 제주도 정착하신것을 축하드립니다. 특히 저도 갑오생이고 한국에서 철밥통을 하다가 2013년말 퇴직해서 많이 동질성을 느낍니다. 종종 뵙겠습니다.
변변찮은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게다가 동년배이시고 철밥통 직장에 계셨다니 더욱 친근감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