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삼우(歲寒三友)
석야 신웅순
교대 다닐 때 공주 금학골에서 만난 세 친구가 있다. 이후 친구들은 초ㆍ중학 선생으로, 나는 초ㆍ중학 선생하다 대학 교수로 근무했다. 수십 년을 바쁘게 살다 정년퇴임해 다시 만났다.
별을 보며, 소쩍새 울음 들으며, 미래를 꿈꾸며 밤이 깊도록 술잔을 기울였던 친구들이다.
둘은 세종에서 살고 나는 대전에서 산다. 이젠 시인으로, 수필가로 시조시인으로 셋이 다시 뭉쳤다. 몇 년 전부터이다. 가끔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인생을 얘기하며 지냈다. 만년에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이는 뭐니뭐니해도 부부 말고는 친구가 제일이다.
미팅 날짜를 정한 것은 아니나 보고 싶을 때 만나곤 했다. 그냥 만남보다 의미있는 만남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자기에 세한삼우를 새기면 어떨까.”
두 친구의 호는 청송, 매곡 나는 석야이다. 세한삼우는 추운 겨울의 세 벗, 송ㆍ 매ㆍ 죽이니 내 호를 달리 부르면 된다. 나는 매화와 대나무를 좋아한다. 친구에게 ‘설죽’이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친구의 삶에 딱 들어맞는 호라고 한다. 이리해서 송ㆍ 매ㆍ 죽, 세한삼우가 완성되었다. 나이 들어 도원결의(?)를 했다.
세종에 사는 시인은 유난히 정이 많다. 그 친구는 가끔씩 내게 시로 안부를 전해온다. 그러던 그가 얼마전부터 소식이 없다. 나는 무정하진 않지만 그리움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전화를 했다.
아프다는 것이다. 평소에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 아픈 것만큼 슬픈 것은 없다. 노구를 끌고 다니기도 고된데 아프기까지 하면 얼마나 힘이 들 것인가. 내 일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따뜻한 봄이 되면 한 번 만나 술 한 잔 기울이자.”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 끝이 더욱 아리다.
야간 고등학교 다니며 연탄 배달까지 하며 공부했던 친구이다. 대학교 편입학할 때도 야간대학에 같이 다녔다. 서울서 출퇴근 하던 나를 새벽까지 배웅해주기도 했던 고마운 친구이다. 내 결혼 때 함진아비까지 해주었던 친구이다. 대학교 다닐 때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RNTC 하사 훈련 때 ‘촛대바위(좃대바위)’ 레파토리로 남학생들간에도 일약 스타가 된 전설적인 친구이다. 그 친구가 많이 아프단다.
전화 후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며칠 전에 새해인사와 함께 예쁜 시 한편을 보내왔다.
어른들이 그랬다. 젊어선 사서라도 고생해야한다고. 나이 들어선 고생해선 절대 안 된다고. 즐겨야할 노년이 아프면 인생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슬플 것인가.
사람은 당해봐야 시정을 안다. 아픈 사람의 시정은 아파봐야 알고 가난한 사람의 심정은 가난해봐야 안다.
진달래 꽃 피고 개나리 꽃 피는 따뜻한 봄날 건강이 좋아져 술 한 잔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다 혹독한 겨울에 만난 친구들이다. 나이 들어 또 혹한의 겨울을 만나서야 되겠느냐. 따뜻한 노년의 우정을 생각하며 도자기 잔에 송ㆍ매ㆍ죽을 손수 새겼다. 시인에게는 청송의 잔을 수필가는 매곡의 잔을 주었고 나는 설죽의 잔을 가졌다. 그 잔으로 “짠”하며 건강이라는 진한 정을 주고 받았다.
인생은 꿈이며 희망이다. 노년도 그렇게 살아야한다. 이것이 없으면 나는 누구와도 친구하지 않겠다.
-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2023.1.7
첫댓글 아름다운 새한삼우 도자기작품 그 곁에
청송 선생님의 예쁜 시 정말 부럽습니다!
그런데 세종에 계시는 청송선생님께서 건강이 불편하시다는 소식
아프시면 서럽고 또 서럽지요.
건승을 빕니다.
立春이 지나면 지금보다 햇볕을 많이 주시고 봄맞이를 준비하겠지요.
송. 매. 죽. 새한삼우 힘차게 솟아오르는
아름다운 벗이여!!!
아름답게 읽었습니다^^
感谢합니다!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입니다. 젊어선 고생해도 나이 들어선 아프지 말아야지요.
나이 들어 아프면 서럽습니다. 우리들의 얘기입니다.
세한에도 끄떡없는 송죽매 아닙니까.
만년에 누구나 다 아프지 말고 따듯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중한 벗이 편치않다는 소식에 안타까우시겠습니다.
얼른 쾌차하셔서
즐거운 노년을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읽고 계셨군요.
그렇습니다.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벗이 제일인데 마음이 아프네요.
소식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