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신공 ―제8식, 응답하라
박형권
가슴에 누군가를 담아두라 그러면 너는 누군가를 위해 살게 된다 사모함으로 얻고 사모함으로 이룰 것이니 너는 두려워 말라 네 가슴이 실거리나무 가지처럼 휘어져 있어도 휘어진 품세를 따라 탄성이 생기는 것 그러므로 너는 누군가의 탄성이다 너는 쏠 수 있나니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너는 당겼다가 놓을 수 있나니 네 그리움으로 세계가 허무로 싱거워질 때도 네 가슴은 뿌듯하리 오늘도 침엽수 가지에 직박구리가 앉았고 바랜 잎사귀들이 추락하지만 그것은 추락이 아니다, 가을의 탄성이다 가벼움으로 서서히 내려앉는 탄성도 있어 그렇게 지상은 푸르렀나니 일 보를 천천히 내디디어 보도블록을 밟고 다시 일 보를 내밀어 보도블록을 밟고 손은 호주머니에서 찌르고 고개를 약간 약간 숙여라 추락하는 것들로 지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 보라 바스락거리며 바람에 휩쓸리는 쓸쓸함의 가치를 가슴에 담아라 너는 가을처럼 깊숙하나니 그 지점에서 너를 두드리는 누군가의 요청에 응답하라 모든 것이 가슴으로 사는 방식이다 ―계간 《시와 징후Poem & Symptom》 2023년 여름 ---------------------- 박형권 / 1961년 부산 출생. 200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우두커니』 『전당포는 항구다』 『도축사 수첩』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장편동화 『돼지 오월이』『웃음공장』, 청소년 소설 『아버지의 알통』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