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주요 대선주자들이 모수개혁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18년만에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뒤늦게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내는 돈(보험료율)은 13%, 받는 돈(소득대체율)은 43%로 올리는 모수개혁안에 대한 청년층 불만이 나오자 이들 표심을 의식해 여야 합의를 아예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연금개혁 협상 당시엔 소극적 태도를 취하다가 뒤늦게 협상을 깨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문가들도 “연금개혁의 첫 단추를 어렵게 낀 만큼 ‘원천 무효’를 주장하지 말 것이 아니라 청년층의 불안감을 덜 수 있도록 구조개혁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여권 대선주자들 연금개혁 거부권 행사 주장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23일 “개정안대로면 바로 연금을 더 받는 86세대(1960년대생 1980년대학번)는 꿀을 빨고, 올라간 돈을 수십년 동안 내야 연금을 받는 청년세대는 독박을 쓰는 것”이라며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 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를 “청년착취”라고도 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국회를 통과한 ‘13%-43%’는 땜질하기로 담합한 것일 뿐”이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연금개악법’에 거부권 행사 후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을 포함해 다시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개혁신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준석은 “젊은 세대의 미래를 팔아 기성세대의 표를 사는 합의안”이라며 “당장 소득대체율이 높아지는 기성세대에게는 ‘즉각적 매표행위’를 시행한 것”이라고 했다.
보수진영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연금개혁 비판에 나선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청년층 표심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여야 합의 과정에선 청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다가 뒤늦게 ‘세대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급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전 대표는 지난해 당 대표 시절 구조개혁을 강조하며 “청년세대가 논의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모수개혁에 대해선 “당장 미봉책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안 전 의원도 20일 본회의를 앞두고선 “어렵게 이룬 여야 합의인 만큼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겠다”고 했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모처럼 여야 합의로 연금개혁의 첫발을 내디뎠는데, 청년들이 반대한다고 덩달아 반대하면서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뭘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안타깝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청년층 비판이 이어지자 뒤늦게 글을 삭제했다.
● 전문가 “세대간 갈등 언급 자중해야”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더 혜택을 보는 안’이라며 반발한다.
연금개혁안에 따르면 보험료율은 기존 9%에서 매년 0.5%포인트씩 8년간 올라 2033년에 13%가 된다. 반면 소득대체율은 2026년부터 40%에서 43%로 오른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인상된 보험료를 낸 기성세대가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될 수 있다는 것.
국민의힘 김용태·김재섭·우재준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소영·장철민·전용기, 개혁신당 이주영·천하람 등 30·40대 여야 의원들도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협상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모수조정안은 당장의 보험금 혜택을 인상하고 후세대의 보험료율을 올리겠다는 것”이라며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부담은 다시 미래세대의 몫이 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당장 모수개혁을 하지 않으면 2029년부터 연금기금 총액이 감소하게 돼 있다”며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민주당 진성준은 “노령세대의 연금이 줄어들면 그들의 생계와 생활을 다른 방식으로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며 “연금액을 줄이면 장차 연금을 받게 될 청년의 연금액 자체도 줄어들게 된다”고 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교 교수는 “구조개혁의 부족한 부분은 연금특위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며 “연금 문제라는 게 세대 간 연대를 전제로 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을 일으키는 부분에 대해 자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