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행방이 묘연하던 '산골 처녀' 이영자(20)가 경기도 용인시 화운사 암자에서 동안거에 들어갔다. 그는 7개월 전 사미계를 받고 정식 불제자가 된 뒤 탁발과 운수 행각으로 전국을 돌며 속세의 고뇌와 번뇌를 씻어왔다. 동안거는 음력 시월보름부터 이듬해 정월 보름까지 선방에서 두문불출한 채 화두를 잡고 마음공부에 매진하는 불가의 전통 수행법이다.
영자가 사미승이 된 것은 지난 4월11일.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 행자교육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았다. 부처 귀의를 맹세하는 연비식도 치렀다. 법명은 도혜다. 2001년 2월 아버지를 강도에 의해 '불귀의 객'으로 떠나 보낸 지 14개월 만이다. 영자는 홀아버지와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살던 중 2000년 10월 아버지와 함께 모 이동통신 CF에 출연해 일약 '유명인'이 됐다.
영자는 불제자로 거듭나기 위해 속세의 불상사만큼 우여곡절을 겪었다. 방황 끝에 지난해 6월 중순 강원도 삼척의 사찰로 찾아들었을 때 심신이 무척 고단한 상태였다. 그의 은사 혜설스님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피까지 토했으며 대인기피증이 심했다"고 밝혔다. 영자는 사찰에서 은사로 인연을 맺은 혜설스님 이외의 모든 사람을 피했다. 심지어 "신도들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 같다" "언론 등에 알릴지 모르니 다른 사찰로 옮겨 달라" 등 두려움과 공포심을 드러냈다.
혜설스님은 자칫 '사람 하나 잡겠다' 싶어 지난해 11월 여승들만의 도량인 수원 화운사로 영자를 남몰래 데리고 갔다. 그 바람에 속세에서는 영자가 실종됐다는 얘기가 무성하게 나돌았다. 영자 이름을 도용한 시집이 발간되는 소동도 있었다. 영자는 사찰에서 각종 허드렛일을 도우며 '예비 스님'의 길인 행자생활에 매달려 마음을 다스렸다. 올해 3월 노스님들에게서 불제자로 평생 살아갈 자격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직지사 '22기 행자교육원'에 들어갔다.
3주간의 교육은 몸이 쇠약해진 영자가 감당해내기 어려웠다. 교무스님들이 "몸이 허약해 교육을 받기 어려우니 데리고 가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은사인 혜설스님을 비롯해 용주사 원로스님들이 적극 나서 퇴교를 막아 영자는 교육을 마치고 4월에 사미승이 됐다. 요즘 영자의 건강은 많이 나아졌고, 대인기피증도 상당히 가셨다.
영자는 동안거를 마치고 내년 봄 승가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다. 그때쯤이면 복사꽃 붉은 뺨에 속세의 고뇌 대신 부처의 미소가 흐르는 영자, 아니 도혜스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게 주변의 얘기다. 영자는 그날을 위해 선방에서 자신과 씨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