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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말씀(2017. 1월 22) 말씀/ 대하3:15-17 믿음의 두 기둥
“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고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성소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그 두 기둥을 외소 앞에 세웠으니 좌편에 하나요 우편에 하나라 우편 것은 야긴이라 칭하고 좌편 것은 보아스라 칭하였더라”
열왕기 상하를 읽다보니 솔로몬아 성전을 짓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역대하를 보면 예루살렘성전이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더 자세히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은 생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전쟁을 많이 하여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짓는 일에 합당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상22:8). 다윗은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러한 마음조차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사는 일이야 내 마음대로 이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하고, 하나님이 부르셔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가 한고운 3주년 예배 인데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박형성 대표님 혼자 이 일을 이루실 수 있겠습니끼?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지 않았으면 이 북한 백성을 먹이는 엄청난 과업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참석하신 여러분들 특별히 하나님의 부르심 받은 천사들 인줄 믿습니다. 아멘!
자, 그럼 다윗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포기하였습니까? 그는 후대에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준비를 많이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적극 후원을 하여습니다. 그렇게 해서 후에 솔로몬은 장장 7년이 걸려 훌륭한 성전을 이 완공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성전을 다 짓고 나서 성전의 앞에 기둥 둘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3장 15-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고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성소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그 두 기둥을 외소 앞에 세웠으니 좌편에 하나요 우편에 하나라 우편 것은 야긴이라 칭하고 좌편 것은 보아스라 칭하였더라”
솔로몬은 이렇게 기둥 둘을 세워 남쪽에 세운 그 하나의 이름은 야긴이라 하고 또 북쪽에 세운 다른 하나의 이름은 보아스라 하였습니다. 이 두 기둥이 도대체 무엇 입니까? 구약시대는 당시의 중요한 건축물에는 그 건물을 기념하는 기둥들을 세우는 것이 보편적 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하면 이 두 기둥은 기념비의 개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기둥의 이름을 살펴보면 아주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야긴이라는 이름은 시므온의 아들 야긴과 같은 이름으로 '그가 세우시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룻의 남편 이름으로 '하나님의 민첩한 능력' 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두 기둥의 뜻을 합해 보면 '하나님의 민첩한 능력으로 이 성전을 세우셨다'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과 솔로몬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두 기둥을 세우고 하나의 이름은 다윗, 또 다른 이름은 장차 후계자인 솔로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럴만한 것이 실제로 다윗은 성전을 짓는데 사재 금은을 털어드리기까지 했고, 솔로몬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7년 동안 성전이 세워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었습니까? 열왕기상을 보면 성정의 기초석을 놓은데만 역군 3만, 짐군 7만, 돌 뜨는자 8만, 감독관리 3천 3백명이 투입 되었습니다(왕상 5:13-18). 왜 사람들이 수고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자신의 수고와 진심을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7년 동안 애쓰고 수고한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자신들의 공력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기둥 이름 밑에다가 작게라도 ‘다윗’, ‘솔로몬’을 새겨 넣고 또 그 외에 헌금을 많이 드린 사람들의 명단과 공로자들의 이름을 줄줄히 써놓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대게 다 그렇게 합니다. 교회도 그렇게 이름을 새겨주고, 절에도 가면 기와장 하나 연보를 하더라도 이름을 새겨줍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인정하고 모든 공을 하나님께로만 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는 이 성전이 사람의 재물이나 수고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민첩한 능력으로 지어진 역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의 중심에 결코 왕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이름이 들어갈 수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하셨고, 주님께 영광 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우고 굳게 세워야할 믿음의 두 기둥입니다. 세상의 문제들 교회의 불협 화음들은 다 이 믿음의 기둥들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임을 간과 해서는 안됩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은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일을 지으시는 분도 하나님 그것은 지어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우리가 비록 많은 일을 한 것 같아도 사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북한 고구마 나눔 운동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능히 또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같이 고백해보지요. “한고운 고구마 나눔 운동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그리고 통일 후에 홀로 영광 받으소서!” 아멘!
제가 이 믿음을 붙들게 된 것이 오래 전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부터 U B F 선교단체에서 오직 사명감을 갖고 모든 것을 버리고 내가 열심히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 중심적인 곳에도 사람이 있는지라 자기 영광의 욕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는 욕망이 그곳에도 있었고, 결국 문제가 들어나고, 개혁이 시작되고...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능력도 없는 사람이 시골에서 얼마나 개혁을 잘하겠습니까? 아이들은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들어갈 때이고 한창 돈도 들 때이고... 거기다가 자식들 세병 중에 유일한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3급 지적 장애니 근심걱정뿐 되는 일이 없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사모가 말은 안 해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성정에서 사모가 아들 누가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주님이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아이가 네 아이냐? 내 아이지. 이 아이를 네가 키우냐 내가 키우지~” 맞아 주님이 하시는 것이야. 주님이 하시면 무엇이 걱정이야, 그리고 안 될 것이 무엇이야? 저는 내가하려는 모든 의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근심 걱정에서 자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내 욕심을 좇아 절대로 앞서지 않고 주님이 하시는 만큼만 그것도 한 발자국 뒤에서 따라가는 자가되었습니다. 남과 비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묵상해서 나오는 글들이 ‘주님이 하십니다’라는 제목으로 예영 출판사에서 츨판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게 되었고 없으면 없는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주님 은혜 안에 사는 행복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하신다는 것은 모든 역사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참 신앙은 자기를 겸손히 비우고 주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해야 합니다. 시127:1-2 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시고 또 겸손한자들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자, 다음을 보세요. 이렇게 솔로몬이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하신 일을 기념하여 성전을 봉헌했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예루살렘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은 모든 히브리사람들의 정신적인 중심이 되는 시온이요, 전 세계 모든 신앙인에 있어서 이름만 들어도 하나님을 생각하게 해 주는 상징적인 성읍이 되었던 것입니다. 6,7장을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축복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고, 이것에서 그리는 기도에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7:14-15).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이 예루살렘은 세계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예루살렘을 집중하시고,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느헤미야서에 보면 예루살렘은 원래 이스라엘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이스라엘의 변두리 땅이었습니다. 적의 침략이 항상 있어왔고, 전쟁이 난무하던, 인간적인 매력이 거의 없는 버려진 땅 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혜미야서에 보면 제비를 뽑아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이주시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중심,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는 외적 성전이 크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성전 이고, 그곳에 ‘야긴’과 ‘보아스’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믿음을 축복하시고 변두리의 예루살렘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한고운이 기도하고 있는 고구마 나눔 운동은 단지 굶주린 북한 동포들을 먹이는 자선 사업이 아닙니다. 장차 남북 통일의 과업을 이루고 이 나라가 다시 제사장 나라로 세워져 세계의 중심이 되는 역사적 대 과업임을 믿습니다. 이 일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1004회원이 모집 되면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근본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민첩한 능력으로 역사하시면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다윗과 솔로몬이 가졌던 야긴 보아스의 믿음이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볼때도 하나님은 어떤 큰 일을 이루실 때 그 때마다 믿음의 사람을 부르셔서 당신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강대국 애굽의 400년 속박에서 출애굽 하는 사건도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능력의 지팡이를 주시고 바로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혈기 많은 자였고, 입술이 둔하여 말을 잘 못하는 자였지만 바로 앞에 갓 지팡이를 들어 뱀이 되게 하였고, 뱀의 꼬리를 집어 들어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강퍅한 바로도 결국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얼마나 민첩하게 역사를 이루셨는지 그들이 애굽을 떠날 때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무교병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출 12:11,28). 그 앞에 홍해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역시 마른 땅처럼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또 바벨로 70년 포로 생활에서 어떻게 이들이 무슨 힘으로 탈출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화 되고, 포로 백성으로 해방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생각지 않은 방법으로 페르시아 신흥 강대국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고레스를 목자로 삼아 이스라엘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영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 사회주의 공사주의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하고, 세계가 철의 장막으로 양분화 되었을 때도 공산주의 이념이 무어지지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공산주의 종주국 러시아 대통령 고르바조프를 움직이시고 공산주의에 갇혀 살던 세계 인민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공산 민주 대치국은 북한과 남한입니다. 박형서 대표님은 삼팔선이 뱀의 형상으로 끈질기게 가로막고 있는데 두려워하지 않고 그 뱀 꼬리를 집어 들면 남북은 하나로 통일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일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민첩한 능력으로 이 일을 추진하시면 일략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고 하나님은 고구마 복음으로 통일의 역사를 이루신후 대한민국을 세계복음화의 선봉장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 때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하시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으로 준비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통일의 준비 일군들입니다. 무엇으로 준비합니까? 돈으로? 힘으로? 안됩니다. 이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통일은 믿음과 사랑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동독 서독 통일도 사랑으로 무너진 것처럼. 동독에서 쓰레기를 실어 부었을 때 서독 사람들은 통조림을 퍼다주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삼팔선이 곧 무너질 것입니다. 미운자식 떡 하나 더 주라고 배고픈 동족들 고구마 하나 더 먹이다 보면 통일의 벽은 점점 금이 가고 하나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고구마로 통일 됩니다. 할렐루야, 아멘! 오래 전에 인도의 성자 타고르는 동방의 등불에서 이렇게 시적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일찌기 아시아의 항금 시기에 빛난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되라 등불아 한번 켜지면 세계 중시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한 의 풍부한 기술력과 바본,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만해도 세계 일등 국민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세계가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북한 광물 자원이 남한의 24배, 매장가치 7000조, 금 매장량 세계 10위, 석유는 사우디 부럽지 않는 석유 위에 떠있는 나라라고 합니다. 석유만 경제가치가 1경 500조(세계 3위)가 된다고 합니다. 마그네사이트 1위.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여러분 믿어집니까? 이 마지막 시대 남은 거대한 과업에 부르심을 받아 쓰임 받는 자체가 또한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 이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입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민첩한 능력! 다윗과 솔로몬의 신앙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 우리가 입을 크게 열어 더 큰 꿈을 가져야 겠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남북이 통일 되면 그 시점으로 세계 복음화가 민첩하게 신속히 이루어지고 주님이 곧 임하실 것입니다. 이 일은 박형서 대표님 뿐 아니라 여러분들이 함께 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함께 기도하며 이루어야 할 대 과업입니다. 저와 여러분 들 모두 이 일에 참여하여 이 엄청난 역사를 이루고 다윗과 솔로몬처럼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나님께 영광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요절 말씀을 역대하 3장 17절 읽고 마치겠습니다. “ 그 두 기둥을 외소 앞에 세웠으니 좌편에 하나요 우편에 하나라 우편 것은 야긴이라 칭하고 좌편 것은 보아스라 칭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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