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1 #숭실대학교_사회복지학과_책모임 #구슬서말
#유시민 #청춘의_독서
오랜만에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인문사회학 책모임 구슬서말에 참여했습니다.
오늘은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
0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02.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이 두 장을 읽어오고 2시간 반 동안 나누었습니다.
(아래 글은 사람에 상관없이 오늘 나온 의견들을 엮은 것입니다.)
#선한_의도_악한_수단
1장의 주요 골자는 아무리 선한 의도일지라도 악한 수단을 이를 이루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선한 의도를 내세워 악한 수단을 사용한 사람들의 예시로는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트럼프의 경우, "미국을 예전의 미국처럼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선한 의도)을 내세워
반이민자 정책(악한 수단)을 폈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촛불은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악한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국민들의 정의일지도 모릅니다.
#선과_악의_기준
그렇다면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절대적인 선이나 악은 과연 존재할까요?
최소한의 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법이니
법만 잘 지키면 선하게 살 수 있는 걸까요?
법도 사람이 만드는 건데 완벽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모두가 동의하는 절대적인 선이나 악이 없다고 한다면
결국 선악을 판단하는 건 개인의 몫이니 개인의 양심이 그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선악은 상대적이고 상황적입니다.
'나쁜' 사람, 혹은 '착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모든 상황 사안에서 늘 나쁘거나 늘 착한 사람이 존재할까요?
특히나 사회사업가는 소위 '문제'(악) 속에서도 생태와 강점을 중시합니다.
명백하게 나쁜 행동이라 보이는 것들도
그 행동을 한 사람의 환경에서 바라보면 행동과 환경이 꼭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욕을 하는 10살 짜리 아이가 있다고 할 때,
친구들 사이에서 욕을 하는 행위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의 지위를 상승시켜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반면, 욕하는 것을 교장 선생님께 걸리면 그 아이는 욕하는 문제아가 됩니다.
욕을 하는 행위를 욕한 아이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 아이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은 사교적인 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사업가는 비행(악)과 강점(선), 그 미묘한 경계 사이에서
다음에 할 행동을 결정해야 합니다.
어쩌면 사회사업가는 이런 선악을 헤아리는 지혜를 기르기 위해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직업일지도 모릅니다.
어떠한 행동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함부로 비난하거나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새옹지마!
#고이는_생각
나이를 먹을수록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2장에서도 그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렇게 책을 읽고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도 어쩌면 단순히 깨어있고 싶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깨어있고자 하는 욕망이 클수록
고일 생각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듯합니다.
보수적으로 변할 생각에 대한 두려움을 나눴습니다.
사실 생각이 고이는 건 시간이 흐르는 것 만큼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피부 노화를 막기 위해 이것저것 피부에 많은 공을 들이듯이
생각의 노화를 막기 위해서도 몸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느 젊은이들처럼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을 내놓고 다듬어야 합니다.
용기가 부족하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말을 줄여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는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지식인이란?
진정한 지식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2장을 읽으며
과연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지식인인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학을 나오는 게 흔한 일이 되어버린 요즘 시대에 대학을 나왔다는 것만으로 지식인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이 개인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듯합니다.
'지식인'을 어떠한 특권, 지위로 여긴다면
그럴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 진정한 지식인 대학생이 얼마나 많을지는 정말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 '지식인'이라는 말이 사회에 대한 책임 따위로 쓰인다면
어쨌든 소위 배웠다 하는 대학생들은 사회에서 받은 기대만큼의 사회에 기여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지식인'이 으시대기 위한 이름표가 아닌
계속해서 나를 다듬고 성찰하게 하는 올가미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저는 닉값하는 진정한 지식인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