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무슨 뜻인지 독해 불가능한 긴 제목에 눈길이 갈 것이다. 조제는 여주인공 이름이다. 그리고 호랑이와 물고기가 제목에 들어 있다고 해서 동물농장 영화는 아니다. 그것들은 딱 한 번 영화에 등장할 뿐이다. 호랑이는 조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같이 동물원에 가서 꼭 호랑이를 보겠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호랑이를 보지 못할 것 같던 조제는, 예쁜 연인도 있는 대학생 츠네오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된 뒤 첫 섹스를 하고 다음날 호랑이를 보러 간다. 물고기는 조제가 자신의 우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창조한 환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조제의 물고기가 등장할 때이다. 츠네오가 빌린 차에 조제를 태우고 함께 여행하다가 들어간 모텔. 조개껍질 침대에 누워 불을 끄자 방 안으로 수많은 물고기가 헤엄쳐 지나간다. 그리고 조제의 상상 속의 물고기가 긴 꼬리를 흔들며 허공을 유영한다. 푸른 색 배경의 공간에서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씬은, 수 십년동안 불편한 다리로 세상과의 소통 대산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자기세계를 만들어간 조제의 내면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조제는 다리가 불편하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그녀의 유일한 벗은 책이다. TV가 아니라 책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조제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다른 사람들이 동네 골목에 버린 책들을 할머니가 주워 오면 그것을 읽으며 세상과 소통한다. 그녀는 밤마다 할머니의 유모차에 얹혀서 바깥나들이를 한다. 유모차가 내리막길에서 할머니 손을 떠나며 길 모통이에 부딪치고 그때 마작방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츠네오는 유모차 속에 웅크리고 있는 조제와 처음 만난다.
그러나 장애인 여성이 등장한다고 해서 [오아시스]처럼 무겁고 짓눌린 분위기는 아니다. 감정의 기복을 과장되게 드러내지 않고 영화는 진행된다. 가령 조제는, 자신의 사랑을 빼앗긴 츠네오의 전 애인이 찾아와, 차라리 네가 가진 조건이 부럽다고 말하자,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라고 말한다.
조제라는 이름은 [1년 후]의 작가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슬픔이여 안녕]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사강의 소설 [1년 후]는 영화의 복선으로 작용한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츠네오와 조제가 만나기 시작할 무렵 낭독되는 소설 속의 한 장면은, 그들의 행복한 결말로 영화가 마무리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츠네오와 조제가 동거를 시작한지 1년 몇 달후 그들은 헤어진다.
조제는 음식솜씨가 좋다. 가스렌지 앞, 높은 의자 위에서 요리하던 그녀는 방바닥으로 그냥 쿵 떨어진다. 그리고 한 손으로 방바닥을 집고 마치 하체로 방을 쓸듯이 이동한다. 그 장면은 우리들의 가슴을 쿵, 울린다. 그것이 그녀의 생존방식이다. 걸을 수 없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으로 쿵 떨어진다. 그러나 세상 앞에서 조제의 당당한 모습은, 가령 그녀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유모차 속에서는 항상 식칼을 들고 있다거나, 할머니의 죽음으로 새벽에 오는 쓰레기차에 쓰레기를 버릴 수 없게 되자 이웃집 변태 남자에게 자신의 젖가슴을 한 번씩 만지게 하고 대신 쓰레기를 치워달라고 하는 행위에서도 드러난다. 그것이 그녀의 생존방식이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 이야기는 어느 연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도 처음에 강렬한 호기심으로 서로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서로의 몸을 더듬은 뒤 또 1년 몇 달을 함께 살다가 헤어진다.
그들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를 보여주고 있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가장 큰 미덕은, 감정의 과장 없이, 왜곡 없이, 일상의 섬세한 관찰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는 주인공들의 마음을 포착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 여성을 등장시켜 사랑이야기를 펼쳐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감정의 절제라고 생각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어린시절 고아원을 함께 탈출한 조제의 친구, 조제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카센타 직원도 짧게 등장하지만 캐릭터 구축이 선명하게 잘되어 있다. 어머니에 대한 강박증적 그리움을 이해한 조제는 어린시절부터 그에게 어머니가 되어 주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카센타 남자는 조제의 아들이 된다. 그는 부정하지만. 츠네오가 조제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집에 가서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시키겠다고 하자 그 남자는 질투에 사로잡혀 자신이 빌려준 차를 발로 걷어찬다. 롱샷으로 담백하게 잡혀있는 그 씬에서 우리는 그 남자의 사랑과 절망을 읽을 수 있다.
관념적 접근이 아닌, 조제의 눈빛과 몸동작을 통해 그녀의 희망과 절망을 표현해내는 연출과 연기력이 이 영화를 감상주의에서 구원해냈다. 세상 모든 일에 툭툭 무심하게 내뱉는 조제의 말투는, 그녀가 거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 생존방법임을 우리가 알아채는 순간 가슴 아픈 비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케와키 치즈루의 연기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늘 츠네오의 등에 업혀 움직이던 조제는 츠네오와 헤어진 뒤 전동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지나간다. 조제는 츠네오의 등에 업히기 위해 일부러 휠체어를 사지 않았었다. 부엌에서 생선 튀김을 요리하는 후라이 팬에는 일인분의 아주 작은 생선만 들어 있다. 그 짧은 한 컷으로 감독은 이제 그녀가 누군가와 만나지 않고 있음을, 혼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요시모토 바나나나 야마다 에이미 등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여성작가의 대선배인 올해 76세의 타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을 영화화 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와타나베 아야의 각색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