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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1097m)
1.산행구간 : 덕주골-덕주사-마애불-960m-송계삼거리-영봉-송계삼거리-동창교
2.산행일자 : 2012. 01.31(화요일)
3.산행거리 : 00km
4.산행참가자 : 아내와
5.코스별 산행시각
◎ 수안보 사조리조트 출발(09:30)
◎ 덕주골 휴게소/영봉6.3km,덕주사마애불2.6km,덕주사1.1km(09:53)
◎ 탁족쉼터/영봉6.8km,덕주사0.8km,덕주주차장0.3km,명품마을체험장3.7km(09:58)
◎ 월악산장/국립공원 덕주분소 (10:00)
◎ 수경대(10:04)
◎ 성터(10:09)
◎ 덕주사(10:15)
◎ 영봉 입구/영봉4.9km,덕주골1.0km(10:18)
◎ 이정표/영봉4.4km,덕주사0.5km(10:29)
◎ 산성(10:40)
◎ 마애불 삼거리/영봉3.3km,마애불0.1km,덕주사1.6km(10:54)
◎ 마애불(10:55~11:00)
◎ 이정표/영봉2.9km,덕주사2.0km(11:20-11:30)
◎ 960m(덕산24)/영봉2.2km,마애불1.2km,덕주사2.7km(12:06)
◎ 헬기장(12:15)
◎ 송계삼거리/영봉1.5km,덕주사3.4km,동창교2.8km(12:18)
◎ 신륵사 삼거리/영봉0.8km,덕주사4.1km,신륵사2.8km(12:33)
◎ 보덕암 삼거리/영봉0.3km,신륵사 삼거리0.5km,보덕암3.7km(12:45)
◎ 월악산 영봉(1097m)(12:57)
◎ 송계삼거리/영봉1.5km,덕주사3.4km,동창교2.8km(13:43)
◎ 이정표/영봉1.9km,송계삼거리0.4km,동창교2.4km(13:48)
◎ 이정표/영봉2.7km,송계삼거리1.2km,동창교1.6km(14:03)
◎ 월악산 산신당(14:27)
◎ 자광사(14:37)
◎ 597번도로(14:40)
◎ 덕주골 주차장(15:00)
6,산행기
지난 1월 초에 보드 베워 보겠다는 아들의 성화에 수안보의 사조리조트에 2박3일을 예약을 해놓습니다.
아들은 보드타고 우리는 산에 다녀 오자며....
그리고 여러 일정상 지난주에도 보길도를 다녀 오느라 집을 비우고 돌아다니길 수차레....
작은아들은 공익근무하느라 쉬이 따라 나설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가급적 분위기를 작은아들쪽으로 선회하면서 2박을 1박로 결정 사조리조트를 다녀 오자며 출발합니다.
더구더나 이틀째날인 31일에는 중부지방에 폭설주의보에 한파까지 겹친다니....
어떻데 보면 잘된일인지 모릅니다만....
3시간에 걸친 드라이버....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김천에서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바꿔서 문경새재 터널을 지나 연풍 ic에서 수안보 가는 3번도로를 타고 수안보로 들어 갑니다.
왕이 목욕하였다는 수안보....
아들 스키장에 넣어 놓고 목욕하러 오자며....
그리고 곧장 사조리조트에 들어 섭니다.
먼저 결재을 하면서 2박을 1박으로 바꿔 줄것을 요청하고 406호를 배정 받습니다.
스키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조망...
곧바로 식사후 아들은 보드배우러 가고 우리는 수안보로.....
묙욕하려던 계획은 포기하고 월악산 아래 미륵마을및 덕주골 가는 길의 드라이버에 그리고 수안보 농협하나로 마트에서 시장만 보고 다시 리조트로 돌아 오는데 이른 저녁식사를 합니다.
또다시 아들녀석은 야간보드 타러 가버리고.....
◎ 수안보 사조리조트 출발(09:30)
1월 31일
한파 주의보라더니 그리 춥지는 않습니다.
하기사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이정도 날씨는 견딜만합니다.
보드 레슨을 받으라고 권해보지만 혼자 배워 보겟다는 생각인지 종일권 보드와 리프트권을 챙겨 주고 목적한 산행을 위해서 사조리조트를 출발합니다.
사조 리조트 스키장(1월30일)
사조 리조트 스키장(1월30일)
사조 리조트 스키장(1월 31일)
◎ 덕주골 휴게소/영봉6.3km,덕주사마애불2.6km,덕주사1.1km(09:53)
수안보를 벗어나 597번도로를 따라 560m의 지릅재를 지나 잠시후 미륵마을 들어 가는 입구의 삼거리에서 왼쪽 길따라 덕주골까지 이동합니다.
그리고 덕주골 입구에 주차를 하고산행준비를 합니다.
그다지 바람은 없지만 차가운 기온은 마음까지 얼게 하나 봅니다.
마의 옛길이라며 명품마을 체험장3.5km,덕주산성(남문)0.3km,덕주사1.0km,탁족쉼터0.2km,덕주주차장0.1km의 이정표사 서 있고 길건너 덕주골 산장과 슈펴 사이 덕주사로 오르는길이 산행 들머리인셈입니다.
입구
탁족 쉼터
◎ 월악산장/국립공원 덕주분소 (10:00)
마을 골목길 따라 올라서는데 상접들이 즐비하지만 아작도 나와서 장사준비하는 이는 아무도 없네여
비수기인셈이죠
그길따라 잠시 올라서는데 영봉6.8km,덕주사0.8km,덕주주차장0.3km,명품마을체험장3.7km의 탁족쉼터 이정표가 서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탁족할수 있도록 물이 흐를수 있도록 골을 만들었지만 얼어 버린지 오래인듯 싶습니다.
이를벗어나 잠시 올라서면 왼쪽으로 월악산장이 자리 잡고 있구요
그 뒷쪽으로 국립관리공단에서 통제소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올라서는데 아가씨 한분이 나오더니 어디까지 가시느냐며 질의를 합니다.
영봉까지 간다니 아이젠 가져 왔느냐며 잘다녀 오라며 인사를 합니다.
놀랬네 난 또 통제 하는줄 알았네라며....
다리를 지나 올라서는데...
동문
◎ 덕주사(10:15)
오른쪽에 파란 물이 있는 수경대에 올라섭니다.
송계 8경중 하나라는군요
여기서 잠깐 송계 8경은 월악산 영봉,월광폭포,자연대,수경대,학소대,망폭대,와룡대,팔랑소를 말하는것이라는군요
다시 출발하는데 승합차 한대가 지나갑니다.
차가 갈수도 잇는가 보네라면서 올라서는데..
산성입니다.
몽고침임을 막으며서 쌓았다는데.....
산성문은 제법 그럴듯하게 재건 되어 있구요 건너편 산성의 폭은 족히 5m나 될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마의 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서린 덕주사에 올라섭니다.'
조금전에 보이던 승합차에서는 산님 세사람이 내려서 산행 출발하고 있구요
우리는 덕주사를 둘러 보고 가기로 합니다.
대웅보전 올라서는 오른쪽에 덕주사 안내판이 서 있네요
옮겨 보겟습니다.
덕주사
신라 진평왕 9년(586)에 창건 되었다
창건 당시 월형산 월악사 였으나 신라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손국한뒤 경순왕의 제일녀였던 덕주공주가 높이 15m의 거암에 마애미륵불(보물406호)을 조성하고 신라의 재건을 염원 하였으나 일생을 마친후 산의 이름을 월악산 으로 절이름을 덕주사로 개명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덕주사는 상덕주사와 하덕주사로 나눠져 있으며 상덕주사는 동편 계곡으로 1.5km올라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은 머애미륵불.우공탑.삼충석탑,그리고 극랍건과 요사터만 남아 있다.
상덕주사는 1951년 12월 전화로 소실되었으며 석축만 옛날 규모를 알려주고 있다.
하덕주사는 어느때 소실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절입구에 잇는 남근석을 보면 이곳이 남아선호신앙이 깃들였던 원시신앙지였음을 알수 있으며 3m나 되는 탑 기단석.부도.연꽃문양.석등.와편등이 절터였음을 증명한다.
현 대웅보전은 옛하덕주사가 수재의 위험이 있어 1996년 성일 화상이 새로이 절터를 마련 전면 5칸측면 3칸 52평 외 5포 내9포의 건물 양식으로 창건 했다.
전각안에는 법신.보신.화신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중앙이 법신불로 부처님의 진신이며 자성으로 청정법계의 진여인 실상의 법을 시현한 자성불이다.
오른쪽 부처님은 보신불로 과거 원력수행의 한량없는 고보로 나타난 만덕이 원한한 불신이며 화신불 또는 응화신이라고도 하는 완편 부처님은 중생을 위해 갖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구제하는 불신이다.
다시 대웅보전으로 올라섭니다.
그런데 뭔지 모르게 절같은 분위기는 없고 앞이 터진 휑하니......
산신각등 요사체는 제법 떨어져 있고..
범종루각을 지나 영봉 가는길 입구로 내려섭니다.
동양의 알프스 월악산 영봉 여기서 4.9km에 잇습니다라는 돌 암릉이 한자리를 차지 하고 있네요
그리고 그옆에 영봉4.9km,덕주골1.0km의 조그만한 이정표도 서 있구요
영봉 가는길
동양의 알프스 영봉 가는길
계곡을 횡단하는 다리를 지나는데 남근석이야기가 궁금하여 다시 발길을 뒤돌려 잠시 둘러 보고 가기로 합니다.
돌기둥을 세워 놓은듯한 남근석..
남근석이라지만 영 아니 올시다.
그리고 그앞에는 남근석의 전설의 안내판이 있는데 옮겨 보겟습니다.
덕주사가 자리한 월악산은 소백산과 속리산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월악산 정상을 영봉이라 칭하는데 산정상을 영봉이라 칭하는곳은 백두산과 월악산 두곳뿐이다.
덕주사 뒷편 수산리쪽에서 바라보면 누워 있는 여자의 얼굴모습과 닮은형태이다.
옛사람들은 태양을 양, 그리고 달을 음이라 했으며 사람과 비유해서 양을 남자, 음을 여자라 했다.
이 산이 여자의 모습을 한 산이라해서 월악산이라 칭한것 같다.
또한 월악산이 풍수학으로 볼때 음기가 왕성한 산이기에 옛선조들은 월악산의 음의 지기를 누르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위해 이곳에 남근석을 세운것 같다.
월악산 덕주사에 전해 내려오는 남근석은 3개로써 크기가 길고 하나는 작은데 그중 하나는 가운데가 부러진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한예로 경북 안동을 안고 도는 영남 산맥중 한곳에는 뒷산이 여근형이라 하여 그 왕성한 음기를 중화 시키고자 그 여근산과 대치 되는곳에 세개의 남근석을 세웟는데 이 풍수석주들은 풍수상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덕주사의 남근석이 처음에는 월악산의 음기를 중화 시키고자 세웠으니 세월이 지나며 이들을 바라는 사람이나 또 소망과 행운 을 기구하는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음을 없으진 남근석 윗부분을 보면 알수 있다.
옛로부터 우리조상들은 삶과 죽음 을 이원화 사키지 않았다.
인간의 생은 유한하고 우주의 모든 질서는 그 유한과 무한 음과 양 빛과 어둠으로 나눠져 있었으나 조상들은 이 모든것들속에서 영원과 불변의 진리를 체득했으며 여기서 탄생되어 진것이 제의 였고 어떤 매개체를 통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구원을 추구 했으며 그것이 민간에 전승 되어 구원의 형태로 내려 왔다.
그들은 대상물에다 고사와 행복을 기구 하며 풀이를 했다.
우리가 드물게 마을 어귀에서 볼수 잇는 장승 의 괴기스런 표정이나 여기 덕주사에 있는 마근석등이 바로 생과 삶 그리고 윤회의 진리를 체득한 우리 조상의 지헤로움이 응축된 상징인것이다.
산성 축
마애불터
◎ 마애불(10:55~11:00)
다시 돌아 나와 다리를 건너 월악산 속으로 빠져 들어 갑니다.
국립공원 답게 잘만들어진 산길...
얼마후 영봉4.4km,덕주사0.5km의 이정표를 만납니다.
그아래 월악01-03이라는 구조목도 있고..
다시 출발합니다.
추웠던 그기분은 이내 산속으로 들어 서면서 약간의 땀도 나고 ..아무도 없는 산길은 더욱더 상쾌해지는 월악산 산길
얼마후 산성에 도착합니다.
중간에 망루 주춧돌이잇는것으로 보아 이곳에도 문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산성은 복원 되었지만 망루는 아직 복원은 되지 않은가 봅니다.
다시 길은 잠시후 영봉3.4km,덕주사1.5km의 이정표를 지나고....
길은 이내 계곡쪽으로 이어지더니 덕주사에서 앞서가던 산님 세사람 보이게 되고 올라서는길은 마애불 삼거리입니다.
영봉3.3km,마애불0.1km,덕주사1.6km의 이정표도 있고..
해서 마애불쪽으로 올라섭니다.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은 자신의 형상을 조각했다는 마애불(磨崖佛:보물 제406호)그 높이가 무려 15m나 된다고 합니다.
잠깐 마애불에 얼킨 설화를 옮겨 보겟습니다.
아버지인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은 망국의 한을 안고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병사를 양병하고자 금강산으로 길을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에 이르게 됩니다.
일행은 그곳에서 야영을 하며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그 날 밤 마의태자는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꿈속에서 관세음보살은 왕자에게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西天)에 이르는 큰 터가 있을 것이다. 그 곳에 불사를 하고 석불을 세우며,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億兆蒼生)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니 포덕함을 잊지 말라"고 현몽하였다 하였답니다.
예사롭지 않은 꿈이라 생각하고 두 남매는 계곡 물에 목욕재개 하고 서쪽 하늘을 향해 합장배례 한 뒤 다음날 서쪽으로 자리를 이동하게 되는데요, 일행이 서쪽으로 가며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고개마루턱 큰 바위에 한 권의 황금빛 포경문(布經文)이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며, 최고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소를 찾아 석불입상을 세우고 북두칠성의 별빛이 한껏 비추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각하며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으니 그곳이 바로 덕주사입니다.
하지만 공주는 그대로의 삶, 불사에 전념하며 구도의 길을 걸음에 만족하였으나 왕권을 계승하지 못하여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마의태자는 그러하지 못하였죠.
태자는 동생인 덕주공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초지(初志)를 굽히지 않고 금강산을 향해 떠나게 됩니다.
마지막 혈육인 오빠와 헤어져 혈혈단신이 된 공주는 출가하여 절에 몸담고 아버지인 경순왕의 애틋한 부정을 그리워하고 오빠인 태자의 건승을 서원하며 일평생을 살았다 합니다.
절터의 상징인 주춧돌 위치가 선명한 마애불 앞터
그리고 마애불 입가쪽에 나무(썻까래)를걸은듯한 홈....
그당시의 덕주사를 연상케 합니다.
현재에는 아래에 요사채인듯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마치 스님 한분이 문을 나서네요
그런데 마애불 암릉위에 부도전이 하나 있던데.....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는 내려섭니다.
다시 삼거리입니다.
올라가는 계단길
조망
영봉이 눈앞에....
◎ 960m(덕산24)/영봉2.2km,마애불1.2km,덕주사2.7km(12:06)
영봉3.3km,마애불0.1km,덕주사1.6km의 이정표를 뒤로 하고 영봉쪽으로 올라섭니다.
돌계단길에 이어 이어지는 계단길...
이제부턴 산행이라도 과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가파른 계단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앞서 가던 산님 세분도 힘들다며 뒤로 빠지고....
제법 땀을 흘리게 하는 구간입니다.
얼마후 영봉2.9km,덕주사2.0km의 이종표가 있 계단길 아래 잠시 쉬어 가기로 합니다.
커피도 한잔 하고...그리고 배고픔도 해결하고..
그렇게 10여분을 보내고 출발합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의 계단...
그리고 이어지는 돌길에 올라서는 철계단길..
그옆에 무엇에 쓰려는지 사각형타입의 굴을 파놓았네요
그리 깊지는 않지만 뭐 비오면 비 피할수 있을것 같고..또 바람도 피할수 있는 그런곳이네요
앞서 가던 산님 세분을 이곳에서 추월 하산할때까지 한번도 모지 못했습니다.
철계단을 올라서는길...
오르내리는 계단길이 두갈래 인것도 특이 합니다.
다시 길은 암릉길 사이로 안길따라 올라서는데 또 하나의 계단길을 올라서면 암릉 능선에 올라섭니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감싸 돕니다.
얼키설키 얼어 있는 눈이 발걸음을 잡지만 그런대로 녹아 잇는 부분도 있고 해서 그대로 진행합니다.
암릉길 따라 올라서는길..
잠시후 가파른 계단길이 눈앞에 다가 옵니다.
헉.....
월악산 계단길이 유명하다더니 정말 계단길이 많긴 많습니다.
그렇게 올라서는길은 암릉 전망대인 무명봉에 올라서는데 영봉이 눈앞에 닫가 옵니다.
어랴 얼마 남지 않았네라며 제촉해보지만 미끄러지는 아내는 걸음이 서투르기 마련입니다.
잠시 쉬면서 같이 아이젠을 신발에 신습니다.'
잠시후 영봉2.4km,덕주사2.5km의 이정표를 지나는데 아내는 아직도 2.4km나 남았느냐며 이제 겨우 반 왔다는 푸념어린 소리를 합니다.
그러네요 진짜로 반 왔네요
시간은 많이 걸렷는데....
그리고 잠시후 960m에 올라섭니다.
덕산24이라는 삼각점도 있고 또 영봉2.2km,마애불1.2km,덕주사2.7km 의 이정표도 서있고..
조금 서두르기로 합니다,
영봉 가는길
헬기장
◎ 송계삼거리/영봉1.5km,덕주사3.4km,동창교2.8km(12:18)
이제부터는 길좋은 능선길이니 만큼 조금난 서두르며 금방 갈수 있는길....
30여cm정도 싸인 능선의 눈길...
잠시후 눈덮인 헬기장에 도착
영봉을 배경으로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여서는데....
송계 삼거리 입니다.
영봉1.5km,덕주사3.4km,동창교2.8km의 이정표도 있고...
그리고 그옆에 지도도 있네요
보덕암쪽으로하산하고 싶지만 차량 회수할 방법이 없네요
나중에 하산할 삼거리라는걸 이야기 하고는 다시 출발합니다.
신륵사 삼거리
보덕암 삼거리
영봉 가는 계단길
중봉..하봉
◎ 월악산 영봉(1097m)(12:57)
잠시 내려서는 안부...
다시 이어지는 길은 영봉 알릉아래까지 이어지더니 길은 암릉을 돌아서 나가는듯...
잠시 이어지는 사면길에 그리고 내리막길에....
영봉0.8km,덕주사4.1km,신륵사2.8km의 이정표가 있는 신륵사 삼거리에 섭니다.
본격적인 영봉 오름길이지 싶습니다.
암릉밑으로 설치 되어 있는 데크길이며 게단길...
낙석을 방지한다는 철조망이 있긴 하지만 ...
그렇게 또 오르내리는 계단길과 함께 잠시후 보덕암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에 섭니다.
영봉0.3km,신륵사 삼거리0.5km,보덕암3.7km의 이정표를 두고 가파른 계단길따라 올라서는길.....
암릉아래로 펼쳐진 계단길 중간즈음에는 나무가 하나 누워 있네요
거의 기다시피 나무아래로 통과 하는길...
제거를 해야 겠는데...
그렇게 올라서는길은 마지막까지 계단길따라 올라서는 가운데 정상석이 있는 월악산 영봉에 올라섭니다.
1097m의 월악산 영봉
차디찬 눈바람이 불어 올라옵니다.
정상에 서있기가 무서울 정도로 찬바람이.....
그렇게 서둘러 인증삿을 찍고는 뒤돌아 내려서는데...
구름도 많이 끼고 눈이 날리기 사작합니다.
◎ 송계삼거리/영봉1.5km,덕주사3.4km,동창교2.8km(13:43)
오후부터 눈이 올거라더니 진짜로 눈이 올랑갑네 라면서 걸음을 제촉하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산님 네분이 영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제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바람을 피헤 잠시 쉬면서 빵으로 배고픔을 달래며 내려서는데...
송계 삼거리입니다.
우리가 하산할 길은 동창교 쪽입니다.
갈지자의 하산길.....
◎ 월악산 산신당(14:27)
2.8km남은 거리...
눈은 점점 짙어지고...
바람도 점점 세차고..
자연적으로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길은 무명봉을 왼쪽으로 돌아 나가는듯 싶더니 영봉1.9km,송계삼거리0.4km,동창교2.4km의 이정표를 남기고 가파른 하산길이 이어집니다.
눈속에 조망도 전혀 없는 갈자자의 길...
가끔식 영봉만이 보일뿐...
이곳으로 올라오면 고생스럴울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잠시후 추위속에 김밤및 컴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가족 산님 세분을 추월하고 내려서는길....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더니
영봉2.7km,송계삼거리1.2km,동창교1.6km의 이정표도 있고..
그리고 전망대 에 내려섭니다.
하지만 눈이 휘날리는 조망은 기대할수 없는 처지라 빨리 하삲는게 급선무일것 같아 곧장 내려서기로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길...
돌계단길이 이어집니다.
그것도 가파르게....한참이나...
그의 게곡까지 이어지는 계단길따라 내려서는데 상수원 어쩌구 하는 팻말을 지나 월악산 산산각에 내려섭니다.
그유래를 보면 월악산 산신제는 고려(고종14년)시대에 국행제로 지낼만큼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발전에 중요한 역활을 하고 원나라 동정원수가 대군을 이끌고 고려조를 침략하여 압록강을 건너와 충주성을 공격할때 우리지역에 폭풍우를 몰고와 비바람과 천둥번개를 일으켜 원나라 군대가 정신을 못차려더이상 충주성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였던 중요한 역활을 한 충신의 산신제 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조선시대에서는 매년 정월과 시월에 관행제로 월악산 산신제를 지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일합방이후 우리정기 말살 정책으로 관행제를 못하게 함으로 송계주민들이 대동데를 지내오고 있으며 1978년 무속신앙을 철페함에 따라 산신당이 철거, 그리고 1983년 송계리 주민들이 다시 재건하여 지내 왔으나 건물의 노후로 철거 하고 2000년도에 다시 신축 매년 정월과 시월에 한수면 주민들의 평안을 위하여 산신제를 지내고 잇다는 설명입니다.
문이 잠겨 잇는 산신당....
다시 내려섭니다.
자광사
날머리
579번 도로
◎ 덕주골 주차장(15:00)
잠시후 내려서는 길은 자광사입니다.
그리 크지 않은 절집 염불소리가 흘러 나옵니다.
잠시후 579번도로에 도착 함으로 산행을 끝내고 차량이 있는 덕주골까지 이어지는 길따라 걸어서 올라가는데 제법 멀군요
눈이 날리는 579번도로..
동서울 가는 버스가 덕주골에서도 있네요
거의 1시간 간격으로....
그리고 잠시후 20여분만에 도착 차량을 회수 합니다.
눈이 많이 오기전에 이곳을 벗어 나야 하는데라면서...
덕주골
◎ 세계사(15:10)
올라오다 어제 못 가본 미륵리 마을을 둘렀다 가기로 합니다.
미륵마을로 들어 서는데 이곳이 높은 지역만큼이나 눈이 제법 바닥에 깔렸네요
셰계사 내의 주차장에는 버스가 한대 들어 와서 손님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해서 곧바로 차가 올라가는길꺼지 가볼 요량으로 올라서는데...
하늘재 가는 갈림길도 나오고....
하늘재는 백두대간길의 포암산 올라가는 안부이죠
다시 길따라 이어지는곳은 대광사입니다.
돌로 조각하는듯한 인상을 주는 대광사
많은 눈이 내려 금장 돌아서게 합니다.
내려서는길에 미륵리 불두도 보고...
그리고 잠시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는 세계사로 올라섭니다.
눈속에 펼쳐진 광경 내가 꼭 캄보디아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정도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법주사 말사인데요
신라 51대 진성여왕 때부터 국운이 쇠퇴해지기 시작 전국 각지에서 궁웅이 활거하고 도적이 활개치니 내란기로 접어 들때즈음 완산주에 본거지를 둔 견훤이 경주로 처들어가 포석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경애왕(924-927)을 죽이고 왕족인 김부를 왕으로 세우니 그가 곧 신라의 마지막왕 경순왕(927~935)입니다.
그리고 경순왕은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지만 고려왕조를 개국한 왕건에게 더 가까이 하여 즉위 5년만에 왕건을 경주에 초청 임해전에 머물게 함과 동시 큰 잔치를 벌이게 했고 이때 그의딸 낙랑공주를 데리고 왔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만난 마의 태자와 비련의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왕건이 경주를 떠남에 마의 태자도 함께 동행하기를 바랬으나 완곡하게 거절..
그리고 해가 거듭됨에 따라 민심도 이반되고 나라를 걱정하는 대신들이 고려에 빌붙어 권력을 쟁취하려는 자들때문에 경순왕은 문무대신을 불러 모아 전쟁을 일으켜 백성을 희생시키니 고려에 귀부하자며 어전 회의을하는데...
이에 마의 태자는 국가의 흥망은 천명에 있을터인즉 충신들과 민심을 수습 죽기로 나라를 지킬지언정 어찌 천년 사직을 넘겨 주느냐며 만류 해보지만 경순왕은 김봉휴에게 투항할것을 전달하고 이어 경순왕은 문무대신을 거느리고 송도를 향해 떠나니 그행렬이 30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왕건은 친히 경순왕을 맞이하며 상부로 대접 그리고 그의 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삼게 하며 경주를 식읍으로 내려서 신라 56대 992년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이에 나라를 빼앗끼고 사랑하는여인마져 잃게 되자 태자는 덕주공주와 평민복으로 갈아 입고 금강산으로 향하는길에 월악산 미륵리에 둘러 불상을 조성하고 절을 창건했다고 전해 지지만 확실한 기록은 만아 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설에 의한 이야기 인셈이죠
미륵세계사는 보물 제96호로 정해진 미륵리석불입상 은 충주시 수안보면(구 상모면) 미륵리에 위치한 높이 9.8m의 거대한 미륵입상으로 건립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이 없으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륵리사지는 고려초기의 석굴사원터로, 이 사원은 전실과 주실이 북향하는 특이한 배치이며, 주실에는 독립된 미륵불입상이 중앙에서 북향하여 멀리 월악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륵불입상과 석등, 오층석탑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단탑식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는데요.
석굴에는 본존불로 모셨던 석불입상이 있고, 이곳의 지명이 미륵리로 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석굴사원의 이름이 미륵세계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부르고 있고요
설로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의 망함에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입산하러 가던 길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 덕주사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덕주사마애불(보물 제406호)을 조성하였고, 태자는 이곳에 석굴을 창건하고 미륵리 석불입상을 북쪽으로 두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미륵리 석불입상은 모두 5개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고 1개의 얇은 돌로써 갓을 삼았는데요.
둥근 얼굴에 활모양의 눈썹, 긴 살구씨 모양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 초기 커다란 불상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신체는 단순한 옷주름의 표현이라든가 구슬같은 것을 잡고 있는 손의 묘사 등에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간략함을 느낄 수 있네요
다시 돌아 나옵니다.
내리던 눈은 차를 하얗게 덮을 정도로 많은 눈으로 바뀌고 사우나라도 하고갈 계획은 서둘러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조리조트에 둘러 아들을 태워 울산으로 돌아 옵니다.
세계사 오층석탑
미륵리석불입상
세계사
세계사
사조리조트
눈내리는 사조 리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