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달
- 정준일
도립안동의료원의 한 병실에는
여섯 병상 모두 할머니 환자만 있다
<절대안정>표시 아래 누운 환자, 늙은 남편이
아침햇살 비치는 블라인드를 걷자
허리 보조기를 차고 앉아있던 할머니가 문득
오늘이 보름 맞재요
저녁 묵고 점부 옥상으로 달 보러 가입시더 한다
몇 몇 환자들이 반가이 동의한다
병실에서도 잘 보일 것 같은데요 하고 참견했더니
암만해도 높은데 사람이 머여 볼꺼 아이껴 한다
동산에 올라 달을 보던 시절 아득한데
휠체어에 앉은 쭈글쭈글한 얼굴들과
링거병을 들고 함께 선 남편들이
팽팽한 첫 달 기다리는 모습 생각에 우습다.
웃을 수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랐다가
곧 다시 엘리베이터로 내려올 짧은 길이나
결코 수월할 리 없는 길
환하고 둥근 달이 뜨면 무엇을 빌어야 할까
상황극을 본다고 생각하십시오.
무대는 현대문명의 총아인 병원 병실입니다. 시골 노인들로 분장한 배우들이 보조기를 하거나 링거병를 매달고 있습니다. 한 배우가 아침에 블라인드를 걷자, "오늘이 보름 맞재요"하고 말합니다. 웅성거리며 그들이 갑자기 저녁에 옥상에 올라가 달을 맞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한 번 상기하건대, 거기는 "절대안정"을 최고의 삶의 조건으로 하는 회색이 지배적인 병원입니다. 그 공간에 아직도 새해의 첫 달을 마중해야 한다고 믿고, 그 둥근 달처럼 구김 없고 팽팽한 소원을 하늘에 걸어두어야 한다고 믿고, 그 소원이 일월성신의 빛처럼 고르게 삶으로 내려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팽팽한 첫 달 기다리는 모습"에서 일치합니다. 그 순간 그들은 소년 소녀처럼 변합니다. 물론 현대는 그들에 대해 "병실에서도 잘 보일 것 같은데요"라고 회의(懷疑)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암만해도 높은데 사람이 머여 볼꺼 아이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이 확신은 어리석음과 통한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현대의 회의를 무색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오히려 어려지고 순박해진 그들의 확신은 현대의 객관과 냉정함에 균열을 내며 둥근달을 불러옵니다. 계산하는 현대가 밀어낸 '마중하는 삶'을 불러옵니다. 그러자 현대문명의 회색 얼굴에 알 수 없는 난처한 표정이 생깁니다. 그게 바로 "환하고 둥근 달이 뜨면 무엇을 빌어야 할까" 하는 장면입니다. 그 표정으로 하여 '절대 안정'(혹은 안전)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회색공간은 (표정을 가졌다는 점에서) '따뜻한 공간'으로 변화합니다.
극은 여기에서 끝납니다.
그리고 "환하고 둥근 달이 뜨면 무엇을 빌어야 할까"라는 여운에는 두 개의 파동이 간섭현상을 일으킵니다. 하나는 그 분들 각자의 일그러지지 않은 소원이고, 다른 하나는 '마중하는 삶의 양식'입니다. 그리고 그 간섭이 만들어내는 현상은 관계의 그물을 살리는 세상입니다. 물론 그것이 퍼져나가는 공간은 현대적 삶이라는 무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