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의 조우, 이런 경우 해결의 길은 과학이 우선할까요, 언어가 우선할까요? 참 기발한 생각입니다. 그야 당연히 과학이라고 여태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이성입니다. 그것이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에 신뢰를 둡니다. 그러나 과학이 범접하기 힘든 분야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요. 어쩌면 종교적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은 여러 가지 자연현상과 반복해서 나타나는 사건들로 증명이 됩니다. 그래서 더욱 신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특이한 현상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실 과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요. 반면 그에 상관하는 언어는 분명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의 일반적인 반응은 적대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그리고 그 처리 방법이라는 것이 대부분 물리적 대응이지요. 없애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여태 보아온 SF 영화의 대부분 줄거리가 그렇게 짜여 있습니다. 물론 그 낯선 것들이 먼저 적대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복하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의 대결입니다. 쉽게 말하면 죽느냐, 살아남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 전쟁은 화려한 액션으로 화면을 장식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화면을 나날이 웅장하게 꾸며주었습니다. 아마도 이제 식상할 때가 되었으려니 예측이라도 한 모양입니다.
어느 날 지구촌 여기저기에 거대한 괴물체가 등장합니다. 도대체 왜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요. 분명 지구 자체의 소산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소위 외계에서부터 날아온 것입니다. 마치 조개 모양의 거대한 물체가 지상에서 사람 키에 하나 반 정도 떠있습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하단의 문이 열리고 닫힙니다. 그런가 하면 거기서 알 수 없는 신호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런 적대행위를 하지도 않고 계속 이상한 신호를 보내고 있으니 언뜻 무슨 의미를 담고 있으려니 짐작합니다. 그래서 저명한 언어학자를 부르지요.
갑작스런 괴물체의 등장은 지구촌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갑니다. 피난을 가고, 사재기를 하고, 각국 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전쟁 준비를 합니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대처 방안을 의논합니다. 그러나 묘책은 없지요. 불안 속에서 시간이 흐릅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결과는 무엇이 될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공포만 늘어갑니다. 그러니 두고 볼 일만은 아니지요. 크게 둘로 나뉩니다. 기다려보자는 측과 깨부수자는 측입니다.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나름 생존을 위한 자구책입니다. 그러니 언어학자의 사명은 빠른 시간 내에 괴물체의 등장 이유를 알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론물리학자 ‘이안’과 언어학자 ‘루이스’가 부름을 받고 현장에서 만납니다. 현장 책임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줄 수가 없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괴물체의 등장 목적을 알아내야 합니다. 온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고 어떻게든 이 물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체는 고사하고 혼란으로 인하여 지구촌 스스로가 자멸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강경파는 전쟁을 선포하고 괴물체를 폭파할 것을 주장합니다. 우리가 먼저 적대행위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무슨 대가를 치를지 모르지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어서 이유와 목적을 알아내야 합니다.
낯선 외계인과의 대화, 가능할까요? 그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들 앞으로 나아갑니다. 무기를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그마한 칠판을 들고 갑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부터 소개합니다. ‘나는 사람’이고 ‘내 이름은 루이스’라고. 상대방에게서 신호가 옵니다. 그리고 그림 같은 문자가 나타나지요.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소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일촉즉발 전쟁의 위기 속에서 시간 싸움을 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소통을 하려니 해석이 필요하지요. 그 속에서 언어학자답게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더구나 그들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실 언어란 정신과 더불어 시간과 문화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참으로 생소한 SF 영화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매우 종교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괴물체가 지구촌 여기저기 12 곳에 등장합니다. 왜 하필 열두 개 열두 곳일까? 더구나 외계의 낯선 대상과 싸움이 아니라 소통을 시도합니다. 어찌 보면 신이란 우리 인간에게는 낯선 대상입니다. 그래도 신은 우리에게 부단히 말씀합니다. 우리 또한 신에게 말을 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때로는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랑으로 접근합니다. 인간은 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신은 또한 인간을 사랑하며 접근해 옵니다. 그 사랑은 언어로 나타나고 급기야 사건으로 등장합니다. 결국 우리 눈에서 사라지지만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신의 세계는 시간의 세계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아우르는 시간의 세계이지요. 어느 한 점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 모든 시간 속에 있습니다. ‘루이스’는 그 속에서 그 시간을 보게 됩니다. 영화 ‘컨택트’를 보았습니다. 우리말로는 ‘컨택트’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원제는 ‘네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루이스’가 ‘이안’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를 보며 지나간 사건을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