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불러서 아름다운 여자
조 종 영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여자들의 바람이 거세다. 날씬하고 아름답기 위한 여성들의노력이 가히 눈물겨울 정도이다. 이런 세상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여자가 어찌 아름답게 봐주기를 기대할 것인가.
남자의 배는 재력과 인격으로 생각하고, 여자는 적당한 살집이 있어야 부잣집 맏며느릿감으로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뚱뚱하거나 배가 나오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세상이다. 날씬한 미인을 꿈꾸는 여성에게 비만은 원수 같은 존재요,만병의 근원이 되는 건강의 적이니, 뱃살을 줄이려는 필사의 몸부림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여건은 비만으로 배가 나오고 들어간 것이 문제가 아니다.나라를 건사하려면 인구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젊은 부부들이 출산을 꺼리는 바람에심각한 문제에 당면하고 말았다. 우선은 여자의 배가 불러야 출산을 할 것이 아닌가.그런데 배가 나와야 할 사람은 안 나오고 안 나와야 할 사람들이 배가 나와서 걱정이다. 이런 세상에 배가 나와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배 타령은 그야말로 복에 겨운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싶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임 부부의 출산율이 1.08 명이라고 한다. 온갖 방법으로산아제한을 권장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낮은 나라로 사정이 바뀌었다. 40여 년 전에는 정부가 산아제한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었다. 산아제한의 전위대였던 가족계획협회는 인구팽창으로 지구가 폭발할 지경이니 제발 애 좀 낳지 말라고 집집을 누비며 설득했다. 가임 부부에게는 아예 생식기능이 제구실을 못하게 불임수술까지 해주었다. 향토예비군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받으면 그날 훈련을 면해주었으니 얼마나 산아제한에 적극적이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출산장려정책을 요란하게 내놓고 있다.제발 애를 낳지 말라던 가족계획 협회는 인구보건복지협회라고 이름을 바꾸고 출산장려사업에 뛰어들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출산장려금 등의 혜택을 내세우며 애를 많이 낳으라고 발 벗고 나서게 되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을 느낀다.이러한 출산 기피 현상은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활동과 육아, 교육 문제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욕망도 하나의 원인이 되지않을까 싶다.
엊그제는 집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자마자 운이 좋게도 금방 앉아 갈 수가 있었다.요즘은 자리 양보에 아주 인색한 세상이다. 시내버스 앞부분에 노약자석이라고 써 붙여 놓은 좌석은 젊은이나 학생들이 차지하고 노인은 그 옆에 서서 가는 모양을 자주수 없다.
목격한다. 제구실을 못하는 노약자석을 바라보며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버스가 출발하고 두 번째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버스 안은 서 있는 승객으로가득했다. 내 좌석 옆에 기둥처럼 세워진 파이프는 서 있는 사람이 잡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비좁은 버스에서 무심코 옆을 바라보니 어느 여자가 그 파이프를 잡고서 있었다. 서있는 여자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남산만 한 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흔히 여성들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그런 배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한 희망의 배였고, 반드시 축복받아야 할 아름답고 성스러운 생명의배였다. 나는 운 좋게 얻은 그 좌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젊은 여인은 미안한 얼굴로 한 번 사양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버스가 시내에 도착하자
"여기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얌전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조심스럽게 버스에서 내렸다. 차창으로 보이는 거리에는그 젊은 여자가 터질 듯이 부른 배를 한껏 내밀며 자랑스레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배가 부른 여자의 모습이야말로 여자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일어선 자리에서 잔잔하게 밀려드는 흐뭇한 감정을 기쁘게 맞이하고 있었다. 배가 불러서 아름다운 그 여자가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의 수정 같은 눈망울을남기고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