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드락 또드락
요즘 받아보는 카톡에는 노령(老齡)에도 건강하게 사는 법이 대세(大勢)다. 대부분 고개가 끄덕여지나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안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누누이 말했듯이 핑계는 ‘나이 탓’이고, 어제오늘의 활동력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구십 노인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을 헐떡이던데, 팔십오 세인 내 나이도 속일 수 없다는 거다. 그래도 누군가가 건강하신가요? 라고 묻는다면, 시치미 뚝 떼고 아~ 예,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할 거다. 아픈 걸 말 안 하면, 안 아픈 거나 다름없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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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활발하게 의욕적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다락방을 내려서면 닭장이 매우 시끄러워진다. 먼저 닭장으로 다가가면, 닭장 안을 차지하고 있던 참새떼가 우루루 달아난다. 열댓 마리의 닭(청계)에게 물을 챙겨 주고, 사료통에서 사료를 퍼다 뿌려준다. 서로 먼저 쪼아먹겠다고 달려드는 닭들의 경쟁이 볼만하다. 밭에 올라가면 할 일이 이것저것 눈에 밟힌다. 밭고랑에 질펀하게 깔린 쇠비름이나 허리까지 커 버린 명아주를 뽑아줘야 한다. 비둘기가 빼먹은 콩밭의 빈자리에 땜질도 해야 한다. 일기 예보대로 가랑비가 솔솔 뿌리기 시작한다. 이슬비도 오래 맞으면 옷이 젖는데, 비를 피해서 얼른 들마루로 올라앉는다. 아, 꼬마신랑 이야기가 생각난다. 과년한 신부가 임신한걸, 의심하는 부모에게 꼬마 신랑이 자기 아내의 편을 드는 장면이다. "이슬비도 오래 맞으면 옷이 젖는 법입니다!" 또드락 또드락, 스마트폰 자판이 바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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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거나 어두운 글은 쓰지 말자. 학문적이거나 논란을 일으킬 만한 글도 피하자. 그럴 능력이나 실력도 없잖은가 말이다. 밝고 가벼운 글을 쓰면 좋겠다. 한번 읽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잊을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 ‘나의 일상’을 그렇게 채워가고 싶다. 오늘은 어떤 내용을 쓸 수 있으려나? 둔덕진 작은밭에서 일을 하는데, G. 펜션의 S. 사장과 도우미가 지나다 밭일하는 날 보고 잠시 머물러 선다. "오래간만에 산책 좀 하려고 나왔어요. 도우미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매우 열정적으로 일할 나이에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그를 보는 건 매우 안타깝다. 두 사람이 천천히 비탈길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다시 호미질을 계속한다. 얼마 후에 "천천히 쉬어가면서 하세요!" 하는 S. 사장의 목소리에 잠시 일손을 놓았다. 몇 번 만나본, 곁에 따라오던 도우미가 미소를 지으며 날 보고 한마디 한다. "어르신은 멋쟁이 같아요! 인간적으로, 멋쟁이 같으세요!" 멋쟁이는 아니고 멋쟁이 같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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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팽팽하던 젊은 시절이 언제 있었던가?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불러들이고, 기력과 기억은 하나둘 몰아내고 있다. 어느새 머리숱은 줄어들고 희게 채색되었다. 젊음과 노년을 비교함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사진 속에 보이는 노년의 내 모습 속에서 팔팔했던 젊음의 때가 오버랩 되어 빠르게 스쳐 간다. 가는 세월 막을 자가 없다고 누군가 노래하더라만, 이런저런 사연을 담고 ‘때에 맞춰서’ 세월은 빠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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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를 품은 바람이 등짝을 덥히듯 후끈하다. 더위와 가뭄에 늘어져 가는 넝쿨 콩에 물을 한 모금씩 주다가 말았다. 들마루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경운기 발동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이웃의 U. 씨가 경운기에 1톤짜리 물통을 싣고 와 콩밭에 물을 대고 있다. 우리 밭에도 저렇게 물을 흠뻑 뿌릴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기구가 없으니 생각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먹으면 되지, 뭐! 절반의 농군이라 자처하는 내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하는 거다. 기독문학 24집을 챙겨왔기에, 들마루에 앉아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 함금태 님의 '아랫목', 김승대 님의 동화 한 꼭지, 김미정 님의 소설 '호박 고구마', 이귀란 님의 '솟대' 등... 몇 번을 읽은 거지만 처음 대하듯 새로운 건 왜일까? 이미 읽었던 그 내용들을 깡그리 잊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목사님, 설교를 들어도 금방 다 잊어버려서 속상해요!" 이렇게 말하는 신자에게 Y목사님의 농담 같은 한마디, "당연히 잊어야지, 설교를 듣고 다 기억하면 목사가 설교를 어찌 해먹누?" 살아가면서 지난날의 해묵은 사연은 잊고 사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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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라고 하는 것은 ’시간 보내기‘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각자 삶의 현장에서 육하원칙(六何源則)에 따라서 시간을 보내는 게 바로 사는 거다. 나는 지금 복음의원의 컴컴하고 좁은 지하 주차장에서 어쩌다가 앵앵거리는 모기를 쫓으며 시간 보내기 중이다. 아내가 진료받는 시간이 적어도 한 시간은 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는 가뭄에 타들어 가는 농작물(참깨, 들깨, 옥수수, 오이, 호박, 가지)의 안쓰러운 모습으로 가득 찼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내리신다는 믿음은 변함없다. 때가 되면, 농작물이 소생할 수 있는 단비를 내려 주시리라! 수확의 질량(質量)에 차이가 날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그 또한 창조주 하나님의 소관임은 분명하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지혜롭게 시간 보내기를 해야 할진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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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내 말을 잘 들어줘서 차~암, 고맙네! 앞으로 가자면 앞으로, 뒤로 가자면 뒤로, 우회전도, 좌회전도, 회전하는 두뇌의 지시에 잘도 따라준다. 쉬었다 가자면 쉬기도 잘 하지만, 고속도로에선 늦장 부리는 차를 추월하려고 냅다 내달리기도 잘한다. 서행이 필요할 때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으면, 밟는 대로 속도를 늦춰 주고... ☆'96년도에 무녀도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고 군산을 드나들었었다. 어언 4반세기를 훌쩍 넘긴 세월이 흘러가는 중이다.☆ 처음으로 운전하게 될 때, 기아자동차 판매왕이던 다섯째 아우가 한 말을 기억한다. "운전이 체화(體化)되면, 자동차가 신체의 일부처럼 되어 맘먹은 대로 차가 움직입니다."
인지능력의 저하가 모든 활동 영역에, 그리고 자동차 운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는 올해의 인지능력 검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여, 운전면허가 3년간 연장되었다. 승용차 RAY를 몰고 처음 운전을 배우던 무녀도를 다녀왔다. 마지막 장거리 운전이라 여기고, 지난 화요일에 새만금방조제를 달려 보있다. 그 감회를 글로 표현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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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일을 훌쩍 넘겼다. 새로운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직도 원고 한편을 못 보내고 있다. 지각생은 언제든지 지각할 확률이 높다고 쓴 적이 있는데, 바로 내 이야기를 한 셈이다. 이미 써놓은 글을 뒤적이다가 짜깁기를 하고, 수정을 해 보면서 여전히 망설인다. 이런 어설픈 글을 활자화해도 괜찮은 걸까? 농번기를 보내며 농사일을 멈출 수는 없고, 육신이 고단하니 머리는 텅 빈 듯하다. 생각하는 게 싫으니 멍때림이 최상의 일상이 되고 있다. 가로수에서는 매미 소리가 요란스럽다. 여름을 구가하는가? 여름이 가는 걸 애달파하는가? 오늘은 병원 지하 주차장을 피해서 무심천 변에 주차한 후, 아내가 진료를 마치고 전화 하기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열었다. 또드락 또드락! 자판이 또 바쁘다. -觀-
이관수 목사 : 청주서문교회 명예목사, 2015기독문학 수필 등단,
첫댓글 나는 NAVER를 사용하지 않는다.
NAVER.COM 이메일을 열어보려고 새로 가입을 시도하다가
번번이 마지막 부문에서 '인증번호를 확인 하라; 에서 중단된다.
그래서 결국 네이버로 원고 보내기를 포기했다. ^^ -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