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5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사랑의교회 30주년 기념예배에서 오정현 담임목사는 사랑의교회의 향후 30년의 포부를 밝혔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뒤의 것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으로 곧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을 의미한다”며 “향후 사랑의교회 30년은 ‘용서의 복음’에 투철한 교회가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어서 그는 “우리나라는 좌우, 세대간, 계층 간 갈등으로 상처가 너무 많다”면서 “강력한 용서의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사랑의교회가 좌와 우를 치료하는 강력한 중보자로 비상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1978년 서울 서초동에서 교인 9명을 앉혀놓고 시작한 사랑의교회가 나이 ‘서른’을 맞아 향후 30년을 향해 밝힌 포부는 이 나라의 좌우, 세대간, 계층 간 갈등으로 찢어진 상처를 치유하는 중보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강력한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겠다는 것이다. 이 나라 개신교회들 중 그 어떤 교회보다도 민족지향적 성향이 강한 사랑의교회는 오목사를 선두로 하여 줄곧 사회 변혁을 위한 사회복음에 매진해 왔고, 이들의 향후 30년 역시나 사회복음을 위한 사역이 될 것임을 30주년 기념예배를 기점으로 천명하였다. 그들의 30주년 기념 5대 비전 가운데 ‘민족을 치유하는 섬김공동체,’ ‘사회를 변혁하는 정감(정직·감사)공동체’를 설정할 정도로, 그들은 사회복음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사랑의교회처럼 사회복음을 추구하는 교회들에서 들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설교와 재림에 대한 소망이 담긴 믿음의 고백이다.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바로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이런 일들을 증거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12,20). 그들이 ‘복음’을 운운하면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다시 오심을 설파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복음이 주님의 피와 무관한 ‘사회복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천년왕국을 인간의 힘으로 사회 변혁을 통해서 이뤄보고자 하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는데, 그래서 그것이 결국 이르는 곳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무신론 후·무천년주의이다.
후·무천년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들의 또 다른 특징은 교파와 교회를 초월한 에큐메니즘을 따른다는 것이다. 사랑의교회 역시나 특별새벽기도회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와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를 강단에 세워옴으로써 에큐메니즘적 성향을 강력하게 보여 왔다. 서로 교리가 달라도 십자가는 하나라는 미혹에 넘어간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가 하나라면 그것의 복음이 왜곡되게 전달되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장로교의 칼빈주의 5대 강령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예정되고 선택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고 지옥으로 간다는 이단교리이고, 순복음 역시나 죄인이 거듭난 후 성령을 또 다시 받으며 그 증거가 방언이라는 비성경적인 이단 교리를 가르친다. 장로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연합 사업을 펼친다. 두 이단 교리가 모여 새벽기도회를 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일인 것일까? 그들 모두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들이 하나의 십자가 아래 연합했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킨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그것도 한 문맥에서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는가?(갈 1:7-9)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15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기를,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우리가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에게 이르리니 그는 머리시며 곧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 진리와 무관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회를 변혁시키고 민족을 치유하는 일은 애국주의자나 민족주의자에게는 좋은 일일지 모르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에게 맡겨진 일은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세상(유대인과 이방인)”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전 10:32). 교회가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그 일을 사명으로 여기지만, 교회의 휴거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여 죄인들을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멸망할 세상을 변혁시키려 하지 않고 그 세상을 통치하는 마귀들과 영적 전쟁을 치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지상 기관이기 때문이다. 좌파와 우파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중화시키는 것, 세대·계층 간의 깊어진 골을 메우는 것,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주님은 이런 일들을 위해 피를 흘리지도 명령하지도 않으셨건만(마 28:19,20), 사랑의교회는 주님과 무관한 그 일들을 교회의 사명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되었든지 주님을 두려워하여 잘 섬기고자 한다면, 그는 교회들의 인본주의적 성향에 자신의 믿음을 팔아서는 안 될 것이다. 육신을 입고 있기에 육신적인 “인간미”에 매혹되기 쉽지만, 진리를 바로 알 때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서 바르게 공부하라고 하시는 것이다(딤후 2:15). 이것은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마 28:19)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로 변개시킨 한글개역성경을 근거로 한 제자훈련용 성경공부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제자훈련 30년에 한국 교회가 무엇이 나아졌는가? 과거 옥목사의 뼈저린 고백대로 교회 안에 세속주의만 가득하지 않은가? 바른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그것은 성령께서 쓰시는 도구가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잠시 후면 주님은 7년 대환란이 있기 전에 그분의 몸인 교회(건물 교회가 아님)를 땅에서 셋째하늘로 들어 올리실 것이다(살전 4:16,17).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몸의 참된 지체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교회라면 세상이 소란스러워질수록 서로가 휴거될 것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8). 이외에 다른 일들, 즉 세상에 관심을 두는 것은 휴거를 앞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일이 아니며, 그런 일을 하는 곳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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