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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04
S#1. 시연 동네 골목 일각 (밤)
한 쪽은 맨발인 채로, 또 한 쪽엔 여전히 슬리퍼가 신겨진 채 바닥을 끌며 걸어가는 재복의 발 C.U.
울음은 멈췄지만, 눈가에 남아있는 눈물자국을 닦으며 걷는다.
입술을 앙 다문채 애써 목울음을 참느라 꺽꺽대다가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다.
재복 : 딸꾹, 아, 씨. 목젖 놀랬네. ...아, 씨. 딸꾹... 딸꾹. (그러면서 남아있는 눈가의 눈물을 손등으로 박박 닦아댄다)
아씨, 눈 따거. 씨, 욕 나올라 그래이, 씨. 딸꾹.
그러다가는 손을 내리곤 가만히 멈춰선다. 정적... 목울음도 멈추고 걸음도 멈추고 휑한 듯 발만 바라본다. 간간이 딸꾹질만 한다.
한참을 발만 보던 재복이 가만히 장본 비닐 봉투를 담 옆에 내려 놓는다.
그리곤 한 발만 끌던 슬리퍼를 벗더니 슬리퍼를 땅바닥에 힘껏 내다 꽂는다.
그리곤 다시 주워 내다 꽂고, 다시 주워 내다 꽂다가 땅바닥에 앉아 슬리퍼가 떨어져라 손으로 찢어대고, 급기야 물어 뜯는다.
암말도 않고 웃기는 생쇼를 한다. 딸꾹대면서...
재복 : 딸꾹... (슬리퍼를 두 손으로 찢어대면서 큰소리로...) 딸꾹질 좀, 고만해이, 씨. ...딸꾹.
S#2. 시연동네 일각 코너 (밤)
뒤쪽에서 재복을 바라보던 시연. 걱정스레 재복의 생쇼를 바라만 본다.
시연 : (걱정스런 눈빛과 음성으로) 처절하게두 논다. ...(정말 걱정된다) 쓰레빠 끈에 목매달겠다, 쟤.
(화들짝 놀라서 눈이 똥그래진다) 잉?
간 파먹다 들킨 구미호처럼 재복이 시연쪽으로 고개를 획 돌린다. 잽싸게 담 뒤로 몸을 숨기곤 숨을 멈춘다.
그리곤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재복쪽을 보면, 재복이 무섭게 맨발로 시연쪽의 길로 달려 내려온다.
다시 몸을 숨기는 시연.
담 밑 시연을 지나쳐 뛰어 내려가는 재복.
시연이 담 밑에서 나와 뛰어가는 재복의 뒷모습을 보려는데, 재복이 다시 획 등을 돌려 선다.
시연과 시선을 마주치는 재복. 재복은 퉁명스런 눈으로 시연을 본다.
시연 : (놀라서 엉거주춤 다시 담 뒤로 몸을 숨기려다가 바보같이 웃는다) 히.
재복 : (퉁명스레) 그냥 지나치는 줄 알았지? 나의 극적인 설정에 순간 당황했지?
시연 : (낄낄 웃는다) ...그런 식으로 휙 도니까 참... 그르네에? 당황스럽네에? (귀엽게) 오빠. 나, 당황.
재복 : ...(시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진지하게) 시연아.
시연 : 응?
재복 : (무표정하게 대뜸) 너 왜 오빠래?
시연 : (아무렇지도 않게) 오빠잖어.
재복 : (불만스럽게) 근데, 왜 맨날 생양아치 쫄따구 삥새끼라 그랬어?
시연 : (물끄러미 재복을 바라본다) ...오빠.
재복 : 진실을 밝혀 봐. 딸꾹.
시연 : (재복의 등에 폴짝 업힌다) 발 아퍼, 오빠.
재복 : (순순히 업어주며 인상을 쓴다) 아, 씨. 신발 뜯어져서 맨발이야아. 나두 발 아퍼어.
시연 : (별일 아니라는 듯) 참어. 그게 진정한 오빠야.
재복 : (시연을 업은채 대뜸) 오토바이 사줘. 딸꾹.
시연 : ...(애잔한 목소리로) 오빠.
재복 : (걷기 시작하며 퉁명스레) 오토바이..
시연 : ...이재복. (한동안 말이 없다. 쓸쓸한 음성으로) 너 울면, ...나 맨날 이렇게 업힌다아?
재복 : (퉁명스레) 내가 왜 울어? 사나이가 왜 울어? 딸꾹. ...근데 사나이두 딸꾹질은 해. 딸꾹.
시연 : 내 가슴, 가짠 거 알어?
재복 : (퉁명) 실리콘 덩어리.
시연 : ...(생각에 젖듯 또박또박 일정한 어조로) 내 가짜가... 니 등에 찰싹 달라 붙으면... ...너한테두 전염이 돼.
...(슬픈 듯) 니 등짝에 붙은 불행두, ...내 실리콘 가슴처럼 가짜가 돼. ...그러니까 니 불행두 가짜라구.
...그러니까 니가 우는 것두 가짜라구. (한동안 말이 없다) 그래서... 진짜는 행복하다구. 나랑 행복하다구.
재복 : ...(시연을 업은채 멈추어 선다) 너... (앞만 보며 어렵게) ...그 사람... ...봤냐?
시연 : (의아한 듯) 그 사람? ...무슨 사람?
재복 : ...(흠칫, 괜시리 인상을 긁으며 짜증이다) 누가 그 사람이래? ...눈사람 봤냐구우.
시연 : (짜증) 아으씨, 욕 안할라 그랬는데.... (참는다. 차분하게) 오빠, 갑자기 눈사람이 뭐냐아? 한 여름에?
재복 : (왈칵 눈물이 흐르며 땡깡을 부르듯 리드미컬하게 소리친다) 아, 그냥 눈 사람암. 눈사람, 눈사라암. ...한여름에 눈사라암.
시연 : (물끄러미 재복의 뒷통수를 보며 어이없는 말투로) 이 아저씨가 한심하긴 했어두 초딩은 아니었는데...
(훌쩍이는 재복의 뒷통수를 보다가 머리통을 냅다 갈긴다) 인제 고만 징징대. 골 때릴라 그래.
재복 : 아퍼, 씨. 손두 되지게 맵네.
시연 : 어차피 울거면 내 손에서 아퍼라, 삥새끼야. 니 속에서 아프구 지랄하는 거 봐 줄 수가 없다, 내가. ...목두 졸라버려야지.
(그리곤 팔로 목을 조른다)
재복 : ....웩. (시연의 팔을 풀며 시연을 내린다. 그리곤 시연을 바라본다. 낮게) ...시연아.
시연 : 왜?
재복 : (무심하게) 멈췄다, 나.
시연 : 뭘 멈춰?
재복 : (슬픈 듯) 딸꾹질 멈쳤다, 니가 목 졸라서... ...재섭는 딸꾹질. (시연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리는 재복. 어둡게 그늘진다)
그런 재복의 옆 모습을 불안한 듯 바라보는 시연.
S#3. 국의 집 대문 밖 (밤)
부서진 자전거 부품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중아. 아무말 없이 일어서서 부서진 부품들을 줍기 시작한다.
한참을 줍던 중아. 물끄러미 부서진 자전거를 본다.
중아 : (궁시렁) 자전거가 바람핀 것두 아닌데... (그러면서 부품을 맞추기 시작한다. 끼우면 툭 떨어지고, 끼우면 툭 떨어지고...)
...자전거가 바람핀 것두 아닌데.....(끼우기를 멈추곤 자전거를 바라본다) ...바보.
(그리곤 옆 켠에 있는 소주병을 들어본다. 비었다. 소주병 입구에 입을 대며 다시 한번) 바보. (바보소리가 병속에서 울린다)
S#4. 중학교 운동장 (밤)
널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국 L.S.
국이 화났다. 어금니를 물고 뛴다.
본관 옆의 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국 L.S.
텅빈 운동장.
한참만에 다시 건물 현관에서 뛰어나와 본관을 가로질러 물로 뛰어가는 국 L.S.
국 : (뛰어가며 혼잣말) 바보.
S#5. 중학교 체육관 안 (밤)
숨을 헐떡이며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국.
국 : (주먹을 쥐고 큰소리로) 백기웅.
달빛 어린 창가에 매트리스를 깔고 한 무릎을 세운채, 책 한 권을 보던 기웅이 고개를 든다.
기본적으로 힘이 별로 없는 듯한 인상과 몸짓과 말투다. 지루한 눈빛의 소유자다. 키도 작다. 외모도 후지다.
예술가적 기질과 표정이 돋보인다.
기웅 : (부시시 머리를 긁으며 일어선다) 형.
국 : (기웅 향해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며 흥분된 말투) 나, 바보 아니냐? 또 여학생 생활관으로 갔다? 맨날 헷갈리냐아?
나, 바보 아니냐? (그러더니 기웅 앞에서 유도 자세를 취한다) 한 판 뜨자, 바보랑...
기웅 : (귀찮은 듯) 싫은데... 힘두 없구...
국 : (유도자세로 고개를 숙인다) 인사.
기웅 : (귀찮다) 아으... 싫은데... (머리 긁으며 어떨결에 따라 인사를 하며) 머리 안 감아서 가렵구...
국 : (기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빠르게 기웅의 목섶과 어깨를 잡아 바닥으로 내치려할 때)
기웅 : (가볍게 국의 손목을 꺾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절반.
국 : (그 자세로 가만히 누워있다. 그리곤 그냥 천장만 본다)
기웅 : (국 옆에 털퍼덕 앉으며 힘없는 말투로) 삐졌어요? 자기가 아무케나 하구서... 흥분해서...
국 : (여전히 천장만 보며) 너... 태권도 선생님 하드니, ...유도 많이 늘었다.
기웅 : 태권도 가르치는데, 왜 유도가 늘어요?
국 : ...(물끄러미 기웅을 본다) 그걸 내가 어뜩케 아냐? 니가 알지.
기웅 : (물끄러미 국을 보며) 형은 흥분하면, 금붕어 같애요.
국 : (상체를 일으킨다) 그게 뭐야?
기웅 : 운동장 왔다갔다 할 때, 꼭 어항 속의 금붕어 같앴어요. ...싸움하구 싶어요?
국 : (일어선다) 응. 갈게.
기웅 : 고독해요?
국 : 응.
기웅 : 창가에 서 계세요. 달빛 받으면서... 폼나게...
국 : 응. (창가에 턱을 괴고 달빛을 본다)
기웅, 책갈피 속에서 크리넥스를 꺼낸다. 크리넥스 위엔 빼곡하게 싯구가 적혀있다.
달빛을 받아 하늘대고 희뿌연 반투명 크리넥스 시가 창가의 국과 겹친다.
기웅 : 형이 밖에서 왔다갔다하는 거 보구 금방 시 지었어요. (헛기침 한 번을 하곤 시를 읽는다)
지구를 떠 돈다, 태권소년. ...얍. ...날새운 손등에 고독한 핏줄. (국을 물끄러미 본다)
국 : ...(기웅을 물끄러미 본다. 시를 더 기다리는 표정으로)
기웅 : 이게 다예요.
국 : (갑자기 인상을 쓰며 체육관을 쿵쾅쿵쾅 가로질러 문쪽으로 가며 화를 낸다) 무슨 뜻인지 하나두 모르겠다.
기웅 : (닫히는 문을 물끄러미 보다가 매트리스에 눕는다. 그리곤 크리넥스 시를 얼굴 위로 덮는다. 고민, 크리넥스를 걷어내며)
태권소년이 좀 과한가? (시를 본다) ...얍. ...얍을 뺄까? ..말까? 금붕어? ...지구를 떠돈다, 금붕어. ...에? 괜찮다.
상당히 괜찮다, 이거. (벌떡 일어선다. 창밖을 본다. 국이 터덜대며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큰소리로) 국이 형님.
S#6. 운동장 (밤)
운동장을 걷던 국이 몸을 돌려 멀리 체육관 창가를 바라본다. 창가에 조그맣게 기웅이 보인다.
국 : ...
기웅 : (큰소리로) 고독해하지 마요. ...그래두... 형은 잘 생겼잖아요.
국 : ...(기웅을 보며 혼잣말)... 나보다 잘생겼나봐, 그 놈. ...나보다 부잔가봐. ...나보다 똑똑한가봐, 그 놈. ..그 새끼....개 새끼...
(눈가가 붉게 젖어온다. 그러나 눈물 흐르진 않는다. 자신이 답답한 듯) 난 왜... (말문이 막힌다. 서럽고 어둡게)
...좀 부족한가 봐. ...많이 부족한가 봐.
쓸쓸히 터덜터덜 걷는 국의 뒷모습.
어두운 운동장 모래 위를 걷는 국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부감.
F.O.
S#7. 시연의 집 INS. (아침)
S#8. 시연의 방 (아침)
F.I.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재복.
앞치마를 두른 시연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선다.
시연 : (단정하게 서서) 오빠, 일어나. 내가 밥했어. 오빠 줄라구...
재복 : (누운 상태에서 게슴츠레 눈을 뜬다) 시연양이 앞치마를 했네?
시연 : 응, 이쁘지?
재복 : ...(흐릿하게 시연을 보며) 참... 꿈 욜라 황당하다. ...이런 꿈 대체로 언잖어. (눈을 감는다)
시연 : ...(물끄러미 재복을 본다. 그러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뛰어서 재복의 몸 위로 점핑)
재복 : 악. (번쩍 눈을 뜬다)
시연 : (재복을 보며 쌕 웃는다)
재복 : (잠시 정신을 차리며) 시연아, 방금 니 꿈꿨다.
시연 : (재복 위에 엎드린 채 자신있는 미소) 무슨 꿈? 이쁜 꿈?
재복 : 앞치마 끈으루 내 목 졸랐어, 니가....
시연 : (인상을 쓰며 버럭) 뻥까구 지랄이네.
재복 : 뻥 아니야아. 너무 무섭드라. 그리구 니가 밥했대. 너무 무섭드라.
시연 : (꼬나보며) ...딱 오늘까지만 참자. (다시 친절한 미소. 재복의 볼을 감싸쥔다) 오빠.
시민 : (문을 벌컥 열고 들어보며) 형. 빨랑 밥먹자, 배고파.
시연 : 생일 축하해, 오빠. (재복의 볼을 잡고 입술에 힘차고 터프하게 키스한다)
재복 : (귀찮은 듯) 아으. 난 왜 태어났나 몰라. 귀찮게... 잠두 못자구, 순결두 뺏기구. (그리곤 하품을 하는데)
시민 : 나두. (재복에게 다가간다)
재복 : 응?
시민 : (그리곤 시연이처럼 재복의 입술에 터프하게 뽀뽀를 한다) 생일 축하해, 형. (그리곤 나간다)
재복 : ...(황당한 표정으로 방문을 나서는 시민의 뒷모습을 보며) 시연아.
시연 : 응.
재복 : 쟤 입술 장난 아니다아. 의외네? 남자두 괜찮네에?
S#9. 시연집 식탁 (아침)
졸린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있는 재복.
신나서 국그릇을 들고 엉덩이를 흔들며 재복을 향해 오는 시연.
시연 : (노래를 하듯) 미이역구, 미이역구. 내가 끊인 미이역국.
시연부 : (수저를 들어 미역국을 뜨며) 먹자.
시연 : (시연부의 수저든 손을 잡는다)
시연부 : 왜?
시연 : ...오늘은 재복군이 주인공이야. (재복에게 수저를 쥐어주며 쌩긋 미소) 오빠가 큐 사인 줘.
시연모 : (시연을 보며 입이 벌어진 채) 하다하다 별 유난을 다 떠네.
재복 : (미역국을 뜨며 귀찮은 듯) 큐. 아으, 조려.
시연부 : (미역국을 뜨며 시연모에게) 내 생일은 몇 달이나 남았지?
시연모 : 왜? 시연이가 미역국 끓여 줄까봐? 보나마나 끓여주는 미역국두 안먹구, 그냥 디비 잘걸? 시연이?
시연 : (여우처럼 웃는다) 호호호. 딱 그런 계획을 가지구 있지, 내가.
시연부 : ...당신이 나한테 시연이처럼 해주면 되잖아.
시연모 : (물끄러미 시연부를 본다) 그럼 수술받어. 재복이 정도루만...
시연부 : (귀엽게 웃으며) 그래두 돼? 견적 한 번 받아볼까?
재복 : (귀찮은 듯 인상을 쓰며) 아이 참. 어머닌 너무 야망이 커. (너무 귀찮다) 내 얼굴, 이거 장난 아니야아.
한국에서 랭킹 안에 들어, 이거. 견적을...나참. 견적으루 될만한게 따루 있지. 아, 나참 야망버려, 어머니. 탐욕스러 보여.
시연 : (재복을 보며 한심한 듯) 참... 얼굴얘기만 나오면, 그냥... (시채와 시해에게) 니넨 형부한테 축하인사 안하냐?
선물이 없으면 축하 메시진 예의 아니냐?
시민 : 난 했는데... (사랑의 화살표를 쏘며) 좋았어, 형?
시연 : (시채, 시해에게) 얼른 날려. 죽기 전에...
재복 : (오바하는 시연을 물끄러미 본다. 시연모에게) 어머니. 나, 힘들어요. 시연이 이젠 미쳤나봐요.
시연모 : 제 삼자인 우린 오죽하겠니?
시연 : (시채와 시해에게) 빨랑 빨랑 해라, 국 식기전에...
시채 : (심드렁) 형부. 축하.
시해 : (심드렁) 미투.
시경 : (밥먹다 말고 재복에게 안긴다) 미 쓰리. (그리곤 재복을 바라보며) 시연 누나가 억지루 시켜서 하는 말인데...
난 형이 정말 좋아.
시연부 : 나두 재복이가 좋아.
시연모 : (새침한 표정으로) 건 나두 그래.
재복 : ...힘들어. 너무너무 힘들어. 이런 행복, 대략 힘들어.
(난감한 얼굴로 붙어 있는 시경에게) 인제 떨어져. 형한테 돈 줄 거 아니면...
시경 : 근데... 사실은... (재복의 손을 잡으며 맑게 미소) 나, 진짜 형이 좋아.
재복 : (찔끔 감동 받을랑 말랑 소심하게 시경을 본다) ...진짜루?
시경 : 응.
시연부 : 나두 진짠데?
시연 : (흐뭇하게 시경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시경 : 나두 커서 형처럼 될 거야.
시연 : (쓰다듬던 손으로 시경의 뒷통수를 빡 친다) 미쳤나, 이게?
(그러다 실수다 싶었는지 재복을 보며 다시 시경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재복 : (시연을 물끄러미 본다. 그리곤 수저를 놓곤 일어선다) 시경아. ...맞아두 싸다.
주변 분위기 썰렁해진다.
재복이 일어서서 힘없이 터덜터덜 제 방으로 가려는데...
시연 : (무심하게) 오토바이 사러 가자.
재복 : (화들짝 눈이 커지며 뒤 돌아선다) 정말? 빨랑 옷 갈아 입구 나오께. (부랴부랴 제 방으로 들어간다)
시연모 : ...(어이없이 둘을 보며) 결국은... 오토바일 사주네, 우리 시연이가...
시연부 : 불쌍한 우리 시연이...
시연 : (한숨)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라구...
S#10. 호텔 로비 (낮)
쇼핑백을 가슴에 안고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중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중아. 한숨 한번을 쉬곤 일어선다.
이때, 멀리서 박사장과 그 수행원들이 로비를 걸어온다.
중아, 박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중아를 스치며 지나가는 무리를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던 중아, 싸늘한 표정으로 급히 박사장을 향해 걸어간다.
박사장 곁으로 바짝 다가가며 함께 걷은 중아.
옆 쪽의 수행원 하나가 중아를 막아선다.
중아 : (무표정하게) 사장님.
박사장 : (멈춰서며 중아를 본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중아를 보며 막아선 수행원에게) 비켜 봐.
중아 : (수행원이 비켜서면 박사장을 향해 다가온다) 저... 기억하시나요?
박사장 : ...(부드럽게 미소) 누굴까?
중아 : 강국씨랑 결혼할 때, 사장님이 주례 서 주셨어요.
박사장 : (그제사) 아아... 그러네. ...(그러다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근데요?
중아 : ...(혼잣말을 하듯 천천이) 강국이, 어제 집에 안 들어왔는데... 나 때문에.
...그래서 오늘. ...미안해서, ...강국 갈아입을 옷을 가지구 왔는데...
박사장 : (싸늘하게) 강국씨 이제 없는데? ...근데요?
중아 : (담담하게) 네. 없다 그러드라구요. 여기 와서 알았어요. 전... 몰랐거든요.
박사장 : (미소) 그래요, 그럼. (그리곤 현관 쪽으로 걸어간다)
중아 : (우두커니 서 있다가 쇼핑백 안으로 손을 넣으며 박사장을 향해 간다) 사장님.
박사장 : (귀찮다는 듯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나, 바쁜데?
중아 : (별일 아니라는 듯) 글쎄... 바빠서 좋으시겠어요.
박사장 : (아연한 얼굴로 중아를 본다)
중아 : 제가 강국한테 미안해서, 도시락두 싸왔는데 (도시락을 꺼내 보인다) 이거 사장님 드리구 싶어요.
박사장 : (실소) ...지금... 나한테 시비거는 거지요?
중아 : 네.
박사장 : (싸늘하게 바라본다) 해고 당한 직원 부인이랑, 이렇게 얼굴 맞대구 얘기하는 거,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나.
그래두 강국 부인이라서, 성의는 보여줬어요? 알겠어요? 나, 지금 밥 먹으러 가요. 도시락은 강국 찾아서 줘요.
(몸을 돌리려 할때)
중아 : (손에 든 도시락을 박사장의 얼굴에 집어 던진다)
도시락 뚜껑이 열려져 박사장의 양복 앞섶에 밥알들이 붙었다.
놀라서 중아를 바라보는 박사장.
수행원들, 중아의 몸을 감싸 안으며 한 켠에서 박사장을 호위하며 도시락 묻은 박사장의 양복을 허겁지겁 닦아낸다.
거칠게 중아의 몸을 감는 수행원들.
중아 : (낮게) 니가 먹어요. 다 식어서 강국 주기 싫어요. (수행원들의 팔을 뿌리친다. 목소리가 떨린다) 난... 강국 믿어.
강국, ..일 잘했을 거라구 믿어, 박사장님 니가, ...억울하게 우리 강국 쫓아 내거라구 생각해. 난 그렇게 생각해.
니가 아니라 그래두... 난 그렇게 생각해. ...(눈물이 흐른다) 남들이 아니라 그래두, ...난 그렇게 생각해.
...강국까지 아니라 그래두, 난 그렇게 생각해.
수행원 : (사장을 끌며) 차로 가세요, 사장님. (중아를 잡은 수행원에게) 빨랑 끌구 가.
박사장 : (넋을 잃고 중아를 바라본다)
중아 : (수행원 팔에 감겨 몸이 들려 나가면서도 울먹이며 큰소리로) 난 그때부터 알아봤어. 결혼식날, 댁 주례사...완전 꽝이었어.
그거 참느라구 토하는 줄 알았어. 그래서...약두 한통 다 먹었어. (엉엉 운다) 나두 나쁜년이지만, 사장님두 나쁜 놈일거야.
댁은... 아주 파렴치해. ..주례사두 되게 파렴치했어. 진짜야. (현관 밖으로 끌려가며) 진짜야.
비서실장 : (박사장의 팔섶을 감으며) 사장님.
박사장 : ...(비서실장의 손을 제지하며 한참동안 중아가 나간 밖을 바라보다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비서실장에게) 심실장님.
비서실장 : 네, 사장님.
박사장 : 그 때... 주례사가 좀 식상했지? (허한 미소) 근데, 토할 정돈진 몰랐네. ...(쓰게)
..내가 주례 못한다 그랬어. 강국한테... 쪽팔리다구... 지가 졸라서 억지루 한건데, 뭐. ...나더러 어쩌라구.
쓸쓸한 미소를 허공에 두곤, 다시 굳은 표정으로 힘차게 걸어가는 박사장.
S#11. 호텔 건너편 - 중아와 국의 발도장 블록 앞 (낮)
중아와 국의 발도장이 찍혀진 바닥 앞에 훌쩍이며 서 있는 중아.
중아 :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국이.. 되게 힘들었겠다, 어제. ...(계속 눈물을 닦아낸다) 잘해 줘야지.
...(계속 훌쩍댄다) 다 이재복 때문이야. ...(훌쩍댄다) 재복인 지금 뭐하나? ...(발도장을 보며) 다 이재복 때문이야.
블록 위에 웅크리고 앉으며 꿀떡 꿀떡 울음을 삼키는 중아.
중아, 자신의 발도장 위에 올라선다. 그리곤 그 앞의 국의 발도장을 바라본다.
국의 발도장을 보며 그대로 쪼그려 앉는다.
중아 : ...(낮게) 잘해 줄게, 국아.
국의 발도장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린다.
S#12. 커피숍 (낮)
커피숍 안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 국. 주머니 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 본다.
창밖으로는 커피숍을 향해 부랴부랴 뛰어오는 부자의 모습이 보인다.
국은 부자를 보지도 못하고 눈꼽을 떼어낸다.
그리곤 물컵에 든 물에 손가락을 살짝 찍어서 앞 머리를 옆쪽으로 넘기며 스타일을 잡는다.
부자E : (다소 흥분되고 가늘게 떨리는 음성) 내가... 걔 엄마예요.
국 : (놀라서 올려다 본다. 부자가 국 앞에 서 있다)
부자 : (약간은 부끄러운 듯, 약간은 흥분된 듯, 앉지도 못하고 국을 바라보고 서 있다.
앞쪽으로 다소곳이 모은 두 손엔 예의 그 딸기 신발이 들려 있다)
국 : (거울을 든 채로 벌떡 일어선다. 당황한 듯 부자를 보며 거울 든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저는...
(그리곤 손에 쥔 거울이 부끄러운 듯, 거울부터 주머니에 넣는다) ...거울을 좀 자주 보는 편이라서... ...저는 그 사람...
부자 : (수줍은 듯 따스한 미소) 알아요. ...부군되신다구... 방송에서 봤어요.
국 : 네. ....앉으세요.
부자 : (그대로 서서 기쁜 듯 국을 보며 밝게 웃는다) 제 맘에 들어요, 부군되시는 분이... 스타일두 깔끔하시구...
(제 말에 당황하며) 내가 왜 이래? 벌써 장모처럼... 미안해요. (다시 미소. 국을 어렵고 수줍게 대할 것)
늙으면... 몸에 남아도는게 주책이예요. ...근데, 진짜... (다시 수줍게 그리고 흐뭇하게) ...맘에 들어요.
국 : ...(겸연쩍게 미소) 고맙습니다. ...앉으세요.
부자 : (그대로 선 채) 아니요. 우리 애 오면... (두리번대며 중아를 찾는다. 그러다가 국을 보며 미안한 눈빛으로)
앉아서 맞을 순 없지요, 제가.. (그리곤 슬픈듯, 다소곳이 앞쪽으로 모은 딸기 신발을 만지작 댄다) 그러면..안될 것 같아요.
국 : ...(물끄러미 부자를 본다) ...오늘은, ...저만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앉으셔두 돼요.
부자 : (민망한듯 국을 바라본다. 그러다 조심스레 의자에 앉는다. 탁자 위에 딸기신발을 올려 놓으며 긴장된 표정으로 국을 본다)
국 : (자리에 앉으며) ....중아는 아직, ...어머니 맞을 준비가 안되서...
부자 : ...(허망한 눈으로 말없이 국을 바라본다)
국 : 일단, 제가 먼저 만나뵙구, 사연두 듣구, ...확인두 좀 하구... 그게 순서인거 같애서...
부자 : ...(그제사 무안한 듯한 표정으로) 아, 맞다. ...그게 맞겠네요 ...(난처한 표정으로) 내가 왜 이러냐? 그냥, 무작정...
(변명을 하듯) 늙으면 원래... (그러다 복받친 듯 손으로 입을 가린다. 눈물이 나올까 두렵다.
한참 동안 입을 막고 감정을 참는다. 그래도 눈자위가 젖어온다) ...우리 애가... (자신없게 고개 숙인다) ...나, 싫다죠?
국 : ...(어찌할 수 없는 듯 부자를 본다)
부자 : ...(고개 숙인채 탁자 위에서 늘어진 무릎 위 테이블보만 만지작댄다)
국 : ...어머니.
부자 : (어렵게 국을 본다)
국 : ...중아는...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입양한 가족에게서 사랑을 배웠으니까... 또 다른 가족, 사랑하는 법두 알겁니다.
...그래서, 중아는... 한국사람처럼 한국말을 잘 합니다. ...아마... 그 곳에서부터, 사랑할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이곳의 가족, 사랑할 준비요.
부자 : (눈물이 흐른다) ...
국 : ...근데, ...아직 어머니께 달려갈 준비가 안 됐습니다. 중아를...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부자 : ...네. (눈물이 흐른다) 그럼요.
국 : ...
부자 : ...그리구...(어렵게) 중아가 아니라... 정아예요. 이정아. (고개 숙인다)
국 : ...아, 정아요. ...이정아.
부자 : (고개 숙인채) 네, 정아.
국 : ...(애틋한 눈으로 부자를 본다) 이름 하나가 더 생겼네요. 중아가... 아니, 정아가...
고개 숙인 부자를 바라보는 국의 따스한 시선.
꼼지락 꼼지락 딸기 신발을 만지작대는 부자의 손 C.U.
S#13. 충무로 모터사이클 상점. (낮)
매장 안엔 너 덧명의 손님들이 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재복을 바라보는 시연.
재복이 모터사이클 매장을 신이 나서 누비고 다닌다.
재복 : 아저씨, 이건 얼마예요?
주인 : 삼백만 원이요.
재복 : (마구 뛰어가더니) 이건요?
주인 : 오백 오십만원이요.
재복 : (다시 건너편으로 뛰어가면서) 이건요?
주인 : 그게? (고개를 갸웃하며 장부를 보는데...)
재복 : (듣지도 않고 다시 대각선 방향으로) 이건 얼마예요?
시연 : (궁시렁) 발광을 하네, 그냥.
주인 : (재복에게) 저, 손님.
재복 : 네?
주인 : 원하시는 모델이랑 가격대를 말씀해 주세요. R차를 원하세요? F차를 원하세요?
재복 : ...(물끄러미 주인을 본다)
주인 : 배기량은요? 초보시면 125에서 맞추시면 될 것 같구요. 초보시죠?
재복 : ...(못마땅한 듯) 그냥, 내가 아무거나 찍어서 살라구요.
주인 : (친절하게) 제품이 워낙 많아요... 보통, 소님들이 자기 취향이나 기준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추천을 해 드리거든요?
아니면, 원하시는 회사랑 모델을 정확히 말씀해 주시든가?
재복 : ...(못마땅한 듯 주인에게) 남이 그런다구 나두 그래야 되요? 난 독창적으로 살라구요.
시연 : (대뜸) 아저씨. ...초보 탈거루 육, 칠십만원대 찍어주세요.
주인 : (역시나 친절) 중고루 하셔야겠네요? 국산 중고두 괜찮아요. ...이쪽으로 와 보세요.
재복 : (시연에게 인상을 쓰며) 그냥 내가 고를 거야아, 독창적으루... (손으로 가리키며) 저거 주세요.
주인 : 저쪽 야마하 R1이요? (택두 없다는 눈빛으로) 이천 사백만원짜린데? 괜찮으세요?
(그러면서 재복을 곁눈으로 보며 옅은 미소)
재복 : ....(황당, 좀 쫄린다. 인상을 쓰며 주인에게 다가가 쭈뼛댄다) ...중고 뭐, 어떤건데요?
주인 : 이쪽으루 와 보세요... (이때, 현관쪽을 보며 부리나케 간다) 오셨어요? ...부탁하신 거 들어왔어요.
재복 : ...(현관으로 가는 주인의 뒷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쪽팔리네에? 물건 사러 와서?
시연 : 무식하면, 물건두 못 사, 이젠. 요즘 추세야.
재복, 시연, 주인이 맞는 남자를 본다. 주먹 좀 쓰게 생겼다.
깍두기 머리에 미쏘니 스타일의 니트와 기지 바지차림. 그리고 손에는 돈주머니처럼 손목고리가 달린 가죽 맨스백을 들었다.
재복, 눈을 피한다.
조폭 : 너, 이재복 아니냐? (웃으면서 성큼성큼 다가온다)
재복 : (그제사 본 듯) 어? 형. ...아, 놀래라. 오토바이에 정신이 팔려서... 헤헤... 뭐, 그냥... 나, 혼자서두 잘 놀잖아, 헤.
조폭 : (비웃듯 우습듯 실실 웃으며) 옷 꼴 좀 봐라.
재복 : 헤헤. 우린 가께요. 그럼.
시연 : 오토바이 안 사?
재복 : (시연을 잡아 끌며 작게) 가. ...깡패야.
조폭 : 나이트루 놀러 좀 와. 삐끼 자리 하나 주께.
재복 : (비굴하게) 응. 고마워요.
시연 : (슬쩍 돌아본다. 그리곤 제복에게) 아니, 왜 그냥 가? 우리 오토바이 사면, 저 사람이 사시미 휘둘러?
조폭 : (힐끔 시연을 본다)
재복 : (난처한 표정으로) 가아. 그냥.
조폭 : 야, 재복아. ...저 아가씨, 나 아는 아가씨냐?
재복 : 아니요, 형은 몰라요. (시연의 등을 밀며) 가자, 가자.
조폭 : ...봤는데? (시연에게 다가가며) 나 몰라요?
시연 : (고개를 치켜 들며) 몰라요.
조폭 : (고개를 갸우뚱, 재복에게) 가라.
재복 : (다급하게) 네, 형. ...시연아, 얼른...
조폭 : (몸을 돌리다 생각난 듯) 아아.
시연 : ...
조폭 : ...(갑자기 이상한 미소를 짓는다) ...헤. (재복을 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이 새끼 웃긴다아.
재복 : ...네?
조폭 : 너, 배우 좋아하는구나? (재복의 볼을 톡톡 치며) 아구, 재주두 좋으네. (시연을 보며 요상한 미소) 잘 하드라, 아가씨?
...(재복에게 계속 실실댄다) 너, 영화처럼 살겠다? 살맛 나겠다?
재복 : ...(인상이 굳는다)
시연 : ...(다부진 입술로 입을 닫는다)
조폭 : ...가, 그럼. ...(돌아서며) 근데... 그르구 돌아다니면 안 챙피하나? 마스크라두 쓰구 다니지. 용감하네, 그 아가씨.
재복 : (눈에서 불꽃이 인다)
조폭 : (주인을 따르며) 어디 봐. ...저거야? 근데 강사장은 삼천 칠백에 샀다든데? (할리 울트라 앞으로 걸어간다)
주인 : 그건 로드킹 클래식이예요. 저흰 삼천 오백 드려요, 그건...
재복 : (주먹을 불끈 쥐며 남자를 향해 한 발을 내딛는다)
시연 : (재복을 막는다. 낮게) 하지마.
재복 : (싸늘한 눈으로 시연을 보며) 놔. (그리곤 시연의 손을 뿌리치며 남자를 향하는데)
시연 : (재복의 손을 잡으며 몸을 돌린다. 낮게...) 챙피해.
재복 : ...(휑하게 시연을 본다)
시연 : (그늘진 눈동자) 나, 남들이 알까봐, 챙피해. ..그것 땜에 일 벌이지 마. ..챙피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진짜루 챙피해.
(건너편 오토바이를 보는 손님들을 힐끔 보곤 재복을 본다) ...저 사람들... 우리 얘기 못 들었지?
재복 : ...
시연 : (눈물이 한가득 차 오른다. 재복에게 손을 내민다. 떨리는 손, 떨리는 목소리) 못 들었지?
재복 : (시연의 손을 잡는다) 응.
시연 : (살짝 휘청댄다. 눈 속의 눈물 때문에 앞이 흐리다) 괜히 힐 신구 왔다. 아직 발두 다 안낫는데...
...니가 내 손 잡구... 안 넘어지게 해 줘. ...알았지? 넘어지기만 해 봐. ... 오토바이구 지랄이구, 국물두...
(말문이 막힌다. 눈물이 흐른다. 눈물을 참느라 목소리가 닫힌다. 속삭이듯) 빨랑... 나, 끌구 나가. 욕 나오기 전에.
재복 : (아픈 눈으로 시연을 안고 나간다. 그리곤 증오어린 눈으로 남자를 본다)
남자 : (못마땅한 듯) 저 새낀, 안 챙피하냐? 몸뚱이 다 드러난 애를? 에이유.
S#14. 인도 (낮)
흐르는 눈물을 닦아대지만 입 밖으로 울음이 나올까 입술을 닫고 걷는 시연.
재복, 시연을 세워 시연의 볼을 닦아준다.
재복 : 골목으루 갈래?
시연 : 응.
재복, 시연을 끌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더럽고 좁다란 골목으로 간다. 쓰레기 봉투가 쌓여있는 구질구질한 골목.
골목에 들어서자 동시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시연.
그와 동시에 참았던 울음을 엉엉 소리내어 우는 시연.
재복의 가슴이 내려앉는다.
시연 : 엉엉엉엉. 엉엉엉. (끝도 없는 눈물이다)
재복 : (쪼그리고 앉아 시연의 눈물을 닦아준다.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다)
시연 : 엉엉엉.
재복 : ...시연아. ...(눈가가 이슬지며 붉어온다)
시연 : ...엉엉엉.
재복 : ...니가... ...그런 줄 몰랐다, 내가.
시연 : 엉엉엉.
재복 : (시연을 안으며 등을 토닥인다) ...
시연 : 엉엉엉...
재복 : ...어쩔까? ...눈물, ...막어 줘?
시연 : 싫어. ....엉엉엉. 엉엉엉...
재복 : ...(시연의 등을 토닥이며) 그러자. 니 눈물, 보자. (안고 있던 품에서 시연의 어꺠를 어루만지며 시연을 아프게 바라본다)
시연 : 엉엉엉, 엉엉엉.
재복 : (눈물맺힌 눈으로) 시연인... 눈물도 이쁘네. ...반짝거려. ...시연인... 슬픔두 이쁘네, ..그것두 반짝거려.
시연 : 엉엉엉, 엉어엉, 엉엉엉.
재복 : 오늘... 원없이 보자. 니 눈물... 슬픔.
끊임없이 흐르는 시연의 눈물.
재복의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
시연을 가슴에 안고 머릿결을 따스히 어루만지며 눈을 감는 재복.
S#15. 국의 침실(밤)
장롱문을 연 채, 국의 옷가지를 개어 넣는 중아.
한쪽 서랍을 닫으려다가 장롱 깊숙이 보이는 중아의 녹색 목도리를 본다.
S#16. 국의 거실 (밤)
문을 열고 들어와 서는 국. 앉아서 양말을 벗으며 한 켠에 던져 놓곤 피곤한 듯 바닥에 다리를 뻗는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본다.
국 : 중아야, 나 왔어. ...(큰소리로) 중아야? (불안한 듯 벌떡 일어선다. 혼잣말) 중아... 도망갔나? (큰소리로) 중아야.
부리나케 방으로 달려든다.
S#17. 국의 침실 (밤)
국이 급하게 문을 연다. 중아가 녹색 목도리를 하고 서 있다.
입을 벌린 채 중아를 본다.
중아 : 잃어버린 줄 알았다, 이거. ...이제, 생각났다. 국이 숨겨 놓은 거...
국 : (거칠게 중아의 목도리를 풀어 뒤춤으로 감추며 불안한 눈으로 중아를 본다)
중아 : (황당한 표정으로) 국아.
국 : ...(겁먹은 어린 아이처럼 뒤짐진 채 중아를 바라본다)
중아 : 너... 표정... 너무 이상해. 되게 웃겨, 표정이...
국 : ...(겁먹은 눈을 깜박이지도 못하며 숨을 참으며) 이거 뺏기면, ...안 될 것 같다.
중아 : ...
국 : ...목도리가, ...날개 같아서. ...너... 이거 달구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
중아 : ...(애처롭게 국을 본다)
국 : (힘든 듯 눈꼬리가 처진다) 나, 잘래. ..졸려. (침대 위로 올라가 목도리를 품에 안고 중아를 등지채 새우등을 하며 눈 감는다)
중아 : (불안한 듯 몸을 웅크린 국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국 : ...
중아 : (국의 발바닥쪽으로 자신의 머리를 향해 침대 위에 옆으로 눕는다. 그리곤 국의 맨발을 본다.
물끄러미 보다가 엄지 손가락으로 국의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뜯어낸다)
국 : (눈을 감은채) 아파.
중아 : ...국이 발엔, 굳은살이 덕지덕지... 떼어 내려면 참 아프겠다. 니 마음에두... 내가 그렇게 붙어있나부다.
굳은살처럼... 덕지덕지. 떼어내기 힘들게...
국 : (눈으 감은채) ...살루 만들라구. ..내 살루 만들라구. ...떼어내지 않고 그냥, 내 살루 만들거야.
중아 : (국의 발을 한 손으로 감싼다) ...내가... 니 살이 되볼게. ...정신차리구.
국 : ..(눈을 뜨곤 벽만 바라본다) 응. ..그래줘. ...넌 내 이상형이야. ...니가 내 살이 된다면, ...난 참 영광이겠다.
중아 : ...(한동안 말이 없다. 국의 허리춤으로 한 손을 뻗는다) 니 영광이 되서, ...나두 영광이다.
국 : (한손을 뻗어 중아의 손을 잡는다)
둘이 맞잡은 손 C.U.
S#18. 시연의 침실 (밤)
재복의 품에 잠든 시연.
시연을 바라보는 재복. 한 손으로 팔을 뻗어 시연의 이쁜이 대회 왕관을 집어 든다.
가만히 시연의 머리에 그 왕관을 얹어준다. 왕관을 쓰고 잠든 시연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다.
그 모습을 아프게 바라보는 재복.
F.O.
S#19. 국의 침실 (낮)
피곤한 얼굴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국. 잠이 덜 깬 듯, 고개를 흔들어 본다.
침실에서 나오려 할 때, 옆쪽 침대 베개 밑에 쓰여진 메모지.
중아E : 힘든 노동을 했던 너에게... 지금, 내가 해 줄수 있는 건... 휴식을 주는 일 같다.
편히 자구, 편히 먹구, 편히 입을 수 있도록... 널 돕겠다. 지금은, ..그렇게 널 돕겠다.
침대 밑, 베드테이블 위에 냅킨으로 덮은 우유 한 잔이 놓여 있다.
우유잔을 들어 마신다. 그러다 문득 침대 발켠 이불 위에 놓여진 옷을 본다.
편안한 진바지와 니트 셔츠가 가지런히 개어져 놓여있다.
희미하게 미소짓는 국의 모습. 바지와 셔츠를 곱게 어루만진다.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중아. 중아의 손에 물수건이 들려 있다.
그리곤 물수건으로 국의 얼굴을 닦아준다. 무표정하게...
국 : 뭐하냐, 중아야?
중아 : 메모 못봤냐?
국 : 봤어.
중아 : 그대루 하는 중. 다 해 주겠다, 강국. 내가... (얼굴을 물수건으로 꼼꼼히 닦는다. 장난스런 미소로..) 기대해두 좋다, 강국.
국 : (어렵게) 그럼... 한가지만 더...
중아 : (손가락 두개를 편다) 두가지까지도 수용하겠어. 대범하지, 나?
국 : (대뜸) 엄마 만나.
중아 : ...(그대로 손이 멈춘다)
국 : 내가... 멋대루 약속했어. ...오늘, 너 만나게 해 주겠다구...
중아 : ...(얼음처럼 차갑게 국을 본다)
국 : ...엄만지, 아닌지... 니가 만나 봐.
중아 : ...(부동의 표정으로 국만 본다)
국 : ...넌... 그래야 돼. 내가 알어. ...그게 니 인생 순서다. ...(단호하게) ...가족.
중아 : ...(얼음같던 표정이 갑자기 허탈하고 실없어진다. 표정이 정말 실없다) 그러지, 뭐. ...그게 뭐라구.
(공격적으로 국을 바라보며) 그 정도는 한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루 쳐야겠다. 이걸루 너한테 잘해주는 거 땡.
(수건을 들고 나가며) 강국, 맘에 안들어... 자꾸 날 얼게 만들어. 맘에 안들어. 경호원... 맘에 안들어.
어금니를 물며 어두운 눈으로 방문을 꽝 닫는다.
S#20. 주차장 (낮)
주차장 안내원에게 다가가는 재복, 재복 뒷짐을 쥔채.
재복 : 아저씨. (손가락으로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게 00나이트 지배인 거죠?
주차원 : 네, 그런데요?
재복 : (미소를 띄우곤 돌아선다)
재복, 뒷춤에 쥐고 있던 커다란 폐차용 해머를 어깨에 메고 할리 데이비슨 울트라를 부수기 시작한다.
신나게 알리를 부순다. 어금니를 악물고...그것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꼼꼼히...
지배인, 헤머를 휘두르는 재복이 무서워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전화를 건다.
거의 본체는 박살이 났다.
재복 : 에이씨, 댓따 무겁네.
폐차용 해머를 바닥으로 집어 던지곤 주머니에서 목공용 망치를 꺼낸다. 거울을 깬다. 만족한다.
작은 망치를 흔들며 깰만한 것이 있나, 요리조리 살피며 톡톡 디테일하게 깰만한 것들을 깨 나간다.
S#21. 시연의 방 (낮)
시연이 일어난다. 퉁퉁 눈이 부었다.
시연모가 문을 연다.
시연모 : 깼니?
시연 : 응.
시연모 : 잠깐만. (그러더니 한참 있다가 배트맨처럼 생긴 냉동안대를 가지고 들어온다)
시연 : 뭐야?
시연모 : (시연의 눈에 안대를 댄다) 재복이가 얼려놓구 나갔잖니. 일어나면 이거 눈에 두르라구. (진중한 눈빛으로 시연을 본다)
시연 : (안대를 한 채) 왜?
시연모 : 메뚜기 같다, 얘.
시연 : ...아으, 듣기두 싫어. 밥이나 줘.
시연모 : (나가며) 시연아.
시연 : 응.
시연모 : (시연의 시선을 피하며) 아버지 울드라.
시연 : (짜증) 그르니까 연속극 좀 고만 봐. 그 시간에 운동을 좀 하라그래.
시연모 : 그 시간엔 원래 일을 해야지.
시연 : ...
시연모 : ...오랜만에 너 눈 부운 거 보드니, ...화장실 문 걸어 잠궜어. 몇 시간 동안 아무 소리 안나. 물소리만 나.
...물소리 속에 숨어서 울어, 니 아빠.
시연 : ....
시연모 : (그늘진 얼굴, 여전히 시연을 볼 수가 없다) 니 아빤... 겁이 나니까아. ...일해서 된게 없으니까... 겁나서 일을 못하니까..
그냥... 너보구 웃구, 우는 수밖에...
시연 : ...아, 씨. 뭐야. (신경질) 누가 몰라? 나가. 시, 구려어.
시연모 : (나가며 힐끔 본다) 어쩜 그렇게 메뚜기 같니? ...(눈시울이 발개지며 나간다) ...마음 아파 죽겠네.
S#22. 지하철 (낮)
중아, 눈도 깜박이지 않고 앞 좌석만 바라본다.
중아는 건너편에 앉아서 초코볼을 먹고 있는 꼬마의 발 아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중이다.
초코볼 하나가 좌석 밑에서 오른쪽, 왼쪽으로 또륵또륵 구른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일부러 외면하려 하지만, 자꾸만 그 쪽으로 눈길이 머문다.
중아 : 나 또 시작했다.
옆사람 : (중아를 보며) 네?
중아 : (초코볼만 보며) 또 시작했다구요.
옆사람 : 네?
중아 : 저렇게 두면, 초콜렛이 바닥에서 녹을텐데...
옆사람 : 네?
중아 : (옆사람을 보며) 내 말에 일일이 반응하시면, 같이 미쳐요.
옆사람 : 네?
중아, 바닥의 초코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린다. 그러다가 다시 바닥의 초코볼을 본다.
중아 : (한숨) 죽겠다. (그러더니 매고 있던 가방을 열며 벌떡 일어서서 성큼성큼 아이 앞에 선다)
아이/아이모 : (의아한 눈으로 중아를 올려다 본다)
중아 : (쭈그려 앉으며 아이 옆에 앉아 있는 아이모에게) 다리 좀 치워 주세요.
아이모 : (쭈뼛대며 다리를 치운다)
중아 : (가방에서 꺼낸 휴지로 아이모의 발밑 초코볼을 집어서 꼭꼭 싸서 다시 제 자리로 와 앉는다)
아이모 : (이상한 눈으로 중아를 본다)
옆사람 : (이상한 눈으로 중아를 본다)
중아 : (안정된 표정으로 생긋 미소 짓는다)
아이 : (중아를 보면서 초코볼 하나를 바닥으로 똑 떨어뜨린다. 그리곤 악동같은 미소)
중아 : (다시 흔들리는 눈빛) 미치겠다. (입을 막는다)
열려지는 객차문을 향해 급히 뛰어 나간다.
중아가 내린 열차 문이 닫힌다.
닫힌 열차 창문 밖으로 플랫폼 기둥에 손을 대고 웅크리는 중아의 모습.
출발하는 열차의 차창 프레임 마디마디로 구토를 하는 듯한 중아의 뒷모습이 레일 소리와 함께 듬성듬성 흐릿하게 부서진다.
S#23. 주차장 (낮)
바닥에 편하게 주저앉아서 작은 망치로 모든 부속품을 꼼꼼히 부수고 있는 재복. 하나두 남김없이 가루를 만들 것 같다.
조폭E : 야, 삐끼.
재복 : (눈을 들면 조폭이 와 있다. 한 손을 들어 보인다) 왔어, 형?
조폭 : (앞에 와 서며 비웃듯 미소) 뭐 하냐?
재복 : 이거 가루루 조제해서... 니 아구창에 쳐넣을라구... (올려다 보며 차갑게 미소)
조폭 : (재복의 배를 걷어찬다)
재복 : (배를 움켜쥐고 조폭을 올려다 본다. 그리고 차가운 미소) 폭력은... 나쁜거야, 형.
조폭의 발이 다시 공중에서 날아간다.
망치를 움켜 잡는 재복.
S#24. 커피숍 (낮)
허한 얼굴로 물컵을 보며 앉아 있는 중아. 한참을 바라보던 물컵 속에 손가락을 넣는다.
물적신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에 물글씨를 새긴다. “엄마”
그 앞에 부자가 와 선다.
그래도 앉아서 부자를 바라보는 중아. 중아, 물글씨를 손바닥으로 덮는다. 손바닥으로 새어나오는 물줄기.
부자, 긴장된 표정으로 중아를 본다.
중아도 긴장된 표정으로 부자를 본다.
부자 : (떨리는 음성으로) 저어... 이 정아씨?
중아 : ...(굳게 부자를 바라본다) ...아니요.
부자 : (그제사 긴장을 풀며) 아, 미안해요. 아가씨. (다른 자리로 가려다가... 다시 돌아본다) 그럼... 이 중아씨?
중아 : (눈을 깜박이며 정신을 가다듬는 듯... 그리고 부자를 본다) 아니요.
부자 : ...(부끄럽다) 미안해요. 자꾸... (그리곤 다른 자리로 간다)
성만 : (멀리 한 켠 테이블에 앉아서, 부자를 보며 궁금한 듯 고개를 가로젓는 시늉을 한다. 입말로 “아니야?”한다)
부자 : (입말로 “아니야” 하곤 성만과 몇 테이블 사이에 자리 잡고 앉는다. 반듯하게 옷매무새를 고친다.
자켓을 살짝살짝 털기도 한다. 자세를 반듯하게 한다. 손도 무릎에 모은다. 그리곤 가슴 한번을 쓸어내리며 심호흡을 한다)
중아 : ...(성만과 부자의 하는 양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리곤 고개 돌려 허공을 보며 물컵의 물을 꿀꺽꿀꺽 삼킨다.
다시 성만을 보고, 다시 부자를 본다. 다시 고개돌려 허공을 본다)
부자 : ...(거울을 꺼낸다. 그리곤 입술을 살짝 살짝 지운다)
중아 : (그런 부자를 바라본다. 그리곤 벌떡 일어선다. 혼잣말) ...나랑.. 하나두 안 닮았네.
(다부진 입매로 현관을 향해 씩식학 걸어 나간다) 하나두...
성만 : (현관을 나가는 중아를 유심히 바라본다)
부자 : ...(창밖을 힐끔대며 중아가 오기를 기다린다. 거울을 번갈아 보며...)
긴장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는 부자 너머 창밖 거리를 씩씩하게 걸어가는 중아의 모습.
중아가 힐끔 뒤돌아 볼때, 부자는 다시 거울을 보며 머리 매무새를 다듬는다.
중아, 등을 돌려 멀어져 간다.
성만, 부자 너머 조그만 창밖 중아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S#25. 주차장 (낮)
재복이 조폭의 발에 깨지고 있다. 얼굴은 권투 11라운드를 뛴 얼굴이다. 작살났다.
망치는 이미 조폭이 가지고 있다.
망치를 달랑달랑 흔들어 대는 조폭.
조폭 : (재복 옆에 쭈그려 앉는다) 지금... 말이 되냐, 니가 하는 짓이?
재복 : (일그러지고 피범벅된 얼굴로 엎드린채 미소짓는다) 난 좋아, 헤헤... 삼천만원짜리 가루됐다.
...형. 나, 얼마나 배 아팠는데... 형, 이거 사는 거 보구... 헤, 난 너무 좋아.
조폭 : (미소) 우리 후배 재복이... 참 잘 나갈 수 있었는데... 이게 뭐냐야? 어이없게?
재복 : 난 좋아. 대략적으루다... 난 좋아. ...저거... 삼천만원두 더 하지? ...헤... 잘 됐다. 가루됐다.
...(힘을 주어 말한다) 개새끼, 삼천인지, 사천인지... 가루됐다. ...너같은 개 깡패새끼가 돈이 많다는 건, 너무 비극이야.
...나이트두 몽창 부서야지. 내 귀여운 망치루... 헤.
조폭 : (다시 일어서서 발로 어깨를 친다. 차고차고 또 찬다)
재복 : (그대로 웃으며 맞는다. 한쪽 팔은 이미 사용할 수도 없는 듯 바닥에서 힘없이 흔들린다) 때려봤자야, 새꺄. 니가 나 때려두,
내 여자가 너보다 천배는 훌륭해, 새꺄. ...그르니까, 너한테 걸레처럼 뜯어져두, 내가 너보다 백배는 훌륭해, 새꺄.
내 여자 땜에 나두 훌륭해, 새꺄.
조폭 : (들고있는 망치 계속 달랑거리며) 내가, 망치는 안 쓸께. 쓸 필요가 없으니까.. 왜냐, 넌 되지게 약한 새끼니까..
옛날에 너 좀 놀때, 내가 너 키워줄라 그랬거던? ...근데, 냅뒀어. 왜냐. 너무 약하니까. 그래선 안되거던?
그래서 넌 뭘해두 안되거던? ...왜냐. 너무 약한 새끼니까... 약한 새끼들 걷어내구, 맞짱뜨는 사회 좀 만들까 해, 난.
왜냐. 재밌잖아. 갈게. 또 와. 알아서 놀아주께. (망치를 달랑달랑 손으로 가지고 놀며 건들대는 어깨짓과 걸음으로
주차장 입구쪽으로 씩씩하게 걷는다. 그러면서 주차 관리원에게) 아저씨, 119 부르지 마. 안죽어. 떡 고만큼만 뭉갰어.
(그리곤 주차장을 나간다)
재복 : (바닥에 누운채 흐릿한 눈으로 조폭의 뒷모습을 본다. 자신과 대화한다.) 어때? 약하면? ...약한게 얼마나 좋은 건데...
부드럽구... 착하구... 폭력이 더 나빠. 그지이? (픽 웃으며 힘없이) 빙신... 폭력보다 더 재밌는게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빙신새끼. 저거 아주 비웅신이야. (그리곤 하늘을 보고 누운채 미소) 이르구 어뜩케 집에 들어가냐야? 아아... 쪽팔려어.
...시연이가 보면 지랄했다구 또 때리겠다. 아씨, 망치까지 뺏기냐아? 유일한 무기를? 아씨, 쪽팔려.
바닥에 널부러진채 따가운 햇살을 받는다.
S#26. 커피숍 (밤)
부자가 그대로 앉아서 물컵만 만지고 있다. 이미 포기한 듯, 고개 숙인채...
먼 테이블에 있었던 성만이 부자 곁에 다가와 앉는다.
부자 : (성만은 보지도 않고 물컵만 바라보며 지친듯) 안 오네?
성만 : ...왔다 갔어.
부자 : (고개 들어 성만을 본다. 허한 눈으로) ...아까, ...그 아가씬가?
성만 : 그런 것 같애.
부자 : (눈을 내리며 물컵을 만지작댄다) ...애가 못됐네. ...(슬픈 듯) 이쁘드라.
성만 : (쓴웃음) 재복엄마 오늘 벌섰네. 다섯시간 동안, 여기 앉아서...
또, 벌주면, 또 벌 받어. 자식한테 벌 받는게, 원래 부모일이야. 헌법에 그러라구 나와있어.
부자 : ...(슬픈 듯) 이쁘드라. ..그 아가씨.
S#27. 커피숍 밖 (밤)
먼 밴치에 앉아있는 중아. 무표정한 얼굴로 창 안의 손톱만큼 작은 부자와 성만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중아 : 바보들. 저기서 기다리다 죽을건가봐. 바보들... 죽든가... 말든가.
일어선다. 그리곤 밤거리를 걸어간다.
S#28. 도심거리 고층빌딩 앞 (밤)
한 건물 설치물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는 재복. 얼굴은 일그러졌다.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한쪽 팔은 아예 바닥위에 널려두듯 그대로 둔다.
문득, 눈을 들어 빌딩 설치물을 본다.
재복 : 먼지봐라. 건물 좀 닦지. ....(허한 듯 힘겹게 담배를 입에 문다) 중아가 보고 싶다. ...내 뒤 졸졸 쫓아다녔는데...
중아가 보구 싶다.
S#29. 시연집 골목 - 중아와 재복이 헤어졌던 그 골목 (밤)
어깨를 움켜 잡고 어렵게 길을 걷는 재복.
중아E : (먼 목소리) 재복아.
재복 : (고개 돌린다. 건너편 멀리 담 옆에 중아가 서 있다)
중아 : ...
재복 : (미소)
중아 : (미소)
다가서진 않고 서로 미소만 짓고 멀리 마주 서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얼굴만 보고 서로를 위로하듯...
재복 : (큰소리로) 그냥, 이르구 있을까?
중아 : (끄덕)
재복 : (한쪽 담벽에 등을 기대며 털썩 앉는다)
중아 : (건너편 담벽에 등을 대고 무릎 세워 쪼그리고 앉는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중아 : (피딱지 묻은 재복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큰소리로) 얼굴에 케첩을 바르구 다니네?
재복 : (큰소리로) 응.
중아 : (큰소리로) 그러구두 안 죽었네? 그럼 별거 아니야. ...내일 병원가.
재복 : (큰소리로) 병원 갈 돈 없어.
중아 : (키득대며 웃는다. 일어선다. 지갑을 연다. 지갑 속 주민등록증 꽂는 곳에서 동전 하나를 꺼낸다.
그리곤 힘차게 재복 앞에 던진다. 웃으며 큰소리로) 100원 줄게. ...치료비 해. (그리곤 다시 쭈그리고 앉는다)
재복 : (활짝 웃는다. 그러나 다친 얼굴이 그의 얼굴을 일그러 뜨린다. 동전을 집어 든다. 신기한 듯 바라본다)
중아야. 이거 100원 아닌데? 동전에 금테 둘렀는데? (신기한 듯 유시밓 동전을 살핀다. 2유로짜리 동전이다)
중아 : ...(큰소리로 밝게) 응. 내 마음이야. 니 100원에 금테 두른 내 마음.
재복 : (혼잣말) 기집애. ...100원 동전에 금도금 했네? 아트야, 이중아.
중아 : (키득대며 혼잣말) 수준 미달... 외국 동전 첨 보나부다. 이재복. (키득댄다) 수준미달. 이재복.
그들의 먼 길 사이를 오고가는 사람들.
중아와 재복은 서로를 마주 보며, 꿈같은 행복감을 느낀다. 말없이 서로를 위로하는 행복이다.
더 이상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중아 : (애잔한 눈빛으로 혼잣말) ...우리 오빠 동전이야. ..너 줄게.
중아의 동전을 소중히 만지작거리는 재복.
재복 : (큰소리로) 중아야.
중아 : (큰소리로) 왜?
재복 : (큰소리로) 일 안할라 그랬는데, 나 다시 일할라구... 너 만났으니까..
중아 : (고개를 끄덕, 혼잣말) 그럼... 나두 일할게.
F.O.
S#30. 부부의원 - 진료실 (낮)
시연이 지친 표정으로 병란을 바라본다.
병란은 진료 데스크 옆에 아기 그네를 연신 흔들며 시연의 차트를 본다. 그리고 힐끔대며 시연을 째려보는 듯하기도 하다.
시연 : 선생님. 자꾸 째려보지 마세요. 이게 뭔 경우야? 의사가 환자한테?
병란 : 나, 원래 사람 그렇게 봐요. (의심스런 눈으로) 다리 요기다 올려 봐요.
시연 : (옆 의자 위에 다리를 올린다)
병란 : (시연의 발목을 눌러 본다) 아파요?
시연 : 아니요?
병란 : (쌀쌀맞게) 안 아프잖아요. 아프지두 않는데, 왜 계속 와요? 지금 몇 달째야?
시연 : (황당하다) 의사가 오라는데, 환자가 와야죠.
병란 : (살짝 수긍) 그건 맞아요. ...(궁금한 듯) 원장선생이 뭐라면서 계속 오래요?
시연 : 그냥 다리는 만져 보지두 않구, 눈으루만 휙 훑드니, 치료 한참 더 해야 된대요.
병란 : (소리친다) 눈으루만 보구 어뜩케 알아요? 지가 무당이야?
시연 : (맞받아 소리친다) 아, 진짜.. 아줌마, 왜 나한테 그래요? 아저씨가 그런걸?
병란 : (그제사 이성을 찾는다) 그건 그래요... (기가 꺾였다) 그래두 그렇지. 명색이 의산데, 아줌마, 아저씨가 뭡니까?
환자 진료할 맛 안나게...
시연 : (답답하다) 아니, 왜 환잘 볶아요? 의사가? 인간대 인간으루 까발겨봐요. 바람 펴요? 의사 아저씨?
병란 : ...(갑자기 울적한 듯 아기그네를 흔든다)
시연 : ...의부증 있어요?
병란 : (그저 아기 그네만 흔든다) 살짝.
시연 : (답답한 듯) 아저씨 아니야아. 어지간한 여자들은 싫어 할 타입이야.
병란 : 우리 노선생이 어때서요? 저 사람 천재에요. 몰라서 그렇지.
시연 : 나같이 이쁜 여자는 천재 싫어해요. 돈쓰는 남자 좋아하지.
병란 : (천진하게) 그래두 의산데, 여자들 입장에선 좀 있어 보이지 않아요?
시연 : 참 천진하다, 그 나이에... 아저씬 없어두 쫄딱 없어 뵈요. 그르니까 안심해요. 그럼, 나 인제 진료 안 받아두 되죠?
병란 : (그새 시연에게 호감을 갖은 듯, 담백하게) 오해 풀렸으니까, 심심하면 놀러 와요. 나랑 얘기나 해요.
...뭐, 우리 병원, 환자두 별루 없구...
이때, 수술실로 통하는 문에서 들어오는 동석. 수술복과 모자를 쓴 모습이다.
동석 : 응? 왔네? 저기 침대로 가서 누워요. 오늘은 내긴 한번 해야 돼.
병란 : 내가 했어요. 노선생님.
동석 : 당신이 뭘 알어? 내과 전공이면서...
시연 : 선생님. 저 치료 관둘라구요. 인제 안 올래요.
동석 : (병란을 보며 무심하게) 권선생이 또 손님 쫓았지? 참... 영업이 안되네.
시연 : 치료를 한게 아니라, 장사를 한거네? 선생님은 무슨... 아저씨 맞네.
동석 : 선생이면 어떻구, 아저씨면 어때? ...그래두 내 말 듣는게 좋아요, 아가씨. 뼈다구 쪽은 제대루 치료하는 게 좋아.
늙어서 고생 안하려면... 근데, 맘대루 해에. 아가씨 노년까지 신경쓰는 것두 고달프지. 내가.... 이뻐서 신경 써 준거지, 난.
시연 : 아, 병원 같지두 않어.
동석 : 그게 내 모톤데? 병원 안같은 병원. 의사 안같은 의사.
병란 : (쌕 웃으며) 이게 이 사람 매력이에요.
시연 : 못살아.
동석 : (이기그네 가서 아기를 보며) 오우, 우리 까꿍이. 빨랑 이름을 지어 줘야 되는데..백일이 넘도록 이름이 없네? 까꿍이 미안.
병란 : (함께 아기를 보며) 까꿍이 미안.
시연 : ...(한심한 듯) 참, 행복해 뵌다. 잘 만났다, 두 사람. 원숭이 한쌍이네. 완전... (진료실 문을 여는데 중아가 서 있다)
응? 오랜만이네, 언니? 어디 아퍼? ...딴 데루 가. 여긴 병원이 아니야, 언니.
중아 : 나... 여기 상의할게 있어서... 원장 선생님이랑...
동석 : 어? 이쁜 학생 왔네? 아파서 온거 아니지? 수술복 입을라구 온거지?
중아 : 네.
동석 : (미소) 헤, 한 건 했다. (병란을 보며) 어쩌나? 우리 병란씨.. 불안해서 병나겠다.
병란 : (의심의 눈초리) 둘이 언제부터 만난거야?
시연 : (중아에게) 언니, 의사야? 와아. ...(부러운 눈으로) 의사구나아. ...오오, 센데? 근데... 안됐다. 여기서 어뜩케 일을 하냐?
병란 : (버럭) 언제부터 그런 사이냐구.
시연 : (병란에게 턱짓을 하며) 봐아, 언니. 클났다. 저르구 어뜩케 살어?
중아 : ...좀 이상하긴 하군.
시연 : 환자야 저 사람들.
중아 : 나두 어느 정도 환잔데.
S#31. 00빌딩 근처 거리 편의점 앞 (낮)
외벽청소 작업복 차림의 허름한 재복이 머리에 핀을 꽂으면서 나온다.
어느새 일그러졌던 얼굴은 제 자리를 찾았다. 단지 듬성듬성 상처 자국이 남았다. 일회용 밴드가 붙어있다.
핀을 꽂느라 목에 걸쳐 두구 있었던 세수수건이 바닥에 떨어진다.
수건에 묻은 흙때를 톡톡 털면서 걸어가던 재복이 한 고딩과 어깨를 부딪친다.
재복, 고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1년 전 삥을 밤거리에서 재복이 뜯었던 고딩이다. 물론 재복은 기억 못한다.
고딩의 흰 상의에 재복 수건의 흙때가 묻었다.
재복 : 학생.
학생 : ...(겁먹은 표정으로) 저, 오늘은 진짜 돈 없어요.
재복 : (멍청) 무슨 돈? 옷에 때 묻었어. (옷을 털어주려 바짝 다가가는데)
학생 : (뒤로 물러나며) 진짜루 차비 뿐이 없어요.
재복 : 아니야, 왜 그래, 자꾸? (고등의 상의로 손을 뻗으며) 때 털구 가라구.
학생 : (화들짝 놀라며 재복의 손을 막는다) 때리지 마세요.
재복 : (어이없이 웃으며 다가간다) 하, 이봐요, 학생. 그 옷에... (때 묻은 학생의 어깨 쪽으로 손을 가져가는데)
학생 : (자신의 얼굴을 막으며 공포어린 괴성) 악.
재복 : (난감한 표정으로) 얘가 왜 이래? 야, 너, 뽄드하니? (그러면서 학생에게 바짝 다가서는데)
재복의 앞을 가로막으며 재복의 팔을 한 손으로 절도있게 꺾는 고양숙. 한 손엔 하드가 들려 있다.
재복 : 아. (그러면서 양숙을 불량스레 노려본다)
양숙 : (한손으로 하드를 빨며 학생에게) 맞았나?
학생 : 네.
재복 : (양숙에게 팔이 감긴 채 황당하다는 듯 고딩을 보며) 에? 얘가, 얘가? (양숙을 보며 귀찮은 듯) 언니는 이것 좀 놔봐.
나, 얘랑 할 말 있어.
학생 : (양숙의 등 뒤로 숨으며) 예전에두 삥 뜯은 형이에요.
재복 : (황당한 표정으로) 너 미쳤니? 내가 언제?
학생 : 일년 전에 삥 뜯었어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구.. 그래서 낮에만 다니는데, 또,..
재복 : (억울한 듯) 난 증말 기억 안나. 내가 천원, 이천원 삥 뜯은 애들을, 어뜩케 일일이 다 기억하냐?
니가 형을 이해해야 돼. ...내가 도루 돈 주께. 그래서... 넌 얼마짜린데? 얼마면 되는데?
양숙 : (학생에게) 알았다, 학생. 가 봐라. 누나가 알아서 하마.
재복 : (도망가는 학생에게 소리친다) 학생. 일년전의 나는 내가 아니야아.
(양숙을 보며 씩 웃는다) 언니. ...아니야아. 나, 삥 끊었어어. 끊은지가 언젠데.
양숙 : 그 등발에, 그 낫살에, 기껏 애들 삥을 뜯나요? (그러면서 여전히 한 손으론 하드를 핥는다)
재복 : (멍청) 애들이 만만하잖아. (갑자기 신경질을 낸다) 아, 진짜 이젠. ..끊었다니까아? ...직업두 있다니까아?
(구슬르듯) 나, 요즘은 이 일대에서 작업하구 있거든? 언니, 유리창 청소 안할래?
(그러다 갑자기 불량한 눈으로 양숙을 쏘아본다) 언니. ...팔, 풀어라야? 여자라서 봐주구 있다. 내가?
양숙 : (당당한 미소) 봐줘 봐야 섹시하지, 뭐. (그리곤 입에 하드를 문채, 나머지 한 손으로 재복의 목덜미를 잡으며 업어치기로
절도있게 재복을 바닥에 꽂는다. 그리곤 역시나 절도있는 자세로 제복의 허리를 깔고 앉아 양 발로 재복의 손목을 밟아,
꼼짝 못하게 제압한다. 깔끔한 특공무술이다. 그리곤 입에 꽂고 있던 하드를 한 손으로 잡으며 우아하게 재복을 바라본다)
재복 : (얼이 빠져 누운채로) 무슨 언니가 이렇게 힘이 세요?
양숙 : (하드를 핥으며 거만한 눈으로) 힘이 아니라, 기술.
재복 : ...언니? 지금 선보인 기술이, ...특공무술 아닌가요?
양숙 : (미소 지으며) 빙고.
재복 : (누운채 감탄) 와, 무술하는 여자네?
양숙 : 우아하지요. 내 몸짓? (그리곤 윙크. 윙크도 우아하게) 잘 생겼으니까, 봐죠야지. ...전화번호 대봐요, 허니?
S#32. 00빌딩 2층 - 경호회사 (해질녁)
이사 온지 얼마 안된 듯, 책상 의자 몇 개가 제 위치 못 찾고 대충 놓여져 있고, 박스도 풀지 못한 짐들이 이리저리 쌓여있다.
사무실을 두리번대며 바라보는 국과 기웅.
국은 중아가 침대맡에 마련해 주었던 셔츠와 진차림이다.
기웅 : 일주일 됐대요. 경호회사 차린거.
국 : 무슨 돈으루?
기웅 : 지난 번에 아버지 돌아가셨잖아요. 보험금 탔대요. 되게 많다구 자랑하든데요?
국 : 양숙인 사이코. 슬플 때 아닌가?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가웅 : 개념이 없지요, 양숙이가... (괜시리 수줍게) 그래두... 뒷끝두 없구, 뭐... 내숭떠는 애들 보다는, 뭐...
양숙이가... 일단, 뒤끝이 없으니까, 뭐...
이때,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양숙.
양숙, 국을 보곤 야릇한 미소를 보낸다.
기웅, 부끄럽게 양숙을 보며 손을 들어 보인다.
양숙 : (국만 바라보며) 오라버니.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살랑살랑 다가온다)
국 : (얼굴을 돌리며 궁시렁) 징그러.
양숙 : (팔짱을 끼며) 언제 이혼할 건데? 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국 : (양숙의 팔을 풀며) 너, 이민갔으면 좋겠다.
양숙 : 오빠가 가야 내가 가지. 첫사랑 따라서... 오빠, 인제 내일부터 출근해.
국 : 내가 왜?
양숙 : 호텔 짤렸잖아.
기둥 : 형, 호텔 짤렸어요?
국 : (양숙에게) 그걸 어뜩케 아냐, 니가?
양숙 : 국이 오빠 소식은 내가 시간 단위루 끊지. 잘렸단 말 듣구,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오빠랑 나랑 같이 일하게 되서...
국 : (공포스럽다) 싫어어. 나, 싫어.
가웅 : 양숙아. ...난, 내일부터 곧바루 나올게.
양숙 : (가당찮다는 표정으로) 넌 됐어어. 그냥 선생님이나 해.
기웅 : 오늘 사표 냈어. 니네 회사에서 일할라구.
양숙 : (싫어 죽을 표정이다) 야, 왜에?
기웅 : ...(물끄러미 양숙을 바라보다가 수줍게)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애서...
양숙 : (땡깡이다) 싫어어. 넌 가아.
국 : (실망스럽게 고객 숙인 기웅을 보며) 기웅이 한다면... 나두 좀 생각해 볼게.
양숙 : (인상을 쓰며) 아, 난 그냥 오라버니만 데루 오구 싶거든? 앤 싫거든? (창문을 가리킨다) 차라리 얘보단 저 청년이 더 나아.
국과 기웅이 창밖을 보면, 창밖에서 로프를 매고 유리창을 닦고 있는 재복이 보인다.
생긋 웃으며 유리창 밀대를 들어 보이는 재복.
국 : 무슨 머리에 핀을 꽂구... (양숙에게) 난 기웅이 아니면, 몰라.
기웅 : (살짜기 미소를 띠며 부끄러운 듯 국의 팔을 툭 친다)
양숙 : (인상을 쓴다) 아으, 싫은데... (기웅을 보며 더욱 인상을 긁는다. 마지못해서) 해에, 그럼.
(혼잣말로 궁시렁) 아으, 못생겨서 싫은데, 기웅인...
국 : 가자, 기웅아.
기웅 : ...(머리를 긁으며) 형 먼저 가세요. 난... 여기 정리 좀 해주구...
양숙 : (바락 바락 소리친다) 아, 가아.
기웅 : (들은 척도 않고 책상을 옮기기 시작한다)
국, 깔깔 웃으며 나간다.
양숙 : (집기들을 기웅에게 집어 던지며) 가. 안가?
기웅 : (집기들을 묵묵히 맞아가며 책상 배치를 한다. 아무일도 없는 듯이) 책상은 벽으루 붙일까, 양숙아?
S#33. 00건물 앞 (저녁)
빌딩에서 나와 서는 국. 나와 서자 마자 국의 머리 위로 재복의 양동이속 물이 튀어 내린다.
물에 젖은 국. 위쪽을 올려다 본다. 바로 이층 높이에서 물청소를 하는 재복.
벽에 달랑달랑 매달려 국을 보며 미안한 듯 걸레 든 손을 든다.
재복 :실숩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다 손에 들고 있던 걸레가 떨어진다) 앗, 또 실수.
국 : (걸레를 뒤집어 썼다)
재복 : (미안해 죽겠다) 아이구... 어쩌나?
국 : (걸레를 걷어내며 재복을 올려다 본다)
재복 : (입에 고무장갑 낀 손가락을 물며) 되게 화났나 부다.
국 : (갑자기 바닥으로 늘어져 있는 재복의 로프를 잡아 세게 흔든다)
재복 : (위험스레) 뭐야아? 실수잖아아.
국 : (어금니를 물며) 실수도 대단한 실수. 옷값 물어내.
재복 : (겁먹은 얼굴로) 에이씨. ...흔들지 마아. 실수라구우.
국 : (로프를 흔들며 소리친다) 옷값 물어내에. 이게 어떤 옷인데.
재복 : (짜증났다) 야, 나 내려 갈거야. 씨, 옷타령 하구 지랄이야. 옷땜에 살인두 하겠다, 씨. 내려가서 맞짱 한 번 뜬다. 나.
국 : ...(어금니를 물며) 난 니 목숨보다, 이 옷이 더 중요하다. 내려와라. 맞짱뜬다.
재복 : (잠시 생각) 에이씨. ...저거,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아, 몰라, 이판 사판이야, 아, 몰라. ...(국에게 점잖게) 비켜 서. ...간다.
줄로부터 멀찌감치 서서 뒷짐을 쥐고 어금니를 물고 선 국.
빠르고 터프하게 줄을 풀며 내려오는 재복. 재복의 발이 땅에 닿는다.
재복 : 기다려. 로프 좀 풀구... (몸의 로프를 푼다) 오케이. 간만에 맞짱 한번 떠 본다, 이재복.
내 얼굴 상처 보이지? 나 이런 사람이거던.
국 : (뒷짐 쥔 손아귀 속의 한 손이 그 상태 그대로 강하게 주먹 쥐어쥔다) 난, 옷이 중요한 사람이거던.
재복 : 에이, 신발이 구리잖아야... (그리곤 슬리퍼를 벗는다. 실실 웃는다)
냉정하게 재복을 바라보는 국과 실실 웃어대는 재복이 시선.
제법 거리감이 느껴지는 둘간의 간격.
재복 : (손가락을 들어 국을 부른다. 미소) 와라.
국 : (까딱 고개짓을 한다)
이윽코 뒷집 쥔 채, 냉정한 표정으로 재복을 향해 힘찬 한 발을 내딛는 국.
대걸 직전의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의 어둠 속에 몰려온다. L.S.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