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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목)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자전거 대장정을 시작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6시 반) 일어나 대장정을 위한 준비물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간단히 아침으로 빵을 먹은 후, 자전거를 타고 헤어포트 역으로 갔다. 거기서 7시 35분 기차를 타고 두 정거장인 바트 웨인하우젠(Bad Oeynhausen)까지 가서 거기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목적지는 북독의 브레멘(Bremen)이다.
독일은 우리와는 반대로 북쪽은 평평하고 남쪽은 산이 많다. 굴곡이 별로 없는 평평한 길에 자전거 길도 제법 잘 되어 있어 불편함이 없었다. 가도 가도 눈에 들어오는 건 옥수수 밭, 밀밭뿐이다. 공기도 상쾌하고 약간 구름이 끼어 있어 자전거 타기는 그만이다. 한참을 달려 민덴(Minden)이란 곳으로 갔는데 거기에 아주 신기한 게 있었다. 두 물길이 아래층과 위층으로 나뉘어 서로 교차하며 흐르는 거였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갈 거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사진을 골랐다. 보다시피, 아래는 베저(Weser) 강이 흐르고, 위층은 인공수로가 흐르는 구조다. 물론 인공수로는 화물선을 위한 물길이었고... 상상을 초월한 희한한 광경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시설이 있으면 관광명소로 뜰 법한데 신기하지도 않은지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관광객들이 별로 없었다.
민덴을 떠나 닌부르크(Nienburg)을 거쳐 호야(Hoya)까지 죽어라고 달렸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제법 몸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달려보니 체력이 달렸다. 오르막이 없이 평탄한 길이라 다행이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바람이었다. 북해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뒤에서 불어주면 좋으련만, 아건 완전히 맞바람이다. 페달 돌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먹구름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을 보니, 이거 만만한 구름이 아니다. 여차하다가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되기 십상이었다. 이 상태로 계속 자전거를 타고 가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 급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역을 찾았다. 역에 가면 기차 뿐만 아니라, 버스도 있을 것 같아서다. 가까스로 역 근처에 갔는데 갑자기 왕사탕만한 비가 우둑 우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가까스로 몸을 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폭탄’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아무리 많은 비를 내리는 우리나라 장맛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여간 1초만 늦었어도 온 몸이 비에 젖을 뻔 했다. 이런 걸 두고 ‘간발의 차’라고 하나 보다.
앱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비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하면, 중간 기착지인 페르덴(Verden)에 너무 늦게 들어가게 되고, 그렇다고 해서 비를 맞으며 가는 건 더 위험하여 하는 수 없이 페르덴을 가는 기차 시간을 알아보니 야속하게도 기차는 방금 전 떠난 뒤였다. ‘기차 대신 버스가 있을까?’ 해서 정류장에 있는 시간표를 보니 페르덴으로 가는 버스는 735번 버스 밖에 없는 데 그나마 그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밖에 없었다. '언제 버스가 오나?' 이러며 시간표를 보는 순간, 735번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우와~!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 버스 기사에게 자전거를 실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타란다.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버스를 이용했기에 자전거로 달려야 할 거리 20km를 절약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오랜만에 장거리를 타는 거라 체력 소모가 많았다. 집에서 나올 때 싸온 먹거리로 중간 중간 배를 채워도 힘이 들었다. 먹을 게 더 없을까 하여 가방을 뒤져보니, 마침 바나나와 ‘에너지바’ 같은 견과류 강정이 남아 있어 그걸로 겨우겨우 버티며 달린 거였다. 그런데 마침 억수같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기초 대사량까지 바닥 난 내가 겨우 살아났다. 버스로 페르덴에 내려 예약해 둔 퇼레스(Thöles) 호텔을 찾아 또 달렸다. 호텔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호텔에는 우리 같은 라이더들이 많은지 자전거를 세워두는 공간이 따로 있어 거기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프론트에 가서 예약한 손님이라고 했다. 직원은 컴퓨터로 예약상황을 확인하고는 열쇠를 주었다. 99호 방이었다.
그런데 2층으로 되어 있는 호텔의 아래위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89호는 있었지만, 99호는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여 다시 프론트에 내려가 물어보니 종업원 말로는 이 호텔에는 99호는 없단다. 이럴 수가!
“당신이 준 열쇠에 99호로 되어 있는데 방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호텔 종업원도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열쇠를 한 번 줘보란다. 열쇠를 받아든 종업원은 박장대소를 했다. 알고 보니, 99호가 아니라 66호였다. 너무 피곤해서인지 우리는 66호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머쓱했다. 차마 프론트에서는 웃지 못하고 66호 방을 찾아가는 복도에서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에 들어가 보니, 방 세 개는 만들 수 있는 엄청나게 큰 공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땀에 찌들은 옷을 빨고 샤워를 한 후 내일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먹을 보급품을 충분히 마련하기 위해 호텔 근처에 있는 리들(Lidl)이란 슈퍼마켓으로 갔다. 거기서 방울토마토, 바나나, 샌드위치를 사고 저녁을 먹기 위해 돌아다니다보니, 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눈에 들어와 무조건 들어갔다. 메뉴를 보니 내가 좋아하는 중식 찹수이가 있어 그걸 시키며 소금을 조금만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음식을 먹어보니 내 입에 아주 잘 맞았다. 다른 건 안 먹고 1년 내내 이것만 먹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중식을 먹을 때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집 조상이 중국 사람인가보다...’
8월 9일(금)
밤에 잘 때는 몰랐는데 새벽녘에 모기 소리가 들렸다. 물리지는 않았지만, 모기 때문인지, 습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호텔을 나와 근처를 산책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제법 쌀쌀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까짓 쯤이야...’ 이러며 괜히 객기를 부리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다시 호텔로 들어와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넓은 식당에는 벌써부터 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읽어야 할 분량의 성경을 읽고 나니, 사위가 식당에 들어왔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야 할 걸 생각하니 대충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아 미리 식당에 있는 빵과 햄을 열심히 먹었다. 배부르게 식사한 후 다시 장비를 갖춰 목적지 브레멘으로 출발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북독은 거의 평야라 농장만 많을 뿐, 오르막이 거의 없었던 대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지도를 보니 중간에 강을 건너면 지름길이 된다고 하여 그리로 달려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강을 건너는 배는 주말에만 있단다. 하는 수없이 다시 돌아 나와 또 다른 길을 찾아 달렸다. 예상보다 훨씬 더 멀어진 거였다. 어제 버스로 절약한 거리와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하랴? 그저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브레멘 타워(tower)가 눈에 들어왔다. 브레멘이 별로 멀지 않다는 뜻이다. 어제는 100여km를 달려야 했었는데 오늘은 그보다 훨씬 짧은 구간이라 부담도 덜했고, 목적지가 눈에 보이니 저절로 힘이 솟았다. 시내 중심으로 가까워질수록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아졌다. 열심히 달려 드디어 목적지인 브레멘에 입성했다. 중간에 잠깐 버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두 다리로 여기까지 달려왔다는 게 뿌듯했다. 장거리 자전거의 매력이 이런 게 아닌가 한다.
독일은 어딜 가나 시내 중심에는 거의 대부분 대성당(Dom 돔)이 자리 잡고 있다. 지역에 따라 대성당을 뮌스터(Münster)라고도 하는데 브레멘은 ‘돔’이라고 한다. 시내에 들어서니 돔 옆에 말을 탄 비스마르크 동상이 있고 신, 구시청사와 의회당, 그리고 광장 거리에서 환경 운동하는 아이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무슨 데모를 하고 있었다. 무슨 데모이냐 하면, 스웨덴의 16살짜리 소녀(우리로 말하면 고2 정도)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환경운동의 시작을 알리며 전 세계 청소년들의 환호를 받았었는데 바로 그 환경보호를 위한 데모였다. 얼마 전에는 툰베리가 UN에서 나이에 맞지 않는 아주 비장한(!) 연설도 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주공격 국가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툰베리의 환경운동에 대해서 반발도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툰베리가 지구의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는 중국에는 말 한 마디 안 한다는 점 때문이란다. (브레멘 대성당과 말을 탄 비스마르크 동상)
브레멘에 가면 반드시 봐야 하는 <브레멘 음악대 동상>을 찾아가 보았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동상이나 기념물들은 아예 기대를 갖고 찾아가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벨기에의 브뤼셀에 있는 <오줌싸개 동상>이었다. 유학 시절 모처럼만에 시간을 내어 벨기에로 놀러갔었다. 벨기에에 가면 당연히 <오줌싸개 동상>을 찾기 마련. 벨기에는 불어와 화란어(네덜란드어)가 공용어로 되어 있다. 나는 불어도 모르고 화란어도 몰라 영어, 독어를 섞어 가며 물어물어 가서 보고는 완전 허탈했다. ‘헐! 이걸 보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나?’ 이런 생각에... (<브레멘 음악대 동상>. 동상의 당나귀 입과 다리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에 따라 관광객들이 하도 만져대서 아예 색이 변하고 반들반들해졌음) 내가 출국하기 전, 독일에 가면 자전거로 장거리를 달릴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니 찬양대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굉장히 걱정스런 얼굴로 제발(!) 조심하라며 신신당부에 또 당부를 했었다. 이런 사랑과 관심을 받았으니 내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걸 알릴 필요가 있어 분수대에 앉아 예루살렘 찬양대 카톡에 나의 브레멘 입성과 인증사진을 올렸다. 브레멘에서 제일 큰 성당(Dom 돔)을 구경하고 나니 여기도 날씨 분위기가 안 좋다. 조금씩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 거였다. 조금만 있으면 비가 내릴 태세다. 어제부터 비가 우리만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브레멘에 좀 더 머물면서 구경 좀 많이 하다가 맘이 내키면 브레멘 항구까지 가고 싶었지만, 날씨가 협조하지 않았다. 뭐 항구에 가도 딱히 볼 건 배 밖에 없을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역으로 갔다. 그런데 또 신기한 일이 생겼다. 우리가 역에 도착하니 오래 기다릴 필요 없이 마침 기차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출발할 때도 그랬지만, 돌아올 때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기차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다.
우리가 기차를 타자마자 어김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를 피해 다니는 것도 스릴 넘치는 일이다. 약 한 시간 걸려 오스나브뤽(Osnabrück) 역에 도착했다. 한 번 더 기차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신기한 걸 봤다! 그건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기차역이 서로 위 아래로 교차되어 있는 거였다. 지난번에는 베저 강과 인공수로가 위 아래로 교차되어 흐르는 걸 봤는데 오스나브뤽 역은 기찻길이 위 아래로 교차한다. 독일은 이런 위 아래 교차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별로 오래 기다리지 않아 우리가 탈 기차가 왔다. 독일기차는 국영과 사영이 있다. 예전에는 기차시간이 정확했었다고 하는데 유럽의 철도교통량이 많아지면서 자꾸 지체되다보니, 이제는 기차시간표의 의미가 없어졌다. 아무리 고속철이라고 해도 연착되는 건 다반사다. 특히 국영이다 보니 철도원들의 파업이 있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시간을 잘 지키는 기차 운영을 하겠다며 사영이 생겼다. 사영 기차가 국영보다 더 깨끗하고 시간도 잘 지킨다. 독일 기차가 ‘시간을 잘 지킨다’는 말은 철도원들이 ‘데모를 안 한다’는 것과 통하는 것 같다.
우리는 헤어포트 역에 도착해 자전거로 집에 갔다. 아내와 딸은 우리를 보고는 수고 많이 했다면 부엌의 개수구가 막혀 요리를 못하니 그 핑계 대고 외식을 하잔다. 무얼 먹고 싶냐고 해 중국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마침 시내에 제법 큰 중국식당(Gourmet World)이 있는데 가 보니 사람이 꽤 많았다. 그 식당은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식당으로 각종 고기와 요리가 정말 많았다. 거기서 원 없이 중국음식을 먹었다. 중국 사람들은 네 발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고, 날아다니는 건 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맞았다. 진열된 음식을 보니, 독일 사람이 도무지 손도 대지 못 할(않을) 고기도 있었다. 소위 개구리 고기다. 개구리를 보니 비위가 상해 평범한 소고기와 돼지고기만 열심히 먹었다.
그런데 식당은 크고 손님이 많은 것에 비해 종업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출구에 있는 계산대로 가는 게 아니라, 먹은 식탁 자리에서 계산을 한다. 그런데 계산을 할 종업원이 보이지 않는 거다. 한참을 기다리던 우리 부부는 먼저 식당을 나와 주차장을 산책했다. 그런데도 딸 내외가 나오지 않아 식당에 다시 가보니, 여전히 식대 계산을 못하고 종업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다시 나와 밖에서 서성거릴 때 겨우 딸이 나왔다. 말을 들어보니, 종업원이 보여 손짓을 하여 계산을 하자고 했더니 “식사하신 분이 두 명이지요?”라고 묻더라나? “그렇다!”라고 하면 2인분만 내고 나오는 건데, 그럴 수는 없어서 네 명이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좀 놀라는 표정을 하더니 이내 알았다며 4인분 계산을 했단다.
하여간 평일 저녁을 잘 먹고 배가 꺼질 때까지 시내에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잠깐 산책하려고 하는데 또 비가 후둑 후둑 떨어진다. 도대체 비가 나와 무슨 원한이 있는지 내가 가는 곳마다 비가 내린다. 지난 주간에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여행할 때는 그렇게 날씨가 좋더니... 하여간, 독일의 날씨는 변덕이 죽 끓는 듯 한다. 맑은 날이다가도 금세 비가 오고, 비가 오는 듯하다가는 어느 새 무지개가 뜬다. 독일의 하늘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비 때문에 산책도 포기하고 서둘러 차를 타고 집에 왔다. 배가 꺼지지 않았지만 베란다에서 교회에서 주일 예배 때 설교할 것 등을 생각하다가 보니, 비는 어느 새 그치고 무지개가 떴다. 역시 변덕스런 독일 날씨답다. 토요일인 내일은 서둘러 다시 처제네로 가야 한다. 거기서 하룻밤 자고 주일 아침에 한인교회를 가야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