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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소통운동본부(CCCC) 원문보기 글쓴이: 평택 소통 김평탁
○ 지혜의 초청 | |
1. |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벧전2:5 |
2. |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
3. | 그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시68:11 |
4. |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
5. |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
6. |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
○ 거만에 대한 경계 | |
7. |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잠23:9 |
8. |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
9. |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
10.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
11. |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 |
12. |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
○ 피해야 될 어리석은 여자 | |
13. |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
14. |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잠7:12 |
15. |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객을 불러 이르되 |
16. |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
17. |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
18. |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잠2:18, 잠5:5 |
오늘의 역사
① 조선총독부서 항복 조인식(1945) : 일제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두 도시가 원자폭탄에 의해서 잿더미가 되자 더 이상 항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드디어 1945.8.15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였다.
그리하여 38°선을 경계로 한국을 남북으로 분할, 미․ 소군이 점령하게 됨에 따라 9월 8일 인천에 상륙한 하지중장 휘하부대가 남한을 통치하게 되었다.
재한 일본군은 1945.9.9 입경한 미군에 대하여 정식으로 항복하고, 중앙청에서 항복식이 거행되었다.
조선총독 아베노부유키 이하 일본측 대표들은 하지 중장 이하 미군대표들 앞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하고 총독부에 꽂혀 있던 일본 국기를 내림으로써 한국에서의 일본 통치는 완전히 끝났다.
②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열림(1968) : 1968.9.9-10.20 까지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가 열렸다.
미국, 일본 등 10개국이 참가한 이 박람회에서 중동지역까지 시장이 확대되어 2000만불의 수출 계약을 맺는 성과를 올렸다.
③ 귀의 날 제정(1962) : 귀에 대한 위생 사항을 고취시키는 날.
⇨3월 24일.
④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1948) : 1948년 9월 9일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대표로 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라는 국호로 단독 정부를 수립하였다.
1948년 9월9일 오전 10시, 모란봉극장에서 6일째 최고인민회의가 열렸다.
아시아지역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권 출범을 알리는 이른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인민공화국 선포식에서 김일성은 인민정권의 성격을 "남북조선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수립된 통일적 조선 중앙정부"라고 규정지었다.
남한에서는 미국의 남한단독정부 수립정책으로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북한 역시 단독정부 수립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한반도에는 서로 이념을 달리하는 2개의 정부가 출현하게 되었다.
⑤ 서태지 4년7개월만에 컴백 공연(2000) : 4년 7개월만에 돌아온 서태지가 2000년 9월 9일 오후 8시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컴백 공연을 가졌다.
서태지 공연은 10대와 20대 팬들이 50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1시간10분 동안 펼쳐졌다.
경기장 앞 광장에선 초대권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대형 멀티비전을 통해 공연실황을 지켜보며 환호했다.
서태지는 빨강색 레게 머리에 힙합 패션 차림으로 등장, 미국 랩메틀 밴드 '림프 비즈킷'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하드코어 사운드를 들려줬다.
그는 새 앨범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를 비롯, '인터넷 전쟁' '대경성'같은 새 노래를 들려줬다.
공연전날 내놓은 새 앨범은 80여 만장이 팔려 서태지의 시들지 않은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⑥ 3선 개헌안 국회상정(1969) : 1969년 9월 9일 !
박정희 대통령의 연임을 위한 3선 개헌안이 민주공화당에 의해 국회에 상정됩니다.
1969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에 규정된 2번째 임기만료를 2년반 앞둔 햅니다.
야당인 신민당 의원들은 의사당 점거 농성을 벌입니다.
그러나 14일 새벽 2시 25분. 공화당은 야당에 통고조차 하지 않은채 이효상 국회의장의 사회로 개헌안을 10분만에 표결처리합니다.
표결결과 투표자 122명 전원의 찬성으로 전체 국회의원 수의 3분의 2를 넘어 3선 개헌안은 통과됩니다.
신민당 의원들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국회의 집기를 부수며 항의했습니다.
⑦ 미 군정 선포(1945) : 1945년 오늘 !
미 제 24군단장인 하지중장이 서울에 도착합니다.
서울에 온 하지중장은 "한반도의 38선 이남지역에 대해 미군이 군정을 펼 것"이라고 포고령 제 1호를 발표합니다.
미 군정당국은 한국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데다 본국정부의 지침이 없자, 옛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관리들을 행정고문으로 쓰기도 합니다.
미 군정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3년간 지속됩니다.
⑧ 강수연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1987) : 조선시대 대갓집 종손 신상규와 그의 부인인 윤씨와의 사이에 손이 없자 상규의 어머니와 숙부 신치호는 필녀의 딸 옥녀를 ‘씨받이’로 간택하여 집 안으로 들인다.
합방하는 날, 옥녀를 대면한 상규는 옥녀의 빼어난 용모에 반하고 부인 윤씨는 옥녀를 투기한다.
옥녀가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상규를 진실로 사랑하게 되자 필녀는 옥녀를 타이르나 옥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옥녀가 아들을 낳자 그 아이는 곧 윤씨의 품에 안기고, 아기의 얼굴도 못 본 옥녀는 떠나야만 했다.
결국 옥녀는 자신의 한 많은 생을 죽음으로 마치고 시대에 항거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의 줄거리다.
옥녀로 열연한 강수연은 1987년 9월 9일 세계 4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 모스크바)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강수연은 2년 뒤인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파계한 비구니의 정신적 고뇌와 방황을 그린 ‘아제 아제 바라아제’(임권택 감독)로 또다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스타’로 떠오른다.
삭발로 화제를 모았던 강수연은 그해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스크린 속의 강수연은 착하지 않다.
한 평론가는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그 작은 입술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독거미 여인”이라고 평했다.
TV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정난정 역을 맡은 강수연은 오직 성공을 위해 독하게 남자들을 쥐고 흔든다.
그의 별명은 ‘독종’이다.
그의 ‘독기’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신감이고 당당함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념이며 남성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성취 지향적이다.
강수연의 이런 이미지는 1980년대 여성 관객에게는 대리 만족을 줬고 남성 관객을 매혹시켰다.
1966년생인 강수연은 올해로 42세다.
중년을 넘어 노년까지 스크린에서 보여줄 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가 출연했던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오병철 감독)가 생각난다.
최초의 불교 경전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있지 않을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당당하고 아름다운 영화배우 강수연을 기대해 본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2008)
⑨ 태양력 최초 채용(1895) : ⇨10월 15일.
⑩ 정동교회(貞洞敎會) 건축기공식(1895) : ⇨11월 22일(사적지정).
⑪ 엘비스 프레슬리,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해 열창(1956) : 1956년 9월 9일 미국의 록가수인 엘비스 프레슬 리가 열광적으로 전신을 뒤흔들며 무대에서 열창하는 모습이 수백만명의 TV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주로 10대들을 상대로 한 TV프로 '에드 설리반'에 출연한 21세의 프레슬리는 '하운드 도그(hound dog)'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 등 두곡을 불러 청중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테네시 주의 트럭운전사였던 그가 기념비적인 작품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과 감미로운 사랑의 테마 '러브 미 텐더'를 소개하면서 세계의 우상으로 급부상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매력적인 목소리와 외모, 무대 매너로 흑인 음악 리듬&블루스와 백인음악 컨트리&웨스턴의 결합으로 태어난 록을 미국과 세계에 알렸다.
그가 출현하자 당시 청소년이었던 비틀스의 존 레넌은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고, 폴 매카트니는 "구세주가 나타났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⑫ 백만장자 상속녀 뉴욕 도착(1937) : 1937년 오늘 !
백만장자의 상속녀 바바라 허튼이 남편 르벤틀로 백작과 함께 뉴욕항에 도착합니다.
상속녀 허튼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유통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미국의 대부호 울 워스의 손녀 !
화려한 의상의 바바라 허튼 !
세계매스컴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⑬ 독일 U보트 격침작전(1942) : 독일의 대형 잠수함 U보트 !
2차 세계대전 기간중 대서양 해전에서 연합군을 가장 괴롭힌 잠수함이었습니다.
미국의 참전으로 대서양에서의 해전이 치열해졌습니다.
독일은 대서양에 수많은 U보트를 투입했습니다.
평온하던 대서양의 바닷물이 폭탄 세례를 받아 물기둥이 치솟습니다.
1941년 한해동안 독일의 잠수함 U보트의 공격으로 침몰된 영국의 함정은 7백여척 !
1942년에는 6백만톤이 넘는 연합군의 선박을 격침시켰습니다.
1942년 오늘.
연합군은 U보트를 격침시키기 위해 대형 전폭기가 전함을 엄호하는 새로운 작전을 폅니다.
치밀하게 수행한 작전으로 독일의 U보트 한척을 격침시키는데 성공합니다.
⑭ 아데나워 서독총리 소련 방문(1955) : 1955년 오늘 모스크바 비행장 !
불가닌 총리를 비롯한 소련 공산당 고급간부들이 모스크바 비행장에서 서독의 아데나워 총리를 맞이합니다.
아데나워 총리는 독일의 통일문제와 독일인 전쟁 포로석방을 논의하기 위해 소련을 방문합니다.
닷새동안의 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나 독-소 외교 정상화와 독일 전쟁포로 만명의 석방이 합의됩니다.
⑮ 흑인여성 연방판사 탄생(1966) : 미국의 민권운동 변호사였던 베이커 모틀리 여사 !
1966년 오늘 미국 역사상 흑인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방법원 판사로 임명됩니다.
당시 나이 마흔 다섯 살 !
뉴욕대와 콜롬비아 대학에서 공부한 모틀리여사는 한때 뉴욕시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흑인들의 민권을 위해 눈부신 활약을 한 그녀는 20년동안 뉴욕주의 상원의원을 지내기도 합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모틀리 여사는 아주 기쁘고 자랑스러운 한편 미국에서 가장 유능한 판사들이 배출된 뉴역 지구에서 일하게돼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은 해낼 수 있다고 소감을 밝힙니다.
⑯ 이란-이라크 분쟁(1980) : 이란과 이락간의 아랍권의 맹주권 및 영토 분쟁으로 인하여 발생한 1980년 9월의 이란-이락전쟁은 특히 양국의 국경지역인 샤트 알-아랍(Shatt al-Arab)수로에 관한 영유권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전쟁 발발은 표면적으로는 샤트 알-아랍수로의 영유권 문제와 이란이 강제로 점령한 호르무즈 해협의 3개 도서의 반환 문제로 야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맹주권, 즉 이락의 후세인의 정치적 야망과, 혁명 수출을 위한 호메이니의 혁명관이 서로 상충하면서 일어난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⑰ 사이버유고슬라비아(cyber yugoslavia) 탄생(1999) : 요약
1999년 9월 9일 세워진 최초의 인터넷 사이버국가.
본문
물리적인 영토를 갖지 않는 실제 국가이름을 따서 인터넷 상에 세운 사이버 국가이다.
1999년 9월 9일 세계 최초의 사이버국가가 탄생하였는데, 이곳의 국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신청을 통해 국적과 여권을 가질 수 있다.
국민은 인터넷을 통해 모집하는데 2000년 8월 현재 1만 2554명이 전세계에서 신청하여 사이버유고슬라비아의 국적을 취득하였다. 등록신청의 제한조건은 없으나 1년에 50번 이상 사이버국가를 방문해야 국적이 유지된다.
이곳은 특정정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행정수반을 담당하는 대통령이나 수상 등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 공보·인터뷰 등과 같이 각 분야를 담당하는 장관들이 동등한 권한으로 사이버국가에서 활동한다.
이들은 사이버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교체될 수 있으며, 헌법 또한 사이버국민들의 투표로 변경될 수 있다.
공식언어는 국민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맞춰 영어·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덴마크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
앞으로 사이버국민이 500만 명이 될 때 국제연합에 정식국가로 인정해줄 것으로 요구할 계획이며, 지구의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서버 설치를 위한 20㎡의 사이버유고슬라비아의 공식적인 영토도 신청할 계획이다.
(두산백과사전)
⑱ 컴퓨터 버그(computer bug) : 1946년 9월9일 오후 하버드대학 컴퓨터센터.
열기를 뿜어내던 초기 컴퓨터(MARK Ⅱ)가 작동을 멈췄다.
집채만한 크기에 복잡하게 연결된 전선과 진공관을 점검하던 연구원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ㆍ당시 40세)는 벌레(bug)를 찾아냈다.
작은 나방이 붙은 부품을 교체했더니 컴퓨터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호퍼는 테이프로 나방을 연구일지에 붙이고 이렇게 썼다.
‘벌레로 문제가 발생한 최초 사례 발견(First actual case of bug being found).’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를 뜻하는 ‘버그(bug)’와 이를 해결하는 ‘디버그(debug)’라는 용어도 이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여류 수학자 겸 물리학자로 대학에 재직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 해군에 입대해 탄도학을 연구하던 중 ‘버그’를 발견한 호퍼는 교수와 컴퓨터 과학자, 군인으로서 신화적인 존재다.
컴퓨터 언어 코볼(COBOL)의 공동 개발자로 전역과 재입대를 반복하며 1986년 80세까지 제독(소장)으로 근무해 ‘최고령 여성 현역’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미 해군이 1996년 취역시킨 이지스구축함에 ‘호퍼’라는 함명을 붙인 것도 1992년 사망한 그를 기리기 위해서다.
첫 발견 후 62년이 지나도록 버그는 인류를 끝없이 괴롭히고 있다.
1962년 금성 탐사선 마리너 1호의 실패에서 1996년 10억달러를 날린 유럽연합의 아리안 로켓 폭발까지 대형 우주사고는 대부분 프로그램 버그 탓이다.
미국의 한 병원에서는 방사선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의 버그로 방사선에 과도하게 노출된 암환자 5명이 죽은 적도 있다.
버그는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Y2K 버그’ 공포에 빠졌던 게 엊그제 같은데 ‘2038년에 치명적인 버그가 발생한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권홍우 편집위원.서경.2008.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⑲ 9월의 학살(1792) : 파리의 소시민과 노동자들은 1792.9.9밤, 자코뱅당의 지휘아래 봉기하여, 왕을 캄캄한 감옥에 가두었다.
이 무렵 북프랑스의 국경에서 프로이센의 군대가 침입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중은 격분하여 혁명군의 반동분자 1,000여명을 잡아 가두고 혹은 즉석의 인민재판에서 학살하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정부당국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사건을 프랑스의 혁명기에 있어 「9월의 학살」이라 한다.
⇨7월 27일.
⑳ 토이토부르크 전투 : 서기 9년 9월9일, 토이토부르크.
3만명의 로마군단이 1만여 게르만족과 맞붙었다.
병력과 장비의 질과 양에서 압도적이었던 로마군은 사흘간 이어진 전투에서 무참하게 깨졌다.
'야만족'으로 여겼던 게르만족의 원시적 도끼와 몽둥이에 사령관 바루스를 비롯해 2만여명이 전사했다.
군단의 독수리 깃발 3개도 빼앗겼다.
시내의 벽돌건물을 모두 대리석으로 바꿨다는 아우구스투스의 치세 아래 전성기를 질주하던 로마는 왜 졌을까.
지휘관의 무능과 게르만족의 단결 때문이다.
쏟아진 폭우도 가죽 방패와 갑옷을 적시고 진흙 수렁을 만들어 로마군의 기동력을 떨어뜨렸다.
게르만족 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아르미니우스(당시 27세)의 용병술.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인질로 잡혀가 로마군에 복무하며 전공을 세워 시민권과 하급귀족 직위까지 얻었던 그는 게르마니아로 돌아와 6개 부족의 전사를 모은 후 로마군을 숲으로 끌어들여 대승을 이끌어냈다.
'토이토부르크 숲의 전투' 패배 이후 로마는 보복에 나섰으나 토이토부르크 전투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정도의 성과를 얻는 데 그쳤다.
라인강 동쪽 게르마니아를 '야만인의 땅'이라며 남겨두게 된 로마의 패배는 서양사의 흐름을 갈랐다.
로마가 승리했다면 기독교 성립과 영어 탄생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독일식으로 '헤르만'으로 불린 아르미니우스는 왕국을 세우지 못하고 내전에서 죽었지만 19세기 이후 영웅으로 부각되며 통일과 대외전쟁 등에서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승전 2,000주년을 맞아 거국적 축제라도 일어날 법한 독일의 분위기는 차분하다.
전쟁을 일으켰던 국가가 민족주의의 상징을 추앙하기 거북하다는 이유에서다.
평화헌법 뒤에 숨어 전범을 대놓고 추도하는 우리네 이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인터넷한국일보.2009)
㉑ 보스턴 경찰 파업(1919) : 1919년 9월 9일 보스턴 경찰이 노동조합 결성을 거부당하자 동맹파업에 들어갔다.
보스턴 경찰은 제1차 세계대전 뒤 미국 노동총연맹(AFL) 가입을 추진했으나 시(市) 경찰위원회로부터 노동조합 결성권을 거부당했다. 이에 항의해 보스턴 경찰의 80%가량이 파업에 동참했다.
경찰이 파업에 들어가자 시 전체는 폭도들의 약탈과 횡포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앤드루 J. 피터스 시장은 보스턴 민병대를 소집해 파업을 진압했다.
당시 주지사로 있던 캘빈 쿨리지는 이 사건을 이용해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기도 했다.
쿨리지는 처음에는 파업을 막기 위한 조치에 반대했지만 파업이 수습국면에 들어서자 뒤늦게 매사추세츠 주 전역의 민병대를 소집해 파업 진압에 나섰다.
그는 "언제, 어디서, 어느 누구에게도 공공안녕을 저해하는 파업을 할 권리는 없다"고 천명하고 법과 질서의 확고한 지지자로서 국민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때의 활약에 크게 힘입어 1920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부통령후보에 지명되었고, 1923년 워런 G. 하딩 대통령이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㉒
㉓ 기타 오늘의 역사
1776 제2차 대륙회의, 미대륙을 `식민지연방'에서 `주연방'으로 개 칭
1831 로마 교황청에서 조선교구 창설 초대주교에 브뤼기에르 신부 임명
1850 캐리포니아, 미국의 31번째 주로 편입
1867 런던조약 조인
1895 <조선교회사:로네신부> 파리에서 발간
1896 3대 삼림자원 채벌권을 러시아인에게 허가
1913 평양양로원 설립.평양부 경상리에 있는 양로원,장로교의 평양 도제직회에서 설립 경영 60세 이상 할머니들 수용. 1923 조선기독교 여자절제회 창립
1883 미국 북태평양 철도 완성
1932 긔도의 사람 발행.스톡스(M.B.Stokes)번역.미국인 도마련가 발행.4.6판 94면,한글 세로쓰기 초판이며 각편 말미에 신앙 명사들의 유명한 문구를 소개함
1933 하나님과의 협동생활 발행.저자 멜빈.역자 크레인,발행자 본 윅.발행처 조선예수교서회.내용은 소유에 대한 근본적인 정의 와 특권 대한 관념 심어줌.
1944 프랑스, 드골 임시정부 수립
1945 조선총독부, 미군에 항복문서 조인
1954 북알제리아에 지진 약1,500여명 사망
1955 한국, 국제도서관협회에 가입
1956 서독서 통독촉구각서를 4개국에 전달
1957 유엔안보리 한국가입 소련대표가 거부
1957 미국 흑인투표권 보장
1962 일요신문 창간
1965 티베트, 자치구 성립을 선언
1968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개막
1971 뉴욕 아티카 교도소서 죄수 1천여명 폭동
1972 '8․3 명령' 긴급재정명령 국회에서 승인
1975 서울 YWCA, 여성의 해를 맞이하여 가족법 개정을 위한 데모 전개
1976 미국 NBC방송 뉴욕서 설립
1979 비동맹국 수뇌회의 아바나선언 채택
1980 이란.이라크 무력충돌--23일 전면전 돌입 1981년 : 레이건- 베긴 정상회담
1981 프랑스 내각 주요산업 및 은행 등 국유화법 의결
1982 국산 초음속 제트전투기 F5F 타이거2의 시험비행성공(마 하1.6)
1982 아랍국 지도자들 폐즈헌장 발표
1982 케야르 유엔사무총장 소련 방문
1985 영국 버밍햄서 폭동
1987 여배우 강수연, 베니스영화제서 여우주연상 수상
1990 65년만의 폭우로 한강 범람
1990 부시-고르바초프 헬싱키회담, 대이라크 공동전선 합의
1991 이라크, 유엔에 무기공장 사찰 수용
1993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 위원장에 조선일보사 방상훈 사장 선임
2000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개봉. 5일만에 90만명 동원해 사상최대 동원기록 경신
오늘의 인물
① 고종황제 출생(1852) : ⇨1월 22일.
⇨12월 13일.
⇨7월 20일.
⇨11월 20일.
② 논개(論介 ; 1574.음9.9 - 1593.음6.29) : 임진 왜란 때의 의기(義妓).
성은 주(朱).
⇨6월 29일.
[요약]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후처.
임진왜란 때 최경회가 전사하자 일본군이 촉석루에서 벌이는 잔치에 참석해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본관 신안 주씨
국적 조선
출생지 전북 장수
↑ 의암 주논개 생가지 /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본문] 성은 주씨(朱氏)이고, 본관은 신안(新安:중국)이다.
전북 장수(長水) 임내면 주촌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데 출생일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유몽인(柳夢寅)이 저술한《어우야담(於于野談)》에 전하는데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남아 전한다.
그때문에 논개는 기생이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원래 양반가의 딸이었으나 아버지 주달문이 사망하고 집안에 어려움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자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崔慶會)의 후처가 되었다고 전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5월 4일에 이미 서울을 빼앗기고 전라도 지역에서 고경명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자 최경회가 의병장으로 나서 싸우게 되었다.
경상도에서 진주성만이 남아 왜적과 싸우고 있었는데 최경회는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을 지원하여 승리를 거두었다(제1차 진주성 싸움).
1593년 최경회는 경상우병사로 임명되어 싸웠으나 수많은 군관민이 전사 또는 자결하고 28일만에 진주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이때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제2차 진주성 싸움).
1593년 7월 일본군 왜장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矗石樓)에서 주연을 벌이는데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위해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하게 된다.
이 자리에 있던 그녀는 계획대로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가락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꾀어 벽류(碧流)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南江)에 떨어져 적장과 함께 죽었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 불렀으며, 사당(祠堂)을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다.
1846년(헌종 12) 당시의 현감 정주석(鄭胄錫)이 장수군 장수면(長水面) 장수리에 논개가 자라난 고장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를 건립하였다.
그가 비문을 짓고 그의 아들이 글씨를 썼다.
1956년 '논개사당(論介祠堂)'을 건립할 때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현 위치에 옮겨놓았다.
비문에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라고 씌어 있다.
장수군에서는 매년 9월 9일에 논개를 추모하기 위해 논개제전(論介祭典)을 열고 있다.
(두산백과사전)
③ 차이석(車利錫 ; 1881 - 1945.9.9) : 독립운동가.
호는 동암(東巖).
평안북도 선천 출생.
신민회(新民會)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한편, 평양 대성학교 교사로 있었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었고, 3.1운동 후 상하이 로 망명, 「독립신문」기자, 한국독립당 간부, 임시정부국무위원으로 활약하였다.
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됨.
④ 최규식(崔圭植 ; 1931.9.9 - 1968.1.21) :『그는 용감한 정의인으로 종로 경찰서장에 재직중 1968.1.21 청와대를 습격하여 오는 공산 유격대와 싸우다가 장렬하게도 전사하므로 정부는 경무관의 계급과 태극무공 훈장을 내렸다.
비록 한 때의 비극 속에서 육신의 생명은 짧았으나 의를 위하는 그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 남으리라.』
이상은 서울 세검정 자하문 소재,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의 원문이다.
⑤ 김자경(金慈璟 ; 1917.9.9 ~ 1999.11.9) : ⇨11월 9일.
한국의 성악가 교육자.
한국 최초의 민간 직업 오페라단인 김자경 오페라단을 창단해 한국 오페라사에 한 획을 그었다.
또한 후진 양성과 해외 진출 등 한국 문화예술 수준을 한단계 올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주요 공연 작품으로 《춘희》, 《리골레토》등이 있다.
본관 김해
호 심설
국적 한국
활동분야 음악·교육
출생지 개성
주요수상 대한민국 예술원상(1974), 은관문화훈장(1974), 중앙일 보 문화대상(1976), 국민훈장 석류장(1983), 올해의 음악가상(1984), 세종문화상(1987),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1992)
주요저서 《눈으로 듣는 삶의 노래》
⑥ 추 식(秋湜 ; 1920.9.9 - ) : 충청북도 청주 출생.
소설가.
아호 고우.
충북도 공무원 생활 약5년중 이동극단에 참가하였으며 한동안 중국으로 유전하였다.
해방 뒤 독립신문, 평화일보, 동양통신사 등에서 기자를 거쳤다.
작품에 장편(長篇) 소설 <녹쓸은 태양> <처> <바다는 마르지 않는다> <봄눈이 녹듯이>, 그 밖에 10여편과 단편집 <인간제대> <가시내 선생> 등이 있다.
조소앙(趙素昻 ; 1887.4.10 ~ 1958.9.9) : [요약] 독립 운동가 겸 정치가.
김구 등과 시사책진회를 결성하고, 한국 독립당을 창당했다.
또 한국 광복 진선 결성에 한국 독립당 대표로 참가했다.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득점으로 당선되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주요 저서에는《한국문원》,《소앙집》등이 있다.
본관 함안
호 소앙
본명 용은
별칭 자 경중
활동분야 독립운동, 정치
출생지 경기 파주
주요수상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88)
주요저서 《한국문원(韓國文苑)》《소앙집》《유방집(遺芳集)》
[본문] 본관 함안(咸安).
호 소앙.
본명 용은(鏞殷).
자 경중(敬仲).
경기도 파주(坡州)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조선법학전수학교(朝鮮法學專修學校)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하여 국무위원 겸 외무부장 등을 지내고, 제네바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었다.
1922년 임시정부의 내분을 수습하려고 김구(金九)·안창호(安昌浩) 등과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결성하고, 1930년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으며, 1937년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 결성에 한국독립당 대표로 참가하였다.
1945년 8·15광복으로 귀국하여 국민의회를 조직하고, 상무위원회 의장을 거쳐 1946년 한국독립당 부위원장이 되었다.
1948년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김구 등과 남북협상에 참가하였다.
정부 수립에 불참하였다가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득점으로 당선되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저서에 《한국문원(韓國文苑)》(1932) 《소앙집》 《유방집(遺芳集)》(1933) 등이 있으며, 1970년 삼균학회에서 《소앙문집》 상·하권을 간행하였다.
198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독립기념관 경내에 삼균주의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두산백과사전)
⑦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 ; 1842.3.18 ~ 1898.9.9) : 프랑스의 시인.
일생을 영어교사로 있으면서, 보들레르․포우 등의 영향으로 교감(交感)과 유추(類推)에 의한 상징적 프랑스 상징 파의 시조(始祖)가 됨.
대표작은 장시(長詩) <헤로디아드〉․〈목신(牧神)의 오후〉등등.
⑧ 모택동(毛澤東 ; 1893.12.26 - 1976.9.9 : 빈농의 아들로 출생.
중국공산당 창시자.
1949.10 북경(北京)에서 중공(中共)정부를 수립했고 1976년 사망할 때까지 27년간 중국 대륙을 통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중국혁명의 실천을 통일했다는 모택동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정립했고 1966.5월부터 1969.4월까지 문화 대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확고히 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중국을 대혼란에 빠뜨렸다.
저서에 <신민주주의론> <모순론> 등이 있다.
⑨ 갈바니(Luigi Galvani ; 1737.9.9 - 1798) : 이탈리아의 생리학자.
해부학자.
볼로냐 대학에서 신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의 해부학교수를 지냈다.
1786년 개구리 다리의 실험에서 생물전기를 발견 생체의 전기현상이라든가 전지․ 전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⑩ 자크 라캉(Jacques Lacan ; 1901.4.13 ~ 1981.9.9) : ⇨4월 13일
프랑스의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80세로 사망했다.
공정하든 그렇지 않든, 라캉은 프로이트 이후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평가된다.
주체 형성의 시발로서의 거울단계, 주체를 구성하는 세 질서로서의 상상계.상징계.실재계 같은 라캉의 개념들은 오늘날 정신분석학만이 아니라 인접 인문학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30대 이후에 자신이 몰두한 프로이트 재해석 노력을 라캉은 프로이트에게로 돌아가기(retour a Freud)라고 불렀으나, 실제로 그가 구축한 학문의 성채는 프로이트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외양을 하고 있다.
라캉 정신분석학의 외양을 프로이트의 것과 다르게 만든 결정적 요인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라캉의 언어학적 접근이었다.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와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어는 무의식의 조건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발언은 이런 생각을 정식화한 것이다.
프로이트가 억압이라고 부른 것은 라캉이 보기에 은유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프로이트가 전이라고 부른 것은 라캉이 보기에 환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인간 존재가 간주관성의 변증법에 다다르는 것은 시니피앙의 질서로서의 파롤을 통해서라고 라캉은 생각했다.
이 간주관성의 변증법은 단순한 생리적 욕망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제 욕망을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망에 지배된다.
이 대목에서 라캉은 알렉상드르 코제브를 통해 얻은 헤겔주의적 감수성을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언어학자 미셸 아리베는 라캉을 포함한 구조주의자들이 시니피앙이나 파롤 같은 소쉬르의 개념들을 언어학 바깥으로 끄집어내면서 그 엄밀함을 훼손했다고 비판한 바 있지만, 라캉은 이미 생전에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거장 중의 거장으로 추앙받았다.
라캉의 두 번째 아내인 배우 실비아 바타유는 소설가 조르주 바타유의 두 번째 아내이기도 했다(고종석, 2004).
⑪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Graf Tolstoy : 1828.9.9 - 1910.11.20) : 톨스토이는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 Voyna i mir>(1865~69)와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1875~77), <부활 Voskreseniye>(1899)을 남긴 러시아의 작가이자, 개혁가이며, 도덕사상가이다.
<전쟁과 평화>는 7년에 걸쳐 쓴 대서사시로서 세계문학사에서 손꼽히는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805~14년을 무대로 러시아의 5개 귀족가문의 역사를 다룬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는 사실적이고 정교한 세부묘사와 다양한 심리분석으로 여러 인생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연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서술기법과 문체가 <전쟁과 평화>와 비슷하지만 예술적인 통일성에서 훨씬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삶의 의미에 대한 작가 자신의 고뇌, 자살 충동 등 당시 톨스토이가 겪고 있던 갈등을 엿볼 수 있다.
<안나 카레니나>를 탈고할 무렵 톨스토이의 정신적 고통은 극에 달했고, 그는 그 돌파구를 그리스도교에서 찾았다.
만년에 그는 종교․사회․도덕․예술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저술로 남기는 데 시간을 바쳤다.
이 시기의 저술로 <교조신학 비판 Kritika dogmaticheskogo bogoslaviya>․<나의 신앙 V chyom moya vera> 등이 있다.
⑫ 하리슨( ; 1859.9.9 - 1928) : 영국의 그리스 학자.
이름은 제인.
고대 고고학 및 미술사의 제일인자.
저서에<그리스 종교연구 서설><신화> 등이 있다.
⑬ 호지슨(Ralph Hodgson ; 1871.9.9 ~ 1962.11.3) : 영국의 시인.
요크셔 출생.
1904년경부터 저널리스트로서 《새터데이 리뷰》지(誌) 등에 기고 활동을 하였다.
1914년 시편(詩篇) 《황소》 《명예의 노래》로 폴리냐크상(賞)을 받은 《시집》(1917)을 발표하였다.
그후 자연관조적인 시풍을 터득하여 조지왕조 시인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⑭ 윌리엄 1세( ; - 1087.9.9) : 잉글랜드 노르만 왕조를 열었던 정복왕 윌리엄 1세가 1087년 9월 9일 사망했다. 1066년 잉글랜드 고해왕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 사후 위턴회의의 결정에 의해 에드워드의 의형제인 해럴드 백작이 후계자로 결정되자, 윌리엄이 1066년 10월 14일 헤이스팅스(Hastings) 전투에서 해럴드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잉글랜드 노르만 왕조 시대를 연 윌리엄은 1035년에 이미 '노르만디' 지역을 상속받았다.
잉글랜드 왕이자 노르만디공이었던 윌리엄의 가장 큰 적대 세력은 프랑스 왕과 앙주 백 풀크 심술보(Fulk le Rechin)이었다.
윌리엄과 반대 세력은 루앙(Rouen)과 파리 세느강 북쪽의 벡생(Vexin) 그리고 메인(Maine) 백령을 주요 전장 터로 해서 오랜 기간 대립했다.
특히 윌리엄의 장남인 로버트가 반란을 일으킨 뒤, 프랑스 왕 필립 1세 편에 가담한 사건은 정복왕의 불운한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윌리엄은 프랑스 망트(Mante) 요새 수비대가 노르망디를 기습공격하자 1087년 7월 망트 요새에 대한 반격을 가했으나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이로 인해 9월 9일에 사망하게 된다.
정복왕 윌리엄은 제위 시절, 잉글랜드에 노르만식 봉건제도를 도입했으며, 효율적인 징세를 위해 전국적인 토지대장인 '둠즈데이북'(Domesday Book)을 작성하기도 했다.
⑮ 기타 오늘의 인물
0384 서로마 제국의 황제(393-423) 호노리우스 출생
1515 요셉 사망. 저명한 수도사이며 신학자.[중세의 러시아의 아버 지]라 불리웠음.
1575 베이커 출생.베네딕투스수도회 수사로서 금욕주의 및 신비주 의 신학의 중요한 작가.
1747 코크 출생.미국 감리교회 초대 감독이자 감리교 선교단체들의 창설자.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의 친구이기도 함.
1778 브렌타노 출생.시인이자 소설가였으며 또한 극작가였던 사람 으로서,독일 하이델베르크 낭만주의 학파의 창시자들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1854 크누트존 출생.노르웨이의 동양학자.그는 크리스아니아대학교 에서 아시리아학 전임강사가 되었다.그리고 동대학교 셈어 교수를 역임함.
1855 빌데뵈르 출생.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 목사이며 구약성서 학자.신학적입장은 [역사비평적이었고 이스라엘에 나타난 하 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믿었다.
1859 파이네 출생.루터교도.예나와 베를린에서 수학함.
1862 장의택 출생.장로교 목사,독립운동가.장연면 동부리에 봉양학 교를 설립.민족교육 실시.은율군 군감으로 독립운동에 참가.
1869 맥린 출생.장로교 목사.에든버러에 있는 자유교회대학에서 교 회사 및 교의학 교수와 학장을 지냈다.
1886 스나이더 출생.1908년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YMCA간 사로 봉직했다.
1890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창업자 할란 샌더스 출생
1891 장익부 출생.장로교 장로,독립운동가.1977년 대한민국정부로 부터 건국포장을 받음.
1901 독일의 식물학자 심퍼 사망 - 최초로 대륙을 식물지리구 로 나누는 데 성공
1921 천주교 지학순 주교 출생
1925 배우 클리프 로버트슨 출생
1941 리듬 앤 블루스 가수 오티스 레딩 출생
1978 미국 워너브러더스 영화사를 설립한 워너 사망
오늘의 세시
① 중양절(重陽節) :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
중구(重九) 또는 중양이라고도 한다.
중구는 양수인 9가, 중양은 양수가 겹쳤다는 뜻이다.
중양절은 제비가 강남(江南)으로 간다고 전하며, 이 때쯤 되면 제비를 볼 수 없다.
각 가정에서 국화꽃 잎을 따서 찹살가루와 반죽하여 단자를 만들어 먹는데 이를 「국화전(菊花煎)」이라 한다.
봄의 진달래 화전과 함께 계절 시식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이 국화전은 가을의 미각을 새롭게 한다.
사람들은 떼를 지어 단풍이 든 산이나 계곡을 찾아가서 장만해 온 술과 음식을 들면서 단풍놀이를 한다.
이 때는 부녀․소녀․소년․농부들이 제각기 떼를 지어서 하루를 즐기는데 문인들은 시를 짓고 풍월을 읊어 주흥을 내 주기도 한다.
요즈음도 이 때가 되면 각급 학교에서 가을 소풍을 가는 데 이것은 오랜 전승(傳承)에서 유래한 것이다.
⇨2월 29일.
이 날은 유자(柚子)를 잘게 썰어 석류알, 잣과 함께 꿀물에 타서 마시는데 이것을 ‘화채(花菜)’라 하며 시식(時食)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또 이 날 서울의 선비들은 교외로 나가서 풍국(楓菊) 놀이를 하는데, 시인 ·묵객들은 주식을 마련하여 황국(黃菊)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즐겼다.
제주도에서는 9월 9일을 무조(巫祖)인 「명도」의 생일날이라 해서 신방(神房)들이 마당에 그를 세우고 큰 굿을 하기도 한다.
② 연홍지탄(燕鴻之歎) : 제비는 음력3월 3일에 와서 9월 9일에 가고, 기러기는 9월 9일에 와서 3월 3일에 가므로 어긋나서 만나지 못한다.
즉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하는데 쓰는 말이다.
⇨3월 3일. ③④⑤
오늘의 샘터
① "양심의 소리는 다름아닌 신의 소리이다. "
- 레프 N. 톨스토이 -
의 졸저<원저 편저자 (1973년도 초판)> 평택 소통 김평탁입니다.
1973년 초판 이래 조선일보를 비롯 각 신문들과 각방송국 특히 ytn 을 비롯하여 컴퓨터 인터넷.......오늘까지도 각 방송들과 신문 인터넷의 덕택으로 원저자의 보람을 온 국민들과 함께 만끽하며 감사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소생은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개인<일기>를 60여년 동안 지금까지 쓰고 보존해 오면서,
오늘의 국민 소통 운동과 우리 한민족 한가족 소통 운동을 제창하게 되었으며 다행히도 박근혜정부<한민족미래창조과학기술부>의 탄생을 한없는 기쁨과 소원<소망>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국민 여러분 !
그리고
국내외 동포<가족> 여러분 !
어서빨리 동서남북 우리나라 남북 평화 통일을 이루십시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샬롬 !
2013년 08월 13일 광복절을 앞두고
CCCC C-man 평택 소통 김 평 탁 올림
(국민소통운동본부.017-727-3863,(031)692-3650
평택건강생명사랑상담소<교회> 본교회는 상담 대화 토론 소통 중심의 교회입니다.
소통이란 말<용어>부터 살펴봅니다.
영통 0통 1통 2통 3통 4통 5통 6통 7통 8통 9통 10통 100통 1.000통 10.000통………….
소통은 바로 영통부터 시작됩니다.
소통=영통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한 말이고, 영통은 사람과 하나님과 관계된 말로서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통한다는 말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람 곧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는 절대관계 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이며, 하나님은 창조주<조물주>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상대관계입니다.
절대관계 절대 !
상대관계 상대 !
우리 국가<민족>동포의 지도자<영도자>는 <영통>부터 시작하여(영통령)<소통령><중통령><고통령><대통령>(원통령)이어야 하겠습니다.
(국민소통운동본부.CCCC 017-727-3863,(031)692-3650 ,1588-9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