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첫째 부활(이조선)
[계20:4-6]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약)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 복이 있는 사람이고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기를 사모하면서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기를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꼭 첫째 부활을 받는 이런 사람들이 되기를 원한다는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고 깨우쳐주시는 대로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술로만 잘 믿고 있어요. 실제로 변화 받지 않고 이렇게 형식적으로 살아가면서도 자기는 부활할 것이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 그리고 천국 간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주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보면 22절부터 24절까지에 보면 세 가지의 부활이 나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첫째 부활은 첫 열매인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실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부활이고 우리들 자신의 부활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거니까 지금 그거는 옛날 과거에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던 일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걸 가지고 이야기할 거는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부활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다음 둘째는 어떤 부활이냐.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부활하는 것이 둘째 부활이라 셋째 부활은 뭐냐.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천년 왕국 전에 일어나는 부활이 여기서 말하는 고도 전서 15장에서 말하는 둘째 부활이고, 천년 왕국 후에 일어나는 부활이 여기서 말하는 셋째 부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야기는, 그거는 빼놓고 앞으로 우리에게 올 부활 두 가지의 부활이 남아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 강림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 부활하는 이러한 부활, 이거를 첫째 부활이라고 말하고 그다음에 천년 왕국이 지난 다음에 인류 전체가 부활하게 되는 그 부활을 가리켜서 우리는 둘째 부활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상식을 가지고 이 말씀을 대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겠습니다.
그러면 첫째 부활이라는 거는 무엇이냐.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을 두고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았나 이렇게 말할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말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지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사람이라야만 합니다. 누가 천국의 백성이냐. 그리스도께서 내가 너를 모른다 하면 그는 천국 백성이 될 수가 없죠. 내가 너를 안다. 너는 나의 소속이다 이렇게 인정을 해주셔야지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천국 백성 된 이런 자격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합니다. 천국의 증명서를 가지는데 이 천국 증명서가 주님이 인정해 주시는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에게 속했다 이렇게 인정해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사람이 첫째 부활을 받는 사람이고 둘째 부활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것은 나중이니, 나중이라는 말은 천년이 지나고 이루어진다는 말인데 천년이라고 하는 것도 지금 우리가 계산하는 천년이냐, 또는 그것 아닌 다른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이것은 우리가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여하간 이 천년이라고 하는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마귀를 잠깐 무저갱에서 놓아주시는데 무저갱에서 뛰쳐나온 마귀가 또 인류를 유혹을 해가지고, 거짓말로 미혹해가지고,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그러다가 백마 타고 오시는 예수님의 입술의 기운으로, 입술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으로 그들을 쳐서 깨뜨리시고,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고, 그래서 마귀와 그의 종들, 그를 따라갔던 모든 악한 인간들은 다 지옥 불못 속에 던져 놓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이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가리켜 우리가 둘째 부활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설명하기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을 믿던 사람들은 다 부활해서 공중에 올라가 주님을 영접하는데 이것이 첫째 부활이고 둘째 부활은 악인들의 부활이다. 이렇게 말을 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그거는 잘못된 설명입니다. 이 첫째 부활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 거룩하게 변화 받은 사람이라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둘째 부활은 온 인류가 부활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천국 갈 사람도 있고, 지옥 갈 사람도 있고, 이게 뒤섞여져 있는데 물론 지옥 갈 사람이 더 많겠죠. 그렇지만 이들이 다 부활하는 것을 둘째 부활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이런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보아야지 하겠습니다.
그러면 누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가? 오늘 본문 4절 말씀 보면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고 전파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 전도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을 찾으시는데 우리가 목사님이라고 해서 다 저절로 여기에 속하는 게 아니고 그 목사님들 입에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해도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들만 잔뜩 하고 나면은 그것도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잘 설명했다 그런데 그거 가지고 안 돼요. 모세의 이야기를 엘리아의 이야기, 다윗의 이야기를 참 설명했다, 안 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이걸 연관시켜서 설명할 수 있어야지 예수를 증언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설교에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하도록 우리 설교자들은 특별히 각성해서 자기의 설교를 반성해보고 예수님과의 연관을 깊이 맺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짐승과 우상에게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이마와 이마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 짐승, 곧 마귀에게 경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마땅히 섬겨야 할 하나님을 버리고 온갖 잡신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어 성경을 보면 이 둘째와 셋째를 대역 성경처럼 두 가지로 이렇게 나누어서 번역한 게 있는가 하면, 한편 이 두 가지를 동적으로 해가지고도 같은 것으로 설명한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하간 이 두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과 복음을 전하는 이 일에 충성스러운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목베임을 받은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말론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게 많은데 짐승의 표 소위 666이라고 하는 것을 주님이 오시기 직전, 대 환난 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이 짐승의 표는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것입니다. 무슨 손이나 이마에다가 이 짐승의 표를 받는다고 하니까 눈에 보이는 무슨 표를 받는 것처럼 그래서 베리 칩을 받는다든지 또는 아이디 카드에 바코드가 666이라든지 이렇게 설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렇게 설명했던 사람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한때는 그것이 아주 옳은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걸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은 전에 말씀했죠. 이 666 짐승의 표가 눈에 보이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표는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다른 사람들이 가인을 해치지 못하도록 이렇게 하셨다. 그러면 그 표가 눈에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 표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눈에는 이 표가 보이기 때문에 마귀가 누구를 이렇게 충동질을 해가지고 가인을 죽이도록 하지를 못한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깊이 깨닫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또 이 먹그릇을 찬 천사가 내려와서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베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다가 표를 한다. 하나님이 이 표를 딱 해놓으시면은 마귀가 그 표를 받은 사람을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악한 마귀는 그들을 해치지 못하고 살아나게 되는데 그 표도 역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표입니다. 성령의 인이라고 하는 것도 성령께서 도장을 꽝 찍어놓으셨는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그리고 마귀가 볼 때에도 그 도장은 보일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14만 4천 명 하나님의 인을 받은 이 사람들도 그들의 인 받은 그 인의 모습이 사람의 눈으로는 눈에는 안 보이고 영으로만 보인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지만 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14장 4절에 설명을 하고 있죠. 이 사람들은 첫째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다 이렇게 설명했고요. 더 분명한 것은 처음 익은 열매다 이런 설명을 했습니다. 곧 부활의 첫 열매들인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첫째 부활에 참여할 사람들, 이 사람들은 남들이 부를 수 없는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랬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 왜 남들은 부르지 못하느냐. 유명한 음악 대학들 나오고 아주 빼어난 가수가 되면은 다 천국 들어간다는 소리냐? 그런 말씀은 전혀 아니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치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도 기도하고 찬양하고 했던 것처럼 이렇게 어려움으로 인해서도 낙심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는 이런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 노래를 배울 수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하는 사람이 돼야 하겠습니다.
셋째로는 어린 양이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했다. 둘째가 그렇죠. 여자라고 하는 거는 영적으로 모든 유혹,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데 받는 유혹입니다. 그래서 돈의 유혹, 명예의 유혹, 권세의 유혹, 세상 쾌락의 유혹 얼마든지 유혹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이런 것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전심으로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다. 저는 이 말씀이 참 너무 좋아요.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 우리도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로는 사랑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 되었다. 여기 처음 익은 열매라는 게 첫째 부활에 참여할 사람들이란 말이죠. 하나님께 온전히 속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세상 반 하나님께 반 이렇게 반반 양쪽 양발을 이렇게 한쪽씩 디디고 서 있는 자가 되지 말고 온전히 주님께 두 발을 다 드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다섯째는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헛된 것에 유혹받지 아니하고 이 세상 헛된 것 따라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서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이 꼭 돼야지 하겠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이냐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주님 재림하셔서 이 새로운 세상이 될 때 그 세상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이 천년 왕국에서 왕이 될 사람들은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해서 사랑으로 봉사하는 왕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이런 복된 왕들이 되어야지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날 곧 첫째 부활의 날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성경에서 예수님이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는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새깁시다.
첫째는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포도원의 악한 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하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포도원의 농부들은 주인이 늦게 올 줄로 알고 그저 먹고 마시고 술 취하고 동물들을 때리고 이런 짓들을 하다가 갑자기 이 말씀 주인으로 인해서 저희들이 큰 벌을 받게 되고 망신을 당하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된다 하는 것이죠.
둘째로는 예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열 처녀가 등만 준비하지 말고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과 함께 기름도 준비해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또 깨어 있다고 하는 말은 잠자지 말고 잠들어 있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이죠.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다 깨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주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면서 주님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렇게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고대하면서 우리가 살아가야지 하겠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 성경의 제일 마지막 말씀이 그 말씀이죠.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리고 내가 속히 오리라. 주님 하시면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것이 아니고 주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면서 한 영혼이라도 멸망당하지 않기를 원하시기에 우리 위에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깨어서 주님 앞에 기도하고 주님을 뜨겁게 사모하는 사람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세요. 다윗은 인간적으로는 약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다윗을 너무너무 사랑하시고 다윗을 지극히 높여 주셨습니다. 왜 다윗을 사랑하셨느냐?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니 나도 너를 사랑한다. 아브라함도 얼마나 약점이 많은 사람입니까? 심지어 자기의 아내를 팔아먹으려고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은 정말 빵점짜리 남편이죠. 어떻게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은 다 그런 어려운 환경을 맞으면 전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평소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 말씀을 순종해서 따라간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이 놀라운 복을 내려주시더라 하는 것을 우리가 깊이 기억해야지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복된 길을 잘 걸어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언제 이루어지느냐?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아니면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가지고 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0장 1절에서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죠.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내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내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내 빛을 나한테 무슨 빛이 있어서 이 빛을 발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 위에 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위에 임합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도 깨어 일어나서 빛을 발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도 이 신실한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시옵소서 나를 써주시옵소서 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지막 때,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 큰 은혜가 임해서 날마다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0. 십자가 위의 주님이 밝히 보이는가?
[갈3:1-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요약)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처음부터 굉장히 책망을 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1장 첫머리에서부터 누가 너희를 꾀더냐 다른 복음은 없나니 내가 너에게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비록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 이렇게 무섭게 책망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와가지고 바울이 전해서 예수님 믿게 하고 은혜받게 하고 신실한 사람을 만들었던 사람들을 유혹을 해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흘러가게 만들고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게 3장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어 그냥 지금 갈라디아 사람들한테만 책망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오늘도 주일이라고 주님 앞에 다 모여 예배한다고 이렇게 찾아든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역시 이 말씀이 아니냐 어리석게도 갈라디아 사람들아 너희가 정말 크리스찬이냐 너희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에도 밝히 보이느냐 이게 밝히 보여야 된다고 하는 얘기죠. 이 사람들은 밝히 보이는데도 유혹을 받아서 넘어졌어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밝히 보이지도 않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유혹을 하면 넘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유혹을 하지 않아도 자기들 스스로가 다 넘어지고 자빠져서 겉으로 보기에는 잘 믿는 것 같은데, 진짜 내면적으로는 믿음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 갔다 다니고 있는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으냐는 말이죠.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고 그래서 붉은 피를 이렇게 흘리시고 고개는 푹 숙이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성화를 바르게 볼려면 이렇게 내가 서서 보면은 안되고 그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올려다봐야 된대요. 쳐다봐야지 된다. 근데 아래에 글이 쓰여 있는데, 내가 너를 위하여 내 몸을 주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 그런 말씀이 써져 있어요. 그걸 읽고 깜짝 놀랬습니다. 그리고 앞에 엎드려져 펑펑 울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는데 그래서 당신의 생명을 주시고 나에게 구원을 주셨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그렇게 울고 마음에 새롭게 결심이 생겼어요. 이 백작이라고 하는 직위도 내려놓고 재산은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그리고 복음 전에는 이 일에 뛰어들어서 주님 앞에 충성스럽게 기도하고, 전도하고, 이 일에만 힘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게 경건파라고 하는 거예요. 독일의 경건파 다른 말로 모라비안파 라고 하는 게 생겼는데 이것이 후에 요한 웨슬리가 이 모라비안파들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마틴 루터의 로마서 강해를 쭉 읽어가는 것을 듣고 있다가 그냥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말씀을 쭉 읽어나가는 거기에 이 사람이 팍 꼬꾸라지고 말았어요.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큰 불을 받고 사람이 변화돼 가지고 감리교회라고 하는 큰 교단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세속화되어 가는 기독교계에 새로운 경건운동을 일으키고 은혜운동을 일으키고 성령의 불을 쏟아부어 주시고 이렇게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의 십자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참 복된 사람입니다.
세상을 비판하고 비관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 세상 인간 인생 사이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이렇게 좌절하기 쉬운데 그럴 때에 치료하는 약이 무엇이냐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그래서 세상에 나쁜 거 자꾸 보지 말고 좋은 거를 봐야 되는데 그래야 우리 마음도 좋아지는데 좋은 것 중에 최고로 좋은 게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모습을 봐야 한다.
모습을 볼 때에 우리의 영혼이 열리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바로 성경의 핵심이다. 성경의 중심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나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십자가를 바라보게 거기에 못 박혀 계신 그분이 바로 성경의 중심이시로구나 이 성경책이 전부 그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거로구나 이게 깨달아져야지 성경을 읽어도 말씀에 깨달음이 오는 거죠. 근데 이걸 모르고 성경을 읽으면 글자는 읽는데 무슨 뜻인지 깨달아지지 않고 글자를 많이 읽고 외우니까 성경을 잘 안다고 세상 사람들은 박사라고 칭할지도 모르고 아주 대학자라고 높여줄지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 영안이 열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니까. 성경 보는 눈이 깜깜하고 남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엉뚱하게 가르치고 잘못되게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늘 바라보면서 우리가 새로워져야지만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놀라우신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우리 마음이 깨끗해지고, 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에게 큰 깨우침을 주는 것 정말 귀한 깨우침을 주시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십자가라고 하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거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것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받은 자라 그랬어요. 그건 저주받은 자입니다. 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은 극형 중에 최고의 극형 가장 나쁜 그런 형벌인데 예수님이 그런 형벌을 받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는 주님이 왜 십자가에 저렇게 못 박혀 돌아가셔야 되는가 하는 거를 생각하면서 사실은 우리가 이 깨달음을 가져야죠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저렇게 죽어야 될 텐데 주님이 나를 대신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게 마음의 깨달아줘야 된단 말이에요.
자 그런데 왜 사람들이 문제는 거기에 있어요.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밝히 보면서 살면 참 좋겠는데 왜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는 보이지가 않을까?
첫째, 이유 이 세상에는 내가 보아야 될 게 너무 많아요. 급한 것들이 너무 많아요. 당장 돈 벌어야 돼. 당장 공부해야 돼. 당장 세상 명예 권세를 얻어야 돼. 목표를 인간들마다 목표를 세워놓고 사는데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권세 정말 90% 이상의 인간들이 전부 이렇게 엉뚱한 데다가 한눈 팔고 살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이 보일 리가 없죠
둘째는 마음에 악한 것을 생각하고 살고 있고 마음의 헛된 것을 사모하고 살고 있고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문이 열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의 뭔가가 다 욕심이 있어요. 물론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이런 것들도 다 들어있지만 외에도 이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어지러운 욕심들이 많이 들어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나의 마음을 가로막아가지고.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하게 만들지를 못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에서 끊임없이 악한 죄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로마서 1장 끝에도 이렇게 나타나고 우리 성경에 마음에서 마음에 있는 죄 마음에서 나오는 죄 예수님이 이거를 제일 경계하셨어요. 그래서 마음에서는 뭐든 악한 생각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가 몸으로 짓는 죄보다도 마음으로 짓는 죄가 훨씬 크죠 그래서 사람마다 마음이 더러워져 있습니다. 마음이 더러워지니까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은 당연하죠. 예수님 말씀하셨어요. 팔복 가운데 여섯 첫째복 이것이 마태복음 5장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 내 마음이 더러우니까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유는 마귀란 놈이 사람을 미혹하고 속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와를 찾아와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 따먹어라 요렇게 충동질하던 요 마귀란 놈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다 찾아와 가지고서 똑같이 우리 마음의 거짓말을 가르쳐 하나님 대적하도록 만들고 하나님 말씀은 거짓말이고 자기가 하는 말이 참말이고 자기 말을 들으면 행복이 찾아오고 자기 말을 들으면 이 세상이 다 새롭게 되는 줄로 이렇게 자꾸 가르치니까 이런 마귀의 말에 속아가지고. 인간들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밝히 보여야 우리가 유혹을 이어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시라도 여기에서 눈을 떼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헛된 것을 보고 그런 데에 욕심을 품고 그런데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결국 우리의 시간도 재물도 다 마귀에게 빼앗기고 마귀를 위해서 쓰임받게 되고 우리 인생은 비참하게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우리를 자신을 위해서 의해서 이 진실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 삶이 이루어져야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질 때 우리의 가정이 밝아지고 자녀들이 아름답게 자라나고 이 세상이 새롭게 변하고 내 주변의 악한 친구들은 쫓겨나고 의로운 사람들 좋은 친구들이 모여들어서 나를 돕는 사람이 되고, 여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고 놀라운 복을 날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복을 다 받아야지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 은혜 안에서 우리가 새로워져야지만 합니다.
또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저분이 왜 저런 고난을 당하셨는가?
죄 있는 내가 못 박혀 죽어야 할 것인데 자리에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죄만은 나를 살려내셔서 너는 이제 죄가 없다. 죄가 없는 사람으로 살아라 다시는 죄 짓지 말고 살아라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주었으니 이제 너는 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음성을 들으면서 우리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쳐서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것이 무슨 능력이 있다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어요. 우리가 뭐를 안다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까? 그래서 주님 앞에 나가서 고해야 되는 거죠. 주님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찌 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나를 깨우쳐 주세요. 나의 갈 길을 인도해 주세요. 이렇게 주님 앞에 간절히 은혜를 구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 마음의 깨달음을 주시고 가르치심을 주시고 우리 손목을 잡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일을 이 땅에 펼쳐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의 삶입니다. 그래서 고난 주간을 맞으면서 우리가 다시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십자가 위에서 내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여를 받아 우리 죄를 씻고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 정말 이 땅에서 잠깐 더 사는 동안 천국을 건설해 나가는 이 거룩한 사연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는 일꾼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31. 우리가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
(요약)
내 육신이 죽으면 사람은 부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이 식물의 씨가 땅에 떨어져가지고 죽으면 거기서 많은 열매가 나온다. 그런데 대관절 무엇이 죽어야 될까? 내가 세상 살면서 내 육신에 속한 나쁜 생각, 악한 생각, 더러운 것, 이것이 다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교회는 다녀도 이 나쁜 생각 나쁜 마음이 죽지를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무덤 속에 잇는 자가 다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 가 오는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7~28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28절 우리는 다 아담의 죄를 가진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육신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영이 있다는 것을 몰라요, 그래서 영의 생각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생각을 따라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옛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 것도, 물속에 들어가는 것도 옛 사람이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 속에서 다시 올라오는 것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모르고 그냥 세례를 받습니다.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지 않고 그냥 교회 왔다 갔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어떻게 다르냐? 이것을 예수님이 설명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설명하는데 이스마엘은 육신을 따라 육에 속한 사람으로 낳은 사람이다. 육신을 따라서 낳은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약속을 따라서 낳은 사람이고 성경을 따라서 낳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처음 나올 때는 다 육신을 따라서 낳은 사람들이다. 교회에 와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다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약 옛날 약속, 신약 새로운 약속 성경책이 약속의 책입니다. 그러니까 약속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이것을 마음에 새겨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약속을 해주셨다. 하나님 내가 이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예수님 믿는 사람은 약속에 자손이 되는 거예요. 이삭은 약속을 따라서 낳은 사람이다. 또 이삭은 성경을 따라서 낳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삭은 육신의 소욕대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성경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을 따라서 낳은 사람은 생명의 부활을 받을 것이고 불신을 따라서 낳은 사람은 심판의 부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영원히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심판의 부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이 살아난 거 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천년 전 옛날 옛날에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왔다가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거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고 상관이 너무나 깊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나도 생명의 부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 변화 받지는 못했어요. 변화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변화 받을 있습니까? 이삭은 약속의 자녀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이 말씀이 나에게 주신 약속이다. 이것을 마음에 새겨야 되는 새길 뿐만 아니라 이 약속의 말씀을 내가 지켜야 합니다.
신명기 28장 1절에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는 이 모든 말씀을 잘 듣고, 이것을 지켜 행하면 너희가 모든 민족 위해 뛰어난 민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이 인류의 역사를 볼 때에도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약속을 지킨 나라들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가 독일에서 개혁을 일으키고 그래서 독일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독일이 세계에서 1등 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영국이 이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영국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영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우리 한국 남북한 합한 것 그것보다 조금 더 클 정도입니다. 이 조그마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나중에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미국에 복을 막 쏟아 제일 가는 나라가 됐습니다. 인도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구라파의 나라들이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미국도 점점 예수님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미국을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누가 이 말씀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겠느냐? 이렇게 물으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이 여기 찾아오시지 않았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기 오셨습니다.
너희와 내가 약속을 맺자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해야 됩니다. 말씀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불타올라야합니다. 마음에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얼마나 뜨겁습니까?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합니까? 항상 나를 살펴서 내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늘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지켜야 됩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다른 일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천국에 가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지막 때가 되어 거짓된 선생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렇게나 믿어도 우리는 천국에 다 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육신을 따라서 살면 반드시 망합니다. 육신을 따라서 살면은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스마엘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살아야 되고 성령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삭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짐승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지 않으시고 이 식물의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지고 죽으면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다 씨앗들이라고 합니다. 어떤 씨를 땅에 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힙니다. 이것은 땅에다가 씨를 심는다는 얘기합니다. 육신은 다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나의 씨가 땅속에 묻혀서 싹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잠언 4:23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내 마음을 지켜라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아멘!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이 마음에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느냐?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내 마음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사는 내 마음은 아주 정직하다고 합니다. 내 마음은 거룩하다고 합니다. 내 마음에는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가득하게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려고 그물을 다 씻어서 가려고 하는데 예수님이 오셨어요, 저 깊은데 가서 그물을 내려라 하셨습니다. 나는 그물을 내리고 싶지 않아요,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그렇지만 예수님 말씀을 감히 어겨할 수 있는 그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밤새도록 잡았어도 한 마디도 못 잡았는데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한번 순종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와서 무릎을 끊었어요. 주여 나를 떠나소서. 고기 많이 잡았는데 왜 죄인 소리가 나옵니까? 그랬더니 예수님이 떠나가시는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는 네가 나를 따라와라. 이제부터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 주님 앞에 가서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주님이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의인입니다 할 때는 주님은 만나주지 않습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걸 깨달아야 됩니다. 내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여 나를 고쳐주시옵소서.나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이 고백을 할 때 주님은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내가 세상에 속하고 세상에 있는 것을 좋아해서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변했습니다. 세상에 좋아하던 것 끊어버렸습니다. 예수님만 따라가는 사람이 됐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목숨을 바쳐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는 새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다니면서 그저 기쁘다. 구주오셨네, 찬송하고, 예수님 부활하셨네. 찬송하는데서 끝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해야 생명의 부활을 받을까? 이것을 아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죽고 나면 다 부활합니다. 생명의 부활이냐? 심판의 부활이냐? 어떤 부활을 받기 원합니까? 우리가 씨를 심는데 육신은 이런 씨가 못됩니다. 우리가 심는 씨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심히 부패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심어봐야 좋은 열매가 나오지 못합니다. 씨가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좋은 씨를 심어야 합니다. 우리가 육신에 가지고 사는 잠짠 사는 이 세상이 우리 속에 있는 씨를 바꿀 수 있는 기회입니다. 씨에는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마귀의 씨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태어나서부터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절대로 좋은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죄만 많이 짓고 삽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부활 생명을 주시려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편에 붙어있으면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가 되고 마음이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라가는 주님의 백성이 됩니다. 세상이 지금 다 마귀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마귀를 따르는 자가 되지 말라, 육신을 따라서 살지 말라, 성령을 따라 살아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32. 요나의 표적
본문 : [마12:38-42]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요약)
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가지고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 찾아와서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사람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일을 더 기다려야 되는 겁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을 가서 그대로 전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경이 본다. 앉은뱅이가 일어난다 문둥이가 깨끗해진다. 귀머거리가 듣는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이거 다 표적이 아닙니까? 이것을 요한에게 가서 전하면 요한은 무슨 뜻인지 깨달아 알 것이다. 유태인들은 예수님을 볼 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믿지 않았어요. 또 표적을 보여달라고 해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보여줘도 절대로 안 믿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주 자그마한 것을 보여줘도 다 믿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17절과 18절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라온다. 저희가 내 이름으로 새 방언을 말하며 귀신을 쫓아낸다. 새 방언을 말한다. 뱀을 집는다.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다. 예수님이 이것도 이렇게 표적을 보여주시면서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유태인들은 마음이 강팍해서 이런 표적을 보면서도 도무지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에게도 보여줄 가장 중요한 표적이 하나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바로 요나의 표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으면 살 수가 있겠습니까?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물속에 빠져있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살아날 수가 있겠습니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겠습니까? 사흘 동안이면 먹을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배고픈 거는 좀 참아도 목마른 건 또 어떻게 참겠습니까? 그러니까 사실상 요나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죽지 않았어요. 죽지 않고 뭐 했을까요? 이게 죽어야 되는데 안 죽었어요. 그게 더 어려운 거예요. 그러니까 이 물고기에 뱃속에 들어가서 창자를 쥐어잡고 쥐어뜯으면서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 지르고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까 요나도 죽을 지경이지만 사실은 이 물고기도 더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이 물고기가 바닷속에서 딩굴딩굴 뒹굴면서 얼마나 괴로워했겠습니까?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나중에는 이 물 위로 떠올라 가지고 왁 하고 내 뱉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요나가 살아났어요. 사흘 동안이나 바닷속에 물고기 배 속에 들어있었습니다. 근데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거예요. 나도 땅속에 사흘 동안 밤낮 사흘 동안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근데 들어가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서 다시 살아나올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가르쳐 주신 거예요. 예수님에게 많은 표적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표적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었던 사람 세 명을 살려내신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살려줬어도 다시 죽었습니다. 근데 예수님의 부활은 그런 부활하고 똑같은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셨습니다. 문을 꼭꼭 닫아 놓아도 여기 얼마든지 들어오실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닫아도 또 마음대로 바깥으로 나가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다시는 죽을 수가 없는 몸입니다. 이 땅에도 하늘에도 마음대로 왕래하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부활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그런 부활이 아니고 죽었다가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는 그런 부활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죠. 우리가 이렇게 부활절 예배를 기념하는 것은 우리도 다시 이렇게 다 예수님처럼 그런 몸으로 살아난다고 하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차 지옥에 들어갈 사람들이 아니고 다 부활해서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 잘 섬기다가 우리가 주님 앞에 올라가야지 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한 명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살을 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 잘 섬기고 복음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은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절망이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원수들이 우리를 죽여도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생명을 다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요나의 표적이란 말에 첫째, 뜻은 이렇게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이런 뜻입니다. 둘째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요나는 원래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걸 싫어했습니다. 가서 내가 회개하라! 그러고 외쳤다가 사람들이 진짜로 회개하면 어떡해요? 저 사람들은 회개하지 말고 내 말을 듣지 않다가 다 지옥에 가야 되는 사람들인데 만약에 회개해서 구원받으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요나는 하나님 나는 저 사람들 구원받는 거 원하지 않습니다. 저놈들은 나쁜 놈들입니다. 지옥에 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저기 가기 싫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갑니다.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결국 바닷속에 던져졌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죽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서 살려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명령하십니다. 니느웨로 다시 가라. 가서 외쳐라! 이제는 거역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힘 있게 가서 외쳤을까요? 그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외쳤을까요? 무슨 일이든지 내가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해야 되는데 하기 싫은 거를 억지로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 백성들이 다 회개했습니다. 왕부터 회개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다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금식하라고 했습니다. 어린애들까지도 다 금식해라. 너희 집에서 기르는 짐승도 다 금식해라. 애들한테는 밥 안 먹이면 되지만 짐승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근데 왕이 명령을 내렸어요. 짐승도 다 금식해라. 백성들이 왕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순종했습니다. 다 회개하고 금식했습니다. 그 성 안에 큰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성에 내리시기로 작정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고 이들을 다 구원해내셨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온갖 재앙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 마지막 때 무서운 재앙이 이 지구상에 가득해질 것을 예언하고 이 땅에 죄악이 관용해지니까 하나님의 재앙도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니느웨의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왜 교회에 나왔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회개합니까? 여러분 죄 많이 지었죠?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데 내가 지은 죄는 저 사람도 지은 죄야. 저 사람은 나보다도 더 큰 죄를 지었어. 뭐 나만 잘못했나? 내가 회개할 게 뭐야? 근데 성경에서 우리에게 깨달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뭐 살인을 했다. 도둑질을 했다. 간음했다. 물론 이것도 다 죄예요. 그러나 사실 그런 거는 중요한 죄가 아닙니다. 진짜로 큰 죄가 뭘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죄,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죄, 하나님 말씀 듣지 않고 하나님 없다고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내가 하나님보다도 더 잘났다고 하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것은 내가 하나님보다 더 잘났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내가 근본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나는 죄인으로 태어났다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 앞에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사도 바울은 뭘 깨달았습니까? 내가 죄인 중에도 괴수입니다. 대관절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길래 그런 소리를 합니까? 우리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의로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는 일 모든 게 다 죄덩어리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죄를 더 많이 짓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깨달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가서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행한 모든 것이 죄뿐입니다. 주님! 나는 나를 어떻게 구원해 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부모도 나를 살려낼 수 없고 내 형제도 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내 가슴을 치면서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베드로가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이제서야 예수님 따라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기 전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지 못했어요.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교회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학교에 가서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집사의 직분도 받고 장로의 직분도 받고 이렇게 직분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 사람이 예수님 따르는 사람 같아요. 그러나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깊은 고백이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내가 죽은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 나를 살려내십니다. 우리도 부활하는 놀라운 복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해서 여러분들에게 다 이 부활의 체험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목사가 고백해라 하니까 예 고백하겠습니다 그러고 고백 할 수는 있어요. 근데 그런 고백 말고 정말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서 고백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언제 이런 고백을 하게 됐습니까? 고기잡이 이적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소경이 눈을 번쩍 뜨는가를 좀 봐야 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해야 됩니다. 문둥이가 깨끗해지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벙어리가 말을 하는 것 우리가 그걸 체험해야 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거를 먼저 다 보여주셨어요. 그런데 유태인들은 보면서도 안 믿었어요. 우리는 믿읍시다.
성경은 옛날 모세 때도 그렇고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여주셨어요. 우리는 하루하루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요나도 자기 생각이 아주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난 후에는 사람이 변했습니다. 야 하나님이 무섭구나! 하나님 말씀 안 들었다가 아주 큰일 날 뻔했구나! 이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돼야 하겠구나!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를 배워야 합니다. 이게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나야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나가 가서 외쳤더니, 그 백성들이 다 회개했다고 합니다. 요나가 외쳤어도 니느웨 사람들이 다 회개했다면, 예수님이 외치실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요나는 이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지 않으면서 외쳤는데도 회개가 일어났어요. 근데 만약에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전도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은 거기에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러시아에 살다가 한국에 오니까 훨씬 좋지 않습니까? 모든 게 편하지 않습니까? 한국은 지금 전 세계에서도 가장 잘 사는 나라예요.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 한번 와 보는 게 소원입니다. 근데 한 번 올래도 돈이 많이 드니까 못 오죠. 비자를 받아야 되고 하는 어려움이 있지 않습니까? 근데 러시아 사람들은 비자 안 받아도 되는 특권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여러분들이 복 많이 받으신 것을 축하합니다. 여러분 자꾸 감사해야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예수님 잘 믿어서 능력을 받읍시다. 기적을 많이 체험해야 됩니다. 그리고 가서 외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나의 표적 셋째가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마지막 날 심판 때에 니느웨의 백성들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유태인들이 들을 때에는 굉장히 기분 나쁜 말입니다. 저 이방인인 니느웨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이 세대 사람들, 유태인들을 심판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유태인들만 기분 나쁜 게 아니고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각해 봐도 이건 기분 나쁜 말이에요. 그때는 아직 예수님이 오시기도 전인데, 그 사람들은 예수님도 안 믿었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부활해 가지고 이 세대 사람들을 심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그들이 장차 이 세대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다. 철저히 회개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고 심판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 시대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저들이 예수님이 오신 것을 알고 다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니느웨 사람들도 저들을 심판할 수 있는 이런 심판관이 된다고 하셨는데 하물며 오늘 우리가 예수님 잘 섬기면 얼마나 귀한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부활절은 예수님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고 기뻐하고 축하하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마귀를 이겨야 하겠습니다. 죄악을 이겨야 합니다. 사망권세를 이겨야 한다.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다 이 큰 은혜를 받아가지고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십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날, 잘하여 또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칭찬해 주시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좀 가난해도 괜찮아요. 고생 좀 하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부활 후에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영광을 다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첫댓글 성실하게 잘 하셨습니다.
훌륭한 주님의 종이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