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장편소설 『밤이 영원할 것처럼』(문학동네, 2024)을 읽고
서유미 작가는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문학수첩작가상, 『쿨하게 한 걸음』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당분간 인간』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장편소설 『당신의 몬스터』 『끝의 시작』 『틈』 『홀딩, 턴』 『우리가 잃어버린 것』, 산문집 『한 몸의 시간』이 있다. 2023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책 속의 주인공이 마치 나인 것처럼 몰입하게 하는 힘, 서유미 작가의 매력이다. 세종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 읽기 강의를 하는 서유미 작가는 유쾌한 달변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책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을 읽을 때도 그랬다. 밤이라고 하여 깊고 어두운 것으로 생각하다가도 어쩌면, 나만의 시간이라서 더 좋은 것 같다. 일곱 명의 주인공으로 살다가 ‘밤이 영원할 것’ 같지만, 반드시 새벽이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가 펼쳐 놓은 일곱 개의 인생으로 들어가 보자.
「토요일 아침의 로건」
4년 동안 영어를 배우는 로건은 건강검진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영어 실력은 많이 늘어서 외국계 회사에서 승진까지 한다. 로건은 젤다와의 영어 수업을 어렵게 마무리하며 지난 시간들을 회상한다. 갑자기 수업을 마무리하는 저간의 사정은 끝내 말하지 못한다.
(로건은 젤다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못했고, 수업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을 말하지 못하는 그의 처지가 안타깝고 슬프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상황이라는 것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예기치 않는 방향으로 갈 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을 맞는 절망 앞에서 어떤 결정과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함이 마음을 덮는다.)
「밤의 벤치」
경진은 40여 년 된 아파트에 산다. 밤 운동 후, 아파트 구석진 자리의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벤치 옆 아름드리 전나무 네 그루가 베어진다. 경진은 과거에 학습지 교사였다. 학습지 교사로서 여러 집을 방문하면서 겪었던 긴장과 고충을 생각하면서 아이를 돌보러 오는 학습지 교사를 지켜본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편의점 김밥을 먹었고, 분식집에서 점심을 때우던 이야기도 한다. 벤치에서 101동에 사는 여자를 알게 된다. 그는 아기를 재우고 밤마다 벤치에서 맥주를 마신다.
(무언가 할 말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두서없이 주절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왔다가 주인공의 생각 속을 넘나들게 된다. 그마저도 자신의 세계에 완벽하게 스며들지 못하는 주인공 경진의 심리를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고 생각하면 작가가 고도로 설계한 작전이라는 것을 마무리에서야 깨닫게 된다.)
「그것으로 충분한 밤」
유선과 종우는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한 후 친구들이 모두 돌아갔다. 복층이 있는 큰집으로 이사 간 그들은 친구들이 연말에 또 보고 싶다는 소식을 전한다. 유선은 무언가 슬픈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참는 캐릭터다. 아래층 부부는 물이 샌다고 말한다. 물이 새는 얼룩이 점점 커진다며 불길해한다. 그 얼룩은 이야기 전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유선과 종우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멀어짐이 느껴진다.
(결혼 12년 차, 40대 중반 이후 겪을 수도 있는 권태기 정도로 해석된다. 남편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물이 새서 얼룩이 생기는 일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불안인지도 모르겠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증폭되게 마련이다. 유선의 불안한 심리가 공감이 많이 갔다. 무언가 해결되는 느낌도 없어서 독자의 몫으로 넘겨 놓은 결말도 좋았다. 삶이 원래 똑떨어지는 완벽함은 아니니까.)
「지나가는 사람」
석주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동창인 재경이 지나가는 걸 발견한다. 재경은 부잣집에서 친구들 다섯 부부를 초대해 놀곤 했다. 특히, 커다란 대리석 식탁에 직접 만든 요리를 내왔다. 친구들 모두 그 집과 식탁을 좋아했는데 재경이 이혼하면서 모임도 흐지부지해졌다. 재경은 이혼 전에 친구들을 위해서 넉넉하게 인심을 썼었다. 석주네 공인중개사에도 여러 사람을 소개해 주었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통 크게 베풀곤 했다. 먹성 좋고 체격도 풍성했던 재경은 이혼 후 잘 먹지 않아서 빼빼 말라간다. 원룸에서 살게 돼서 음식 맛을 잃었다.
(잘 나가던 친구가 이혼으로 몰락해 버린 친구를 지켜보는 심정이 쓸쓸하고 적막하다. 이혼의 사유도 밝혀지지 않고, 재경이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재경은 석주를 그냥 지나가는 사람으로 표현된다. 도움 받았던 일들을 생각하며, 석주도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재경이 달갑게 반겨하지는 않는다. 석주가 조금 더 적극적인 도움을 주면 어떨까 생각해 보지만, 석주도 아이의 진학문제, 사업의 정체 등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라 이해되기도 했다.)
「다른 미래」
진은 비 내리는 바다에서 놀고 있는 사위와 딸과 손녀를 지켜보고 있다. 진의 남편은 20년 전에 진이 47살 딸 희영이 20살 때, 자동차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진과 딸 희영은 가끔 남편과 아빠의 죽음에 슬퍼하며 울며 그렇게 세월을 보낸다. 희영 부부와 손녀는 바다가 좋다며 비 오는 바다에서 신나게 논다. 남편 사망 후에 매사를 신중하고 침착하게 조심하며 살아온 진은 비를 맞으며 파도타기를 하며 노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딸에게 걸려 온 전화가 있어서 전화기를 들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밀려오는 파도에 넘어진 진은 무한한 자유와 즐거움을 느낀다.
(비 오는 바다에서 노는 사람들을 불안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던 나였다.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위태로운 전개가 끝까지 책을 읽어나가는 힘이었다. 무언가, 평범한 일상을 깨기 두려워하고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가는 나에게 남편은 보수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파도에 몸을 맡기는 자유를 느끼고 싶지만, 물 공포증이 있는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진의 무한한 자유가 내게도 전해져 왔다.)
「기다리는 동안」
인희는 전남편 재영을 기다리고 있다. 위자료를 더 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재영. 인희도 집세를 올려 줘야 하고, 교수 재임용도 탈락하여 상황이 복잡해졌다. 재영을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2주 동안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로만 세입자가 나가면 원룸을 팔아서 나머지 돈을 주겠다고만 한다. 인희는 자세히 설명을 듣고 싶어 재영이 근무하는 학교로 향한다. 재영은 만나지 못했다. 함께 살았던 중앙맨션 주차장에서 눈을 맞으며 402호를 올려다보며 기다렸지만, 끝내 재영은 나타나지 않는다. 402호로 들어가 본다. 천사 인형을 주머니에 넣으며 끝난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재영은 읽는 내내 불편감을 주었다. 인희가 집으로 들어가 좋은 추억이 있는 천사 인형을 갖는 것으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주머니 속의 천사 인형이 따뜻해졌다는 말에서 안심이 되었다. 인희의 운명도 차츰 따뜻해질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는 재영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성정이라서 인희가 이혼했을까도 생각한다.)
「밤이 영원할 것처럼」
동희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발목을 접질린다. 정형외과에 간 사이 대표가 전화한다. 본부장실을 비우면 좋겠다는 말이 교통사고보다 더 크게 동희를 강타한다. 발목 염좌와 인대 부상으로 인해 목발을 짚게 된다. 평범하던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환자의 생활은 여러 행동에 제약을 준다. 다리는 불편한데, 집무실은 비워 줘야 하고, 집무실에 있는 화분을 어디로 옮길까 걱정이 된다. 집으로 옮길까 하다가 사무실 새 자리에 두기로 해서 안심되었다. 10년 넘게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회사를 키워 온 본부장 동희는 고객상담팀의 상담실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본부장실을 비우게 된다.
(본부장실을 비우게 된 사건을 다른 직원들은 동희가 밀려나는 거라고 수군거린다. 그것을 참아내야 하는 동희의 낮이 참 많이 불편했을 것 같다. 정성으로 키운 화분들을 집으로 옮기면, 회사에서 영영 나와야 할 것처럼 불안했다. 여러 가지 마음을 다잡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새 사무실에 화분을 놓기로 한 것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주인공이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편안한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삶의 밤은 끝났으면 좋겠다.)
서유미 작가는 밤을 사랑하는 작가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사실, 밤의 세계는 편안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삶을 위해 매진할 낮이 소중한 만큼, 쉴 수 있는 밤도 필요하다. 보통의 삶은 낮에 힘들게 일하다가도 밤에는 쉬게 된다. 밤은 충전의 시간이다. 밤을 잘 보내야 낮에 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재우고 싶은 것이 밤의 시간이 아닐까. 서유미 작가가 선물한 밤. 편안한 쉼의 시간에 감사한다.
* 서유미 작가님의 친필 사인까지 받아서 선물해 주신 서** 작가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덕분에 밤이 더 좋아졌습니다. 사랑합니다~♡♡♡
첫댓글 우리 처럼 밤을 좋아한 사람들이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은 책이네요..
나는 늘 민선생님 덕분에 좋은 작가,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어서 고맙고 새로움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그 바쁜 틈에도 책을 읽고 좋은 글로 남길 수 있을까 수수께끼 같기도 해요.
참 많이 공감했어요. 고맙습니다.
회장님! 제게 이 책이 있습니다. 구입해 놓았었는데, 학우가 교수님 친필 사인을 받아서 다시 선물해 줘서요. 나중에 뵐 때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 생각을 했었는데, 반겨 주실까 살짝 고민이 되었거든요. ~~ ㅎㅎㅎ
고마워요. 생각해 줘서.
아동 관련 책도 읽을 게 너무 많다 보니 일반 서적은 자연스럽게 뒷전이거든요.
날마다 전달된 우편물, 다양한 잡지와, 서적들이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어서 받은 즉시 읽으려고 펼치다 보면 새벽이 옆에 와 있어요.
항상 민 부회장님께 고마운 마음이에요.
회장님! 반겨 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