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7일
태화강국가정원에서 점심을 먹고 14시 21분 트롤리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시계탑사거리로 이동하였다. 트롤리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인 시계탑 사거리로 가면 큰애기 하우스와 고복수 음악관등 문화의 거리를 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0분 쯤 걸려 도착해서 큰애기 하우스를 구경하고 큰애기 하우스 직원에게 고복수 음악관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까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울산큰애기하우스는 울산 중구를 대표하는 브랜드 ‘울산큰애기’ 의 플래그십 스토어이자 다양한 지역 정보를 제공하는 관광안내소이다. 1층은 관광안내소 겸 캐릭터상품 판매소로 운영되고, 2층은 ‘울산큰애기’의 숙소 콘셉트로 꾸며져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현실형 캐릭터인 울산큰애기에 어울리게 소녀들의 판타지를 재현한 방은 어린 자녀를 둔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특히 인기 있는 공간이다
3층과 4층은 2시까지 점삼시간이라 해서 구경 못했다.
큰애기 하우스를 나와 길건너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걸어가니까 고복수 음악관이 나타났다.
고복수 음악관은 2018년 겨울, 고복수 길 골목에 고복수 음악관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일반 가정주택을 매입하여 리모델링을 한 후 고복수 음악관으로 탄생시켰다고 하며 1층은 전시관이고 2층은 음악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고복수 음악관을 구경한 후 직원에게 근방에 구경할 곳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그 직원이 자기가 안내해 주겠다고 하면서 우리 일행을 인솔하여 문화의 거리등 여러곳을 다니면서 친절하게 자세히 안내해 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직원은 이름이 김경령이고 큰애기 해설사 였다.
김경령님 고맙습니다.
계획은 문화의 거리 구경을 마치고 트롤리버스타고 태화강역으로 가게 되어 있는데 그러면 태화강역에서 기차타는 시간이 촉박하므로 포기하고 택시타고 태화강역에 도착해서 여유있게 기차타고 귀가했다.
할배와 손자
며느리가 아들을 연년생으로 출산을 하여 육아가 힘드니까
할매 할배가 큰 손자를 데려다가 초등핵교 까지 키워서 돌려 보냈다
자식키울때는 몰랐던 짜릿한 사랑으로
옥이야 금이야 애지중지키웠지
명절에 만나면 너무이뻐서 끌어안고
뽀뽀를 하고 주머니털어서 용돈 챙겨주시고
헤어질땐 늘상 아쉬워했던 할배와 할매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손자녀석 얼굴이 아련히 떠오를때마다
전화라도 하면
며느리가 받아서 "아버님 영식이 학원갔다 와서 지금 자고있어요"
"아버님 저 지금 바빠요 다음에 전화 드릴께요" 하면서 전화는 끈겼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손자놈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할배는 너무 기뻐서 친구들 한테도 자랑을 하면서 막걸리 파티도 벌리고 신이났다
고령의 나이에 시력 청력도 정상이 아닌데
갱상도 끝자락에서
서울까지 혼자 나들이 하기가 부담이 된 할배는 서울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야 야! 요새 니가 보고싶다"
동생이 형님의 목소리가 아련하여
차를 끌고 내려가서 삼일동안 형님내외를 모시고 함께 즐기다가 상경할려는데
형님할배 왈
"야야 나도 서울가고싶다 손자놈도 보고싶고" 하시면서 울먹거린다
그래서
함께 상경하여 다음날 형님할배 아들집에 갔더니 손자녀석은 친구들하고 어울여 놀다가 늦은 시간에 들어오면서 쇼파에 앉은 할배를 보는둥 마는둥 지 방으로 들어간다
며느리가 민망한듯
"야 영식아!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 오셨는데 인사드려야지"
손자는 다시 나오더니 안녕하세요
고개만 꺼떡하고는 다시들어갔다
그래서 내가 옆에서 보니 너무 속상하기도 하고 할배형님이 불쌍해보여서
"야! 영식아! 할아버지가 너 보고 싶어서 멀리서 오셨는데 할아버지 옆에 와서 껴안고 뽀뽀 한번 해드려야지"
큰소리로 외쳤더니
마지못해 나와서 할아버지옆에 멋적게 앉아서
티비만 보고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저녁을 먹고 내가 나오는데 형님께서 "나도 같이 갈란다"
하시면서 따라 나오신다
며느리는 안절부절 머뭇거리고
할배 아들이
"아부지! 오랫만에 먼길 오셨는데 주무시고 숴었다가세요"하니까
형님 왈 "댓다 마~ 들어가거라 나는 니삼촌집에 가서자고 낼갈끼다"
돌아오는 길에 조수석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시는 노형님의 눈시울이 붉게변했다
:
:
"동생아!
엄마 아부지가 보고싶다"
하시면서
참았던
눈물이 하염 없이 흘러내렸다
이 스토리는 실화입니다
너거 손자들은 어떤고!!!!??
홍언필의 일화
조선 중종때 영의정 홍언필의 일화이다. 어느 여름에 홍언필이 사랑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한참을 자다가 무엇인가 배를 누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뜨이지 않는 눈을 겨우 떠서 보니 큰일이 났다.
자신의 배 위에서 커다란 구렁이 한마리가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이다.
홑적삼으로 전해오는 큰 구렁이의 차가운 느낌이 섬뜩했지만 몸을 움직이면 구렁이가 물것은 뻔한 이치여서 무섭고 두려웠지만 구렁이가 스스로 내려갈 때까지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구렁이는 그대로 있고 두려움은 점점 커지고 소리 지를 수 없으니 속만 바싹바싹 타 들어갈때였다. 사람이 오는 소리가 나더니 이제 여섯살이 된 아들 섬이 대문 동쪽에서 아장아장 걸어 와서 그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
섬은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을 잠시보더니 그냥 왔던 문으로 나가버렸다. 홍언필은 아버지의 위급함을 보고 구하지 않고 사라진 아들이 야속했다. 그러나 여섯살 아이가 무엇을 하리라고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아들 섬이 다시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아들 섬의 손에는 뒤 뜰 연못가에서 잡은 듯한 개구리 서너 마리가 들려 있었다. 섬은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아버지를 향해서 개구리들을 던졌다.
개구리를 던지는 순간 구렁이는 잽싸게 아버지 홍언필의 배 위에서 내려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쫓아갔다. 그때서야 홍언필은 일어나서 숨을 쉬게 되었다. 여섯살 아이의 슬기로운 지혜가 아버지의 생명을 구한 것다.
훗날 섬은 명재상이 되었다. 대제학을 지내고 영의정을 세번을 했다고 한다. 지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배운 지식, 알고 있는 지식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능력이 지혜이며,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지혜가 필요하겠다.
신외기교장님 전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