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2티모1,14)
(세종로 성당 08/20)
제2편 그리스도 신비의 기념
제1부 성사의 경륜
제2장 파스카 신비의 성사적 거행
제2절 전례의 다양성과 신비의 단일성
-전례 전통들과 교회의 보편성
1200최초의 예루살렘 공동체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
까지 사도들의 신앙에 충실한 하느님의 교회들이 어디에서나 기
념하는 것은 동일한 파스카의 신비이다.전례에서 기념하는 신비
는 하나이지만,전례를 거행하는 형태는 여러 가지이다.
1201그리스도의 신비는 헤아릴 수 없이 풍부하므로,어떠한 전례
전통도 그것을 완전하게 표현하지는 못한다.이러한 예법들이 발
생하고 발달한 역사는 전례의 놀라운 상호 보완성을 보여 준다.
여러 교회들이 신앙과 신앙의 성사에 일치하여 이 전례의 전통
들을 실천했을 때,그 교회들은 서로를 풍요롭게 하였으며, 거룩
한 전승과 온 교회의 공통 사명에 충실한 가운데 성장하게 되었
다.
1202전례의 다양한 전통들은 바로 교회의 사명 자체에서 생겨났
다.지리적,문화적으로 같은 권역에 속하는 교회들은 문화적으로
유형화된 독특한 표현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하게
되었다. 그 독특한 표현들이란 이를테면, ‘신앙유산’의 전달,전례
적인 상징체계,형제적 친교의 조직,신비들의 신학적 이해와 성덕
의 여러 유형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이와 같이 모든 민족들
의 빛이시며 구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한 교회의 전례 생활을 통
하여,그 교회가 파견되어 뿌리를 내린 그곳의 민족과 문화에 자신
을 드러내신다.교회는 모든 문화들의 풍요로운 다양성을 정화하여
자신의 단일성 안에 수용할 수 있다.
1203현재 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전례 전통또는 예법은,라틴 예
법(주로 로마 예법이지만 암브로시오 예법이나 일부 수도회의 예
법과 같은 지역 교회의 예법도 있다),,비잔틴,알렉산드리아나 콥트,
시리아,아르메니아,마로,칼데아 예법 등이 행해지고 있다.“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거룩한 공의회는 어머니인 거룩한 교회가 합법적
으로 인정된 모든 예법을 동등한 권리와 영예로 존중한다고 선언
하며 이 예법들이 앞으로도 보존되고 온갖 방법으로 증진되기를
바란다.”
-전례와 문화
1204 그러므로 전례의 거행은 각 민족의 특성과 문화에 부합해
야 한다.그리스도의 신비는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
끌도록”(로마16,26),모든 문화 안에서 선포되고 거행되고 생활화
되어야 한다.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로 문화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받고 완성된다.그리스도께 받아들여지고 그분
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고유의 인간 문화와 더불어 또 그 문화를
통하여,하느님의 수많은 자녀들은 성부께 나아가,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그분께 영광을 드린다.
1205“전례,특히 성사의 전례에는 변경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부분이기 때문에 교회는 이부분을 그
대로 보존해야 한다.또 변경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를 새
로이 복음화된 민족들의 문화에 적용시킬 권한과 때로는 의무까
지 가지고 있다.”
1206“전례의 다양성은 풍요로움의 근원이 될 수도 있지만,긴장과
상호 몰이해와 심지어 분열까지 일으킬 수도 있다.이러한 문제에서,
다양성이 일치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공통된 신
앙,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성사적인 표징들,그리고 교계 제도의 일
치에 대한 충실성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만 다양성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적응은 마음의 회개를 요구하며,경우에 따라서
는 가톨릭 신앙과 양립될 수 없는 조상 전래의 관습과 단절할 것을
요구한다.”
간추림
1207전례의 거행은 교회가 그곳의 민족 문화 안에서 표현되는 것이
당연하지만,그 문화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한편 전례 자체가 문화
를 발생시키고 형성하기도 한다.
1208합법적으로 인정된 여러 가지 전례 전통이나 예법은 교회의 보
편성을 드러낸다.이 다양한 전례 전통들이 동일한 그리스도의 신비
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때문이다.
1209전례 전통의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보증하는 기준은 사도전승
에 대한 충실성이다.곧 사도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성사들 안에
서 이루는 친교이다.이 친교는 사도적 계승으로 표명되고 보장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 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 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지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목민심서/정약용)
(홍제천 08/26)
진정한 독서란 지식을 축척하는
‘자기 강화’의 독서가 아닌
진리의 불길에 나를 살라내는
‘자기 소멸’의 독서이다.
(걷는 독서/박노해)
평범한 날은 억울하다고 한다.
이 억울함을 소거하는 길은 열심히 무언가를
추구하여야만 한다. 상상이 일상이 되도록!
행복한 주말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