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눌 그림책은
조원희 작가의 <미움>이다.
미움은, 우리 삶의 노른자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일터는
미움이란 무기로 싸우는 전쟁터가 아닐까?
미움의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
소녀는 어느 날 이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 말을 한 아이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날 이후로 소녀는
같이 미워하기로 했다.
그러자 소녀의 일상에
이상인 일이 벌어졌다.
밥을 먹을 때도,
숙제를 할 때도,
테니스를 치며 놀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그 소녀를 미워했다.
결국 미움이 자라서 그 힘에 눌려
미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먼저 미워해서 같이 미워했지만
마음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그때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부스럼을 긁어
팔에 더 번지게 만들고 있는 딸에게 말했다.
“신경 쓰여도 만지지 마. 그래야 낫는다.”
소년은 그 경험을
미움과 연결시켜 생각했다.
“미워하는 것도 그런 걸까?”
“가만히 기다리면 미움도 사라질까?”
그리고 소년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싫은 사람을 자꾸 떠올리면
괴로운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미움의 줄거리다.
미운 사람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 실컷 미워하는 것도 해봐야 한다.
누군가를 미워해봐야
그 감정이 얼마나 해가 되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되고,
자신의 얼마나 폭력적인 사람인지도 알게 된다.
미움이 가득한 사람의 마음은
온갖 나쁜 생각과 말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많은 사람이 들어 있다.
그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까?
미워하는 사람이 우리 마음에 생길 때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
나에게도 미움을 유발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힘든 건 언제나 나였다.
미움의 지배를 당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도
좋은 환경에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괴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미움은 언제나 그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게 만들었다.
미움의 지배를 당하면
건강도 잃는다.
특히 “간”은 더욱 그렇다.
감정과 우리 몸은 연결이 되어 있다.
누군가를 미워할수록
내 건강은 나빠졌다.
미움의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손해보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간에 맡겨야 할까?
내버려 두어야 할까?
언젠가 나도
미움에 시달리다가
잠에서 깨어났는데
“용서하라”는 메시지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자유가 찾아왔다.
“미움 문제지”에 대한 답은 알고 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인생은 정답을 안다고 해서
쉽게 풀어지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
알고 있는 답을 적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용서는 아주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고 사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물론 용서는 동전을 넣으면
내가 선택한 상품이 바로 나오는
그런 자판기는 아니다.
용서해야겠다는 마음의 동전을 넣어도
새로운 것이 나오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게 기계와 인간이 다른 점이다.
용서와 관련된
성경의 가르침은 뭘까?
타인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은
자기의 영광이라고 말한다(잠19:11).
용서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용서해야 자신이 살아난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은 연결이
된다고 말한다(마6:14-15).
용서하지 않는 삶은
신앙생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타인을 용서의 방법은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 받은 자임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엡4:32).
타인을 용서를 하려면
자신도 누군가에게 용서 받으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 해주면
나도 누군가에게 용서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눅6:37).
용서를 해주는 일도 부메랑이다.
잘못을 사과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용서를 베풀라고 말한다(눅17:4).
그 사람이 똑같은 사람일지라도.
잘못한 사람은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상황을 제자리로 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받아들어져야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게 못 박은
사람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그것도 죽기 직전에.
스데반도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것도 죽기 직전에.
죽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는 “용서”가 아닐까?
요셉은 자기를 노예로 판 10명의 형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20)
섭리 신앙(사건을 해석하는 더 큰 관점)은
복수의 칼을 집어넣게 만들고
자신의 인격으로 하기 힘든 용서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게 해준다.
첫댓글 괴로운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나도 알지...
미움의 피해자는, 자기자신이다.
그런데 인생은 정답을 안다고 해서 쉽게 풀어지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 알고 있는 답을 적게 된다.
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