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에서 청소년 교양문고로 나온 첫 작품인 것 같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면에서 떨어지거나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청소년들이 알기 쉽도록 하느라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다.
<정글만리>의 작가 조정래님이 직접 추천했다고 한다면 내용면에서는 그 어느 글보다도 뛰어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하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것이 무엇인가? 더럽다. 시끄럽다. 싸구려다. 형편 없는 물건이다 등등 좋은 평보다는 하챦게 보는 경우가 많다.
50~60대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한국전쟁 때 북한을 도와 준 국가이므로 적이다. 공산주의 국가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다. 사상이 불온하다 등 우방국 미국과 정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는 나라로 본다.
중국은 우리의 역사와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나라다. 삼국시대- 당, 고려시대- 송, 조선시대- 명,청. 우리가 대국으로 섬겨왔던 나라이다. 오늘날 중국은 미국과 세계 제일의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고 있다. 곧 있으면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를 것으로 모두가 예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하면 못 사는 나라, 하챦고 별볼일 없는 나라라고 바라보고 있다. 선입견이고 편견이다. 심지어는 적성국으로 보고 상종해서는 안 될 나라라고 보기도 한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 때문에 동아시아로 회귀하고 있다. 동아시아를 냉전시대로 몰아넣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한민국을 위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유럽 모두가 자국에게 손해가 있는 일이라면 결코 도와주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세계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으로 동아시아를 보고 있으면 한국을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우리는 중국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실리중심의 외교관으로 본다면 당연히 중국은 우리의 무역 대상국이며 안보면에서도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 동북공정 사태만 보고 중국을 침략국가로 여기고 관계를 단절시키거나 적대적으로 대한다면 손해는 결국 우리에게 있다.
이어도와 관계되어 방공식별구역문제도 전체적인 안목으로 보지 않고 우리 영토를 침해한다고만 본다면 우리는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미국 중심으로 흘러가는 동아시아 권력을 견제하고 자국을 지켜내고 자국의 실리를 위해 여러가지 정책을 편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와 관계된 동북공정과 이어도 문제이다. 일본과도 영토 분쟁을 선언하는 이유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다. 근데 여기에서 공통점은 모두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국가가 아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논리에 순응하지 않는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좀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영원한 우방국은 없다. 중국 사람들을 시끄럽다고 폄하하지 말라. 그들의 문화를 존중한다면 좀 더 관계를 친밀하게 할 수 있다.
마치 중국 현대사의 영웅 루쉰이 의사로 성공하기 위해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우연히 일본 군인들이 대검으로 중국인들의 목을 자르는 영상을 보고는 의사 되기를 포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대목처럼 말이다.(19)
수교가 되고, 교류가 늘었다고 우리 눈길이 바뀐 게 아니다. 오히려 중국을 물건 사고파는 시장으로만 여기는 시선까지 더해져 더욱 더 중국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다.(30)
지금 우리는 긴 잠에서 깬 호랑이, 중국과 마주쳤다. 중국을 피하기 위해 미국의 우산 아래로 다시 파고드는 것은 그 대가가 만만치 않다. 미국은 냉전 시대 우리의 우산이 되어 주었던 그런 나라가 더는 아니다. 그네들한테는 이제 우리보다 중국이 더 중요해졌지.(34)
'주체적인 세계관'으로 중국을 보자면 우선 내가 주체적 세계관을 지녀야 한다. 그러자면 첫째로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파악해야 한다. 둘째 그 정체성 별로 어떤 권리와 의무가 있나 알아본 다음 그것을 해내갰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 충돌할 때 어떤 가치를 먼저 배려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계관을 확립하는 일이다.(92)
그들에게는(중국)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만큼 소중한 것이 어떤 삶을 살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이고, 자신이 사는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100)
이 땅에서 노동하며 앞으로도 수천 년을 행복하게 살아야 할 우리의 눈으로 중국을 보자. 중국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파이를 나눠 가져야 할 경쟁자이기 이전에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고, 서로 적대하며 군비 경쟁을 벌이는 적성국이기 이전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이다. 한반도에서 노동자로 사는 우리에게 중국 사람 한국 사람편 가르고, 파이를 힘으로 나누고, 군비 경쟁을 이어 나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선택은 없다. 그건 몇몇 주인님들만 행복한 일일 뿐이다. 존재를 배신하는 중국관에서 벗어나 우리의 가치로 중국을 한번 들여다보자.(102)
<잡초는 없다>를 쓴 윤구병 할배.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변산에 가서 공동체를 일군 그 할배. 아마 그 할배도 교수 노릇 하고 있는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느끼는 이 패망감에 차라리 농사를 짓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겠지.(108)
현실화는 지금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신화를 이용하는 것이고, 역사화는 신화를 역사를 바탕으로 고고증해 신화로부터 현실을 떼어 내는 일이다. 일본은 팽창을 위해 천황을 현실화시키면서 만세일가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본 민족이 천황을 중심으로 일가를 이루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천황은 순수한 일본의 정수이며, 그런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더러운 피가 섞인 서구가 지배하는 것보다 낫다는 거다. 신화 속 이분법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순간 선과 악의 구별과 응징은 당연해지고, 전쟁과 폭력이 뒤따르게 된다.(123)
현실 권력의 힘이 절대적일 때 양비론은 꼬리 자르기, 물 타기 수단이 되는 거란다. 권력은 국정원을 제대로 수사하겠다는 검찰총장을 '혼외 아들이 있다' 한마디로 날려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관심을 돌릴 수 있는 사건을 터뜨리거나 둘 다 문제라는 식으로 핵심을 흐리면 언제나 주인님 뜻대로 된다. 현실은 그 와중에 힘 있는 자가 만들어 놓은 대로 그냥 그렇게 흘러가거든.(168)
미국의 패권주의도 문제지만 중국의 대국주의도 문제라는 식의 양비론도 정답은 아니다. 진리는 편파적인 것이고 우리가 어느 한 쪽을 편들 때만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슬라보예 지젝의 말을 신뢰한다. 양비론은 침묵이나 무관심을 낳기 일쑤이다. 달리는 기차를 얻어 타기만 한다면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주류를 돕는 거다.(220)
특히 영국은 티베트 침략에 누구보다 앞장선 나라였다. 1903년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자 티베트를 침략해 라싸 조약을 맺었다. 영국은 "어떤 외국 세력에게도 할양, 매도, 임대, 저당, 혹은 그 밖에 다른 방법으로 티베트 땅 어느 곳을 점령할 수 있도록 넘기지 않는다. 어떠한 외국 세력도 티베트 일에 간섭할 수 없다"고 선언한 다음 1949년까지 이 지역을 가장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일본이 청일전쟁이 끝난 뒤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토록 한 것이나 매한가지다. (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