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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반, 설레이 반......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가기로 했다. 아무런 거부반응없이 '콜'이라 외치며 간단하게 동의를 하는 요즘 아이들....
지난해에는 1박2일에 주간산행이었고, 성삼재~중산리코스였기에 크게 부담은 없었으나 이번에는 야간산행에 코스도 화엄사~대원사가 아니면 성삼재~대원사이므로 상당히 거리도 길어지게 된다.
녀석을 데리고 가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잘 판단은 안되지만 그래도 데리고 가는 게 녀석이나 내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5월 16일 목요일....
1박 2일 동안의 짐을 챙기는 것이 생각보다 피곤한데, 뭐든지 두 개씩 준비해야해서 여러가지로 복잡한데 퇴근 후에 하려면 어려울 것 같아서 아예 재택근무를 신청해서 집에서 일하며 이것저것 빠짐없이 챙겨본다. 카톡으로 함께갈 멤버들과 빠진것은 없는지 중복되는 것은 없는지 이것저것 묻고 답하면서....
마트에 가서 초코렛, 연양갱, 햇반, 반찬, 음료도 준비하고 아내는 간편하게 아침을 해결할 수 있도록 유부초밥과 밑반찬 등을 준비해줬다. 헐~ 물을 빼고 무게를 달아보니 15kg이 넘네.......
대충 준비가 끝난 9시 경 아내에게 10시 30분에 깨워달라며 잠자리에 든다. 10시 30분에 일어나 아들을 깨우고 나머지 짐들을 챙기고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신갈로 출발......
운전중~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도솔님이 갑자기 '어디야?'라고 묻는다.... '왜요? 어디세요?'라든 답을 하면서 갑자기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단어 '설마? 아뿔싸!!!'
그렇다. 시간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10시 45분이 신갈에서의 탑승시간인데 10시 30분에 일어나서 11시에 시동을 걸었으니 20분 이상 늦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날 버스가 지체되어 10분이상 늦게 도착하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고속도로 위에서 우리를 10분 이상 기다렸으니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고개를 숙이고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빈자리를 찾아가는데 반가운 사람들이 보인다....ㅋㅋㅋㅋㅋ
잠시 안정을 하고 휴대폰을 봤더니 난리가 아니었다..... 10시 40분 경부터 카톡에, 전화에.... 모두 내가 사고라도 당해서 연락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오후까지 카톡으로 챙겼는데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안되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다시 생각해도 참 우숩기만 하다.....
도솔님 말대로 마지막 통화가 안되어 버스가 출발했으면 버스를 따라잡으러 질주본능을 발휘하지 않았겠는가?
버스에서 가이드를 하는 산행대장이 이번 산행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해준다. 대충봐도 내공이 넘치는 사람이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여러팀이 합쳐진 연합산행이라고 보면 된다. 나이도 성별도 카페도 다 다르지만 지리산을 느끼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성삼재에서 중산리코스이며 우리팀만 코스를 달리해 대원사까지 가는 모양이다.
5월 17일 금요일....
버스 실내온도가 높아서 아들녀석도 나도 통 잠을 잘 수가 없어 뒤척이다보니 성삼재에 도착했다. 연휴가 시작하는 밤이라서 traffic이 많아서 예상보다 1시간 정도는 지연되어 4시 30분 경에 성삼재에 도착한다.....
4시 40분 배낭과 스틱 그리고 헤드랜턴을 챙기고 등산화를 동여매고 밖으로 나오니 춥다. 바람이 차다.... 옷을 보강해서 입고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른다.
앞서 몇 대의 버스가 보였으므로 등산로는 이미 랜턴불로 가득하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도 보이고, 친구들도 보이고, 젊은 애인도 보이고, 연세가 되신 형님 누님도 계시고, 이제 열살 남짓의 아이도 보인다. 두런두런....
아들녀석과 나도 이런저런 말들을 두런두런.... 야간산행에 익숙하지 않고 장거리 산행이라곤 작년이후 경험이 없는 아들녀석은 힘들어 했고, 버스안에서 심한 멀미로 인해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 걷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등산로라기보다는 잘 포장된 도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아들녀석에게는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가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고 한다.....
5시 15분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다. 단체사진을 한 컷하고 곧바로 노고단 삼거리로 올라간다.
5시 23분 노고단 삼거리다. 멀리 우측으로 노고단(1,507m) 정상의 돌탑이 보인다.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봉의 하나지만 종주코스에서는 체력과 시간때문에 보통 들르지 않고 사진만 찍도 지나친다. 대신 왼편에 유사하게 서 있는 돌탑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통과해서 지리산 종주를 주로 하는 사람들은 노고단에 오른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다.
노고단은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선도성모를 국모신으로 제사를 올린 영봉으로 지리산의 남서부에 해당한다.
올라와보니 굽이굽이 지리사 자락을 감싸고 있는 운무가 가히 절경이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 사진실력으로도 눈으로 본 풍광의 반도 담지 못하리라....
돌아가며 독사진, 단체사진을 찍고 서둘러 임걸령 방향으로 출발.....
노고단과 반야봉의 중간쯤에 위치한 임걸령(1,320m)은 피아골, 연곡사쪽에서 올라오는 길목이며, 옛날 임걸이라는 의적의 이름을 따서 임걸령이라 부른다.
6시 33분 노루목 못미친 곳에서 각자 준비한 음식으로 간단하게 아침끼니를 해결한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지리산 제2봉에 해당하는 반야봉(1,733m)이 있다. 반야봉에서는 지리산의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오르막 경사가 심해 백두대간을 하거나 종주하는 사람들은 오르지 않고 노루목 삼거리에서 지나친다. 3년전 종주도중 스템님과 잠시 들렀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역시 숨도 안쉬고 패스.....
허기를 해결해서 그런지 아들녀석에게 생기가 있고 점점 스피드가 나기 시작해 마음이 놓인다.
7시 30분 삼도봉(1,499)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등산객으로 가득하다. 쉬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실 지리산 삼도봉은 그리 유명한 곳이 아니고 봉우리라 할 수도 없지만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경계지점이라 언제부터인지 유명한 곳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반야봉을 들르지 않는 경우에는 삼도봉에서 확 트인 주변 경관을 보는 것도 강추....
삼도봉에서 휴식겸 조망을 보며 사진도 여러 컷 한 후 화개재 방향으로 이동... 쉬지 않고 계속되는 계단을 내려오면 화개재.
화개재는 반선에서 올라오는 뱀사골계곡이 유명하다. 대학때 뱀사골산장에서 두어달 기거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실 성삼재에서 화개재까지는 그리 어려운 구간이 없이 능선을 주로 오르내리는 정도로 편안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그렇다보니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1,534m), 명선봉(1,586m)을 오르는 구간은 힘들게 느껴지는 구간이다.
조금 스피드를 내서 아들녀석과 선두에 서 본다.... 대견하네... 잘 따라온다.....
8시 토끼봉을 오르니 여기저기 쉬는 사람과 누워있는 사람들이 많다. 잽싸게 통과.....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는 구간이라서 잠시 쉬었다 일어나는데 멤버들이 도착...에라... 쉬는 김에 더 쉬자..... 여기서도 한 컷씩....
명선봉 아래에 연하천이 있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벽소령까지 가는 코스는 길도 경관도 숲도 이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9시 50분 연하천대피소에 도착...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면 이른 점심, 벽소령에서 하면 약간 늦어져서 맛난 저녁 만찬을 먹을 수 없어서 연하천에서 점심식사하기로 결정.....
라면, 햇반, 도시락, 밑반찬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 막걸리랑, 맑음이님표 맥주랑 한잔......인증샷 후 벽소령방향으로 출발....
역시~ 폭깊은 그늘을 형성한 숲사이로 펼쳐진 햇살이 쏟아지는 편안하고 이쁜 길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11시 30분 커다란 바위 두개가 불쑥 솟아오른 형제봉(1,433m)... 사진찍기 참 좋은 곳으로 서둘러 바위에 올라 서로 사진찍기에 열심이다. 드디어 천년하루님을 제외한 남부의 모델들이 온갖 포즈에.... 신났다.....
12시 22분 아들녀석과 벽소령에 도착.... 사진 한장 달랑찍고 패스.... 지나가면서 결혼전 아내와 산행하던 얘기를 아들녀석에게 다시 얘기해줬다.... 그때가 1997년 6월.... 비에 흠뻑 젖어 벽소령에 도착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지리산에 따라나선 그녀는 무슨 생각에? 나는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생각으로 지리산까지 끌고 왔는지? 어쨋든 여자친구에서 애인으로 바뀐 시점? 그때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소령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말을 하기도 했지...푸하하하.....(오글오글)
13시 40분 선비샘, 올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계곡도 아니고 능선 바위 중간에서 항상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나오는 곳으로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근처에서 텐터를 치고 비박을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아들과 물 한 잔만 하고 패스....
14시 20분 덕평봉을 지나 칠선봉(1,516m)에서 펼쳐진 멋진 view를 놓칠 수 없어 배낭벗고, 양말도 벗고 휴식.... 멀리 천왕봉까지 훤히 보이는 것이 참으로 기분이 좋다.... 10분쯤 쉬다 일어나려는데 멤버들이 도착.... 사진 한 컷씩하고 서둘러 세석으로 출~발~
칠선봉에서 영신봉(1,652m)까지는 생각보다 멀고 또 길이 험하다. 오늘 하루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이다. 헥헥~~~
작년에는 영신봉에서 세석으로 내려오는 길목길목에 철쭉이 곱사하게 피었더만 작년과 하루차이로 왔는데 올해는 아직 작은 봉오리뿐이고 대신 진달래가.....
3시 45분 세석대피소 도착. 오늘 하루 11시간의 산행이 드디어 종료되었다.
이른 도착인 탓인지, 대피소 정책이 바뀌어서 그런지 전에는 자리잡는게 턱도 없던 테이블이 금방 생긴다. 알고보니 작년보다 더 까다로운 국립공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일몰 2시간 전인 오후 4시 이후에는 산행을 철저히 통제하고, 대피소 예약이 안된 사람은 하산하라는 방송이 계속되고, 비박도 통제하고 있었다. 대피소 구석에서라도 쪽잠이라도 자더라도 산을 즐기러 온 사람들의 불평 사이로 우리는 여유있게 음식을 꺼내 요리를 한다.
큰애기님표 돼지고기두루치지, 맑음이님표 소불고기, 지수정님표 상추/깻잎쌈에 이슬이 한잔~~~~카~~~ 이 맛이지.....
환자라서 막걸리도 사양하던 도솔님도 한 잔..... 평소에 즐겨 마시지 않는 지수정님도 한 잔..... 베로니카님은 약간 큰잔으로 한 잔.... 맥주파인 맑음이님도 이슬이 한 잔.... 큰애기님은 두 잔.... 천년하루님과 궁수는 반 잔?.... 주니어는 물로 원샷~~~
정말 꿀맛같은 저녁식사는 이것으로.... 후속으로 도착하는 산행객들을 위해 테이블을 넘기고 식수터에 가서 얼굴도 닦고 발도 닦고 치카치카도 한 후 다음날 2시 기상이라는 약속과 함께 6시 10분 대피소로 들어간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카메라만 들고 아들녀석과 밖으로 나오니 뉘엿뉘엿 해가 지려고 한다. 일몰을 보고 싶어서 촛대봉방향으로 올라가려는데 레인저들이 입구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일몰을 보러 가는 것은 된다고 해서 씨익.... 하루종일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다가 카메라만 들고 가니 발걸음이 가볍기만하다. 촛대봉가기 전에 세석평전에 펼쳐진 진달래와 어우러져 한 컷.....
6시 40분 드디어 일몰이 시작된다. 머리위에는 뭉게구름이 끝없이 펼쳐지고 세석대피소 뒤쪽으로 해가 저물어가는데 대피소의 모습과 하늘색, 산봉우리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과 30분 동안 세석에서의 황홀한 일몰을 지켜보고 7시 30분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잠 잘 준비를 한다.
나갔다오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이미 코를 고는 사람들도 많다.
아내에게 간단히 통화를 하고 옆자리에 누운 녀석의 머리와 볼을 쓰다듬고 잠을 청해본다.
언제 잠이 들었을까? 하룻동안의 산행에 지쳐, 지리산의 장대한 풍광에 취해, 훌륭한 동료들의 매력에 취해, 아들과의 행복감에 취해 나도 모르게 내일이라는 시간속으로 코~오~~~~~~~~~~~~~~~~~~~~~
여기까지가 첫날.... 둘쨋날은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네요....^^
2013.5.19 늦은밤.... 지리산을 되새김질하며~~~~ 궁수가......
첫댓글 생생한 후기글 잘 보고갑니다
마치 지금 산행을 하는 둣 합니다
그나저나.... 버스 놓쳤으면 어쨌을까 싶어요......
대장님... 덕분에....
그리움이 벌써 밀려오면 안되는?ㅎ
머리속은 배낭을 꾸리고 있다 가자 다시 지리산으로
그리움이 밀려오면 다시 짐싸서 함 가시죠
예전에 가보았는데, 후기글 읽어 보니 다시 지리산 가고 싶은 충동이 절로나네 한번 가봐야겠네요.
대장님 지리산 다른 코스로 함 추진해볼랍니다.
두번은 못하겠다고 생각한 지리산주였지만, 세상으로 나와보니 다시 들어가고 싶어지네요....
내년에 다시 병이 도지면 가겠지요.....
첫날만으로도 꽉 채웠네요ㅎ
즐감입니다~~
둘쨋날은 게을러서 쓸지 안쓸지 불실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ㄳㄳ
가고 싶었어도 감히 도전 못한 지리산 종주를 다녀 온 듯 생생한 느낌입니다.
멋진 아빠네요.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
다음에 힘들지 않은 지리산 코스 함께 하시죠
생생합니다~
언제나 가보려나~`ㅎ 수고 많았네요~
둘쨋날 기대 됩니다~~^^
제가 원래 좀 게을러서.....
아들에게 평생에 남을 멋진 추억을 남겨주셨군요..
먼 훗날 아들이 손자에게 멋진 할아버지셨다고 자랑도 하면서...ㅎ
ㅎㅎ윗글속에 큰애기도 있었답니당
그쵸 윗 글의 중심에 계셨습니다....
부자 동반 지리산 종주 !!!
마냥 부럽네 ㅎㅎ
아들 운동을 열심히 시키고.. 나도 몸을 만들어..
도전해 보고 싶네요...
장문의 여행기 즐감하였고 다시 한번 축하해요 ^^
언제 귀국하시나요? 오시면 연락주세요
막걸리 한잔 하시죠^^
유월말에 돌아갑니다.
산행후 막걸리나 한잔... 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