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로 얻은 성도의 축복
히브리서 9:23~10:18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을 드려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이 얻은 축복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구약 시대의 제사장의 속죄 제사가 가지는 한계점을 말하고 그리스도께서 드린 속죄 제사의 완전함을 대비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순서대로 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으로 인하여 얻게 된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인 우리가 누리게 된 놀라운 축복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단번에 그 백성의 죄를 담당하셨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셔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3절 말씀에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23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부터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란 구약 시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을 따라 지어졌던 성전과 성전 기구들과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 그런 것들은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모형이요 그림자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구약 시대에 동물 제물인 소와 양과 염소의 피들이 뿌려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참 성소에 들어가는 것들, 곧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더 좋은 제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더 의식에 속한 지상적인 제사가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사랑을 나누는 마음과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리킨다 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늘의 예배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성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깨끗해진 양심과 진실한 믿음과 죄를 물리친 거룩함으로 단장한 신앙이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귀하시고 온전히 빛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나아가 섬길 수 있기 위해서는 소와 양과 염소의 피로 정결케 되는 것이 아닌 더 좋은 제물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미물에 불과한 소와 양과 염소는 그저 본능에 의하여 움직이는 동물들로서 인간의 양심과 죄의식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인식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의 피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로서 불충분한 것임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 좋은 제물인 정결하고 흠이 없는 정금보다 더 귀한 어린 양 같은 보배로우신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나님의 새 백성들은 그 영혼과 삶이 정결하게 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는 세상에 오셔서 단번에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를 제물로 드려 우리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24절로부터 26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올라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리스도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인 지상 성전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곧바로 참 성소인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히브리서 기록자는 말씀합니다. 지상 성전의 경우에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소와 염소의 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해마다 늘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한번 그렇게 자기를 죽여서 그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고 두 번 세 번 그렇게 또 다시 자기 몸을 드려 피 흘려서 제물로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단번에 자기를 제물로 드려 그의 택한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하려고 세상 끝 곧 이천년 전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단 한번 이렇게 자기를 제물로 드린 것으로 끝난 이유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추가적으로 설명합니다. 27절과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모든 인간은 그 죄의 결과로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외없이 죽은 뒤에는 하나님 앞에서 소환되어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심판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역시 인간의 대표가 되어 동일한 운명에 처해졌으니, 그도 역시 아담 이래 모든 죄인과 같이 정해진 죽음의 숙명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 죄인들과 같이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그 죽음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본인의 죄로 말미암은 심판이 아니요 모든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대속적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단번에 드려진 이 대속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도 다 당하셨고 그것으로써 죄를 다 씻어주시고 죄인들에 대한 심판도 다 끝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리려고 세상 끝에 이 세상에 나타나셨지만 이제 두 번째 세상에 나타나실 터인데 그것은 그 백성들을 완전히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오곤 했는데,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은 밖에서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온다는 것은 그의 속죄 사역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 계시다가 다시 지상에 있는 그의 백성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는 것은 그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으며 이로 인하여 그의 백성들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장차 천사들과 앞서 간 구속받은 주의 백성들과 함께 영광 중에 다시 두 번째로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우리 구원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그의 죽음과 승천이 은밀한 중에 주의 택한 초대 교회 증인들 앞에서 이루어졌다면, 주님의 두 번째 나타나심인 재림은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타날 것이므로 이로써 주님을 믿고 신앙의 싸움을 싸워온 주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확증이 되는 큰 기쁨이요 자랑이요 승리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의 두 번째 나타남은 그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큰 기쁨이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박해하고 복음을 대적하던 자들에게는 심판과 재앙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두 번째 나타나심을 지금도 열렬하게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적 자세인 것입니다.
두 번째, 구약의 동물 제사가 죄를 없애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순종의 제사로 인하여 죄를 완전히 없애고 거룩함을 입게 해주었습니다.
10장 1절로부터 4절까지를 먼저 읽겠습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다시 한번 히브리서 기록자는 율법의 불완전성을 얘기합니다. 그것들은 실체가 아니요 그림자요 장차 올 참 형상의 예표적 모형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율법에서 기록된 제사 역시 불완전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그 제사를 드린 자를 죄에서 완전히 건져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늘 같은 제사를 드리지만 드려진 제사가 그 제사를 드린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죄에 대한 기억을 다 지워주지 않고 여전히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죄를 범한 사람이 그 같은 죄 때문에 또 다시 와서 제사를 드리고 또 와서 제사를 드릴지라도 여전히 죄를 기억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 제물인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애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구약의 선지자들과 시편 기자들을 통하여 구약 제사의 불완전함을 지적하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제사를 드릴 것을 예고한 바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록자는 5절로부터 진술하고 있습니다. 5절부터 1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린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여기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율법의 불완전성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의 완전성을 예고하였던 구약의 예언 말씀을 여기서 인용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쓴 시편 40편 6절 이하의 말씀인데, 여기서 히브리서 기록자가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중 첫 부분은 하나님께서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시편 40편 6절만이 아니라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이와 같은 말씀이 종종 나옵니다.
사무엘상 15:22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50:8 이하에서도 이르기를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 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8~15)
또한 호세아 6:6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몇 가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의 구약 백성들에게 그들이 준수하는 구약 제사가 불완전한 것이라는 점이요 그것들이 본질적인 것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임을 여러 차례 말씀하심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편 40편 말씀에서, 그 불완전한 구약 제사 대신에 완전한 제사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는 한 몸을 준비하셨으니, 그가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첫 제사가 불완전하기에 둘째 제사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셨으니, 그것은 첫 번째 제사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한 두 번째 제사로 제시된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는 하나님의 뜻을 자원하여 행하는 순종의 제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7절에서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는 말씀이 그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자기 몸을 단번에 하나님께 드리셨는데, 그것은 황소와 염소의 피를 흘려서 드리는 첫 번째 제사와 달리 더 완전하고 제사로서 그 피를 의지하는 자의 모든 죄를 다시는 기억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깨끗하게 씻어 정결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구약의 제사 예물과 신약 시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의 근본적인 차이는 구약의 속죄 제물인 소와 양과 염소의 피는 죄를 깨끗하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늘 기억하게 만들 뿐이었는데, 하나님께 자원하여 순종함으로 자기 몸을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완전한 제물이어서 그의 제물로 드려짐으로써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그의 피를 힘입는 자들의 모든 죄를 완전히 깨끗이 씻고 거룩함을 얻게 해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여 자기를 드리사 우리 죄를 씻고 거룩함을 얻게 해주신 우리 구주를 찬양합니다.
셋째로,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는 단 한번으로 그 효력이 영원하고, 그 결과로 그를 믿는 자들이 입은 혜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1절로부터 14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구약의 제사장의 사역은 죄를 없게 하지 못하므로 매일처럼 계속 같은 제사를 자주 드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리스도는 죄인 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죄를 위하여 단 한번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제사장들은 그 일이 끝나지 못하므로 앉아 있지 못하고 항상 서서 섬겨야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의 속죄 사역을 단 한번의 영원한 효력을 가진 속죄 제사를 완전히 성공적으로 끝내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속죄 사역을 위하여 수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제 일을 마친 자로서 그렇게 앉아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원수들 곧 마귀와 그의 졸개인들인 귀신들과 그의 종들인 악한 자들과 하나님의 복음에 대적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 이르기를 기다릴 뿐인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는 그의 단 한번의 완전한 속죄 사역인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그의 택한 백성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또 다른 제사를 드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단 한번이지만 그 속죄 효력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단 한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그의 속죄 사역으로 인하여 그의 택한 백성들이 누리는 축복에 대하여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15절로부터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여기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제사의 혜택에 대하여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심령의 내적 변화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3절에서 인용된 이 말씀은 주님이 순종의 제사를 드리고 그의 백성들에게 그의 법을 그 마음에 새기게 됨으로써 그들 생각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갖는 내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병행 구절인 에스겔서 36장 25~27절 말씀에서는 새 마음을 주시고 그들 심령에 그의 영을 두어서 그의 율례를 자원하여 행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전에는 죄를 씻지도 못하고 아무리 자주 제사를 드려도 죄를 기억하게 되는 불완전한 효력밖에 없는 구약 제사 아래 있었지만, 이제 새 언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으로 드려진 속죄의 제사로 인하여 그 심령에 새 마음이 주어지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지고 성령이 심령에 거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법을 자연스럽게 행하는 내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면으로부터 달라지는 혜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가지는 구약 제사는 아무리 제사를 여러번 드려도 죄가 씻겨지지 않고 자꾸만 죄책감에 눌리고 죄에서 자유함이 없었는데, 이제는 죄를 다 씻어주시고 죄책감에서 자유함을 주고 하나님과 화목된 기쁨을 주셔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지만 달라져 주님 안에서 열렬한 전도자가 되었으며, 세리장 삭개오도 돈의 노예였으나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돈을 풀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심령은 이전에는 두려워하는 종의 영에 잡혀 지냈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양자의 영을 받아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사했으니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처럼 명백한 구약 제사와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는 차이가 있으므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다시 구약 제사와 율법과 구약 성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히브리서 기록자는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 본문 말씀에서 다시 한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 속죄 제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완전한 속죄 제사를 분명하게 배우고 그 은혜와 축복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와 동일하게 한번 죽음으로써 우리의 많은 죄를 단번에 영원히 없애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시 두 번째로 세상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 때 다시 와서 모든 원수들 곧 죄와 사망과 마귀와 대적자들을 다 그의 발등상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성전 제사보다 더 훨씬 완전한 속죄의 은혜를 입었으니 구약의 동물 제사의 피는 죄를 없애지 못하고 늘 기억나게 해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단번으로 영원히 죄를 없어주시고 거룩함을 주시고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어 하나님의 법을 지켜행하게 해주시고 우리 죄를 영원히 기억조차 하지 않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불법을 영원히 다시는 기억조차 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은혜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 모두 이 복된 소식 곧 은혜의 사죄와 영원하고 완전한 사죄와 구원의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