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 중이던 1951년 경주 어느 고택(古宅)에 스웨덴 의료참전단 간호사들이 찾아와 부엌과 안채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촬영은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가 내린 특별임무였다.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구스타프 6세는 1926년 왕세자 시절 신혼여행 길에 일제하 조선에 들렀다. 경주 고분 발굴현장에선 봉황 모양 금관을 직접 들어내기도 했다. 그 고분이 '스웨덴(瑞典)'과 '봉황'에서 한 글자씩 딴 서봉총(瑞鳳塚)이다.
▶경주에서 왕세자 부부는 교동의 고택 사랑채에 묵으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왕세자는 이 기품있는 명문가에 감명받았지만 남자가 못 들어가는 부엌과 안채를 못 본 게 아쉬웠다. 그가 25년 뒤 한국에 파견된 간호사들에게 사진을 찍어오게 한 집이 경주 최부자 99칸 집이다. '진사(進士) 이상 하지 말라. 길손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이 없게 하라….' 최부잣집이 12대 200년을 이어온 힘은 수신(修身)과 절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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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주최씨 문중의 진사공파 소(小)문중이 그제 보건복지부 표창을 받았다. 2002년부터 잔디밭에 분골(粉骨)을 묻는 자연장지(葬地) '인덕원'을 운영해온 데 대한 격려다. 경북 영천 도덕산 자락에 있는 이 가족공원은 복판에 소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605㎡ 잔디밭이다. 표지석이라곤 자연장에 동의한 문중 가족 50여명의 이름이 함께 새겨진 입구 명단석 하나뿐이다.
▶이 중에 돌아가신 분이 생기면 잔디를 들어낸 뒤 흙과 유골을 1 대 1로 섞어 묻고 다시 잔디를 덮는다. 그리고 표지석 이름 옆에 '몇 년 졸(卒)'이라고 새겨넣는 것으로 그만이다. 빙 둘러 갖가지 꽃들을 심어놓아 마을회의나 자연학습, 가족소풍 장소로 내준다고 한다. 잔디 위는 산 사람들의 공원, 잔디 밑은 영혼의 안식처인 셈이다.
▶경북 상주엔 진주강씨 집의공파 소문중이 분골을 창호지로 싸서 묻는 가족묘원을 꾸리고 있다. 작년엔 광산김씨 도봉공파의 한 소문중이 모든 집안 장례를 수목장(樹木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퇴계 집안인 진성이씨 문중은 지난해 서랍식으로 유골을 모시는 문중 납골묘를 만들었다. 시대에 맞춘 변화의 바람이 주로 유교적 전통이 짙게 남아있는 경북지역에 일고 있어서 더 눈길이 간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실에 더 가까이 가는 걸음들이다. 조선일보 2010-04-13
첫댓글 창범감사님!! 이글을 언제 보았습니까? 참!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조간신문을 석간에 보니께네 어제 저녁이지요.......
장묘 문화도 이처럼 현실에 맞게 적절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